척추를 세우면 예뻐진다?
아름다움이 곧 건강함은 아니지만, 건강하면 반드시 아름답다. 이것이 뷰티 에디터가 몸의 정렬을 다루는 이유다. 정렬을 바로 잡아 건강과 미모를 회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do the right thing
살을 빼고 예쁜 몸의 라인을 만들기 위해 하는 운동 대부분이 인체 본연의 척추 구조에 반하는 자세를 요구한다는 걸 알고 있나? 열량을 소모하는 것과 몸을 바로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몸을 숙이고 질주하는 자전거 스피닝, 구부정한 자세로 방어 자세를 취해야 하는 복싱, 무게중심이 몸의 앞쪽으로 쏠리는 발레 등은 곧고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살을 빼고 싶다면 식단을 조절하고 좋은 의자를 사라. 등받이 아랫부분은 약간 들어가고 등을 받치는 부분은 볼록하게 나온, 체형에 맞게 등받이와 높낮이, 팔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비싼 의자말이다.
정렬이 필요한 삐딱한 세상
발 치료 전문의 윌리엄 로시가 신발 디자이너를 질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체의 뼈 4분의 1 이상이 발에 집중되어 있고 각 발마다 33개의 관절과 100개 이상의 근육이 있다는 걸 그들이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거다. 굽이 5cm만 돼도 몸은 전방으로 20도 기울어진다. 골반이 앞으로 기울면 중심을 잡기 위해 허리는 더 뒤로 휘어야 하고 자연히 근육과 인대의 부담은 가중된다. 걸어 다니는 피사의 사탑 내부, 장기의 위치가 바뀌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의 독창적인 보행 형태가 만들어지는 데 400만 년이 걸렸건만, 신발은 불과 수천 년 사이에 발의 순수한 해부학적 형태를 왜곡하고 공학적 유효성을 저해했다. 아름다운 경주마 서러브레드를 밭 가는 말로 전락시킨 건 인간 자신이다.”
한때 ‘허벅지 근육을 강화하고 코어를 단련하면 그나마 안전하게 하이힐을 신을 수 있다’는 요지의 하체 운동이 유행했다. 거기 동참해 레그 레이즈와 스쿼트에 빠져들었던 후배는 결국 개구리가 되었다. 틀어진 골반과 고관절은 그대로 둔 채로 복근과 허벅지를 강화하는 운동에 매진했다가 근육이 몸 바깥으로만 붙어버린 거다. 그리고 얼마 후 요통 치료를 하러 한의원을 찾았다. 여자들만의 문제라고? 남자들이여, 숨겨놓은 깔창의 높이와 굽의 높이를 더한 뒤 가슴에 손을 얻고 답해보길. 이게 남의 일인가?
구두만 문제가 아니다. 20년 경력의 에스테티션 벨라체 김은경 원장은 이제 더 이상 등 마사지가 먹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10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목과 등이 굳어 있고 어깨가 앞으로 말려 있다는 것. 그래서 상체의 앞면을 이완시키거나 목과 머리 근육을 바로 케어하는 테크닉을 개발하게 됐다. 삐딱한 시대가 뷰티 케어를 바꾸고 그 흐름은 ‘정렬’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내 귀에 경고 장치
나는 대학 때까지 꽤 ‘건들거렸다’. 터덜터덜 걷고, 구기듯 앉고, 서 있을 땐 어딘가에 기댔다. 정 의지할 곳이 없으면 오른쪽 다리에만 의지해 짝다리를 짚었다. 몸이 본격적으로 삐거덕대기 시작한 건 패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9cm 하이힐에 무거운 협찬 물품을 이고 지고 강남구 일대를 순회하길 3년, 어느 날 귀 안에서는 버저가 울렸다. 수초간 ‘삐’ 하는 이명이 계속되고 머릿속에서 송곳이 날뛰는 것 같은 두통이 뒤따랐다. 몸이 틀어져 있다는 경고음이었다. 얼굴 비대칭을 알아차린 것도 이때다. 건강과 아름다움이 동반 가출하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추나요법, 카이로프랙틱, 음양균형장치 스플린트, 턱관절을 안정시키는 마우스피스, 롤핑 대가의 도수치료, 뇌척수액을 바로잡는 CST, 두개골을 직접 풀어주는 크라니오, 근막 테라피, 각종 근육 마사지, 골기 테라피, 웨이트 트레이닝, 요가, TRX, 필라테스, EMA, 자세 보조 기구… 각 항목마다 전문가를 바꿔가며 두 번씩만 오갔다 쳐도 몸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지난 15년의 ‘남의 손’ 여정은 통장을 가난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내가 만난 전문가들은 각 분야의 명인이다. 다들 각자의 정렬 이론과 테크닉을 가지고 내 몸을 세워줬다. 그리고 치료의 끝에는 모두 바른 자세와 습관에 대해 강조했다. ‘어깨 펴고 바르게 앉아요’ ‘똑바로 서세요’ ‘낮은 베개를 베고 똑바로 누워서 자야 해요’. 같은 맥락, 조금씩 다른 디테일의 가르침(이것은 각자의 노하우다)을 받으며 나는 껄렁한 과거와 이별하고 지금의 ‘더(The) 바른’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의 정렬은 완성되었냐고?
바른 자세와 바른 운동은 다르다
“지나치게 바르네요.” 대한카이로프랙틱협회 회장, 면역증진센터 척추신경연구소 안준용 원장과 두개골 봉합선 케어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끝내 완벽히 바로잡지 못한 비대칭에 대해 하소연하며 그만 포기할까 싶다고 한숨짓자 그는 앉아 있는 내 옆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줬다. 귀와 어깨, 허리가 일직선상에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가슴 역시 당당히 펴져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을 ‘ㄴ’자 착석. 나는 칭찬을 기대했다. “두 발을 땅에 붙인 채로 움직여보세요. 미끄러지듯 쉽게 움직인다면 무게중심이 뒤로 가 있는 겁니다. 상체를 세워 앉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엉덩이 끝이 가장 뒤에 위치하게 만드는 거예요. 제대로 앉으면 발바닥이 땅에 뿌리 박힌 듯 쉽게 움직이지 않죠.” 다시 내 옆모습을 살펴보니 곧은 상체가 살짝 뒤로 넘어가 어깨가 엉덩이보다 약간 뒤에 있다. 안 원장이 나의 상체를 당겨 조금 앞으로 숙여 앉히자 그제야 발바닥에 무게가 실리며 하체가 단단히 고정되는 느낌이 든다. “이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말을 해봐요. 호흡의 깊이와 목소리의 울림이 달라진 걸 느끼나요?” 더 깊고 편안한 들숨 날숨, 속삭이듯 말해도 힘 있게 흐르는 음성에 놀란 것도 잠시. 곧바로 등이 구부정해지진 않았는지 어깨가 앞으로 말린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 이게 얼마짜리 몸인데, 유지해야 하는데! 안달을 내며 다시 몸을 곧추세우는 나를 안 원장이 저지한다. “몸을 억지로 펴려 힘을 쓰다 보면 또 다른 뒤틀림을 유발할 수 있어요.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목을 똑바로 세우려 노력하니 언제나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갔을 거예요.” 나만큼 자세가 바른 사람은 없을 거라 자신했는데 몸 교정 치료를 받을 때마다 “경추, 즉 목이 문제”라는 지적을 반복해서 들은 건 혹시 이 때문이었을까? 망연자실한 내게 안 원장은 “이제 교정은 그만 받고 뒤쪽이 조금 더 높은 방석을 깔고 앉아 스트레스 없이 양껏 일하다가 하루 마무리로 몸을 바로잡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이리저리 아무 곳에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발딱 일어나 똑같이 고고한 상태로 서 있는 오뚝이처럼 스스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었으리라.
애쓰지 않아도 바를 수 있다면
사람들 대부분의 몸은 틀어져 있다. 골반이 회전해 있고, 어깨는 앞쪽으로 말려 있으며 목뼈는 쓸데없이 지조 있는 일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활 도처에 있다. 초조함을 꼰 다리 사이에 숨기고 하루 15시간은 족히 모니터 혹은 스마트폰에 빠져 살며 휴식은 푹신한 소파에 허리를 말아 널브러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모로 누워 아작아작 과자나 축내다가 ‘살 좀 빼야겠다’ 경각심이 들면 작심삼일 절식을 하거나 틀어진 몸 그대로 근육 강화 운동에 돌입한다. 이러저리 쑤시거나 부상을 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교정 치료를 받고 마사지로 힐링을 꾀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배신감이 들면 이게 늙는 건가 싶어 화병까지 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건 정렬 운동뿐이다.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과 바른 자세가 나오는 몸을 만드는 것은 다른 얘기다. 물론 똑바로 서고 앉고 걸으려는 시도 자체도 의미 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툭 던져놔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바른 몸을 갖고 있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거다. 억지로 자세를 유지하느라 긴장하지 않아도 될 일이고 전문가를 전전하며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보그>에서 시리즈로 소개하려는 정렬 운동과 교정 도구는 잘못 깎인 원석을 재연마한다. “좋은 자세란 균형감, 안정감, 자각, 움직임의 우아함, 자유로운 사고와 정서를 모두 포함한다.” 바른 자세를 취하도록 몸과 마음을 재교육하는 알렉산더 테크닉 교사 리처드 브레넌의 명언을 기억하길.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시작하자. 전문가들이 공들여 쓴 책을 읽고 몸에 대해 공부하며 하루하루 실천하다 보면 몸 안에 묻혀 있던 보석을 발굴할 날이 반드시 온다.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안주영
- 모델
- 스완, 김이현
- 스타일리스트
- 임지윤
- 헤어
- 한지선
- 메이크업
- 홍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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