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화보

이솝의 가치

2018.12.07

이솝의 가치

1987년 호주 멜버른 태생.‘최소로 하되 제대로 하자’란 모토로 경쟁이 치열한 뷰티 월드에서 31년째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브랜드가 있다. 이런 그들의 협업 파트너는 상상 초월. 이번엔 아이리스 반 헤르펜이다.

‘이솝’ 하면 가장 먼저 어떤 그림이 떠오르시나? 약재상 스타일의 갈색 병, 그 위를 장식한 블랙 앤 크림색 라벨. 새벽 숲길을 떠올리는 아로마 향과 온종일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감각적 디자인의 매장, 섬세하고 신중한 고객 서비스. 이솝이라는 브랜드를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특별할 건 없다. 예를 들어 이솝 제품의 효능은 훌륭하지만 드라마틱하진 않다. 이솝만큼 뛰어나거나 강력한 임상 시험 결과를 보유한 브랜드도 많다. 그럼에도 이솝이 최고의 브랜드로 칭송받는 까닭은? 이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샤 메레디스는 그 대답을 ‘탈관행’이라 말한다.

서울은 이번이 처음인가요?
아뇨, 벌써 네 번째예요. 이솝에서 일한 지난 4년간 네 번 방문이라, 1년에 한 번꼴로 방문했군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떨 땐 1년에 두 번 온 적도 있는걸요.

이번 방문 목적인 ‘아틀라스 오브 어트랙션’은 아이리스반 헤르펜과 협업으로 완성했어요. 파트너로 그녀를 택한 결정적 이유는 뭔가요?
사실 오래전부터 그녀와 일하고 싶었어요. 아이리스는 정통 방식으로 패션에 접근하면서도 틀에 갇히지 않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죠. 그 점을 늘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아이리스와 이솝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기도 해요. 업계의 틀을 벗어나 자연, 건축, 과학 등에서 영감을 얻는 데 열정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죠. 이러한 열정의 교집합을 인지하고 아이리스와 협업을 추진하게 됐어요.

얼마간의 프로젝트였죠?
18개월에 이르는 긴 프로젝트였어요. 무엇보다 패키지 작업을 서둘러야 했죠. 패키지의 경우 멜버른에 있는 이솝 본사에서 직접 인쇄하고 유통하기에 리드 타임을 고려했을 때 캠페인 시작 시기보다 12개월 앞서 제작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아이리스는 기민하고 독창적인 데다 대응도 굉장히 민첩하죠. 덕분에 짧은 시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협업의 묘미는 우리가 독자적으로는 살펴보지 못한 영역을 더 깊이 있게 탐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와 협업한 모든 아티스트는 각기 특정 분야에 통찰력이 뛰어나죠. 일례로 아이리스는 자연을 비롯해 인체와 인체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요. 그녀가 작업한 모든 제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키트는 총 네 종류로 구성됩니다.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어떤 건가요?
음, ‘오르빗 오브 인텐션’에 마음이 기우네요. 아마 제가 창의적인 인물이고 이 키트가 창의적 프로세스를 대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프로젝트나 업무에 급박하게 돌입하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매일 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잠시 모든 일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순간이 오죠. 그럴 때마다 새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해요. 제게는 이 키트가 그런 창조의 과정을 잘 대변해주는 느낌이에요.

다채로운 아티스트 혹은 브랜드와 특별한 협업은 이솝의 가치를 극대화합니다. 얼마 전 리모와와 협업은 참신함 그 자체였죠. 협업 파트너 선정 기준이 따로 있나요?
‘미적 감각이 이솝과 일치하는가’를 우선 고려합니다. 아울러 사고방식과 태도 면에서 이솝이라는 브랜드와 궤를 같이하는지 여부도 함께 살피죠. 그 후엔 말했다시피 특정 분야에 대한 열정의 깊이를 따져봐요. 그런 아티스트가 우리를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영역의 더 깊은 곳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다른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그건 ‘겸손함’일 겁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나누는 데 있어서 겸손한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리스 반 헤르펜과 헨리 윌슨은 물론, 저희와 이전에 협업한 조향사 바나베 피용 모두 겸손의 미덕을 갖춘 이들이었기에 원활하게 소통 할 수 있었고 일의 진행 또한 물 흐르듯 매끄러웠죠.

이솝을 대변하는 주요 인사로서 브랜드를 알리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뭘까요?
이솝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늘 강조하는 점이라면 언제나 제품 자체를 가장 중시한다는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이솝은 스킨케어 브랜드로서 최상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해요. 이솝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31년간의 브랜드 역사와 함께 관행을 좇지 않는 정신을 계승해왔다는 점이에요. 매장 설계, 흠잡을 데 없는 서비스 등 여러 측면에서 탈관행 신조를 느낄 수 있죠. 전 이런 요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말보다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늘 이야기하죠. 제품과 서비스가 이솝의 핵심 요소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또 이솝은 예술, 문학, 건축, 자연, 과학 등에서 얻은 영감을 브랜드와 고객 간의 소통 과정에도 적극 반영합니다.

이솝은 뭐랄까, 빈틈없는 상사 같아요. 보이는 모든 게 잘 짜인 대본처럼 치밀합니다. 그런가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한 소통의 일부가 사실 굉장히 미묘하게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이런 소통은 종종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죠. 매장에 걸어 들어오면 컬러나 소재, 빛, 소리, 향기 등 요소 간의 미묘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때로 감각을 통한 소통이 직접적 소통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

동감해요. 이솝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 세 가지를 나열한다면요?
사실 세 가지 이상인데, 잘 골라 말해야겠죠?(웃음) 그렇다면 열정, 진정성, 창의성이요. 이 세 가지 가치가 굉장히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이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잘 맞추는 몇 안 되는 브랜드입니다. 단골손님에게 화장품이 아닌 책을 선물하고 격월로 문학집도 발행하죠. 이런 섬세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비롯됐나요?
사실 영감의 기원이 되는 소재는 굉장히 많아요. 그중 예술에서 특히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예술, 건축, 심지어 철학도 저희 사고에서 아주 중요한 축을 맡고 수많은 캠페인의 출발점이 되곤 해요. 아이디어는 도처에 존재합니다. 이솝에서는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모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눠요.

아름다운 매장과 감각적 패키지는 이솝의 또 다른 이름 입니다. 이솝의 디자인 철학이 궁금합니다.
패키지 먼저 이야기해보죠. 패키지의 근본적인 목적은 제품을 보호하는 것, 다시 말해 제품을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제품을 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갈색 병(앰버 글라스)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솝은 기능적으로 훌륭하면서도 단순한, 과하지 않고 낭비 없는 패키지를 지향해요. 따라서 패키지를 최대한 간소화하려 애쓰죠. 매장 디자인의 경우 일종의 ‘안식처’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를 구현하기 위해 컬러나 빛, 소재, 소리, 향기 등 감각적 요소를 아주 정교하게 조정했죠. 이솝이라는 브랜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매장 중앙에 카운터를 두어 그곳에서 고객들이 이솝의 전문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쓴 부분을 캐치했을 거예요.

그저 예뻐 보이는 것을 뛰어넘어 실용성까지 겸비했군요.
디자인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품 패키지나 매장 등 물리적인 디자인을 할 때에도 언제나 브랜드 철학이 그 근간이 된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솝은 ‘탈관행주의’라는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았죠. 따라서 이솝은 모든 매장을 설계할 때 그 매장이 속한 지역과 공동체의 환경에 맞추어 유연하게 결정을 내려요. 이러한 차별화 역량은 오늘날 이솝이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죠. 저는 디자인을 할 때에도 올바른 태도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믿고이에 따라 이솝은 이른바 주류의 방식을 거부하고 우리만의 길을 찾아왔어요.

바람직한 행보입니다. 제품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평상시 이솝 제품만 쓰나요?
요즘 비행기를 굉장히 자주 타기 때문에 ‘다마스칸 로즈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애용합니다. 영양이 풍부해서 요즘같이 건조한 시기에 아주 유용하거든요. 아, 한 가지 더 있어요. 제가 좀 수다스럽죠?(웃음)

천만에요. 그게 뭔가요?
‘브라스 오일 버너’요. 이 역시 잦은 출장을 빌미로 애착이 생겨버린 제품입니다. 전 집이라는 공간에서 제가 원하는 느낌이 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요. 어느 순간 정말 집에 온 듯한 느낌을 공간에 부여하기 위해서는 향기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런 면에서 이 오일 버너는 제게 선물과도 같은 아이템이에요.

이쯤에서 가장 좋아하는 오일은 뭔지 궁금해지는데요.
이번 신상이 아주 괜찮아요. ‘베아트리체’입니다.

꼭 써볼게요. 서울 곳곳에 자리한 아리따운 이솝 매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꼽는다면요?
사운즈 한남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저녁에 방문할 예정이라 확언하긴 어렵지만 아마 방문 후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밀려오네요. 당신은 어떤가요?

신사동 가로수길점이나 삼청동 매장이요.
오, 둘 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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