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팬데믹 그리고 브라

2021.05.21

by 공인아

    팬데믹 그리고 브라

    어느 작가가 산부인과 전문의, 인스타그램에 능통한 스타트업 기업, TV 시리즈 <사인필드(Seinfeld)>의 도움을 받아 여성의 브래지어를 재평가한다.

    내가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상의를 벗기까지는 351일이 걸렸다.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낡은 브라렛을 걸친 채 줌을 통해 시시콜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란제리 브랜드 컵(Cuup)의 핏 디렉터인 타니아 가르시아(Tania Garcia)였고, 그녀는 영상을 통해 내 속옷 사이즈를 측정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집에 포장용 노끈밖에 없다는 점을 사과했다. “괜찮아요. 우리는 요즘 피팅할 때 온갖 도구를 다 활용하고 있어요.” 타니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2018년 말 회사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일하면서 목격해온 다양한 피팅 장비에 대해 나에게 설명했다. (오프라인 매장 운영이 어려웠던 이들은 사업을 계획할 때부터 원격 피팅을 염두에 두고 창업을 준비했는데, 어쩌다 보니 현시대에 딱 맞는 서비스가 되었다.) “치실로 피팅을 진행한 적도 있어요. 그러니 노끈 정도면 훌륭한 겁니다.” 타니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치면서 우리의 옷차림 또한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스웨트팬츠가 인기를 얻었고, 하이힐과 립스틱은 버림받았다. 나아질 줄 알았던 재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각해졌고, 겉옷보다 이너웨어가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지난해 4월 초 록산 게이(Roxane Gay)는 “오랜만에 브라를 걸쳤더니 내 가슴이 나를 보고 험한 말을 하네”라고 트윗을 남겼다. 같은 달 첼시 핸들러(Chelsea Handler)는 브라 컵으로 얼굴을 감싸며 임시변통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는 모습을 시연하면서 브라의 또 다른 사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거와 같은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해진 6월 말 리덕트리스(Reductress, 여성 운동가들의 풍자 웹사이트)는 “브래지어의 일시 해고가 연장되었다”라는 헤드라인을 달기도 했다.

    이런 자유의 승격은 코로나19의 승화라고도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집에 ‘갇혀 있다’고 느꼈고, 탈브라는 일종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사실 뻣뻣한 언더와이어를 벗어 던지고 싶은 욕구는 본능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캐시 만화(Cathy Comic)가 유행하던 시대에도 브라는 ‘일하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몸을 뒤틀리게 만드는 장치’, ‘갈비뼈를 짓누르는 푸시업 파워 브라’라는 표현으로 불편한 것으로 표현되었으니 말이다.

    “옷에 잘 어울리는 몸매를 갖고 싶으면 가슴을 그런 실루엣으로 만들어야만 했어요.” 뉴욕 FIT 박물관에서 의상과 액세서리 큐레이팅을 맡고 있는 콜린 힐(Colleen Hill)이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힐은 팬데믹 상황에도 브라를 하지 않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브라를 착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브라를 하지 않은 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죠.” 콜린 힐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녀가 2014년에 기획한 전시 <노출되다: 란제리의 역사(Exposed: A History of Lingerie)> 역시 바로 이런 브라 디자인의 진화에 주목했다. 전시 작품 중 하나는 루디 건릭(Rudi Gernreich)의 1960년대 중반 작품으로 속이 비치는 네트 소재에, 다트는 있지만 와이어는 없는 브라로, 요즘 내 인스타그램에 계속 뜨는 광고 속 제품의 오리지널 작품과 흡사하다. 힐은 현재 계속되는 브라를 둘러싼 논란은 여성이 편안해지기 위해 한 발짝 진전한 것이기도 하면서, 각자의 몸과 체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한다.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특정 체형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 혹은 가지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죠.”

    여성들이 브라를 하지 않고 지낸 지난 1년. 노브라의 단점으로 꼽을 만한 게 있을까? “가슴이 큰 여성의 경우, 중력의 영향을 더 빨리 받는다는 점이죠.” 유방암 외과 전문의 크리스티 펑크(Kristi Funk) 박사는 말한다. 아래로 처지는 것을 지탱해주지 않을 경우, “유선 조직 사이에 위치하며 흉벽 근육에 부착된 인대가 늘어날 수 있어요.”

    펑크가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더 빨리 가슴이 처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가슴 처짐은 언제까지나 미적인 것이니, 가슴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든 본인의 자유입니다. 본인의 선택에 달렸죠.” 펑크 박사는 많은 시간을 브라와 관련된 미신을 파헤치는 데 쏟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브라가 유방암을 유발한다는 소문을 듣는 것 같아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이 둘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어떤 연관성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근접성만 놓고 봤을 때, 이런 기본 추론이 이해는 간다고 말한다. “당신의 브라는 당신의 가슴을 당신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이 만지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나에게 핑크 로터스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아나오노(AnaOno)가 디자인한 ‘엄청 편안한 수술 직후용 브라’를 소개했다. “제가 가장 놀랍다고 생각한 수치는 지난해 8월에 나온 결과로, 매주 유방암 진단 환자가 50%씩 줄어든다는 것이었어요.” 펑크가 이어서 말했다. “문제는 이 암이 발병하지 않아서 진단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환자는 존재하지만 아직 병이 발견되지 않아 더 커지고, 세포 분열하고, 전이되고 있다는 거죠. 최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검사를 미루다 유방암으로 사망한 케이스가 1만 건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예측 결과가 나오기도 했거든요. 집콕으로 인한 더 많은 알코올 섭취, 비만, 좌식 생활 역시 한몫하죠.”

    나는 브루클린 애틀랜틱 애비뉴의 지하 1층에서 브라 가게를 운영하는 아이리스 클라크(Iris Clarke)를 찾았다. 벨리즈에서 태어나 브루클린 자치구인 브라이튼 비치 지역에 거주 중인 클라크는 47년 동안 브래지어를 피팅해왔다. “저희 매장에 여성 고객분이 찾아오면, 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피팅을 도와줘요. ‘제가 지금 피팅 룸으로 들어갈 거예요. 당신 몸을 만지게 될 거고, 가슴을 손으로 어떻게 들어 올려야 하는지 보여줄 거예요’라고 말하죠. 저는 드레스 숍의 피팅 전문가보다 더 섬세하게 일한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예술이 대부분 사라졌어요! 이를 원하는 고객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클라크는 기껏해야 장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내 삼각 모양 브라렛을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을 지지하는 브래지어를 입어야죠! 지금 입은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딱 봐도 D컵 같은데.”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속옷 피팅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런 말을 못 들었겠죠!”라고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트콤 <브로드 시티(Broad City)>에서 일라나와 애비가 브라 피팅을 받으러 가는 신이 떠올랐다. 그 장면에서 가게 주인은 “신선한 처녀 가슴 고기가 들어왔네”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피팅 룸 안에서 클라크는 내게 여러 가지 제품을 추천했다. 블랙 레이스 브라, 네이비 블루 컬러 브라, 앞이 깊게 파인 부드러운 셔츠형 브라 등이다. “이 브래지어는 요즘 다들 입고 있는 스타일이라서 코로나 브라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녀가 편안함을 강조한 스타일을 두고 말했다. 클라크가 나에게 조언해준 요점은 브라 컵 사이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몸무게가 변하거나 임신할 수도 있기 때문에 브라도 때마다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브래지어를 바꿔줘야 해요. 영원한 것은 절대로 없답니다.” 나는 결국 평소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30DD라는 어색한 브라 사이즈) 페일 블루 컬러의 레이스가 달린 브라를 구입했다.

    지난해 11월 노브라 시대가 한창일 때, 패션 기고가인 마존 카를로스(Marjon Carlos)는 컵의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컵(이 브랜드는 A에서 H 컵 사이즈까지 브래지어를 판매한다)의 모델들이 다양한 여성의 몸매를 대표하고 있다면, 이곳의 편집 플랫폼인 바디토크(BodyTalk) 역시 스토리텔링을 통해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란제리 브랜드는 역사적으로 유혹과 욕망과 섹시함이 주가 되죠. 모두 제가 매우 사랑하는 것들이에요.” 카를로스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뷰티나 보디, 커리어, 정신 건강 등 여성과 관련된 것들을 어떻게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까요?” 지난해 5월 컵은 새로운 계획의 일환으로 응급 의료 요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었다. 카를로스는 컵의 편집장이 되기 전부터 ‘하의 실종’과 정반대 패션을 선호했다. 베이식한 헤인즈(Hanes) 스웨트팬츠에 컵 브라를 위에 입은, 반은 걸치고 반은 벗은 패션이 그녀의 교복 같은 스타일이었다. “나 역시 등을 파고드는 불편하고 바보 같은 브라를 입던 시절이 있기에 브라 업계가 받는 부당한 평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핏의 소중함을 계속 강조하는 거예요.” 그녀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미란다가 어머니 장례식에 입고 갈 브라를 쇼핑하는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장면에서 미란다는 그녀가 평소에 입던, 잘못된 사이즈의 브라를 찾으려다 어느 순간 판매 여성과 눈물의 포옹을 나눈다.

    나와 컵의 핏 디렉터가 나눈 줌 통화는 눈물바다로 끝나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정서적으로 위로가 됐다. “우리는 단순히 브라 사이즈만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브래지어가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나요? 지금 당신 기분은 어떤 가요?’ 등의 질문도 하기 때문에 ‘핏 테라피스트’라고 불려요.” 20년 전 대학생이던 시절, 그리니치 빌리지에 위치한 란제리 부티크에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가르시아는 추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저는 여성을 돕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젊은 나이에 우리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떻게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지 깨달았답니다.” 나는 ‘우리는 당신을 지지한다’는 컵의 슬로건을 떠올렸다. 명민한 마케팅을 펼치는 시대에 기업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를 주의 깊게 이해하려는 것이 스스로 너무 어리석게 느껴지긴 했지만, 컵의 이 말은 내 가슴속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단순한 행위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바꿀 수 있다면, 어떠한 구조 혹은 스냅을 이용한 가슴의 끌어 올림 또한 우리에게 심리적인 부스팅을 제공하지 않을까?

    피팅을 마칠 때쯤 나는 내게 맞는 새로운 사이즈를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32C가 나왔다. 노끈으로 흉곽 너비를 쟀을 때 28인치가 나왔지만 가르시아는 좀 더 여유 있는 밴드가 편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 가지 제품을 추천했다. 플런지(The Plunge), 스쿱(The Scoop), 발코넷(The Balconette)으로 모두 선택할 수 있는 컬러군이 다양했다. 지난 금요일 컵에서 주문한 제품을 택배로 전달하며, 우리 동네 페덱스(FedEx) 담당자 단테는 그날이 그의 마지막 출근일임을 내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며, 지난 한 해 동안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라, 나는 그를 내 직장 동료라고 생각해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문을 닫고 택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내게 필요한 브라가 들어 있었다. 나에게 꼭 필요했던 지지!

      에디터
      공인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Laura Regensd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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