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 퍼진 밀레니엄 버그
왜, 대체, 어떻게 패션계에 밀레니엄 버그가 퍼졌나.
어깨로 넘겨 걸친 펜디의 바게트 백. 해진 데님 쇼츠에 오버사이즈의 라운드 버클 벨트를 착용하고, 스트랩 키튼 힐, 베이커 보이 캡과 매치했다. 뒷면에 고딕 폰트의 ‘Nasty’라는 단어를 라인스톤으로 수놓은 핑크 벨벳 소재의 트랙 팬츠에 매트릭스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썼다. 처음에는 과거의 패션 유물같이 들렸을 수도 있는 이 조합 모두 현재 가장 주목받는 모델들이 지난 1년 동안 인스타그램에서 입었던 옷이다. 그리고 이런 스타일은 이번 시즌 현재 런웨이에까지 스며들었다.
2000년대 패션이 독기를 품고 패션쇼장으로 돌아왔다. 미우미우의 모피 장식 니하이 부츠, 블루마린의 초커, 크리스털 장식 캐미솔, 최근 랑방 캠페인에서도 볼 수 있듯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의 거대한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 패리스 힐튼조차 패션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 시기의 키치한 매력과 혼란스러움이 적절히 뒤섞인 패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가장 명성을 떨치던 몇몇 브랜드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쥬시꾸뛰르는 2020년 리론칭했고, 어그 역시 와이/프로젝트나 몰리 고다드 같은 최신 유행 브랜드와 협업하며 급부상했다. 반면에 가장 영향력 있는 팝 컬처 현상 중 이런 ‘포스트 Y2K’ 스타일의 재림을 잘 보여주는 <가십걸> <섹스 앤 더 시티> <프렌즈>가 TV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현재 대부분의 유행이 그렇듯, 패션에 중독된 Z세대의 영향도 분명 있지만 이 유행은 틱톡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됐다. 프로스티 블루 컬러의 아이섀도를 바르고 나비 모양 핀을 꽂은 사이버 세상의 소녀들이 ‘Mr. Brightside’에 맞춰 행복하게 춤추며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한탄하는 바로 그 틱톡 말이다. 10대에게 중고 거래 앱으로 유명한 디팝(Depop)에서도 미스 식스티(벨라 하디드가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진이나 블링크 182 티셔츠, 수백 달러의 멋진 스케쳐스 스니커즈를 찾는 태그가 인기다. 이런 아이템이 올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 아이템이 이미 빈티지가 되어 그럴 수 있다. 이런 문화가 점점 하이패션에까지 흡수되는 과정에서 조금 놀라운 것은 바로 최신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 격 브랜드 중 하나인 마크 제이콥스가 첫 번째로 이 유행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제이콥스는 지난해 그의 메인 컬렉션에 대중이 좀 더 접근하기 쉬운 방법을 강구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창의력을 뽐내는 아바 니루이(Ava Nirui)와 협업한 ‘헤븐(Heaven)’ 라인에 그렉 아라키(Gregg Araki)의 영화나 아오키 쇼이치(Aoki Shoichi)의 <Fruits> 매거진에서 볼 수 있었던 일본 스트리트 스타일 같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걸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어요. 처음 구매한 디자이너 아이템이 바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였거든요. 당시 럭셔리의 정점 같은 느낌이었어요.” LA에서 온 아바 니루이가 말했다. LA에는 이 듀오가 론칭한 첫 번째 팝업 스토어가 있는데, 헤븐 라인 제품뿐 아니라 빈티지 서적으로 꼽히는 잡지, 소품을 다루고 있으며, 헤븐 라인에 영감을 준 2000년대 초반의 반문화 아이템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겪은 첫 번째 트렌드이자 10대의 실제 문화이고, 최근 다시 나오는 이 빈티지 브랜드가 모두 제게는 아주 익숙해요.”
이런 추억의 요소를 현실로 받아들인 또 다른 한 명은 정체되어 있던 블루마린을 2019년 말부터 이끌기 시작한 30세의 디자이너 니콜라 브로냐노(Nicola Brognano)였다. 그는 블루마린을 1990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전성기로 돌려놓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2021 F/W 컬렉션에서 브로냐노는 2000년대 초의 미학을 강력히 밀어붙였고, 누군가 지팡이를 흔들며 지적해댈 만한 파스텔 컬러의 인조 모피 스톨에 아주 과감한 시퀸 장식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 시기에 성장해 굉장히 친근하게 느끼지만, 현대 감수성으로 재해석하고 싶었어요. 행복, 섹시함,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컬렉션으로 말이죠. 너무 천박해 보이지 않으면서 규칙을 부술 수 있는 그런 무언가도요.” 현재 2000년대 초반 트렌드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유행 20년 주기설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브로냐노는 더 깊이 들어간다. “이 유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어느 때보다 행복과 함께 걱정 없는 순간을 원하는 시기잖아요.”
브로냐노는 틀리지 않았다. 트렌드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당시 패션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서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반영하면서 과거의 것을 함께 되살려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10년의 스타일을 뒤늦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디자이너들이 통일성 있는 큰 그림을 만들기 위해 끌어낸 2000년대 초반의 색다른 요소는 주로 경기 침체 이전의 퇴폐성과 언제라도 파티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화려함이었다. 브로냐노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다. “이런 시기에는 모두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랑방 2021 F/W 컬렉션 캠페인 영상에서 아주 열정적으로 드러난다. 랑방은 2000년대 초의 카니발 같은 분위기를 선보였는데, 팔로마 엘세서나 최소라 같은 모델들이 2004년에 발매된 그웬 스테파니의 ‘Rich Girl’을 배경음악으로, 파리의 럭셔리 호텔을 랑방 쇼핑백을 양손 가득 든 채 돌아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다. 카메오로는 래퍼 이브(Eve)가 출연했다. 랑방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인 34세의 브루노 시알리(Bruno Sialelli)는 가벼운 조롱 같은 느낌으로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가사가 ‘내가 부자라면 말이야’잖아요. 뭔가 갈망하고 있다는 게 여전히 느껴지죠.” 시알리가 지적하듯, 2000년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새로운 세대가 가장 거대한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장했고, 그들의 유년기를 다시 되살리는, 마치 흔들리는 추가 다시 올라오듯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000년대 문화는 저와 같은 세대의 다른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통해 돌아오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MTV 문화가 유행하던 시대가 아주 중요해요. 저는 프랑스 남부에서 성장했고, 10대에는 배우, 뮤지션, 패션 등이 문화를 접하는 창구였거든요.”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나 라프 시몬스가 자신들의 10대 시절인 1980년대 스타일과 음악을 재현한 것처럼, 1990년대 스타일은 뎀나 바잘리아나 글렌 마르탱 같은 디자이너를 통해 돌아오기도 했다. 따라서 밀레니얼 세대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하릴없던 10대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부를 자랑하고 최고를 지향하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죠. 굉장히 급변한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시알리는 덧붙였다.
당연하게도 이 2000년대에 대한 관심은 패션을 넘어선다. 디자이너들이 되살려낸 터무니없이 촌스러운 미학은 2000년대 초반을 한껏 채운 문화적 아이콘에 대한 더 넓은 문화적 재평가와 당시 타블로이드 신문의 얄팍한 여성 혐오와 맞물려 있다. 최근 <뉴욕 타임스>에서 제작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자. 파파라치의 무례함과 그것이 브리트니의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 자넷 잭슨의 슈퍼볼 공연 의상 관련 실수에 대한 대중의 잔인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대한 재평가 등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됐다. 이는 10년이라는 기간을 정의한 스타일을 만든 여성에 대한 공감의 명백한 부재가 패션이라는 한층 좁은 렌즈를 통해서는 사라진 듯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2000년대 대중문화의 덜 매력적인 부분은 과거에 묻어둘 만하지만,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의 스타일은 현재 어떤 의미로는 낯설기도 하다. 1년 동안 스웨트팬츠와 스니커즈만 입고 살다가 2000년대 초반 특유의 현란하고 뭔가 아닌 듯하면서도 멋진 분위기에 취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자가 격리가 끝나고 맞는 첫 저녁 약속에 아찔할 정도로 높은 스트랩 힐과 시머한 미니 드레스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의상이 있을까?
가을의 초입에 2000년대 초반 패션이 여러 컬렉션의 뜨거운 환호 속에 귀환해 온 매장에 깔린 이유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모두가 패션에서 재미를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란의 1920년대 ‘Roaring Twenties’ 세대의 신여성이 비즈와 깃털을 흩뿌리고 다녔다면, 우리 세대도 반짝이는 스팽글 크롭트 톱을 입고 다이아몬드 모양의 스티커 타투를 하고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청바지를 걸치고 다니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새로운 Y2K 시기를 춤추듯 헤쳐나간다. 이것은 지난 1년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VK)
- 글
- LIAM 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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