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니고와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대화

2021.12.27

by VOGUE

    니고와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대화

    루이 비통 남성복에 혁신을 일으킨 버질 아블로가 2021년 11월 28일 41세로 세상을 떠났다. 패션 창조, 패션 협업, 패션 공감을 주도했던 버질이 생전에 이에 관해 패션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얼마 전 겐조 아티스틱 디렉터로도 임명된 니고와 버질의 마지막 패션 대화.

    지구의 한쪽에 미국인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있다. 루이 비통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오프화이트의 창립자이며(LVMH가 인수했다), 불혹의 나이지만 여전히 래퍼들과 친하게 지내며 복합 문화체로부터 자유로워진 패션 언어에 매료된 당대 젊은이들의 참된 아이콘이다. 다른 한쪽에는 1970년 일본에서 태어난 니고(Nigo)가 있다. 그는 데리야키 보이즈(Teriyaki Boyz)의 DJ이자 프로듀서이며 스타일리스트다. 스트리트 웨어 세계와 그 너머까지 영향을 미친 ‘A Bathing Ape’(그 방면의 사람들에게는 베이프(Bape)로 알려졌다)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시대성을 아우른 창조자 버질 아블로, 루이 비통을 통해 버질과 의기를 투합한 니고. 그들만의 결속력과 공감대에 관한 대화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요?

    Virgil 알고 지낸 지 15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만났죠. 그 당시나 지금이나 니고는 패션과 럭셔리의 특별한 통찰력으로 현대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우리 두 사람과 친한 친구가 다리를 놓아 서로 알게 됐습니다.

    Nigo 버질은 카니예 웨스트 팀의 멤버였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힙합 아티스트처럼 버질도 저를 종종 찾아왔죠. 2006년 펜디에서 카니예가 등장하는 파티를 주최했고, 그곳에서 버질, 킴 존스와 함께 어울리게 됐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다음부터 엄청나게 가까워졌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나요?

    Nigo 버질과 저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죠. 우리 모두 DJ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우린 같은 컨셉에 끌렸죠.

    Virgil 다소 나이 차이가 있지만, 니고와 저는 실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같은 음악이 있죠. 그것은 메시지를 전하기에 제격인 예술 양식이거든요.

    버질, 니고가 어떤 영향을 주나요?

    Virgil 그는 럭셔리에 새로운 접근법을 접목했어요. 대형 브랜드는 여러 면에서 그들의 유산을 단순히 일궈왔을 뿐이죠. 그렇지만 니고는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놓았습니다. 삶이나 문화적인 방식에 완전히 몰입해 유산을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어냈죠. 문화적 분위기가 패션 디자인만큼 그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방식의 작업이 저에게 영감을 주죠. 아티스틱 디렉터라 불리는 인물 중 니고는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파합니다.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가 제게 문을 열었고, 이제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문을 열고 있죠. 저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거예요.

    그렇다면 니고, 버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요?

    Nigo 버질은 제 발자취를 어느 정도 따른 디자인 세대에 속합니다. 오프화이트는 제 브랜드 베이프가 꺾일 무렵 시작됐죠. 그는 늘 흥미로운 디자이너라는 인상을 줍니다.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헌신적이고 가장 높이 평가되는 문화 대사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베이프를 매각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 버질은 제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루이 비통 아티스틱 디렉터가 됐을 때 제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었죠. 저는 솔로 프로젝트를 맡을지 고민하고 있었죠. 그 기회는 다양한 차원에서 의욕을 재충전하도록 도왔습니다.

    두 사람이 협업한 LV² 남성복 컬렉션은 동양과 서양, 힙합과 모즈를 뒤섞으며 ‘어반 댄디 2.0’을 지향했습니다. 이 혼합적 측면이 왜 중요했나요?

    Nigo 1950년대 혹은 모즈족의 로커빌리(Rockabilly, 로큰롤과 컨트리 음악을 혼합한 미국 음악) 같은 많은 문화가 현대 패션의 핵심 요소입니다. 그들이 보여준 룩은 팬츠 재단부터 칼라 색상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죠. 패션, 음악, 아트 부문에서 예술 혁명의 일부였습니다. 힙합에서도 마찬가지죠. 힙합은 처음부터 경계를 넘나드는 완전한 무브먼트였습니다. 늘 이 점을 마음 깊이 새겼고, 이번 컬렉션에도 담아냈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해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표현하는 스타일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Virgil 이 컬렉션에 니고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길 바랐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댄디한 멋을 풍깁니다. 수년간 새빌 로의 수트를 입어왔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유의 아우트라인과 더 기능적이고 더 젊은 룩을 결합하기로 했죠.

    ‘모더니티’에 관한 두 사람의 컨셉과 탐구가 하나가 되도록 만든 건가요?

    Virgil 디자이너로서 우리가 하는 일은 미래를 내다보는 동시에 우리 나름의 역사를 만드는 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적 아이콘, 예를 들어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경우 제 가치관을 볼 수 있고 저만의 현실을 배우죠. 그것은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이며, 자신이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 확신하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맺는 유대감에 겸손함과 투명성을 입증해요. 루이 비통에서 일하면서 제 임무는 주위에 보이는 것을 잘 포착하고 그것들이 200년 역사의 패션 하우스에 잘 깃들게 하는 겁니다.

    Nigo 저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절에 성장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 없이 여가를 보내야 했죠. 그래서 제가 뭔가를 원하면 중고 매장을 휩쓸고 다녔습니다. 여기저기 많은 곳을 쏘다녔고 제가 찾는 것에 완전히 집중했어요. 반면에 요즘은 정보 접근이 굉장히 수월해졌어요.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죠. 패션, 미술품, 그 어떤 것도 거칠 것 없습니다. 세상이 가상 세계나 다름없는 것 같아 너무 슬퍼요. 그나마 저는 젊은 일본 청년들이 기모노에 부츠를 매치하기 시작하던 ‘사무라이 시대에서 모던 시대로 가는 과정’처럼 중요한 과도기를 거쳐서 정말 다행이었죠.

    두 사람이 늘 경계를 초월하려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Virgil 하나의 특정 장르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어요. 패션, 아트, 음악, 뭐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창의성을 하나의 캡슐로 묶는 것은 그런 자연적 프로세스를 망가뜨립니다. 저는 하나의 예술 양식에만 집중하지 않아요. 더 확장된 맥락으로 그것들을 보죠. 이것은 라인과 평행선으로 다양하게 작업하고 나름의 조합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제 시그니처죠. 루이 비통은 이것이 내포하는 책임을 인지하고 더 발전하도록 도와줍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논의했나요?

    Virgil 줌을 통해 주로 논의했습니다. 또 니고의 인상적인 개인 아카이브를 더 깊이 파고들며 서로에게 수많은 이미지를 보냈죠.

    Nigo 아카이브가 제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카이브에 담긴 이미지로부터 계속 배우죠. 패션은 당신이 누구인지 반영해야 합니다. 구글이 우리를 위해 선택해준 사진을 보며 뭐든 창조해낼 수 있죠. 저는 게으르게 살고 싶지 않아요. 시의적절한 의미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아트, 특히 그림 작업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요?

    Nigo 패션과 시각 예술은 최근에야 서로 친밀해졌어요. 좋은 일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카우스(Kaws) 같은 예술가는 그래픽 디자인이 작품, 예술, 패션 아이템의 라인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줄 수 없었을 테니까요.

    Virgil 당신은 뭔가 느끼게 만들거나 뭔가 상상하게 만드는 그런 대상이 중요합니다. 제가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예술 사조가 바로 초현실주의입니다. 그것은 믿게 하거나, 믿게 만들기 위해 예술, 다시 말해 마그리트(Magritte), 달리(Dali),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등의 작품을 활용하죠.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이 시대가 너무 좋습니다.

    힙합과 펑크는 저항에서 유래한 음악 장르입니다. 두 음악 장르가 두 사람은 물론 각자에게 인상을 남긴 스트리트 웨어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됐나요?

    Nigo 일본과 도쿄는 뭔가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어요.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바깥세상의 패션, 라이프스타일, 문화가 동시에 이곳으로 도래하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것들을 쉽게 섞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힙합이 이곳에 처음 출현했을 때, ‘랩과 빅 골드 체인’ 스타일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도쿄 래퍼들은 중고 청바지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입었으니까요. 제가 성장하던 1980년대에 함께했던 힙합과 펑크의 혼합은 LV²에 직접 영향을 미쳤어요. 제 모든 프로젝트에 영향을 준 것처럼요.

    Virgil 펑크 시대는 특별했습니다. 영감으로 넘쳤죠. 하지만 우리 세대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럭셔리, 스트리트 그리고 패션이 한데 녹아 있는 도가니를 발견했으니까요. 10대에 재즈, 소울, 아프로비트, 랩을 들었습니다. 펠라 쿠티(Fela Kuti)에서 건즈 앤 로지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요.

    패션과 관련된 어린 시절 기억이 있나요?

    Virgil 부모님이 아프리카 가나의 켄테(Kente)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모습을 보았죠. 늘 아버지의 옷 입는 방식과 다양한 아이템의 매치가 감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는 바느질을 잘하셨죠. 어머니가 직접 옷 만드는 것을 보며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Nigo 제가 다섯 살 때였을 거예요. 스누피 스웨트셔츠를 너무나 갖고 싶었죠. 매일 울며불며 사달라며 졸랐어요. 그리고 지금 감사하게도 오래전부터 스누피 스웨트셔츠를 수집하고 있답니다.

    버질, 당신 부모님은 가나 출신입니다. 창의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에서,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요?

    Virgil 그곳은 창작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뿌리이며, 유산의 근원이죠. 제가 성장한 그곳은 DNA이며 저의 개인적인 문화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그 점에 더 애착을 갖게 되었어요.

    니고, 당신 작품에서도 일본적인 모티브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더 많이 드러나겠죠

    Nigo 맞아요. 그 모티브가 최근 들어 정말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조상의 도자기, 사발뿐 아니라 먹물로 그린 벽화 등 일본 전통 요소를 재발견했습니다.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하나요?

    Nigo 퍼렐 윌리엄스는 여러 스타일에 걸쳐 뛰어난 뮤지션일 뿐 아니라 함께 작업할 때 기쁨을 주는 아티스트예요. 참고로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 덕분에 재즈 스탠더드 곡과 클래식 음악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죠.

    Virgil 여러 컨템퍼러리 아티스트의 팬입니다. 그중에서도 미국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가 가장 좋아요. 그는 규칙을 깨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유 영혼을 가졌기에 영감을 주죠.

    버질, 당신이 설립한 ‘포스트 모던 재단(Post Modern foundation)’을 매일 얼마만큼 신경 쓰고 있나요?

    Virgil 포스트 모던 재단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저와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제 생태 환경의 유형적인 부분입니다. 저는 흑인이나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패션 스쿨 입학금을 지원하도록 100만 달러를 모아 재단을 출범시켰죠. 현재 미국에는 80여 개 단체가 참여하며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개인 교습과 다양한 자원을 제공합니다. 저는 거기서 매우 적극적으로 일해요. 본업만큼 이 일에 열정을 쏟고 있죠. 변화를 원한다면 어둠 속에 그냥 있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차세대 디자이너들이 그들만의 길을 어떻게 찾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Nigo 더 젊은 세대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는 일은 썩 어렵지 않아요. 그들은 아이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런 라이프스타일로는 호기심과 혁신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많은 디자이너가 등장하길 바라는 한편, 차세대 대스타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Virgil 이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인터뷰를 읽은 뒤 그렇게 할지도 모르겠군요. 어떤 경우가 됐든, 그들은 스스로를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선배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지만,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흐름에 맡기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봐야 해요. 낙천주의자로 사는 건 제가 자리를 박차고 나서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우리의 과거보다 미래가 더 나을 거라고 봅니다. 밝은 미래로 우리를 이끄는 미디어와 상관없이 패션, 창의성, 예술적 진정성 등 어떤 측면에서든 밝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VK)

      SOPHIE ROSEMONT
      삽화
      FRANÇOIS BERTH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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