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서울의 새로운 스파 5
감성을 자극하는 은밀한 위치와 이국적 풍경.
디톡스, 힐링, 마인드 케어의 집합체 ‘모던 웰니스’를 위한 <보그> 숙녀들의 스파 투어.
MAP OF THE SOUL
기대보다 막연한 두려움이 배어 있는 나이 ‘아홉수’. 불혹 직전의 심정이 이런 걸까요?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예전만 못한 기분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동안’이라 자부해왔기에 세월의 무게가 야속할 뿐이죠. 기나긴 ‘거리 두기’ 지침에 지긋지긋해진 저는 오롯이 저를 위한 투자로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을 찾았습니다. 사무실에서 호텔까지 예상 소요 시간은 24분. 도착 전, 택시 안에서 스파의 트리트먼트 메뉴를 집요하게 뒤져봤죠. 오후 3시.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16층 ‘소피텔 스파’는 프랑스 상위 1%가 편애하고 전 세계 93개국의 특급 호텔 & 리조트 스파에서 애용하는 럭셔리 스파 브랜드 비올로직 호쉐쉬(Biologique Recherche)를 전개하는 ‘보떼비알(Beauté BR)’의 두 번째 스파가 자리한 곳이죠. 개인 맞춤형 페이셜 & 보디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저니(Journey)’는 이곳의 대표 프로그램입니다. 비올로직 호쉐쉬의 최첨단 피부 측정기를 이용해 수분, 지질막, 주름, 색소, 피지 분비 상태를 면밀히 분석한 뒤 피부에 맞는 관리가 배정되는 시스템이죠.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실례지만 양 볼의 면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테라피스트 애슐리 권의 일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 염려 마세요. 다만 여기 왼쪽 볼과 턱선이 미세하게 무너졌어요. 페이셜 관리 틈틈이 가벼운 마사지로 균형을 맞춰볼게요.” 확신에 찬 그녀의 한마디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을 수 있었어요. 마사지 압력 선호도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강하게’를 체크한 제게 애슐리는 가벼운 미소를 띠며 ‘딥 머슬 트리트먼트’를 추천해주더군요. 또 페이셜은 ‘비올로직 호쉐쉬’ 제품을, 보디는 ‘테르메스 마린’ 제품을 사용하며 ‘저니’는 페이셜과 보디를 각각 받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팁을 덧붙였습니다. 120분 관리에 37만8,000원!
애슐리는 저를 싱글 룸으로 안내했습니다. 소피텔 서울 스파에서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세 개의 1인실 중 하나였죠(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무미건조한 시티 뷰라는 것). 딱딱한 클로그를 벗고 태어나 신어본 것 중 가장 편안한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상하의를 탈의한 채 신축성 좋은 블랙 그물 소재의 일회용 속옷만 걸친 채 새하얀 침대에 몸을 던졌습니다. 트리트먼트 베드에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로 눕자 웰컴 터치로 가벼운 풋 리추얼이 진행됐어요. 아직 본격적인 관리는 시작 전인데도 온몸의 스위치를 끈 것처럼 긴장이 탁 풀리는 걸 보니 스파 룸의 조도와 테라피스트의 손맛, 트리트먼트 베드의 온도가 ‘삼위일체’를 이룬 듯합니다.
사실 스파를 받다 보면 은연중에 양가감정이 듭니다. 부족함과 충분함이 그것이죠. 하지만 이곳에서의 제 마음은 더도 덜도 말고 ‘이만하면 됐다’였어요. 양 팔다리, 데콜테와 복부, 두피까지 어느 한 곳 아쉬운 구석 없이 정성껏 터치해준 덕분이죠. 보디 트리트먼트 이후 진행된 페이셜 관리는 상담 시 언급한 ‘좌우대칭’을 고려한 리프팅 동작이 더해졌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튕기듯 왼쪽 광대뼈와 턱선을 쓸어 올리는 테크닉은 천편일률적 공장형 관리가 아니라, ‘맞춤형’ 옵션임을 기분 좋게 각인시켜주더군요. 당부할 점이라면, 비올로직 호쉐쉬의 향이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것 정도.
모든 관리가 끝난 시간은 오후 5시 30분. 로브로 몸을 감싸고 엉킨 머리를 빗는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 결혼식 전날로 돌아간다면 다음 날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억지로 눈을 붙이며 양을 셀 시간에 여길 찾았을 거라고 말이죠. 나갈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자 애슐리가 방긋 웃으며 묻더군요. “페퍼민트, 루이보스, 캐모마일,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아차, 석촌호수 전망의 릴랙세이션 라운지에서 즐기는 티타임이 남았군요. / 이주현 <보그> 뷰티 디렉터
RELAXING TRIANGLE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라고 염불을 외워도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순 없죠. 생존을 위해 억지로라도 요가원을 다니고 명상을 합니다. 강박과 마인드풀니스가 이미 잘못된 조합이지만요. 이들 덕분에 그럭저럭 지내다 요맘때쯤 위기에 처해요. 추위에 운동이 줄고 마음이 처지기 때문이죠. 특히 건조하고 홍조가 있는 피부여서 겨울엔 마른 가지처럼 말라요. 몸(피부)과 마음은 연결되었기에 누군가 스트레스를 지피면 화르르 불타 제 인격이 의심될 지경이죠.
이때쯤 스파를 가요. 20~30대에는 단순히 피부가 좋아지는 스파를 찾았어요. 이제는 심신을 함께 다스리고 싶어요.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호텔 지하 2층에 자리한 ‘에스파 앳 페어몬트(ESPA at Fairmont)’가 제격이죠. 에스파는 1992년 창립한 영국 스파 브랜드예요. “신체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니즈를 살펴야 한다”는 설명에 끌렸죠. 피부 발현 문제나 통증을 외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이라는 근본 문제를 찾으려 해요. 신체, 마음, 정신의 트라이앵글을 관리하는 거죠.
이곳의 시그니처 프로그램 ‘홀리스틱 바디 & 페이스 리추얼(Holistic Body & Face Ritual)’을 신청했어요. ‘이너 캄(Inner Calm)’이라는 주제의 얼굴과 몸 마사지를 90분간 받았죠. 44만원이고, 120분과 150분은 약 15만원씩 늘어나요. 보디와 페이셜 프로그램은 각각 4~5개 종류가 있어요. 페이스 프로그램은 피부 재생 트리트먼트, 브라이트닝, 안티에이징 등 자신이 더 원하는 관리를 선택하면 되고, 보디 프로그램은 좀 더 강력한 압의 마사지, 임신 통증을 완화하는 마사지, 혈액순환에 좋은 핫 스톤 마사지 등이 있죠.
에스파에 예약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어요. 테라피스트와의 상담이 중요한 과정이거든요. 이들 모두 영국 본사의 테라피 교육을 이수했어요. 피부뿐 아니라 마음 상태가 어떤지 설문지를 작성하고 상담한 후에 결과에 따라서 같은 스파 종류에서도 어떤 에센셜 오일을 사용할지, 초음파 기계 강도나 마사지 압의 정도 등이 달라지죠. 제품은 에스파 자체 브랜드예요. 식물 추출물, 해양 활성 성분과 에센셜 오일을 배합했죠.
‘홀리스틱 바디 & 페이스 리추얼’은 개별 공간에서 이뤄져요. 샤워실과 파우더 룸, 은은한 클래식이 흐르는 낮은 조도의 스파 룸으로 구성되죠. 스파는 몸 마사지를 받는 중에 얼굴 관리가 들어가요. 노폐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솔 향기가 은은한 스팀을 쬘 때는 숲에 와 있는 것 같았어요. 민감한 눈가는 전용 아이 패치로 촉촉하게 유지하면서 나머지 얼굴은 따뜻한 기계 관리와 시원한 팩이 오가요. 따뜻함과 시원함의 레이어가 피부에 페이스트리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에요. 피부 재생을 도와주는 초음파 기계는 얼굴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 같았어요. 보디 마사지 역시 중간중간 의사를 확인하며 압을 조절하고 오일로 부드럽게 매만졌죠. 가벼운 스트레칭까지 하니 90분이 금방 끝났어요. 스파를 끝내고 유럽식 응접실에서 잠시 쉬었어요. 테라피스트가 가져다준 오미자차와 양갱이 맛있어서 한 번 더 먹을 뻔했다니까요. / 김나랑 <보그> 피처 에디터
GOOD AFTERNOON
점심 직후 식곤증과 일명 ‘하기 싫어’ 병이라는 이름의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건 우리 시대 현대인의 공통점 아닐까요. 한 해가 지나자 한층 더 멀리 달아나버린 생기를 되찾기 위해 필라테스를 등록했지만, 아직까지 개운한 기분보다 근육통으로 고통받는 저에게 필요한 건 나른한 휴가와 같은 관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루 중 다과와 곁들인 티타임을 갖고, 낮잠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문화를 유일하게 가진 시간대 ‘애프터눈’이라는 이름이 붙은 스파 프로그램은 그래서 더없이 매력적이었죠.
‘애프터눈 스파(Afternoon Spa)’라는 매혹적인 트리트먼트가 운영되는 곳은 한남동 한적한 언덕에 자리 잡은 스파 세이지힐(Spa Sagehill). 사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건 몇 개월 전, 어느 라이 스타일 브랜드의 신제품 론칭 행사 때였습니다. 직접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 공간은 고즈넉한 분위기와 한남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완벽한 뷰, 프라이빗하게 분리된 공간, 아이보리와 우드 톤으로 꾸민 현대적인 인테리어만으로 단번에 마음을 빼앗았죠.
주말 아침, 비록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오후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예약해둔 스파를 받기 위해 세이지힐을 찾았습니다. 벨을 누르고 대문을 통과해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까지 잘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들었죠. 가구부터 액세서리 보관함, 드라이어까지 모두 ‘명품’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웰컴 티로 제공되는 세이지티와 함께 추위에 언 몸을 녹이며 문진표를 작성합니다. 간략하지만 선호하는 음악, 주기적으로 하는 운동과 피부 타입, 스파의 목적, 압력의 강도를 묻는 핵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피부 고민은 본격적으로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부쩍 줄어든 탄력, 마사지 강도는 강하게(Strong).
애프터눈 스파(가격 38만원)의 소요 시간은 모두 130분. 30분간의 준비와 입욕, 60분간의 보디 마사지, 40분간의 페이셜 트리트먼트로 서사 있게 구성됩니다. 2층의 VIP 룸으로 안내받은 뒤에는 마사지를 받을 공간과 연결된 욕실에서 탈의 후 호주 유기농 스파 브랜드 ‘소다쉬(Sodashi)’의 배스 솔트를 풀어놓은 욕조에 몸을 담급니다. 이때 샴페인과 함께 공복을 가볍게 달래주는 딸기와 블루베리 등의 과일이 제공되죠. 따뜻한 물에서 커다란 소나무를 바라보며 샴페인을 마시고 있으니 그야말로 호사가 따로 없습니다. 입욕과 샴페인으로 온몸이 흐물흐물해졌다고 느껴질 만큼 노곤한 상태가 되면 보디 트리트먼트를 위해 베드에 눕게 됩니다. 마사지를 받기 전부터 근육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 상태로, 스파에서 생소하게 느껴지던 ‘샴페인’이라는 존재가 가진 힘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죠.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태국 스파 브랜드 ‘판퓨리(Panpuri)’의 보디 오일로 전신 마사지가 시작됩니다. 스포츠부터 아로마까지 다양한 보디 마사지를 경험해본 제가 느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만큼 ‘딱’ 좋은 압의 세기였다는 겁니다. 전날 강도 높은 운동으로 특히 경직돼 있던 목과 어깨, 허리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켜줍니다. 편안함에 잠식돼 혼미한 와중에도 ‘아, 시원하다’라는 말이 끊임없이 입안에서 맴돌더군요. 목덜미부터 발끝, 손끝까지 섬세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터치는 구석구석 계속 이어집니다. 더없이 큰 만족감을 안겨준 보디 트리트먼트 후에는 40분간의 미니 페이셜 트리트먼트가 이어집니다. 각질과 노폐물을 제거해주고 수분 마스크로 피부에 쫀쫀함을 주는 제품은 전부 ‘테르메스 마린’. 수분감이 증발할 새 없도록 관리 중에는 얼굴 가까이 따뜻한 스팀기가 증기를 뿜어내고, ‘미니’라는 수식어에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피부에는 테라피스트의 전문 테크닉이 들어갑니다. 탄력이 고민된다고 했던 만큼 특히 턱 라인을 리프팅시켜주는 동작이었죠. 10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베드에서 일어나니 고민이라곤 없는, 부드럽고 편안한 표정의 제가 거울 속에 있더군요.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시원한 만자니아차(스페인 국화차) 한 잔과 함께 앙증맞은 사이즈의 쿠키와 초콜릿, 젤리로 이루어진 다과를 즐겼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다음 누군가의 예약이 없었더라면, 테라피스트의 노크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나만의 호텔 방처럼 머물고 싶을 만큼요. / 송가혜 <보그> 뷰티 에디터
LOST PARADISE
사실 페이셜 트리트먼트를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물론 스파를 받는 중에는 그 향과 정성에 여기가 천국인가 싶고, 몇 시간 동안은 얼굴에 번쩍번쩍 광이 나지만 여러 제품을 끊임없이 레이어드하다 보면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면서 다음 날이면 트러블이 하나둘 올라오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죠. 스파 프로그램이나 제품의 문제라기보다 워낙 얇고 민감한 피부 탓이 큽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탈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몹시 예민한 악(악악!)건성이라 하루에도 크림을 서너 번은 덧바르곤 합니다. 물론 화학 성분을 최소화한 아주 순한 제품으로.
그런 점에서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뱀포드(Bamford) 스파는 소개부터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창업자 캐롤 뱀포드의 고향인 영국 코츠월드 ‘농장’의 스파 서비스를 고스란히 옮겨와 자연 유래 원료로 개발한 전문 스킨 & 보디 케어 제품으로 받는 트리트먼트. 자연적이면서 총체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답게 뉴트럴 톤의 돌과 나무로 장식한 매장 분위기 역시 화려하진 않았지만 친근하고 편안했습니다. 무엇보다 관리 전 상담이 믿음을 더해주었습니다. 뱀포드 스파를 찾은 오후 4시쯤엔 이미 얼굴의 사막화가 꽤 많이 진행된 상태였는데, 테라피스트 김진경 부매니저는 마스크 위로 드러난 피부를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부가 무척 얇아요. 그래서 무거운 제품보다 모공을 청소해주는 엘릭서와 피부 밸런스를 맞추고 수분을 충전하는 엘릭서를 혼합하는 게 좋겠어요.”
여느 스파에서처럼 피부 타입과 고민을 짧게 묻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 관리는 림프를 따라 마사지하면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배농 위주로, 순환과 침투를 원활히 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는 것, 피부 상태에 맞춰 제품과 방치 시간, 테크닉 등이 달라진다는 차분한 설명을 듣다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결국 본래 예약한 ‘페이셜 시그니처’ 70분 코스 외에 등과 목, 어깨를 풀어주는 보디 테라피를 30분 추가했어요. 페이셜 시그니처에도 데콜테와 복부, 팔 관리가 포함돼 있지만 순환이 주목적이라면 몸과 함께 했을 때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에서요(마침 뻐근한 어깨도 한몫).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요가와 닮아 있는 트리트먼트였습니다. 그저 누워서 일방적으로 관리를 받는 게 아니라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에 가까웠죠. 뱀포드 시그니처 아로마 ‘비 사일런트 나이트 타임 필로우 미스트’를 뿌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으로 테라피가 시작됐고, 관리 내내 나의 호흡에 맞춰 손길의 템포가 달라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페이셜 관리를 받으면서 매번 들었던 ‘세상에, 화장품 종류가 이렇게 많다고?’ 같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모든 단계가 상식적이었고 기본에 충실했어요. 따뜻한 스팀과 타월로 모공을 열어 딥 클렌징을 한 후에는 수딩 팩을 얹어 진정을 돕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해 가능한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제품을 다양하게, 많이 사용하기보다 사전 설명처럼 뭉친 근육과 림프를 리드미컬하게 자극해 수분 흡수를 위한 길을 터주는 데 집중한다는 느낌이었죠. 특히 이완을 돕는 핫 스톤과 활력을 충전시키는 콜드 스톤을 번갈아 사용하며 목과 어깨를 만져주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훅 터져 나왔습니다. 복부 마사지를 하기 전이 스톤을 양쪽 어깨와 목 아래,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는 가슴 인맥 위에 두는데, 온몸에 힘이 스르르 빠지면서 산뜻한 해방의 기분마저 들었죠. 어쩐지 지금쯤이면 안색이 한결 건강해져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존재감을 뚜렷이 하는 다크서클도 조금은 옅어졌을 것 같았고요.
물론 그만큼 드라마틱한 결말은 없었어요. 운동도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달라진 보디라인을 확인할 수 있듯 피부 역시 꾸준히 케어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실감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스파를 받은 지 이틀째. 아직 트러블 없이 피부는 매끈하고 오후 3시만 되면 얼굴이 땅기던 불쾌한 느낌도 확실히 덜합니다. 잃어버린 수분이 확실히 채워진 기분! / 권민지 <보그> 콘텐츠 디렉터
HEAD TO TOE
맹렬한 칼바람에 살기 위해 몸을 한껏 웅크리고 다닌 요 며칠. 안으로 말려들어 이젠 화석화되어버린 듯한 목과 어깨는 급기야 깨질 듯한 두통을 동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사지 체어로는 도저히 대체가 되지 않는 테라피스트의 꼿꼿한 손맛이 간절했던 타이밍에 맨 먼저 떠올린 구원의 이름은 압구정에 위치한 러쉬 스파. 다소곳하고 조금은 딱딱한 전형적인 스파가 아닌, 영국 시골 마을에서 길을 잃은 듯한 정겨움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곳이지요.
이곳에선 테라피스트가 몸의 상태와 심리 상태까지 면밀히 체크하는 ‘컨설테이션’으로 케어가 시작됩니다. 고민을 적은 쪽지를 태워버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몸의 피로만이 아니라 마음의 짐 역시 이곳에 버리고 가라”는 테라피스트의 나긋나긋한 코멘트는 속세의 시름을 까무룩 잊게 하고, 오은영 박사님을 만나기라도 한 듯 마음에 큰 위안을 주죠.
러쉬가 제게 친절한 스파로 분류되는 또 다른 이유는 나의 상태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제품을 함께 골라나가는 점입니다. 어떤 제품을 어떤 순서로 사용하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보통의 스파와는 달리 향과 텍스처를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능동적 케어라는 점이 제겐 포인트입니다. 이날 고심해 고른 나만의 처방은 두피 케어 프로그램인 ‘탱글드 헤어’와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더 스펠’. 먼저 족욕으로 발을 청결히 하고 유연한 상태로 만든 다음 본격적인 케어가 시작됐어요. 풋 마사지 하면 일반적으로 좌식을 떠올리지만 더 스펠 프로그램은 따끈하게 데워진 베드에 누워 몸을 가장 편안하게 이완시킨 상태에서 받도록 고안됐습니다. 부츠와 스니커즈 속에 단단하게 옥죄어 몸의 무게와 압력을 고스란히 받아낸 발은 오늘의 이런 호사를 예상이나 했을까요? 발가락 신경 하나하나에 뭉친 혈과 근육을 때론 지긋하게, 때론 리드미컬하게 어루만져주니 스르르 잠이 드는 건 시간문제. 오래된 기억 속 풋 마사지는 스틱 도구 등으로 온 체중을 실어 발바닥을 꾹꾹 짓누르는 것이었는데, 더 스펠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감미로운 압으로 진행되지만 압도감과 밀도감은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죠. 발의 피로가 다 풀리고 아쉬움을 느낄 타이밍에 전신의 지압이 시작됩니다. 그야말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반으로 나눠 대칭에 맞게 누르는 듯한 정교한 지압은 무너진 몸의 좌우 밸런스를 바로 세우는 개운함을 선사했어요.
더 스펠 풋 마사지가 끝나면 탱글드 헤어 케어가 연달아 이어집니다. 다소 정적이었던 더 스펠 프로그램이 도심에서 쌓인 독소를 광활한 사막 밖으로 배출하는 느낌이었다면, 탱글드 헤어는 우주 끝의 에너지와 기를 끌어모아 머릿속에 충전해주는 듯한 강렬한 25분의 여정입니다.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두피를 리드미컬하게 튕기는 리프팅 동작은 다소 멍해져 있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들죠. 탱글드 헤어의 25분은 쉬이 잠이 들 수 없습니다. 밀어 올리는 듯한 리프팅 동작 외에 손끝을 튕기는 동작, 손날을 세워 방망이질하듯 두드리는 페팅 동작 등 신선한 마사지 기법의 변주를 온몸으로 즐기다 보면 잠이 들 틈이 없죠. 마사지는 두피를 지나 페이스, 목 라인, 데콜테 부위까지 쉼 없이 이어집니다. 콜드 스톤으로 다소 들뜬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케어는 25분이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며 극강의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컨설테이션 포함, 더 스펠 프로그램은 75분에 13만원, 탱글드 헤어 프로그램은 35 분에 7만원. 전신의 근육과 뼈의 분절을 빈틈없이 두루 살피는 풀 코스가 아니라면 두피와 풋 마사지의 조합을 추천해요. 두피와 발의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로감이 싹 풀리고 한결 가벼워질 테니 말이죠. 안온한 휴식을 선사했던 영국의 시골 산장을 뚜벅뚜벅 걸어 나오니 현실은 참 춥네요. 다음 예약을 서둘러야겠군요. / 박세미 <보그> 뷰티 칼럼니스트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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