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와 나눈 일문일답

2023.02.12

by 조소현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와 나눈 일문일답

    최근 글로벌 디자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다. 버질 아블로와의 협업부터 영화 <기생충>까지,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로 서울을 찾은 그녀와의 일문일답.

    첫 방한한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서울 논현동의 카시나 크리에이티브랩에선 그녀가 디자인한 가구와 무라노 유리 화병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지난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선 버질 아블로와 카시나(Cassina)의 만남이 화제였다. 어떻게 협업이 이뤄졌나?

    2019년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버질 아블로의 전시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패션 그 이상의 비전을 담은 환상적인 전시였다. 그의 작품을 본 순간 사랑에 빠졌고, 카시나 측에 버질과의 협업을 제안했다.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보고 싶었다. 카시나는 이전에 버질이 오프화이트에서 만든 가방을 재해석한 적이 있었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곧 작업이 진행됐다. ‘Modular Imagination’이라 명명한 이 작품은 버질의 말에 따르면 “검정 알파벳” 같은 검은색 큐브가 시작점이다.

    이 검정 큐브는 언뜻 보면 붐박스 같다. 올드스쿨 힙합 문화의 상징 말이다.

    맞다. 그게 바로 버질의 언어로 써 내려간 이 작품의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각각의 모듈엔 ‘Cassina×Abloh’ 로고가 박혀 있고 이 모듈은 누군가의 방 혹은 집의 형태로 성장해간다. 물론 소파나 테이블로 쓰일 수도 있다. 겉보기엔 단단하지만 만져보면 물렁물렁하고 매우 부드럽다. 리사이클링 나무와 100% 재활용 가능한 바이오 폴리우레탄 소재로, 현대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

    버질의 상징인 오렌지 컬러로 꾸민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하나 보여주고 싶었다. 버질이 세상을 떠난 뒤 돔 전체를 그를 위한 헌정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4년 전 카시나 쇼룸에서 실내 계단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돔 안에 계단과 층을 만들고 밖에도 따로 층을 내어 정원과 연결했다. 원래는 블랙 & 화이트였던 계단을 이번에 오렌지 컬러로 바꾸었다. 그리고 디자이너 15명이 이번 헌정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피스를 제작했다. 그 장소에 모인 모두가 많은 사진을 남겼다. 기념 책자도 만들 예정이다. 버질과 함께 계획한 작업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협업은 계속될 것이다.

    올해는 카시나의 창립 95주년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나?

    이번에 참여한 디자이너 15명 중 5명이 새로운 디자이너다. 우리는 샬롯 페리앙처럼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디자이너의 유산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카시나의 레거시 피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오래된 디자인을 훨씬 친환경적이고 편안한 소재로 바꿔나가고 있다. 단순한 리프로덕션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레거시’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선 열린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당신이 상을 수여한 최종 우승자 정다혜는 한국 전통 갓의 소재인 제주도 말총으로 현대적인 공예품을 만든다.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가치를 알고 그에 매료되는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 기술의 발전과 전통의 보존은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이 많지 않나. 내가 태어난 스페인에도, 내가 살아온 이탈리아에도 있다. 정다혜 작가의 작업은 전통을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우다. 그 외에도 인상적이었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건축물의 주춧돌을 사용한 정명택 작가, 길게 자른 가죽으로 바구니를 만든 김준수 작가의 작품 등이다. 여담이지만 제주도에 꼭 가보고 싶다. 다음엔 제주도에서 카시나 워크숍을 열어보면 어떨까? 여기 있는 모두를 초대하겠다. 자연과 함께하는 카시나다운 워크숍이 될 것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파이널리스트 중 7명이 한국인인 것도 놀라운 일이다.

    밀라노가 그런 것처럼 서울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작은 디테일을 먼저 관찰해야 한다. 서울에는 밀라노의 카시나 쇼룸과 같은 수준의 쇼룸이 있고, 패션 관련 클라이언트도 많아지고 있다. 어제 파티에 참석한 젊은 사람들도 무척 스타일리시했다. 한국의 전통 드레스(한복)를 모던하게 차려입은 여성은 최고였고. 2000년부터 서도호의 작품을 좋아했다.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크게 놀랐다.

    서도호의 작품 역시 한국의 전통 가옥과 복식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카시나 팀 모두가 한국 영화 <기생충>의 에너지에 큰 영감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대 문화와 사회, 도시의 모든 문제점을 담은 영화다. 특유의 유머도 흥미로웠고, 영화적인 표현 방식도 독특했다. 봉준호 감독은 진정한 장인이다. 특히 주인공의 가족이 부잣집의 거실 테이블 아래에 숨는 신! 집주인 부부가 애정 행각을 벌이는 동안 숨죽인 가족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고, 인간성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인상 깊었다.

    테이블이 그런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건 그걸 만든 디자이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종의 은신처처럼 말인가? 하하.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가구와 제품을 다양하게 활용해줬으면 좋겠다. 정해진 용도 같은 건 없다. 상상력을 발휘해달라.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당신의 집은 어떤가? 당신이 디자인한 많은 것들처럼 컬러풀하고 패셔너블한 공간인가?

    난 우리 집이 나와 비슷한 분위기이길 바란다. 누군가 잘 아는 이의 집에 방문했는데 그 공간에 이질감이 든다면 이상하지 않나. 집의 크기는 상관없다. 그냥 그 집에 사는 사람과 잘 어울리면 된다. 크리에이티브한 커플로서 우리 집 지하엔 스튜디오가 있고, 지붕에는 정글 같은 정원이 있다. 여행을 자주 다니던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파트너 알베르토는 “우리에게 정원이 왜 필요해? 집에선 잠만 잘 뿐인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에 그곳은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정원에서 밥도 먹고 춤도 추고 요가도 하고 많은 걸 했다. 봄이 시작될 땐 새들이 둥지를 틀고 나비가 날아오는 그런 정원이다. 같이 뭔가를 기른다는 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 건축대학과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지금도 밀라노에 살고 있나?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나는 완벽하게 스페인 사람인 동시에 완벽한 밀라네제(Milanese)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가까이에 살면서 우리만의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다. 잠옷 차림으로 일하러 갈 수 있을 만큼 집과 작업실이 가까우면 모든 게 투명해진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

    팬데믹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디자인 분야에선 어떤 변화가 있을까?

    환경과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것이 멈춘 탓에 여러 문제점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생겼다. 덕분에 사업적으로 성장했고 카시나와 함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여러 탐구도 할 수 있었다. 절대 ‘적당히’는 없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곧 우리 자신이다. 자연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오늘 당신이 입은 셔츠를 만든 송지오를 비롯, 많은 패션 디자이너도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지 않아도 송지오 옴므라는 브랜드가 마음에 들어 간단히 리서치를 해봤다. 팀 버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도 있더라. 이 위대한 감독은 자본주의와 관련된 문화적 관점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팀 버튼과 협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즉시 흥미를 느꼈다. 단순히 소재에서만 지속 가능성을 찾을 게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 역시 지속 가능하게 바뀌어야 한다. 카시나의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 같은 젊은 디자이너 듀오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는 방식부터 친환경적이다.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 활동 외에 또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나?

    조금 전에도 백화점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난 모든 것에 열려 있다. BMW 쇼룸 작업도 계속 진행하는 중이다. 산토니, 지안비토 로시, 미쏘니 등 패션 브랜드의 인테리어를 도와주고, 로에베 재단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예 문화를 대표하는 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패션 기업이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기쁘다. 카시나 역시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작업을 지속하고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우리는 문화 전반에 걸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VK)

    간결한 라인과 풍성한 볼륨이 돋보이는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센구(Sengu) 소파 시리즈와 센구 티 테이블, 버질 아블로의 모듈 블록이 놓인 거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카시나와 버질 아블로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Modular Imagination’ 전시 전경.

    에디터
    조소현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이우정
    Courtesy of
    Cassin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