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에리카 바두의 또 다른 역할

2023.04.28

by VOGUE

    에리카 바두의 또 다른 역할

    그린 코트는 메종 마르지엘라 아티즈널 디자인 바이 존 갈리아노(Maison Margiela Artisanal designed by John Galliano), 이세이 미야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커스텀 모자는 헤일리 데자르당(Hailey Desjardins).

    네오소울의 창시자, 본능적 감각의 패셔니스타 에리카 바두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훌륭한 멘토이자 출산 도우미로 가족과 관계를 지키는 그녀는 타고난 포용력으로 영혼을 위로하는 모두의 어머니다.

    화이트 니트 드레스는 에르메스(Hermès), 이세이 미야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커스텀 모자는 헤일리 데자르당(Hailey Desjardins).

    에리카 바두(Erykah Badu)는 독특한 소재나 장식 때문에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의상을 즐겨 입는다. 화보 촬영일, 방울 달린 끈을 목에 두르고 등장한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자 지금은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사우스 댈러스의 소박한 판잣집에서 <보그>를 맞이했다. 페인트가 흩뿌려진 오버올을 입고, 자수정 크리스털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와 큼지막한 은반지, 고무 뱅글을 주렁주렁 착용한 채 머리에 붉은색 비니를 눌러쓴 바두는 광활한 대지에서 영감을 받는 예술가로 보이기도, 신비로운 주술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겨울치고는 이례적으로 토네이도 경보가 발령돼 촬영 현장에는 긴장감이 약간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촬영을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히고, 가로수가 줄지어 선 마을에 다시금 새소리와 가벼운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플립플롭을 신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던 바두가 뒤돌아 고속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처럼 커다란 트럭과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컸어요. 땅을 울리는 진동이 포근하게 느껴지죠. 바람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마음이 안정돼요.”

    문을 열자 새하얀 몰티즈 한 마리가 발랄하게 뛰어나와 바두에게 안겼다. 그녀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안녕, 타이론”이라 말하며 강아지를 토닥였다. 전 남자 친구에 대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노래한 그녀의 대표곡 ‘Tyrone’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바두의 어머니 콜린 깁슨(Kolleen Gipson)은 평소 퀴니(Queenie)라 불린다. “퀴니를 만나면 제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실 거예요.” 바두가 귀띔했다. 바두의 트레이드마크인 거침없는 성격, 장난기와 재치의 원류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면 이곳에 와서 퀴니를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에리카 바두의 본명은 에리카 아비 라이트(Erica Abi Wright)로 소울 퀸으로 거듭나기까지 그녀는 위대한 여성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어머니 퀴니(바두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릴 때 이혼했다), 두 할머니 델마 깁슨(Thelma Gipson)과 비올라 윌슨(Viola Wilson), 대모 그웬 하그로브(Gwen Hargrove)가 바로 그들이다. 자신의 부모이자 선생님, 의사였던 이들에게서 바두는 위기를 유머로 극복하는 법을 일찍이 체득했다. 바두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배우 리처드 프라이어를 아버지로 생각하며 살았어요. 집 안에서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남자 목소리였거든요(웃음).” 바두의 가족은 수십 년 동안 이곳 댈러스에서 살았다. 지어진 지 100년도 더 된 낡은 집에서 바두는 샤카 칸, 핑크 플로이드, 포비 스노우, 프린스, 릭 제임스의 음악을 듣고 또 들으며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키웠다. 친구나 친척이 모이거나 생일 파티를 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그들의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그 시절에 비하면 훨씬 고요한 편인 촬영일은 퀴니의 주도로 대화가 흘러갔다. (바두의 남동생 에빈(Eevin)과 여동생 코라이언(Koryan)도 사우스 댈러스로 오고 있었다.) 퀴니가 3년 전 사별한 어머니 델마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대단한 역사가였어요. 세상의 모든 뉴스를 수집했지요. 기사 스크랩은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였고요.” 바두에 관한 기사를 오려 붙여 만든 사랑스러운 콜라주 작품 몇 개가 장밋빛 벽에 걸린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바두의 세 자녀(각각 래퍼 안드레 3000, 래퍼 더 디오씨, 프로듀서 제이 일렉트로니카 사이에서 낳은 첫째 아들 세븐(Seven)과 둘째 딸 퓨마(Puma), 막내딸 마스(Mars))를 비롯한 가족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다. 특히 퀴니의 사진이 큼지막했는데 금발을 클레오파트라 스타일로 자른 퀴니는 바두 못지않은 멋쟁이로 보였다.

    퀴니는 딸 사진이 처음 신문에 실린 날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14세였던 바두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댈러스 모닝 뉴스>의 라이프스타일 섹션에 실린 것이었다. 연극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댄서였던 바두는 헐렁한 파자마에 큼지막한 남성용 재킷을 무심하게 걸친 차림으로 사진에 실렸다. (뮤지션으로서 바두의 공식 신문 데뷔는 사촌 로버트 브래드포드(Robert Bradford)와 함께 ‘에리카 프리’라는 힙합 듀오로 1994년 유니버설레코드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이뤄졌다.) 퀴니가 말했다. “당시 그 애의 차림을 직접 봤다면 아마 어느 교회의 헌 옷 수거함을 뒤져 제멋대로 골라 입은 줄 알았을 거예요. 그만큼 괴짜로 보였죠. 심지어 하이톱 페이드(옆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정수리 부분을 길게 기른 헤어스타일로 1980~1990년대 힙합 문화의 트렌드였다) 스타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스트라이프 셔츠에 검은 레깅스를 받쳐 입고, 두꺼운 귀갑테 안경과 터키석 목걸이를 착용한 퀴니에게서 어릴 때부터 자기표현이 남달랐던 바두의 성향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이제는 그게 그 애의 타고난 개성이라는 걸 알죠. 그 애는 항상 유행을 선도했어요.”

    1971년생인 바두는 ‘에리카 바두’라는 장르의 탄생을 알린 데뷔 앨범 <Baduizm>(1997)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부터 인습을 타파하는 아이콘이었고, 그의 스타일과 모든 행보에는 늘 ‘진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바두는 두툼한 플랫폼 슈즈를 신고, 우뚝 솟은 두건과 상징적인 앙크 십자가 장신구를 착용한 채 흑인의 강렬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뽐내며 무대를 장악했다. 바두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뮤지션 퀘스트러브는 1996년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에서 바두를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바두가 쓴 터번은 살면서 본 터번 중 가장 높은 것이었어요. 그 안에 세 살짜리 아이가 숨겨져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죠.” 바두에게 보이는 것은 음악만큼 중요하다. “흑인의 정체성을 진정으로 포용하고 긍정하는 사회와 무리 안에서 성장했어요. 우리의 곱슬머리, 옷과 장신구,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분위기에서요.”

    미래와 접촉한 듯한 독특한 퍼포먼스와 영혼을 파고드는 블루지한 음색을 지닌 그녀를 사람들은 종종 빌리 홀리데이와 비견한다. 디안젤로, 질 스캇, 로린 힐, 맥스웰과 함께 힙합, 소울, 재즈, 펑크가 혼재된 ‘네오소울’ 신드롬을 이끈 바두는 음악으로 상업적인 R&B 음악에 대한 저항을 비롯해 사회의식을 계속 표출했다. 2008년 발매한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New Amerykah Part One>의 수록곡 ‘Master Teacher’를 통해 그녀는 진보주의 정치인보다 한발 앞서 ‘깨어 있으라(Stay Woke)’라는 문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다소 난해한 바두의 설명이 이어졌다. “댐에 구멍을 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작은 구멍이지만 그로부터 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거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런 흐름에 가담하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가 산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요즘 세대로부터 긍정적으로 재평가받는 바두는 현재 부활의 중심에 서 있다. 네오소울의 창시자, 그래미상 4회 수상에 빛나는 바두는 여전히 힘 있는 목소리로 대중을 리드한다. 그녀는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작업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스스럼없이 공유하며 새로운 세대와 활발히 교신하고 있다. ‘유니콘 변종 코브라(Unicorn Mutant Cobra)’라는 독특한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댓글도 열심히 단다. 그녀의 트위터 계정 @fatbellybella를 팔로우하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관계에 대한 조언을 얼마나 잘하는지도 알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 RM의 솔로 앨범 <Indigo>의 첫 번째 트랙 ‘Yun’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그녀는 힙합, 뉴웨이브, R&B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후배 아티스트와 음악적 친분을 쌓기도 한다.

    니트 숄은 마르니×에리카 바두(Marni×Erykah Badu).
    에리카 바두가 착용한 티셔츠는 알13(R13), 딸 퓨마가 착용한 티셔츠는 바나나 리퍼블릭(Banana Republic).

    어느새 도착한 바두의 여동생 코라이언(가족은 그녀를 ‘코코’라 부른다)이 옆에서 이야기를 거들었다. “언니에 대해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말이죠. 언니가 최근 10년 가까이 앨범을 단 한 장도 발매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공연 티켓을 매진시키는 유일한 아티스트일 거란 사실이에요.” 한때 바두의 백업 싱어로도 활약한 적 있는 코코는 바두의 ‘오른팔’을 맡고 있다고 했다. “왼팔 겸 오른팔이죠. 언니를 먹여 살리는 손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요!” 옆에 있던 퀴니가 재미있다는 듯 낄낄대며 말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땋은 금발 머리에 볼캡을 쓴 코코는 모든 투어가 중단된 팬데믹 시기가 바두에게도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바두와 코코는 합심해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변혁에 대응해나갔다. 바두의 집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을 단돈 1달러에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바두보트론(Badubotron)’도 이때 탄생했다. 완벽한 스타일링과 열정적인 퍼포먼스, 직접 구상한 초자연적 무대로 바두는 10만 명의 리스너를 매료시켰다. 어느 날은 풍성한 거품 속에서 등장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곧이어 ‘바두 월드 마켓(Badu World Market)’이라는 온라인 굿즈 숍도 론칭했다. “가족끼리 아주 ‘똘똘’ 뭉쳤죠. 집에 사무실을 차린 것과 다름없었어요. 제 아들 말컴(Malcolm)과 딸 다이아몬드(Diamond)까지 모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배를 탔죠.”

    바두의 딸 퓨마는 이 ‘가족 회사’에 가장 늦게 합류한 멤버지만 바두의 가장 믿음직한 후계자로 추앙받고 있다. 바두의 틱톡 계정에서 눈을 감고 엄마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퓨마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어떤 사람에겐 바두와 퓨마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접 마주한 퓨마는 엄마보다는 수줍음이 많고, 한결 부드러운 음색을 갖고 있었다. 오버사이즈 블랙 앤 화이트 스웨터를 입은 퓨마가 입을 열었다. “다른 가족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를 돕는 일을 진짜 직업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CEO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될 거고, 월급을 못 받게 될 테니까요.”

    바두는 사무실에 오래 머무는 타입은 아니지만 1년 반쯤 전, 25년 동안 거주한 호숫가 목장에서 차로 불과 몇 분 거리에 그녀만의 스튜디오를 지었다(현재 리모델링 중이다). 현대적인 외관을 자랑하는 작업실은 내가 예상한 보헤미안풍 시골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건물 앞엔 ‘센 언니(SHE ILL)’라는 번호판을 단 바두의 은색 포르쉐가 주차되어 있었다. 온갖 예술품과 소품으로 가득한 실내는 알라딘의 동굴과 다름없었다. 계단을 따라 불상이 늘어서 있고, 벽에는 아프리카 전통 가면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으며, 창문은 인도풍의 금잔화 화환으로 치렁치렁 꾸며져 있었다. 우주복 차림의 원숭이 그림이 수놓인 실크 카프탄을 둘러 입은 바두가 녹음실을 지나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머리에 인센스 스틱이 꽂힌 황동 흉상의 인센스 홀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왕좌를 연상시키는 2인용 소파와 빈티지 에그 체어, 루이 비통 트렁크 더미가 업라이트 피아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바두가 “알렉사, 바람 소리 들려줘”라고 말하자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었다. 문득 바두의 드레스 룸이 궁금해진 나는 혹시 스튜디오에도 그녀의 전설적인 코스튬이 일부 보관되었는지 물었고, 바두는 곧바로 나를 부엌으로 이끌었다. 준야 와타나베의 꼼데가르송 라이더 재킷이 상표도 제거되지 않은 채 바 체어에 걸려 있었다. 어깨의 아방가르드한 실루엣이 독특한 재킷은 바두에게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였지만 바두는 부끄럽다는 듯 웃으며 “계속 갖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바두의 스타일을 뒤쫓는 것처럼 느껴지는 패션계 역사가 머릿속에 줄줄이 떠올랐다. 극단적 비율의 레이어드, 빈티지에 대한 애정, 본능적으로 옷에 업사이클링 혹은 커스터마이징 요소를 적용하려는 욕구 등이 엿보이는 바두의 스타일은 언제나 가장 현대적이었다. 바두와 막역한 사이인 톰 브라운 역시 언젠가 그런 인상을 정확히 꼬집은 적 있다. “당신이 처음 접한 모든 스타일의 선두에 바두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패션계에서 어떤 흐름이 보이는 순간 ‘아, 세상에나, 벌써 바두가 입고 있잖아!’ 하고 깨닫는 식이죠.” 그는 2021 멧 갈라를 비롯해 여러 행사에서 바두를 위한 옷을 제작했다. “진정한 개성과 위대함, 스타성을 갖춘 사람만 그런 아우라와 품격을 발산할 수 있어요.”

    바두는 2022 F/W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패션 위크에 모습을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열린 ‘보그 월드’ 런웨이에서 그녀는 보디의 튜닉 위에 ERL의 체크무늬 수트 셋업을 레이어드하고, 목에는 독특한 장신구를 두른 채 등장했다. 며칠 뒤 열린 톰 포드 쇼에서는 인조 모피 두건과 인조 다이아몬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알라딘풍 팬츠를 착용했다. 그 후 버버리, 보테가 베네타, 톰 브라운, 릭 오웬스, 오프화이트 쇼에 연이어 참석한 바두는 언제나 예상을 깨는 스타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런웨이 사운드트랙 작업까지 도맡은 2023 S/S 발렌티노 패션쇼에서는 핫 핑크 컬러의 대머리황새 깃털 코트와 후디, 커다란 챙 모자를 착용하고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0대, 아니 40대가 될 때까지도 패션 하우스와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전부 알지는 못했어요. 그저 타고난 패션 센스에 의지했을 뿐이죠. 내 취향대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히며 놀던 어린 시절처럼요.” 그녀가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이동 중에 직접 머리와 화장을 수정하고, 현지 빈티지 숍을 뒤지며 무대의상을 찾는 일은 그녀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케이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며 즐거움을 느끼는 홈 베이커처럼 이런저런 아이템을 더해가며 스타일을 완성하는 건 저에게 아주 보람 있는 일이에요.”

    마르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체스코 리소는 조만간 공개될 바두와의 캡슐 컬렉션을 준비하며 바두의 작업 방식과 패션 철학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리소는 런던의 호텔 객실에서 시제품을 갖고 실험에 열중하던 바두를 목격한 순간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셀러브리티와 함께 작업했지만 결국 결과물이 사진에 어떻게 보일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의견 차이를 겪을 때가 많았어요. 바두와 함께 일할 때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죠. 온갖 천을 이리저리 뒤섞어가며 옷을 갖고 노는 바두를 보면서 디자이너로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완전히 타고난 거죠. 그녀와 함께 음악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바두의 라이프스타일 전체가 하나의 완전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산업에서 상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2022 멧 갈라에 바두를 자신의 파트너로 초청한 리소는 그녀를 위해 총천연색 드림코트와 모자를 제작했다. 1999년 그래미 시상식을 위해 바두가 직접 디자인한 패치워크 원피스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었다. 새 코스튬은 마르니 아카이브의 수백 가지 패브릭 견본을 엮어 만들었으며, 이 만남은 두 사람의 협업을 위한 기분 좋은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레이 스웨트셔츠는 로에베(Loewe), 니트 모자는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슈즈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명상실 바닥의 쿠션 더미에 몸을 푹 기댄 채 아이패드에 저장된 마르니 캡슐 컬렉션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바두가 설명했다. “한마디로 ‘신비로운 악기 의상(Mystical Instrumental Wear)’이라 할 수 있어요. 패션으로 일종의 시청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죠.” 그러면서 그녀는 모델의 발목부터 무릎까지 두른 작은 금색 종을 내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사진을 확대했다. 마찬가지로 작은 종이 달린 골드 컬러 핸드백은 움직일 때마다 탬버린 효과를 내고, 또 다른 파티 드레스는 커다란 스팽글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걸을 때마다 흥미로운 바스락 소리를 낸다. 바두가 말했다. “모든 소품과 소재는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어요. 예를 들면 높이 치솟은 이 모자는 훌륭한 생각을 상징하죠.” 이후 패치워크가 수놓인 레더 트렌치 코트가 사진에 등장하자 바두가 손짓을 멈췄다. 함께 스타일링한 니트 모자는 그녀가 유명해지기 전, 교육용 유튜브 영상 촬영을 위해 착용한 의상을 재해석해 디자인한 것이었다. “한때 제가 끔찍이도 싫어하던 옷을 포용해 근사한 무언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나요?”

    바두의 부엌 게시판에는 ‘2023년에 해야 할 일’ 목록이 전부 대문자로 적혀 있었다. ‘금연’ 역시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쌍둥이 출산을 앞둔 친구(R&B 가수 서머 워커)의 출산 도우미를 자처한 일이었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니 약간 긴장되는군요. 빠진 준비물은 없는지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죠.” 바두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사이를 서성이며 말했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녀의 딸 퓨마가 처음으로 출산 도우미 조수로 나서기로 돼 있었다. “퓨마는 정말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죠. 숙녀가 된 퓨마가 벌써부터 아주 마음에 들어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출산 도우미 경험이 있는지 묻자 더는 그 수를 세지 않는다면서 바두가 어깨를 으쓱했다. 공인 기(氣) 치료 자격증까지 보유한 바두는 20여 년 전, 처음으로 베스트 프렌드의 출산을 도운 뒤 기회가 될 때마다 출산 도우미로 나서며 매년 적어도 한두 명의 임산부를 위해 시간을 낸다. 친한 친구뿐 아니라 오며 가며 알게 된 여성의 출산을 도운 적도 많다. 가수 겸 배우 테야나 테일러는 “바두는 그 일에 열정을 갖고, 실제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라고 증언했다. 1990년생인 테일러는 3년 전, 바두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한 일을 계기로 바두에게 출산 도우미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올해 두 살이 된 딸 루(Rue)가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루에게서 심상치 않은 이상 징후를 가장 먼저 눈치챈 이는 바두였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루는 다행히 일주일간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바두는 바로 알아챘어요. 본능적으로 그냥 알았던 거예요.” 모성은 바두에게 지극히 익숙한 감정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바두에겐 일곱 명의 아이를 낳겠다는 꿈이 있었다. 위대한 역작 <Baduizm>으로  명성을 떨치는 동시에 그는 첫아이를 출산했고, 이후 두 아이를 출산했다. “모유 수유를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투어를 다니며 버스 뒷좌석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도 빈번했다. 남자 뮤지션 동료들이 공연장에서 팬을 찾아 청중을 바삐 살필 때, 자신은 보모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바두가 웃었다. 동료 뮤지션 맥스웰에게도 바두의 모성애는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젊은 여자 뮤지션이 데뷔와 동시에 아이를 갖는다는 건 경력에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어요. 그런 시대에 활동하며 바두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엄마라는 사실은 결코 커리어에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걸 몸소 증명해냈죠.” 물론 공식적인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세 명의 남편 사이에서 낳은 세 아이를 기른다는 것 때문에 바두는 차가운 시선과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각종 힙합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한 바두의 남성 편력을 비꼬는 게시물과 ‘에리카 바두처럼 남자 휘어잡기’라는 이름의 유튜브 영상을 떠올려보라.) 바두가 여유로운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제가 모르몬교인이라도 된 것 같았죠. 한집에서 여러 명의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여자 말이에요.” 하지만 바두는 여전히 전남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남편 더 디오씨의 아내를 위해서는 무려 두 번이나 출산 도우미로 나서기도 했다. 여전히 서로에게 헌신적인 이들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끈끈하게 교류하고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으며 은근슬쩍 그녀의 최신 연애 소식에 대해 묻자 바두는 순식간에 수줍은 소녀로 돌변했다. 현재 만나는 이성이 있느냐는 직접적인 질문에 그녀는 “말할 수 없어요”라며 말을 아꼈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바두는 재런 더 시크릿이라는 댈러스 기반의 아티스트와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바두는 자신의 마음과 상황보다 믿음직한 조언가로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에 더 마음을 쏟고 있었다. 훌륭한 카운슬러의 면모를 칭송하자 바두가 지난해 가을, 여동생 코코의 결혼식 때 건넨 메모를 꺼내 보여주었다. 성공적인 관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전부 그 종이에 담겨 있다면서. ‘수용, 인내, 정직, 함께하는 즐거움’. 바두가 주문을 걸듯 신중하게 읽고 나서 시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길고 긴 인생을 살아갑니다. 일관된 신념과 목표를 향해서요. 아주 투명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손을 맞잡기도 하고, 때론 기분 좋은 웃음 속에서, 두려울 때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그렇게 세월이 흘러갑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으며 전진한다면 모든 관계는 분명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며칠 뒤,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향하던 나는 바두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화보 촬영일에 퀴니가 틈틈이 찍은 사진과 바두가 자녀들과 함께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직접 만난 바두는 정말이지 사랑이 넘치는 엄마이자 믿음직한 딸과 언니였다.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발목에 기묘한 방울을 매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바두의 모습을 본다면 우린 그녀가 위대한 스타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바두에게 답장을 보냈다. “서머 워커의 쌍둥이 출산이 임박했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때요?” 바두는 웃는 얼굴 이모지와 함께 간단한 답신을 보내왔다. 얼마 뒤 바두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바두와 그녀의 딸 퓨마, 만삭의 워커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업로드됐다. 반가움과 함께 퓨마가 엄마의 뒤를 이어 인생 첫 출산 도우미 경험을 무사히 끝마쳤는지 궁금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엄마를 닮았다면 당연히 타고났을 테니까. (VK)

    Chioma Nnadi
    사진
    Jamie Hawkesworth
    패션 에디터
    Alex Harrington
    헤어
    Jawara
    메이크업
    Melanesia 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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