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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정확한 실험

2023.12.11

by 류가영

    사랑에 관한 정확한 실험

    세상 모든 존재에겐 발 디딜 땅이 필요하다. 환아, 발달장애인, 연약한 식물을 위해 세 여성이 꾸린 안식처에 꾸준한 온기가 피어난다.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존재가 있는 한 희망은 지켜질 것이다.

    공일스튜디오를 이끄는 조재원 건축가.

    정확한 사랑의 실험, 조재원 건축가

    사회적 약자에겐 스스로의 필요와 요구를 사회에 알릴 힘도, 기회도 충분하지 않다. 지난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부추겼을 때, 그 관심과 노력은 실제 사회 속으로 옮겨가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을 안고 공일스튜디오를 이끄는 조재원 건축가를 만났다. 조재원 건축가는 지속 가능한 가치를 키우는 사회적 공간을 꾸준히 설계해왔다. 사회적 기업 플랫폼인 카우앤독, 공공일호 등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 그의 대표작. 2년 전에는 발달장애인의 보호작업장인 강동그린나래복지센터 리노베이션을 맡았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후원 기업인 베어베터와 그 대표가 지원해 새로운 콘텐츠와 분위기를 덧입은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안전한 근로 환경으로 자립도를 높이는 보호작업장이자 정기적인 건강관리까지 진행하는 체육 시설까지 모두 갖춘 공간이 탄생했다. “반드시 사용자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고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 중에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때는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온전히 그 사용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질문을 던지고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강동그린나래복지센터의 경우 이 전제부터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발달장애의 증상은 광범위하다. 시설 사용자의 특성을 하나로 일반화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사용자가 스스로 필요와 요구를 전달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한 조재원 건축가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발로 뛰었다. 운영 중이던 보호작업장을 찾아 발달장애인의 공간 사용 패턴을 관찰했고, 이들과 함께 거주하던 보호자 및 시설 운영자와 긴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장소를 설계하는 내내 지속적으로 운영자, 보호자와 논의를 거듭하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나중엔 카톡방 인원이 18명에 달했는데, 대화가 끊임없이 오갔죠.” 묻고 대답하고,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며 공간은 변화했다. 기존 1층에 위치하던 작업장은 3층으로 옮겨갔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1층은 식사를 하거나 외부인이 오는 라운지로, 2층은 체육 시설로 변화했다. “원래 1층에 있던 작업장은 문을 열자마자 작업 공간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어요. 자폐인들은 사회적 소통에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자재와 제품을 싣고 나르기에만 편리한 설계였죠. 탁 트인 공간이 아니라 단계별로 공간을 인지할 수 있도록 각각의 영역을 방처럼 안락하게 느끼도록 구성했습니다.”

    강동그린나래복지센터는 발달장애인의 근무 공간인 동시에 사회활동이 벌어지는 장소다. 모든 구역에서 돌보는 이들의 시선이 닿도록 앞뒤가 뚫린 책장을 배치하자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동시에 소통도 끊이지 않게 됐다. 감각이 예민한 이들을 위해 자극을 줄이는 데도 신경 썼다. 천장에 흡음재를 사용하고, 낮은 조도의 조명, 안정감을 주는 질감과 색상의 마감재를 적용했다.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체육 공간 역시 역량에 따라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체육관으로 구성했다.

    이 모든 공간을 아우르는 새로운 안식처의 이름은 ‘우리 함께 일터’. 조재원 건축가의 제안으로 근로자들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작업장의 이름을 묻자 ‘우리’ ‘행복’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어요. 이들이 스티커로 투표해 선정했죠.” 리노베이션 후 2년이 된 지금, 공간 운영자들은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며 조재원 건축가에게 반가운 후기를 전했다.

    “사실 발달장애인이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아요.” 리노베이션 소감을 묻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다만 공간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모든 관계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했잖아요. 건축을 계기로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한 단계 높인 거죠.” 그는 이런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을 ‘도시는 열린 책’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모두 공개했다. 진정성 있게 진행한 연구와 논의가 또 다른 셸터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전히 물음표가 있어요. 이들이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마주하는 건 결국 도시니까요. 하나의 공간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게 사회에 섞여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장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조재원 건축가는 자신의 실천이 그저 변화의 시작이기를 바랄 뿐이다. 원영인 프리랜스 에디터 (VK)

    컨트리뷰팅 에디터
    원영인
    포토그래퍼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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