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 출신 디자이너, 소상우가 이끄는 파라볼로이드라는 논쟁거리
새로운 브랜드 론칭 소식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롭고 독창적인 미학을 그려내는 브랜드의 경우 그 즐거움은 배가되죠. 정식 론칭을 앞둔 파라볼로이드(Paraboloïde)가 그렇습니다.
<보그 코리아>가 파리와 서울을 기반으로 전개될 파라볼로이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소상우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약 6년 반 만의 만남이었죠.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예술성과 상품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그사이 오랜 꿈을 이뤘고, 직함도 바뀌었지만 그는 변함없었습니다. 과거 주말마다 영감을 얻기 위해 파리의 벼룩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던 그는 지금도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가를 ‘서울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꼽죠.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먼저 다음 시즌 룩북을 보여주고, 코멘트를 물어볼 정도로 신발을 향한 사랑 역시 여전했습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론칭을 앞둔 파라볼로이드(Paraboloïd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소상우입니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이후 파리에 있는 스튜디오 베르소(Studio Berçot)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파라볼로이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주된 영감은 언더그라운드 아트입니다. 새로운 실루엣과 형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만큼, 파라볼로이드만의 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어요. 아트와 패션 전반에 걸쳐, 과감하고 특색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첫 직장은 발망이었습니다. 액세서리 팀에서 잠시 인턴으로 일하며 올리비에 루스테잉의 첫 컬렉션을 도왔죠. 스튜디오 베르소를 졸업한 뒤에는 랑방 남성 슈즈 디자인 팀 인턴으로 근무했습니다. 입사 일주일 만에 시니어 디자이너가 랑방을 퇴사하며 팀에 저 혼자만 남게 됐죠. 위기인 동시에,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였습니다. 스튜디오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결국 컬렉션 날짜에 맞춰 슈즈를 완성할 수 있었고, 정직원으로 채용되기까지 했죠.
다음 직장은 지방시였습니다. 여성 슈즈 디자이너로 리카르도 티시와 함께 일했죠. 이후 더쿠플스에서 근무하던 중 팬데믹으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오랫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많은 생각을 했죠. 그때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결과물이 바로 파라볼로이드입니다.
조금은 낯선 단어를 브랜드명으로 선택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모던하고 스포티하면서도, 어딘가 센슈얼한 단어를 찾고 있었습니다. 책을 쌓아놓고 사전을 뒤지며 며칠을 보내다가, 우연히 파라볼로이드라는 단어를 발견했어요. ‘포물면’을 뜻하는 수학 용어입니다. 몸의 곡선이 연상되면서도 그래픽한 느낌을 줘, 제가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완벽히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첫 컬렉션에 대한 소개 글이 흥미롭습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피터 후자처럼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퀴어 문화를 그려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둘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특유의 감성을 좋아합니다. 그때의 언더그라운드 아트는 도발적이면서도 시적이죠. 아름답지만, 동시에 전형적이지 않아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파라볼로이드를 ‘액세서리 브랜드’라고 설명했어요. 이런 분류가 제약이 되진 않을까요?
사회는 편의를 위해 모든 걸 분류하려고 하죠. 패션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를 등록할 때는 카테고리를 정해야 하며, 럭셔리 하우스도 의류 디자이너와 액세서리 디자이너를 구분하니까요. 브랜드 론칭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처음 한 질문 역시 “옷 브랜드야, 신발 브랜드야?”였습니다. 브랜드 운영을 위해 ‘액세서리 브랜드’라고 분류한 것뿐이지, 파라볼로이드를 어떤 틀에 가두고 싶지는 않아요.
리카르도 티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024 S/S 컬렉션 룩북을 보며 자연스레 그를 떠올렸습니다.
티시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1년에 네 번의 기성복 컬렉션, 두 번의 꾸뛰르 컬렉션, 그리고 수많은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진행했죠. 말 그대로 전쟁 같았습니다. 티시 밑에서는 더욱 섹시하고 과감한 커팅, 그리고 실루엣에 대해 연구했어요.
이번 컬렉션의 타이틀은 ‘The Romantic Fetish’입니다. 룩북을 보며 티시를 떠올린 것도, 제가 일하며 배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바스티앙 뮤니에르와도 친분이 있는 것 같던데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라, 그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또 그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런데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고, 인스타그램 친구예요. 취향이 비슷해 자연스럽게 서로 팔로우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서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가끔 댓글을 다는 정도죠. 언젠가 마주치게 되면 금방 친해지지 않을까요?
파리에서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받기 때문인가요?
2008년부터 쭉 파리에 살고 있으니,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파리만의 감성적인 시선을 더해 제가 사랑하는 언더그라운드 아트를 풀어내고 싶었어요.
파리와 서울, 각 도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파리에서는 센강의 헨리 4세 선착장. 날씨가 좋은 여름, 주말만 되면 수건을 들고 자전거를 타러 오는 파리지앵으로 북적이죠. 선탠을 하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조용한 주말 오후를 보내기에 가장 좋은 장소예요.
서울에서는 답십리 고미술 상가를 가장 사랑합니다. 몇 년 전 서울에 갔을 때 처음 알게 됐는데, 숨겨진 보물 창고 같은 곳이에요. 유럽은 골동품 시장과 벼룩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잖아요. 서울에도 그런 장소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거기서 구매한 (상투머리에 꽂는) 남성용 은비녀는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 중이에요. 주얼리 라인을 전개할 때 참고하려고요.
직접 경험한 파리의 남성과 서울의 남성은 무엇이 다른가요?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해야겠죠. 파리는 개인적이고, 한국은 사회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파리의 남성은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으면 유행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그걸 고수하는 경향이 있어요. 조금은 역설적일 수 있지만, 그래서 파리의 스타일은 더욱 다채롭게 느껴집니다.
반면 한국의 남성은 다른 사람들과 스타일을 공유하며, 사회적인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취향을 주고받으며 더욱 돈독한 관계를 쌓아나가는 거죠. 파라볼로이드가 일종의 논쟁거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남성들이 더욱 다양한, 그리고 개인적인 스타일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돕는 논쟁거리요.
향후 브랜드를 어떤 방향으로 전개해나갈지도 궁금합니다. 2024 F/W 컬렉션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국에서도 파라볼로이드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2024 F/W 컬렉션은 더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는 데 주력했고, 백 라인업도 준비했습니다. 곧 주얼리 라인을 론칭할 예정이고,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 얘기도 오가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2024 S/S 컬렉션을 분더샵, 스페이스 무이, 그리고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도 곧 오픈할 예정이고요!
마지막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멋있는 남자’란 어떤 남자일까요?
투명한 남자. 계산적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을 보면 멋있다고 느낍니다. 저 역시 파라볼로이드를 통해 제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펼쳐 보이려고요.
- 사진
- Courtesy of Paraboloï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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