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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킴 “댄서에게 필요한 자질은 이타심이다”

2024.03.25

리아킴 “댄서에게 필요한 자질은 이타심이다”

갈등과 화합, 절충과 고집, 개인과 집단. 전 세계가 열광하지만 소외받는 K-댄스. 계속된 딜레마 속에서 원밀리언의 수장 리아킴이 무대에 선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스우파 2)>가 끝난 후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림킴의 신곡 퍼포먼스 작업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팬 콘서트도 준비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아, ‘보그 리더: 2024 우먼 나우’를 위한 공연 구상도 남아 있다.

당신이 이끄는 댄스 크루 원밀리언(1Million)이 탄생한 지 벌써 10년 됐다. 그런데 수장으로서 평소 모습이 공개된 건 <스우파 2>가 처음이다.

어릴 때를 제외하면 꽤 오랜만에 팀으로 일한 경험이었다.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팀원들 챙기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스우파 2>를 통해 모든 걸 내 뜻대로 하려 하면 더 힘들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원밀리언 멤버들은 개개인이 완성형 아티스트다. 제자라기보다는 안무를 창작해서 코레오그래피(안무)를 할 수 있는, 개성이 뚜렷한 댄서들이라서 서로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 여겼다. 내 색깔에 맞춰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여섯 명이 모여서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절하는 역할 말이다.

튤 소재의 티어드 튜브 톱 드레스는 손정완(Son Jung Wan).

다양한 춤 중에서도 K-댄스가 특히 대중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

콘텐츠가 워낙 많이 생산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K-팝 아티스트도 많고, 그들의 춤을 시도하고 즐기는 창작자와 일반 대중도 많다. 한국 댄서들도 마찬가지다. 강사 한 명이 일주일에 강의를 서너 번씩 하면서 수업마다 새로운 안무를 창작해낸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특히 춤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프랑스, 미국 등 해외의 경우엔 긴 시간에 걸쳐 그 나라 특유의 느낌으로 발전해온 춤 형태가 있고, 새롭게 창조하는 안무도 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나아가 또 다른 걸 만들어내기도 한다. 흡수력과 응용력이 아주 뛰어나달까. K-팝도 그렇다. 흐름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이니 변화가 빠를 수밖에 없다. 덩달아 보는 재미도 커진다.

회사 대표 입장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순수한 댄서가 되어 홀가분함도 느꼈을 것 같다.

확실히 회사의 리더일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회사에서는 주도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명확한 비전 아래 목표를 팀원들과 공유하고 동기화하면서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최고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비전을 계속 제시하고 설명하며 팀원들과 최대한 긴밀하게 대화하려 한다. 구성원들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댄서들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뜻인가?

독립적인 성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은 건 맞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할 정도의 댄서라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게 명확하고 안무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게 협업하는 분위기의 원밀리언 역시 아티스트를 영입할 때 수동적인 캐릭터보다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표현하는 이들을 선호한다. 하고 싶고 원하는 게 분명해야 리더도, 회사도 방향을 제시하고 도와줄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선배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거나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게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댄서에게 특히 요구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랄까, 이타심이 있는지 본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나 혼자만 잘되면 된다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광고를 찍더라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파트너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질 때 시너지가 커진다.

저지 소재의 드레이프 슬리브리스 톱과 롱 라인 스커트는 페라가모(Ferragamo).

뮤지션이 주인공인 무대에서 특히 그런 성향은 빛을 발할 듯하다.

팀워크와 협동심은 기본이다. 단독 작업보다는 함께하고 협업할 일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팀을 우선시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원만한 인간관계는 기본이고, 사소하게는 대형이나 동선을 맞추는 것도 서로 위치를 조정하고 양보하는 과정의 연속이니까. 나 역시 내가 유명해지고 성공하는 것만 염두에 뒀다면 힘들고 어려운 그 많은 순간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댄서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무대에 오르길 바란다. 무대는 실력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다.

댄서로 세계적 명성을 얻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 시기를 지나왔나?

일하면서 경험한 억울함,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순간이 쌓이면서 후배들이 같은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내가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졌다. 원밀리언을 이끌며 그 목표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과 방향을 설계해나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방송을 통해 여자 댄서들이 다소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웃음)

프로그램 자체가 그런 분위기를 유도한 면이 있다. 사전 미팅 때도 자신감 있는 태도를 원했고, 경쟁의식을 갖게 하는 말을 슬쩍 흘리거나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인데도 화가 나고 비장해졌다. 하지만 첫 번째 시즌에서 그런 모습이 질타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재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을 보고 조금 더 과장하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평소 느끼던 것을 드러낸 것뿐이다. 댄스계는 사회성과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라 드세 보이는 리더들도 평소 모습은 착실하고 순하다.(웃음)

실버 도트 저지 소재 보디수트와 오페라 글러브는 백로(Baekro).

댄스계에서 여자 리더는 어떤 존재인가?

과거에는 방송 댄스 팀의 리더나 단장이 남자가 많았다. 남자 메인 댄서 비중이 높았고, 분위기도 조금은 무섭고 엄했다.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받는 학생도 도제식으로 혼나면서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반면 요즘 댄스계의 성비를 보면 여자가 더 많은 편이다. 클래스를 열어도 수강생의 70~80%가 여자고, 남자 강사 수업에도 여자 수강생 비율이 높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 리더가 많아졌고, 다들 워낙 잘하고 있기에 댄스계에서 여자 리더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아무리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도 리더로서 악역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나쁜 역할을 피하지 않고 맡는 것이 책임감 있는 게 아닐까. 예를 들어 하나의 안무 시안을 두고 스무 명의 댄서가 참여하는 상황에서, 안무가 좋지 않다고 느껴지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당연히 연습이 두세 시간 길어지고 퇴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댄서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내게는 이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댄서들이 불평하고 욕을 먹을 것 같다고 해서 외면해버리는 건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어릴 때는 양해를 구하는 방법이 서툴렀다. 그들의 감정이나 기분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면 이제는 좀 부드럽게, 한마디라도 더 하면서 끌고 가려 노력한다.

입체적인 조직의 니트 소재 슬리브리스 톱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프린지 디테일의 마크라메 헤어 캡은 도혜 윤(Dohye Yun).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둔 이들은 대부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겠지?(웃음) 하지만 지금도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그게 맞다고 여겨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집에 오면 마음이 괴로울 때도 있다. 팀원들이 반색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집에서 한잔하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거나 힘들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믿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다. 그런 고통의 시간을 거쳐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다른 구성원들도 뿌듯해한다면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대중적으로 댄스계의 리더로 알려진 인물은 당신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 말이 와닿지 않을 때도 많다. 내 앞에 수많은 선배가 있었고, 그들이 노력해 만들어낸 시간을 잘 이어가고 있는 것뿐.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나라 댄스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댄서는 많았다. 그런 마음도 중요하지만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 댄서들은 자질이 충분함에도 해외 댄서에 비해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나 같은 춤꾼이 이 정도 대우를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봤으면 좋겠다. 한 명의 예술가, 창작자로서 우리가 일궈온 결과물이 K-팝 문화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다들 아직까지는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부당한 상황에 처하고도 ‘괜찮다’ ‘이 정도라도 해주면 고맙지’라고 만족하는 것 같아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다. 댄서라는 직업이 대우받지 못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런 인식과 분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대중적 인지도는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권리를 완전히 찾지는 못한 것 같다. 다음 세대 댄서들은 댄스가 발전 가능성이 엄청난 산업이고 우리가 대중문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깨닫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댄스 문화에 기여하는 것. 대중이 우리의 춤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은 직업 댄서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창작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일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 (VK)

피처 에디터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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