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이토록 느긋한 삶
천천히 전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시선은 항상 멀리 두어야 하며 잠시 멈추기 위해 현명한 때를 분간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을 위해 서울을 찾은 피아니스트 엘렌 메르시에는 맨 처음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은 순간부터 파리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조급해본 적 없다.
엘렌 메르시에(Hélène Mercier)가 서울에 당도한 것은 오전 9시경이었다. 1960년생인 그녀는 파리에서 한국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친 후 곧바로 서울신라호텔로 이동해 <보그> 촬영을 준비했다. 긴 비행을 포함해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로서 낯선 공기와 날씨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을 예상했지만 그녀는 1시간가량 아침 수영을 즐긴 뒤 정교하게 조형된 유리컵으로 물을 마시며 상쾌한 모드로 <보그>를 맞이했다. 그녀 옆에는 이번 여정의 유일한 동행자이자 메르시에의 매니지먼트 일을 전담하는 피아니스트 클라라 민이 서 있었다. 클라라 민은 NYCA(뉴욕 콘서트 아티스트 앤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으로 엘렌 메르시에가 참여하는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의 주최자다. “엘렌과는 공통적으로 잘 아는 음악가 친구들이 몇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 서로를 소개해주었고, 첫 만남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습니다. 엘렌은 흔쾌히 제 매니지먼트와 독점 계약을 하겠다고 했고, 저 역시 높은 사회적 위치와는 별개로 결코 식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엘렌의 순수한 열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 하는 메르시에가 곧바로 헤어와 메이크업을 준비하러 간 사이, 나는 클라라 민에게 위대한 음악가들이 총출동한 이 페스티벌이 4회를 맞으며 한국에서 열릴 수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물었다. “피아니스트는 주로 혼자 연습하고 공연하기 때문에 독립적이지만 외롭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아요.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항상 ‘Together’라는 단어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그녀가 2018년 뉴욕에서 출범한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의 키워드를 ‘Bridge’로 꼽은 이유다. 세계적인 음악가와 음악 전문가, 음악 애호가를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5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린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메르시에를 포함해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지휘자 겸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이, 피아니스트 다비드 프라이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음악가들이 모두 모였다. 그뿐 아니다. 이전 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공연 기간 동안 마스터 클래스와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한층 친밀한 음악적 교류를 도모했다. “이번에는 서울대학교에서 무대 공포증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연주자들이 무대에만 오르며 관객과 거리를 둘 게 아니라 커뮤니티를 이루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화두에 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클라라 민은 개인적으로 모국인 한국을 세계적인 음악가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엘렌 메르시에에게 피아니스트로서의 삶과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소감에 대해 직접 물었다. 클라라 민의 바람처럼 한국에서 기분 좋은 영감을 얻었는지도.
올해로 4회를 맞이한 <클래시컬 브릿지 국제 음악 페스티벌>이 뉴욕과 보르도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세 번의 실내악 연주와 두 번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펼쳐진 가운데 당신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와 함께 무대를 꾸몄다. 한국에서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한국을 방문한 건 처음이 아니지만 공연은 처음이었다. 스피바코프 역시 전 세계를 돌며 많은 무대에 섰음에도 한국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고 해서 우리 둘 다 기대감을 안고 한국에 왔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긍정적이고 추진력이 뛰어나며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다. 게다가 음악을 아주 사랑하고, 음악적 지식도 풍부하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최자 클라라 민과의 우정도 참여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이 축제의 취지에 공감한 부분이 있다면?
클라라가 강조한 ‘다리(Bridge)’라는 개념은 문화, 국가, 세대, 민족 간의 평화와 단결을 의미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음악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라 믿는다. 특히 공연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만나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공들여 기획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항상 새로운 경험을 갈망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물론 축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음악가들이 전부 엄청난 사람들이기도 했다!(웃음)
이번 공연에서 바흐와 브람스, 프랑크의 작품을 선보였다. 레퍼토리는 어떻게 구상했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훌륭한 레퍼토리 중에서 중요한 소나타를 먼저 골랐다. 그리고 아르보 패르트의 아주 유명한 곡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도 넣었다. 이 곡을 스피바코프와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즐거웠다.
스피바코프와는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 몬트리올, 콜마르 국제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과 에비앙 랑콩트르 뮤지컬 등에서 함께 연주하며 인연이 깊어졌다. 그와의 추억을 상기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대는?
25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펼친 공연은 정말 특별했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음악이야말로 대중의 마음에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것임을 실감했다. 에르네스트 쇼송의 곡을 함께 연주하고 녹음한 시간도 인상적이었다. 스피바코프의 지휘 아래 남편, 아들 프레데릭과 세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함께 연주한 것 역시 행복했던 기억이다.
2018년에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선보인 루이 로르티와의 협주도 인상적이었다. 정말 유서 깊고 우아한 장소였고, 스팽글 튜닉 톱과 베이지색 팬츠를 입은 채 공연을 펼친 당신의 모습도 쿨해 보였다. 무대의상에 관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나?
그때 착용한 의상은 나를 위해 디올에서 특별히 제작해준 오뜨 꾸뛰르 앙상블이었다. 의상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무대에서는 되도록 편한 것으로 고른다.
시프리앙 카차리스와 함께한 헝가리 무곡 앨범 <Brahms: 21 Hungarian Dances & Waltzes for Piano Four Hands>, 루이 로르티와 함께 선보인 네 손 연주곡 앨범 <Piano Duets> 등 협주에 일가견이 있다. 협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두 대의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다. 그만큼 선율이 풍성해진다. 현재 준비 중인 공연에서도 리스트의 변주곡 중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화려한 피날레를 위해 합창단과 몇몇 솔로이스트까지 초대했다.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뱅상 댕디 음악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어쩌다 음악가를 꿈꾸게 됐나?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
음악은 분명 나의 길이었다. 앞으로 평생 어떤 공부에 매진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던 열한 살 때 나는 문득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만의 속도로 한결같이 그 꿈만 바라보고 전진했다.
이후 스승이었던 디터 베버, 사샤 고로드니츠키, 국내에서는 장한나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브리짓 앙제레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수많은 거장과 음악적으로 교류했다. 이 중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이는 누구인가?
모든 이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들의 신념과 위트, 많은 것이 내 안에서 자라면서 나라는 피아니스트를 형성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음악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남겼지만 리허설을 비롯해 그와 함께 음악 속에서 놀고 즐긴 모든 시간이 나에게 그의 음악보다 더 큰 영감을 주었다.
어떤 피아니스트를 사랑하고 동경해왔나?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조건은?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음악가)들은 작곡가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작곡가를 초월하는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로젠탈, 프, 호로비츠, 아르헤리치, 바렌보임 등을 사랑해왔고, 최근에는 1991년생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에 매료됐다.
수많은 무대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긴장되나? 당신에게 꿈의 무대가 있다면?
그럼! 모든 무대는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항상 달라지는 연주자들과 대중과의 독특한 소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19세기에 지은 프라하의 유서 깊은 루돌피눔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
사실 거의 모든 한국인은 어릴 때 피아노와 수영을 배운다.(웃음) 피아노는 인간에게 어떤 정서적인 영향을 미칠까?
피아노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고 상상할 수도 없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음악은 삶의 본질이다. 그걸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전히 나는 하루 2시간에서 6시간 정도 거의 매일 피아노를 친다.
평소에는 클래식만 듣나?
그렇지 않다!(웃음) 나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즉흥적으로 재즈를 연주하기도 하고, K-팝과 랩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당신의 다음 종착지는 어디인가?
국제 음악 콩쿠르 심사를 위해 몬트리올로 향한다. 그런 다음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 독일에서 공연을 펼친다.
일찍이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당신에게도 불확실성에 시달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잠시 그때로 돌아가 꿈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어린 자신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꿈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에 도전해보라고 용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도전을 향한 열정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며 예술은 오직 열정에 관한 것임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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