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패션사 수업: 로고, 로우 라이즈, 잇 백
2000년대 패션을 대표하는 순간은 정확히 꼽을 수 있다. 2000년 2월 제42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이었다. 제니퍼 로페즈가 베르사체 시폰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순간,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네크라인이 배꼽 아래까지 내려온 드레스의 모습에 전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드레스를 어떻게 고정했을까? 옆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모두가 그 드레스를 보고 싶어 했다. 드레스의 영향력은 구글 이미지 검색 서비스를 탄생시킨 배경이 될 정도였다. ‘디지털 패션 소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츠(Aughts)’로, 영국에서는 ‘너츠(Naughts)’로 불린 2000년대는 셀러브리티의 시대가 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급증하고, 블로그는 파파라치 사진으로 가득했으며, 2006년 트위터의 등장으로 팬들은 홍보 담당자의 방해 없이도 좋아하는 유명인의 삶과 생각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주류 패션에 대해 말하자면, 극히 이상한 나머지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커플 데님 룩, 쥬시꾸뛰르의 추리닝, 본 더치의 트러커 햇, 에드 하디의 타투 티셔츠를 상상해보라. 런웨이에서는 로고 플레이가 넘실거렸고, 톰 포드, 도나텔라 베르사체, 로베르토 카발리, 에르베 레제(Hervé Léger) 등의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에 관능미를 한껏 불어넣었다. 2000년대 초반의 패션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보자.
#2000년대 여성 트렌드
잇 백의 등장: 핸드백, 아이콘이 되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2000년대 핸드백은 패션의 창이었다. 캐리 브래드쇼 덕분인지 가방은 옷차림의 중심이 된다. 펜디의 ‘바게트 백’이 큰 역할을 한다. 1997년 출시 직후 드라마에서 캐리가 바게트 백을 강도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아 울부짖는 모습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디자인한 이 가방은 펜디 디자인 팀 내에서 인기가 없었다. 1990년대 패션 미니멀리즘 시대에 개성이 너무 강하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물론 바게트는 스타덤에 올랐고, 최초의 잇 백으로 불릴 정도로 명성을 얻는다. 캐리 또한 <섹스 앤 더 시티> 여섯 시즌 내내 바게트 백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고 나왔다(후속작 <앤 저스트 라이크 댓>에서도 성실히 애용한다).
2000년대는 브랜드마다 패션 피플(정말 쓰고 싶지 않은 단어다)이 갈망하던 잇 백이 한두 개씩 있었다. 펜디는 탄수화물에서 영감을 얻은 바게트 백을, 발렌시아가는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2001년 선보인 루스한 모터사이클 시티 백을, 끌로에는 피비 파일로가 2005년 탄생시킨 보헤미안 무드의 패딩턴 백을, 갈리아노는 2000년 디올 S/S 컬렉션에서 새들 백을 선보였다. 그리고 루이 비통에서는 마크 제이콥스가 영리한 콜라보레이션 전략으로 잇 백을 연이어 쏟아냈다. 아티스트를 초청해 루이 비통 모노그램에 각자의 색깔을 불어넣게 한 것이다. 2001년 스테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의 그래피티 컬렉션,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의 스마일 플라워 & 체리 컬렉션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가방들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시선을 사로잡고,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2002년 사라 무어는 <보그> 10월호에서 잇 백의 인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93년쯤 세계 각지의 패셔니스타들은 동시에 같은 아이템(케이트 스페이드(Kate Spade)의 쇼퍼 백과 프라다의 스포티한 백팩)을 열망했습니다. 그 후에는 일반적인 셰이프지만 패턴이 개성적인 이국적인 가죽과 패브릭 소재의 바게트 백을 향한 위대한 사냥이 시작되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찌, 프라다, 펜디, 디올 덕분에 우리는 모든 브랜드의 가방을 구입한 뒤 지위를 상징하는 트로피처럼 들고 다녔습니다.”
로고 마니아: 로고가 온다!
“패션계는 로고 사랑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로고가 있다면 과시하세요!” 2000년 3월호 <보그>의 내용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잇 백에는 일반적으로 로고가 장식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디올의 비키니에는 오블리크 모노그램이 자리했고, 버버리는 거의 모든 아이템이 체크를 입었으며, 구찌는 더블 G를 벨트 버클에 넣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루이 비통×스테판 스프라우스 콜라보레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2008년 광고 캠페인에서 네온 핑크 컬러의 루이 비통 로고로 자신의 벗은 몸을 페인팅했다.
2000년대 패션은 한 뼘의 여유만 있어도 알파벳을 가득 채우는 식이었다. 이 슈퍼 트렌드를 향한 조롱도 있었는데, <보그> 2000년 3월호에 실린 ‘브랜디드(Branded)’라는 제목의 에디토리얼에서 헬무트 뉴튼은 모델 안젤라 린드발에게 끈 비키니를 입히고 각종 대형 패션 하우스의 로고로 몸을 장식한다. 샤넬 더블 C와 펜디 더블 F가 섞이고 모노그램이 뒤섞인 로고의 혼돈을 연출했다.
대퍼 댄(Dapper Dan)은 1980년대 후반에서 영감을 얻어 구찌 의류 보관 백을 잘라 재킷으로 재탄생시키며 럭셔리를 멋지게 되돌려놨다.
이렇게 가방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조품 시장이 커졌고, 진품 감정사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난다. 2001년 5월호 <보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테이션은 가장 세련된 방식은 아니지만, 가장 진실한 형태의 아첨은 맞다. 최신 가죽 로고의 백을 사기 위해 큰돈을 썼지만, 가짜인지 의심된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데이비드 콜맨(David Colman)이 패션계의 떠오르는 범죄 소탕자, 진품 감정사들을 만났다”고 바라봤다.
로우 라이즈의 부상: 어디까지 내려갈까?
로우 라이즈 트렌드를 유행시킨 알렉산더 맥퀸에게 감사해야 할까, 그를 원망해야 할까. 알렉산더 맥퀸은 1993년 ‘택시 드라이버’ 컬렉션에서 꼬리뼈가 드러나는 범스터 팬츠를 선보였고, 1995년 S/S 컬렉션에서 다시 한번 로우 라이즈 팬츠를 선보이며 주목받는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이 트렌드는 완전히 대중화되었다. 2001년에는 심지어 리바이스도 슈퍼로우 진 실루엣을 선보인다. 이는 모든 청바지와 팬츠의 기본 스타일로 자리 잡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배를 드러내는 트렌드의 대표적인 지지자였다.
로우 라이즈 트렌드는 청바지의 인기와 맥을 같이했다. 디자이너 데님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지만, 각 브랜드에선 다이아몬드로 계속 눈부시게 빛나거나, 산산조각이 나도록 파괴하고, 플로럴 모티브가 그려진 다양한 청바지를 선보인다.
사라 무어는 <보그> 2001년 9월호에 “디자이너 청바지, 지금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설명할 길이 있을까?”라고 고백한다. 다음은 청바지를 향한 강렬한 사랑 고백의 일부다. “그들은 흔들리고 있어요. 다양한 자태로 우리를 유혹하죠. 수많은 컷, 워싱과 텍스처로 뛰어드는 동시에 사회계층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청바지는 스트리트부터 여성스러운 스타일, 드레스업과 드레스다운을 오가며 다양한 연출이 가능합니다. 매일 입어도 멋지죠. 블랙 타이와도 잘 어울리고요. 디자이너의 청바지는 환상이자 현실입니다.”
보헤미안 룩: 여배우들의 레이어드 스타일링
2000년대 중반에는 쌍둥이 파워가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는 메리 케이트 올슨과 애슐리 올슨이 그 주인공이었다. 하이틴 영화(두 사람의 마지막 작품은 2004년 개봉한 <뉴욕 미니트>였다)에서 은퇴한 두 사람은 새롭고 독창적인 룩을 만드는 데 매진했고, 수많은 카피를 탄생시켰다.
영국에서는 시에나 밀러가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시크한 보헤미안 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패션의 관점에서 이 스타일은 부분적인 디테일보다는 전체적인 무드가 더 멋지게 보였다. 볼레로와 퍼들 진에 페전트 드레스로 레이어드한 뒤 기능성이 없으며 가급적 구멍이 뚫린 벨트를 매고, 메탈릭한 스키니 스카프로 멋을 내는 식이었다.
올슨 자매와 시에나 밀러 외에도 케이트 모스, 미샤 바튼, 니콜 리치 등 많은 셀러브리티가 이 스타일을 사랑했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커튼 뒤에서 조용히 퍼져나간 이 룩의 힘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라(피비 파일로가 끌로에 2005년 S/S 컬렉션에서 슈퍼 슬림 스카프를 선보이긴 했지만) LA에서 활동하던 스타일리스트 레이첼 조(Rachel Zoe)에게서 파생되었다고 봐야 한다.
보디콘 드레스: 갤럭시와 밴디지
데님과 잇 백이 주름잡던 시대였지만, 데님과 보헤미안보다 더 세련된 뭔가를 찾는 여성을 위해 런웨이에서도 몇 가지 트렌드가 탄생한다. 보디콘 드레스였다.
롤랑 뮤레(Roland Mouret)는 2005년 F/W 컬렉션에서 갤럭시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소셜 미디어가 없던 시절, 드레스는 순수한 입소문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2007년 10월호 <보그>에 사라 무어는 “이 멋진 곡선형 드레스를 입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지 않고는 신문이나 잡지를 열 수 없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 카메론 디아즈, 레이첼 와이즈, 키이라 나이틀리, 니콜 키드먼 등 너무 많아서 장난 같아 보일 지경이었습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모든 표지를 갤럭시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디자이너는 “드레스를 입는 순간 당신은 아이콘처럼 보일 거예요”라고 거들었다.
팬톤의 견본책만큼 다양한 컬러로 선보인 이 드레스는 보디라인을 따라 부드럽게 착 감기는 더블 울 크레이프 소재로 제작됐다. 실루엣은 무릎 바로 밑이나 무릎까지 오는 길이에 잘록한 허리, 스퀘어 네크라인과 구조적인 캡 슬리브가 특징이었다. 영화 <청바지 돌려 입기>의 청바지처럼 이 드레스는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잘 어울렸다.
보디콘 드레스를 선보인 디자이너는 뮤레만이 아니었다. 당시 에르베 레제(2007년 4월 막스 아즈리아(Max Azria)가 다시 론칭한 브랜드)는 밴디지 드레스로 여성들을 대도시의 세련된 미라처럼 묶어두었다. 적어도 한 벌 이상의 밴디지 드레스 없이는 레드 카펫이 완성되지 않을 정도였다.
파파라치 시크: 거리가 런웨이가 되다
2000년대에는 잡지와 타블로이드가 여전히 패션 뉴스의 주요 플랫폼이었다. 블로그와 뉴스 웹사이트도 등장했다. 이 모든 매체는 할리우드 곳곳을 누비는 셀러브리티의 스냅사진으로 가득했다. 리얼리티 쇼 <심플 라이프>의 주인공 패리스 힐튼과 니콜 리치는 타블로이드의 단골 먹잇감이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카메론 디아즈, 린제이 로한, 새 얼굴 킴 카다시안도 마찬가지였다.
스타들의 비공식적인 룩은 다소 엉뚱한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엉덩이에 글자가 쓰인 쥬시꾸뛰르 벨루어 추리닝, 가장자리가 찢어진 미니스커트와 어그 부츠, ‘Angel(엔젤)’ 같은 단어가 새겨진 베이비 티셔츠 등이었다. 여기에 뉴스보이 캡을 쓰고 잇 백과 스타벅스 프라푸치노를 들어주면 룩이 완성되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끌로에, 에르베 레제, 롤랑 뮤레, 발렌시아가, 버버리, 이브 생 로랑, 쥬시꾸뛰르, 마크 제이콥스, 베르사체, 프라다, 미우미우, 돌체앤가바나, 알렉산더 맥퀸, 캘빈 클라인, 펜디, 톰 포드, 구찌, 마르탱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비비안 웨스트우드,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존 갈리아노, 샤넬, 오스카 드 라 렌타, 겐조, 조르지오 아르마니, 발렌티노, 마이클 코어스, 모스키노, 알라이아, 랑방, 로베르토 카발리, 스텔라 맥카트니, 빅터앤롤프, 푸치, 가레스 퓨, 크리스토퍼 케인, 로다테, 필립 림, 제이슨 우, 지미 추, 크리스찬 루부탱, 니나 리치, 라프 시몬스 그리고 이사벨 톨레도(Isabel Toledo).
#2000년대 남성 트렌드
2000년대 초반에는 보이 밴드의 무대 룩이 인기를 끌었다. 프로스트 트립(Frosted Trip)과 메틸릭한 광택의 가죽 재킷이 대표적이었다. 10대들 사이에는 아베크롬비앤피치의 엘리트주의적인 미국 스타일 프렙 룩이 유행했다. 그들에게 폴로는 많을수록 좋았다. 힙합과 MTV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에어 조던과 화려하게 반짝이는 체인 목걸이, 헐렁한 저지로 패션이 가득 차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튀니지와 이탈리아 혈통의 프랑스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용한 디올 옴므의 런웨이로, 새로운 룩이 인기를 끌었다. 에디 슬리먼은 피트 도허티처럼 비쩍 마른 로커에게서 영감을 받아 슈퍼 울트라 스키니 팬츠와 넥타이, 재킷 등을 선보였다. 1990년대 케이트 모스의 등장이 여성의 헤로인 시크 시대를 알렸다면, 2000년대 에디 슬리먼이 그 바통을 남성복으로 넘겼다.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 스타일은 ‘인디 슬리즈’ 룩으로 불렸다. 개러지 록과 포스트 펑크 밴드 스트록스, 더 킬러스, 리버틴스가 스타일의 상징이었다.
쇼핑몰이나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얻은 2000년대 트렌드에 관심이 없는 남성들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테일러링을 여전히 최고의 패션으로 여겼다.
#2000년대 문화적 배경
2001년 9월 11일 테러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낙관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취임식 갈라 행사에서 화이트 컬러의 제이슨 우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젊은 디자이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2001년 애플은 아이팟을 출시하며 업계 판도를 바꿨고, 6년 후인 2007년 6월 29일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 1세대를 출시하며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다.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시기이기도 했다. <서바이버>(2000)부터 <도전! 슈퍼모델>(2003), <4차원 가족 카다시안 따라잡기>(2007)까지 모두 이즈음 탄생한 방송 프로그램이다.
2001년에는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개봉했고, 2006년에는 트위터가 출시되었으며, 같은 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다. 2007년에는 <가십걸>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으며, 2008년에는 비욘세와 제이 지가 결혼식을 올렸다.
#패션사수업
- 글
- Lilah Ramzi
- 사진
- Getty Images, Everett, Condé Nast Archive, Kim Weston Arnold
- 섬네일 디자인
- 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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