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에는 고급스러움이 없다” – 보트레이트의 요나단 카멜
젊은 디자이너들이 짓는 미래, ‘2024 LVMH’ 디자이너 5인과의 인터뷰
이들이 꿈꾸고 만드는 것이 곧 패션의 미래가 된다. 2024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에 선정된 5개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말하는 패션과 미래.
그의 옷은 이중적이다. 건축적 구조에 빤빤하게 잡힌 테일러링은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어깨의 부풀림, 드레이핑, 소재까지, 완성본을 보면 감성이 흘러넘친다. 본디 감성에 치우치면 옷의 디테일에 신경 쓰지 못하고, 디테일에 집중하면 지나치게 클래식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도 읽을 수 있다. 요나단 카멜(Yonathan Carmel)이 2021년 론칭한 보트레이트(Vautrait)에 관한 이야기다. 에디터는 그가 LVMH 프라이즈에 도전할 수 있는 제한 연령인 마흔에 가까워졌을 거라 생각했다. 공자가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치우침 없는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 건 숫자가 주는 특혜가 아니라는 걸, 그의 이력에서 바로 알아차렸지만. 그는 규칙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감성과 이성, 테일러링과 드레이핑, 현대의 비판적 사고와 장인 정신이 주는 감동 사이에서 변증법적 움직임을 포착한다. 경계에서 안과 밖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사고방식이 결국 조화로운 룩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자크 데리다처럼 날카롭고도 거침없는 요나단 카멜을 만났다.
<보그 코리아> 독자를 위해 당신의 브랜드, 보트레이트를 소개해달라. 브랜드명에 담긴 의미도 궁금하다.
하나의 반란 또는 응답. 지금은 퇴색된 두 단어, ‘미니멀’과 ‘타임리스’의 의미를 브랜드를 통해 되살리는 것이 목표다. 보트레이트라는 이름은 지금은 사라진 옛 성씨에서 따왔고, 잊힌 것이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다.
당신의 옷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옷으로 느껴진다. 젊은 디자이너는 쉽사리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당신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이런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디자인은 ‘긴장’을 주제로 한다. 여기서 긴장은 현대의 비판적 사고와 전통, 유산, 수공예에 대한 깊은 감동 사이의 변증법적 움직임을 상징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그 움직임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 합리성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는 경계이기도 하다. 감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역설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경계 안에서 경계 밖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마치 꽉 잡기 위해 놓는 것과 같다.
사실 옷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한의 테일러링과 드레이핑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 느낌이랄까? 당신에게서 영화감독 같은 면이 보이기도 하고.
앞서 말했듯 옷에 ‘움직임’이 있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테일러링은 구조적이며, 확고하고 구체적인 규칙이 있다. 반면 드레이핑은 규칙이 없다. 그래서 생각을 버리고 그저 원단이 원하는 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규칙이 없는 것과 규칙이 있는 것 사이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보트레이트는 시대를 초월한 타임리스 의상을 강조한다. 트렌드나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 클래식한 룩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인가?
‘클래식 룩’은 내 연구의 시작점이다. 나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는 편이지만, 클래식 의류를 정의하는 품질이나 기법은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클래식 룩을 해체했다면, 그건 보트레이트 옷을 만들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트렌치 코트가 있다면, 코트의 본질을 연구하고 그것이 왜 클래식한 타임리스 아이템이 되었는지 연구하고 DNA를 이해한 후, 비로소 보트레이트의 작품으로 만든다.
LVMH 프라이즈 수상자가 되고, 패션계의 주류가 된다는 건 엄밀히 말해 타임리스를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감이 꽤 있다. 매 시즌 옷을 만들어야 할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생각하는 해법이 있나?
시스템의 완전한 일원이 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는 그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밖에 있으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힘이 줄어들고,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해진다. 또 내 컬렉션에는 오래된 것과 새것의 구분이 없다. 4개월이 지났다고 해서 옛날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진화를 믿고, 기존 시즌의 의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선보이는 형태로 나만의 타임리스를 펼쳐낸다.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패션에는 오래되거나 새로운 것이 없고, 그저 연속적인 퍼포먼스만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옷을 만드는 방식도 알고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이를 디자인화하고, 그에 맞는 소재를 떠올리는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일관된 스토리가 있지만, 이를 표현할 방법을 다양하게 탐구하는 것을 즐긴다. 가끔 마음을 사로잡는 원단을 만나면, 그 독특한 특징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를 상상해볼 수 있다. 다만 원단 고유의 특성에 반하는 형태는 피하는 편이다. 지난 시즌에는 일본의 니케(Nikke)에서 나온 탁월한 품질의 울 소재에 푹 빠져버렸다. 놀라운 텍스처를 지닌 아름다운 그레이 컬러의 울이었는데, 원단 본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옷을 만든다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 결과 원단의 내추럴한 모양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 스카프로도 활용할 수 있는 다용도 블레이저를 디자인했다.
옷을 만드는 것, 입는 것, 자신이 만든 옷을 누군가가 입는 것 중 당신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건 무엇인가?
옷이란 박물관에 전시하는 용도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옷의 진정한 본질은 ‘기능’에 있다. 목적을 다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을 볼 때면, 깊은 연결성이 느껴진다. 비록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보트레이트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나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작품을 받아들이기로 한 선택과 연결성이 나를 짜릿하게 하고 깊은 성취감을 준다.
그렇다면 당신의 옷을 입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그녀는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의 삶에는 불필요한 과장이 없다. 독서가지만, 가벼운 것도 즐긴다. 무엇보다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녀는 자기 자신이며, 다른 사람이 아니다. 옷 또한 그렇다.
가끔 꺼내 보는 과거의 패션이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당신만의 패션 바이블이 있다면?
2000년대 초반의 절제된 우아함과 단순함을 사랑한다. 마틴 마르지엘라가 전개한 에르메스 작업을 깊이 존경하고. 그는 퀄리티와 꼼꼼한 장인 정신을 강조했다. 작업에서 럭셔리에 대한 깊고 풍부한 이해가 느껴진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그 후에는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가 패션 디자이너로 노선을 변경했다고 들었다. 철학과 디자인, 패션으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계기와 본래의 꿈이 궁금하다.
나는 늘 예술의 매력에 깊이 감화되었고, 이 세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예술계에서의 종착지를 확신한 적은 없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우연히 패션계를 접하게 되었다. 신문 인포그래픽을 조사하다가 복잡한 정보를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형태로 추출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 깨달음은 디자인과 정보,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점을 심화시켰고, 그것이 변화의 계기였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꾼 적은 없고, 지금도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온전한 전체를 보여주길 원한다. 그것이 나의 미래 목표이기도 하다. 보트레이트 파티가 될 수도 있고, 보트레이트 디너 또는 보트레이트 음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 패션을 시작하며 꿈꿨던 미래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는지?
내 첫 번째 꿈은 ‘패션쇼’를 하는 것이었다. 진부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쇼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첫 쇼에서 바로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건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과 모델, 즉 우리 주위 친구들이 가장 소중하다는 점이다. 쇼를 통해 브랜드의 일원이 되는 것을 기념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에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창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고, 그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황홀한 느낌을 만끽하는 순간이 바로 내 꿈이란 걸, 지금이 꿈꾸던 미래란 걸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당신이 경험한 패션계는 어떤지, 당신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패션이 궁금해졌다.
트렌드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없다. 맹목적으로 유행을 따르고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요즘 세태가 조금 실망스럽다. 지속 가능한 부분도 없고. 그러나 오늘날 패션업계에는 젊은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책이 많은 것 같아 고맙게 느껴진다. 변화는 항상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척 중요한 일이다.
LVMH 프라이즈에 선발되었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브랜드를 창립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또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어워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대회를 조직하고 만드는 사람들부터 디자이너들까지. 또 내 브랜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조차 몰랐던 브랜드의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일종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패션업계에서 상업적 측면과 창의적 측면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도전이었다. 나는 사업가 타입이 전혀 아니다. 무엇이 팔릴지, 어떤 옷이 생산하기에 복잡할지 생각하지 않고 창작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평화롭게 비워내야 했다.
20명의 준결승 진출자 중, 본인 외에 가장 강력한 최종 우승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폴린(Pauline)의 작업을 정말 좋아한다. 무척 섬세하고 연약하면서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녀의 옷에서는 대량생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는데, 이것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다. 나의 작업에서도 그런 감각을 구현하고 싶다.
동료 디자이너나 업계 관련 사람들과 최근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나 주제가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우선시하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주제는 종종 냉소적으로 악용되어왔기에, 피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바다가 오염되고 하늘이 높은 건물에 가려진다면 결국 부는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나에게 럭셔리란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이다. 작업하다 보면 장인 정신과 지구 자원에 깊은 연결감을 느끼며 감사하게 된다.
무언가 당신이 꿈꾸는 미적 이상이 있다고 들린다.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아름다움에는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실체가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워지려고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정반대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아름다움은 나이가 들거나 거울 속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우리 겉모습보다 더 큰 무언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포토샵으로 보정한 상업광고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앞으로 보트레이트에 대한 포부가 있다면? 아주 큰 꿈이어도 좋다.
내 목표는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품질’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럭셔리의 기본이 되는 품질에 대한 이해와 대량생산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장인 정신을 이해하며 손으로 직접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없다면 재단사, 양 사육사 등의 존재 자체를 억압하고 종말로 이끌 것이며, 결국 저렴하고 공허한 대리만족만 남을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장인 정신을 품은 재단사의 손끝과 자신이 구매하는 제품 및 그 안에 깃든 힘을 모두 이해하는 고객 사이에서 중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렇게 해야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직업을 구하고, 품질 높은 디자인을 보존할 수 있다.
#THE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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