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뉴욕, 뉴욕, 뉴욕!
미국식 소비주의에 대한 찬가이자 조롱, 그리고 그 경계를 교묘히 오가는 거대한 패션 판타지와 과잉의 세계가 이탈리아적 낭만이라는 감각 아래 봉합됐다. 구찌의 뉴욕, 뉴욕, 뉴욕!
5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밤 8시 30분, 뉴욕 타임스 스퀘어를 뒤덮은 약 50개의 전광판이 동시에 빛을 발했다. 상영된 것은 뎀나(Demna)가 새롭게 제시한 구찌 세계. 미국식 소비주의와 그 진부함에 대한 찬가이자 풍자로 구성된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는 ‘구찌화(Gucci-fied)’된 세계가 펼쳐졌다. 럭셔리 생수 브랜드 ‘구찌 아쿠아(Gucci Acqua)’, 자동차 브랜드 ‘구찌 오토모빌리(Gucci Automobili)’와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구찌 짐(Gucci Gym)’. 럭셔리 여행객을 위한 호텔 ‘팔라초 구찌(Palazzo Gucci)’와 ‘안목 있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액세서리 브랜드’라 소개된 ‘구찌 펫(Gucci Pets)’까지 등장했다. 대부분은 실제 제품이 아닌 가상의 캠페인이었고, 거의 모든 영상이 AI로 생성된 듯 보였다. 단 하나의 예외는 펠리니의 영화 장면이었다. 이는 이 모든 과정을 ‘이탈리아적 경험’으로 맥락화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다. 그리고 적어도 현장에 있던 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내 뒤에 서 있던 한 사진가는 영상이 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고 “Roma! Casa mia!”라고 외쳤다. “나는 이탈리아인이에요. 집이 그리워요.” 그녀는 상영 후 이렇게 말했다.
프런트 로 역시 뉴욕이라는 도시의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머라이어 캐리, 린제이 로한, 숀 멘데스와 함께 뉴욕 나이트라이프의 상징인 전설적인 드래그 퀸 레이디 버니(Lady Bunny), 파티 프로모터 수잔 바르치(Susanne Bartsch), 그리고 브로드웨이 <Oh, Mary!>의 연출가 샘 핑클턴(Sam Pinkleton) 같은 뉴욕의 상징적 인물들이 앉았다. 런웨이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으로 감싼 톰 브래디가 등장했고, 갈색 머리 패리스 힐튼의 모습이 하필 메리어트 광고 스크린에 비쳤다. “힐튼이 메리어트에 뜨다니!”라는 메시지가 업계 관계자들의 인스타그램 DM을 오간 것도 무리가 아니다. 뎀나의 대표적인 뮤즈인 킴 카다시안도 등장했지만, 루이스 해밀턴은 보이지 않았다. 쇼는 단순한 런웨이가 아니라 뉴욕 한복판을 장악한 하나의 문화 이벤트에 가까웠다.






지난해 발렌시아가를 떠나 구찌로 향한 냉소적인 디자이너 뎀나는 자신의 첫 구찌 크루즈 쇼이자 하우스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런웨이 쇼의 무대로 뉴욕을 선택했다. 최근 유럽 럭셔리 하우스들이 미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밀착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디올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루이 비통도 뉴욕에서 쇼를 열었고, 에르메스 역시 6월 초 2026 가을/겨울 여성 챕터 Ⅱ 쇼를 열었다. 하지만 미국은 오랫동안 조지아 출신 디자이너 뎀나에게 집착에 가까운 대상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2022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선보였고, 2023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또 한 번 미국식 문화 코드를 집요하게 해부했다. 유기농 슈퍼마켓 에레혼(Erewhon)과의 협업을 포함했던 당시 쇼는 미국적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럭셔리 오브제로 전환한 사례였다. 뎀나는 이처럼 평범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는 방식을 창작 세계의 핵심으로 삼아왔고, 구찌 뉴욕 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어딘가 기시감을 남겼다.
뎀나의 인습을 타파하는 ‘아이코너클래스틱’한 접근은 여전했다. 의상 자체보다 의상을 둘러싼 아이디어와 세계관이 더 크게 말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탁월한 ‘월드 빌더’다. 타임스 스퀘어에서는 아녹 야이부터 신디 크로포드까지 슈퍼모델들의 얼굴이 거대한 전광판을 실시간으로 뒤덮었고, 가장 냉소적인 평론가조차 그 압도적인 규모와 장엄함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를 통제하는 일,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상업광고 공간인 타임스 스퀘어 스크린 전체를 장악하기 위한 협상과 예산. 그것은 야심 차고 설득력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시선이 다시 런웨이로 돌아오자, 기묘한 익숙함도 함께 밀려왔다. 그 익숙함은 곧바로 톰 포드 시절의 밀레니엄 이전 구찌를 떠올렸다. 반짝이는 정교한 수트는 톰 포드 시절을 연상시켰고, 아마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순간 역시 바로 그 지점이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펜슬 스커트와 가보 같은 시어링 모피, 뎀나 특유의 ‘계산된 오버사이즈’ 테일러링이 뒤섞이며 과거와 현재가 충돌했다. 모델들은 삐딱한 태도로 백을 움켜쥔 채 걸었고, 액세서리는 컬렉션의 실질적 주인공처럼 기능했다. 톰 포드와 함께 구찌를 부흥시킨 전설적 경영자 도메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가 프런트 로에서 이 광경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컬렉션과 쇼의 타이틀은 ‘구찌코어(GucciCore)’였다. 이는 틱톡식 유행어 ‘-core’와 패션계에서 ‘핵심 상품’을 의미하는 용어 ‘Core Product’를 동시에 비튼 영리한 언어유희처럼 들렸다. ‘구찌코어’는 구찌를 하나의 미학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정의하며, 뎀나가 생각하는 핵심 제품군을 드러냈다. 그는 보도 자료를 통해 런웨이의 대부분이 자신의 ‘퍼머넌트 컬렉션’이라 설명했다. 즉 옷장의 기반이 되는 기본적인 제품군이라는 뜻이다. 쇼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스타일적 단면’으로 소개됐다. 모델들은 거리에서 실제로 마주칠 법한 인물들처럼 연출됐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세련되고 지나치게 마른, 극도로 ‘패션화’된 뉴요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발렌시아가 시절의 로스앤젤레스 쇼에 비해 과장된 코스프레 느낌이 훨씬 덜했다는 점은 뎀나에게 꽤 진전이다. 이후 매디슨 애비뉴의 ‘구찌 맨션(Gucci Mansion)’ 컨셉 공간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에서는 뎀나식 구찌 비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곳에는 실제 ‘구찌 짐’이 있었고, 구찌 가라오케와 더블 G 로고 당구대가 놓인 구찌 호텔 룸도 구현됐다. 레이디 버니는 ‘New York, New York’을 열창했고, 게스트들은 작은 구찌 박스에 담긴 미니 버거를 먹으며 밤을 즐겼다. 뎀나는 오늘날 럭셔리가 장인 정신이나 특정 스타일보다 ‘참여’와 ‘접근성’에 관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천박함 직전의 화려함, 절제되지 않은 우아함,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는 럭셔리. 쇼는 지난 2월 밀라노에서 처음 공개한 그의 구찌보다 훨씬 완성도 높고 설득력 있는 버전이었다. 럭셔리 패션계 최고의 브랜드 빌더로 꼽히는 뎀나는 이제 자신만의 구찌가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했다. 그는 동생 구람 바잘리아와 함께 설립한 게릴라 스타일 브랜드 베트멍으로 패션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 이후 발렌시아가에서는 럭셔리에 대한 거의 다다이즘에 가까운 해석으로 패션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뒤흔들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뿐이다. 뎀나는 다시 한번 시대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VK






- 글
- JOSÉ CRIALES-UNZUETA
- 사진
- GETTYIMAGESKOREA
- SPONSORED BY
- GUCCI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