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가 개발한 가장 인간적인 AI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직접 개발한 AI 플랫폼 ‘솔로메이’를 선보이며 우리에게 물었다. ‘인간적이라는 건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은 창조의 선물입니다.” 지난 7월 16일 밀라노 피콜로 극장에 선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문학과 예술이 꽃핀 서양 문화의 발상지라는 우리가 앉아 있는 ‘땅’의 역사를 상기시켰다. 브랜드가 직접 개발한 AI 플랫폼 ‘솔로메이(Solomei)’ 기반의 웹사이트 ‘BrunelloCucinelli.ai’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엔 예술을 가리켜 ‘테크네(Techne)’라 불렀다. 아트와 테크닉으로 그 개념이 나뉘기 전까지, 예술과 기술은 한 몸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술가이자 과학자, 건축가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그 둘이 본디 하나였다고 해서 현대 디자이너이자 럭셔리 브랜드의 수장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AI라는 신기술에 앞장서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기술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탐구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성 중 하나라고 봅니다.” 그 순간 쿠치넬리는 철학자가 됐고, 무대는 아고라 광장으로 변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인본주의’를 브랜드 철학으로 삼는다. 1985년부터는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솔로메오(Solomeo) 지역의 성과 토지를 구매해 본사를 세우고, 직원이 살 수 있는 집과 직업학교, 극장을 지어 말 그대로 브루넬로 쿠치넬리 마을을 만들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직원에게 연락할 수 없으며,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보다 20% 이상 많은 임금을 주는 파격적인 업무 조건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2021년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그가 한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저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며 윤리, 존엄성, 도덕성을 갖추고 품위 있게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수익의 일부를 인류 전체를 아름답게 하는 데 사용하고 싶습니다”라는 비전도 비장하게 명시했다.
이날도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2018년, 인본주의와 기술을 주제로 100년, 500년, 1000년 후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라는 철학적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스리 버튼의 고급 수트를 입고 정작 자신은 “새로운 기술에 열정은 있지만, 연결되고 싶지 않습니다(그는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지만 퇴학했고, 인터넷도 즐기지 않으며 챗GPT도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지만 말이다.
대신 그는 수학, 공학, 철학, 예술 등 고대 그리스 방식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솔로메오로 불러 모았다. 실제로 휴머니즘과 기술에 대한 조화를 강구하며 관련 전문가를 만난 건 훨씬 이전인 2015년부터였다고 한다. 다만 ‘인본주의를 바탕에 둔 AI를 만들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며, 2022년 본격적으로 ‘솔로메이 AI’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쿠치넬리는 “인간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의 잠재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AI를 도입하고 싶었습니다”라고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쿠치넬리의 멘토이자 프로젝트 수행에 강력한 길잡이가 된 리드 호프만(Reid Hoffman) 또한 화상 연결에서 “놀라운 균형감으로 인간의 천재성과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결합한 이번 프로젝트를 접하며 브루넬로에게 진심으로 감명을 받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링크드인(Linkedin) 공동 창립자인 호프만은 현재 인플렉션 AI(Inflection AI) 수장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AI 전문가다. 그는 “Aut viam inveniam aut faciam(나는 길을 찾거나 새로 만들 것이다)”라는 한니발의 명언을 언급하며 “저는 상상합니다. 우리가 방문하고 탐험하고 배우기 좋은 이 도시를 공동으로 형성하고 우리의 삶이 얽히는 모습을요. 이곳에 미래가 있습니다”라며 참석자들에게 솔로메이 사용을 적극 권했다.
웹사이트 메인 화면 속 인물의 모습 또한 이들의 철학을 내포한다. 한쪽은 인간의 지성을 상징하는 고대의 신이며, 다른 쪽은 인공지능이다. “별빛이 내리는 밤 입 맞추고 싶은 마음을 숨긴 채 부드럽게 대화하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쿠치넬리의 설명처럼 인간과 인공지능의 교류를 상징한다.
브랜드의 인문 기술 책임자 프란체스코 보틸리에로(Francesco Bottigliero)는 웹사이트를 시연하며 “완전히 다르고 혁신적인 것을 디자인했다”고 강조했다. 인본주의적 AI라는 목적처럼 페이지와 메뉴를 없애고, 인간이 길을 걷고 사유하는 것처럼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로이 탐색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을 끝없이 줌인 또는 줌아웃 하면서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결말을 알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헤매는 즐거운 몰입감을 선사했다. “우리의 혁신적인 솔로메이 AI 플랫폼은 사람이 찾는 것을 시각적으로 즉시 표현합니다”라는 설명을 확실히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다.
쿠치넬리는 “우리의 철학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수트”로 웹사이트를 설명했는데, 대화 상자에 질문을 적으면 AI 솔로메이가 브랜드와 관련된 내용에 국한해 답을 내놓는 시스템을 구축해둔 덕이다. 보틸리에로는 ‘브루넬로가 말하는 인간의 지속 가능성은 무엇인가?’ ‘브루넬로가 세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솔로메이는 브랜드의 가치를 해칠 수 있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똑똑하게도 성실한 세금 납부자라는 것은 명확히 했다. 앞으로 솔로메이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활용될 계획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 쿠치넬리는 “우리는 항상 온라인을 판매 수단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회사를 소개하는 장이기도 하며, 항상 회사와 철학, 삶, 우리가 하는 일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라는 답변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커머스와 관련이 없는 것임을 명확히 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쿠치넬리는 “인공지능이 오랫동안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우선 우리 직원을 비롯해 8,000명의 외부 협력자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음성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고요. 확실한 건 사람들이 훨씬 더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그들의 시대에 ‘더 나은 것’을 자신 있게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불러오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대해 안심하라는 듯 이렇게 덧붙였다. “신은 최고의 선물을 항상 두려움 뒤에 숨겨둡니다.”
- 사진
- Courtesy of Brunello Cucinelli, 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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