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벌써 두 번째! ‘보그’와 루이 비통이 엮은 밤

2024.09.23

벌써 두 번째! ‘보그’와 루이 비통이 엮은 밤

끈, 연결, 인연… 삶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휩싸인다. 자기만의 세계에 골몰하는 데 유능한 예술가들은 그런 위험에 누구보다 취약한 존재가 아닐까? 그러나 셰일라 힉스(Sheila Hicks)는 사뭇 다르다. 다채로운 직물을 엮고, 뭉치고, 꼬고, 혼합하는 실험적인 텍스타일 작업이 연상시키듯 힉스는 연결의 힘을 믿는 예술가다. 어느덧 90대에 이른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가의 고집보다 열린 마음이, 자기 확신보다 타인에 대한 애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 힉스는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웨일스, 체로키 등 온갖 민족의 혈통이 범람하는 집안에서 1934년 태어났으며, 다양한 나라와 워크숍, 교육기관을 오가며 자신의 예술을 실험하고, 적극적으로 영역을 넓혔다. 예일 대학교에서는 색채 이론가 요제프 알베르스와 예술학자 조지 쿠블러와 깊이 교류했고, 위빙과 자수 기술을 체득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건축가들과 삶과 예술을 논했다. 파리에서 디자인과 장식도 배웠다. 그가 명성을 얻게 된 것 역시 에로 사리넨, 워렌 플래트너 등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부터였다. 힉스의 작품에는 예술가의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멘토와 친구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셈이다.

2024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아트 페어를 기념해 연달아 펼쳐지는 파티로 청담동이 들썩거렸던 9월 5일, <보그>는 지난해에 이어 루이 비통과 또 한 번 ‘Art Night Out’ 파티를 벌이며 떠들썩한 분위기에 일조했다. 대중과 예술을 잇는 루이 비통의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 펼쳐진 셰일라 힉스의 전시가 막을 내리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지난해 신디 셔먼의 추상화로 기묘하게 물들었던 공간에서 영감을 나누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힉스가 탄생시킨 거대한 ‘덩어리’를 바라보며 새로운 영감에 젖어들었다. 눕거나 기댄 채 그의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온몸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야간 전시는 어느새 친근한 문화가 되었지만 그렇더라도 밤의 미술관은 여전히 마음이 들뜨는 경험이다. 게다가 샴페인과 논알코올 칵테일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천장에서부터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힉스의 작품 ‘착륙’에 푹 빠져 있는 사이, 반대쪽 테라스에 인파가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후 건축에 따라 유기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힉스의 작품처럼 공간과 분위기에 맞춰 다섯 멤버로 꾸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등장했다. 2008년 창단한 후 말보다 몸으로 관객을 일깨운다는 사명을 안고 전진해온 이들은 전시 주제에 맞춰 신체 부위를 알록달록한 끈으로 묶고 등장해 서로 뭉쳤다가 흩어지며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올해 ‘Art Night Out’의 무대가 된 루이 비통 에스파스 서울이 밤이 저물며 한층 아름답게 물들었다.

김창완밴드 역시 관객과 뜨겁게 호흡했다. 자신의 이야기인 듯 목 놓아 따라 부르고, 반쪽짜리 손 하트를 완성해달라고 외치는 젊은 팬을 바라보는 김창완의 미소가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역시 가장 많은 이가 따라 부른 ‘너의 의미’를 여는 가사처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꽉 차던 시간. 낯선 존재와 문화에 깊숙이 스며들기 위해 평생을 할애한 셰일라 힉스처럼 김창완은 한결같은 다정한 미소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물들고 엮여서 무한히 공명한 그날 밤, 지난해 퍼포먼스를 펼친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예술적 포부인 ‘대동(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 하나로 어우러져 화합하고,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런 어울림)’이 또 한 번 성공적으로 드리워졌다.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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