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디지털 노매드의 유럽 여행 준비물
올여름 석 달 동안 유럽에서 지내기로 했다. 외국에 살고 여행 다니면서 글을 쓰다 보니 소위 말하는 ‘경량화무새’가 되었다. 여행이 길든 짧든 45L 배낭 하나와 3L 슬링백 하나로 짐을 꾸린다. 착륙 후 수화물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괴롭고, 길에서 수트케이스를 밀고 다니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짐을 줄인다는 게 스타일과 문화생활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10년째 디지털 노매드로 사는 에디터가 올여름 유럽 여행에 두 번 생각 않고 챙긴 준비물들.
리코 GR IV
20년 전 파나소닉 LX2부터 시작해 ‘하이엔드 똑딱이 카메라’로 분류되는 제품은 거의 다 써보았다. 소니, 후지의 유명 제품은 물론이고 니콘 쿨픽스 A 같은 괴작도 섭렵했다. 이 카메라들로 여행 책도 내고 잡지와 신문에 기고도 했다. 그중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게 리코 GR 시리즈였다. 요즘 휴대폰은 판형이 작아도 소프트웨어 기술이 워낙 좋아서 어지간한 하이엔드 똑딱이를 뛰어넘는다. 감각 좋은 여행 에디터들은 휴대폰만으로 풍경 화보를 완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처럼 손재주가 없는 사람은 돈 주고 감각을 살 수밖에 없다. 몇 해 전 GR II를 방출한 후 무엇으로도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아서 최근에 GR IV를 다시 구매했다. 50mm 화각을 구현한 X, 몽환적인 느낌의 HDF, GR만의 암부 표현력을 극대화한 모노크롬 모델도 있지만, 업무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범용성이 큰 기본 모델이 좋다.

킨 제라포트 2
이것은 신발계의 블랙 슬립 드레스다. 운동화, 샌들, 구두를 모두 대체할 수 있는 만능 아이템으로, 스트리트 패션계에서는 클래식이지만 하이엔드 패션계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패션 에디터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인 만큼 튼튼한 밑창과 우레탄 토 캡이 달려 있어 가벼운 액티비티도 가능하다. 발등을 사선으로 덮는 스트랩 덕분에 발레리나 슈즈 느낌이 나서 격식 있는 룩에도 착용할 수 있다. 내 경우 스트랩까지 블랙으로 구매해서 봄가을 도심 여행에서 양말과 함께 착용해 부츠인 척 신고 다닌다. 몇 년째 한겨울 빼고는 여행 때 이 신발 한 켤레만 챙긴다.


유그린 우노 파워뱅크
6개월 이하 여행에는 컴퓨터 없이 휴대폰과 블루투스 키보드만 가지고 가곤 한다. 그 조합으로 책도 쓰고 잡지 기고도 한다. 한동안 여기에 이북 리더기를 추가했으나 그마저 번거로워서 이제는 휴대폰 한 대로 모든 걸 해결한다. 대신 아이폰에서 측면 버튼을 세 번 클릭하면 흑백 필터가 켜지고, 화이트 포인트가 감소하는 등 ‘독서모드’가 켜지도록 설정해두었다. E-잉크 태블릿보다는 못하지만 일반 스마트폰 설정보다는 눈의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모드 설정은 제미나이와 챗gpt의 도움을 받았는데, 챗gpt의 가이드가 더 단순하고 효과가 컸다.
휴대폰을 독서나 글쓰기용으로 사용하려면 스탠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영입한 것이 유그린 우노 맥세이프 파워뱅크다. 파워뱅크와 폰을 동시에 충전할 수 있는 패스스루 기능이 있고, 패스스루를 끄고 스탠드로만 쓸 수도 있어서 배터리 성능 관리가 쉽다. 무엇보다 보라색 로봇 모양이 귀엽다.

디지털 콘텐츠
이북 콘텐츠는 인터넷 서점의 구독제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최근에 끊었다. 저렴한 비용에 무제한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그 때문에 최신 양서 구입을 주저하게 되는 게 문제였다. 한동안 장르 소설과 번역서만 읽다 보니 언어가 거칠어져서 2026년 하반기에는 한국 문장가들의 글을 집중해서 읽기로 했는데, 원하는 작품이 구독제에 거의 없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김애란의 전작을 다시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E-잉크 태블릿 대신 휴대폰을 이용하는 건 전자가 소화할 수 없는 잡지 때문이기도 하다. <보그> 해외판을 비롯해 전 세계 주요 잡지와 신문을 볼 수 있는 프레스 리더(Press Reader)는 일하며 여행 다니는 디지털 노매드에게 구원 같은 서비스다. 국내 잡지가 많은 모아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기 구독 서비스와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가입이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무료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멤버십 카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현장 가입만 가능하다는 게 걸림돌이지만, 한번 만들어두면 문화생활의 질을 획기적으로 상승시켜준다. 전자책에 익숙한 활자 중독자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운 서비스다.

- 포토
- Courtesy Photos, 이숙명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