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오웬스가 건네는 부드러운 가치
파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 전, 릭 오웬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삶의 유한함과 소속감, 유산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전하길 바라는 호의와 관대함에 대하여.


지난 3월, 우아한 데다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인 2025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을 발표한 다음 날, 릭 오웬스(Rick Owens)는 근처에서 꺾은 향기로운 흰 재스민 꽃다발을 옆구리에 낀 채 성 클로틸드 대성당에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이 성당을 자주 방문한다. 혼자 갈 때도 있고, 오랜 어시스턴트 안나 필리파 울프(AL)와 그녀의 아이랑 같이 갈 때도 있다. “집의 연장이자 파리에서 누리는 삶의 일부입니다. 작지만 완벽한 장소죠.” 그는 종교가 없지만 교회라는 공간과 그곳에 담긴 관념을 좋아한다. “가장 이상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삶을 살기 위해 함께 모이는 곳이니까요.” 성 클로틸드 대성당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쇼를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화장이나 장례식 같은 어려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아버지는 평생 종교가 없었고, 어머니는 천주교도였죠.”). 두 분은 돌아가셨지만, 성당에서 팔레 부르봉 광장에 있는 본사 겸 집으로 가는 동안 센강과 루브르 박물관, 팔레 루아얄을 지나면서 그는 삶의 유한함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파리가 집처럼 느껴져요.” 그가 말했다. “이 거리에서 나이 들 겁니다. 매일 똑같은 걸 주문하는 내게 넌더리를 낼 웨이터들과 함께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베니스 리도섬을 사랑하는 오웬스는 파리에서 20년 이상 보낸 후에야 이 도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빛의 도시는 예상 밖의 친절함으로 두 팔 벌려 화답했다. 파리 최고의 패션 박물관 팔레 갈리에라에서 6월 28일부터 릭 오웬스의 회고전 <템플 오브 러브(Temple of Love)>가 열린다. 갈리에라가 살아 있는 디자이너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인물에게만 허용한다. 아제딘 알라이아, 마르탱 마르지엘라에 이어 릭 오웬스가 세 번째다. 수십 년 동안 완전한 독립체로 브랜드를 운영하며 대기업의 개입을 거부하고, 그럼에도 매년 모든 기준에서 점점 더 동시대적으로 진화해온 그의 경력과 업적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의 디자인은 패션계 최고의 지식인 집단부터 세계 곳곳의 고스 룩 스케이트보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이 환호한다. 오웬스는 비전통적 방식으로 미학을 결합하는 용기와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명석함, 거침없는 탐구심, 괴짜 성향,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직업윤리를 가진 럭셔리 산업의 트렌드 예측가, 경제 비관론자, 열정적인 비판가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의 작업은 시시때때로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동료 디자이너들에 비해 더 거시적이며 훨씬 탁월하다. “끊임없이 디자이너들이 교체되는 패션계에서 별난 축에 속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오웬스가 말했다. “파트너를 제대로 만나서 운이 좋았죠.” 그는 아내인 미셸 라미, 오웬스 코퍼레이션의 루카 루제리와 엘사 란초를 언급했다. “30년 동안 열정적으로 저를 지켜줬습니다. 그들의 재능은 제가 가진 재능 못지않게 중요하죠.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질투할 만합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팔레 갈리에라에서 열리는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은 알렉상드르 샘슨(2023년에 열린 ‘1997 패션 빅뱅’ 외에 여러 전시를 큐레이팅했다)은 오웬스가 파리에서 활동하며 선보인 컬렉션과 함께 헤비용(Revillon, 오웬스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활동한 모피 브랜드로 그가 파리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에서의 작업, 포르투니(Fortuny, 그의 감성적, 문화적 지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베니스의 원단 업체)와의 협업,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초기 디자인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로스앤젤레스는 그의 미학과 사업체가 탄생한 도시로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 길 건너에는 당시 사업 파트너였던 아내 미셸의 레스토랑 ‘레 두 카페’가 있었다(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시절 라미의 옷장과 당시 둘이 함께 사용한 한 덩어리로 된 높은 침대도 전시를 위해 다시 만들었다. 침대는 이후 디자이너의 맞춤 제작 가구 라인 론칭으로 이어졌으며, 현재 라미가 이 라인을 운영 중이다. 트래비스 스캇도 이 침대를 가지고 있다).
초기 디자인인 거미줄처럼 수백 개의 올이 드러난 티셔츠뿐 아니라 눈을 사로잡는 런웨이 룩(<매드 맥스>와 <마담 사탄>이 만난 것 같은 구조의 가죽과 실크, 저지 의상은 다양한 형태의 날렵한 어깨선, 브루탈리즘과 로맨티시즘이 공존하는 구불구불한 선이 특징이다)도 전시하며 의상은 개별 구성 요소로 분해된다(“완성된 착장으로 전시하지 않는 건 어떨까?” 오웬스가 샘슨에서 제안했다. “그러면 한결 차분해질 텐데.”). 데이비드 보위, 클라우스 노미, 이기 팝의 앨범 커버와 시스터스 오브 머시부터 구스타프 말러의 작품까지 아우르는 쇼 배경음악도 전시의 일부다. 그리고 달로 간 마담 그레라고 표현할 만한 드레이프 장식의 이브닝 하이브리드 룩은 뻔한 설명이나 단순한 복제를 거부한다(오웬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살면서 제가 이런 룩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미성년이나 비위가 약한 이들의 입장을 제한하는 ‘조이 오브 데카당스’ 룸에 전시된 소변을 보고 있는 실물 크기의 디자이너 조각상은 2006년 피렌체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모든 이질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전시는 디자이너 오웬스가 지닌 뛰어난 재단과 재봉, 드레이핑 기술과 그의 고전적인 상상력을 뚜렷이 드러낸다.
“릭 오웬스를 안다고 했던 사람들이 그의 문화적 소양을 깨닫고 놀랐으면 합니다.” 샘슨은 말했다. “프랑스 문화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으며, 릭 오웬스는 파격 그 이상입니다.” 사실이다. 오웬스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에 깃든 ‘호의’와 ‘관대함’에 대한 일련의 인식이며,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불경하고 종말론적인 것으로 오해받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릭 오웬스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그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2025 봄/여름 ‘할리우드’ 남성 컬렉션에서 200명의 모델과 학생들이 팔레 드 도쿄 주위를 걸었을 때, 검은 렌즈를 낀 우뚝 솟은 무리들이 매 시즌 쇼장 밖에서 그의 쇼를 기다리던 팬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2016 봄/여름 여성 컬렉션 때처럼 모델들이 다른 모델을 등지고 런웨이를 걸었을 때, 스틸레토 힐의 존재 의미에 대해 제기한 그의 의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신체적 특성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는 자문했다. “어떻게 하면 낭비 없이 극적인 장면을 연출 할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번역 행위인 이번 회고전은 엉망진창인 채 생존주의 모드로 버틴 할리우드 클럽 죽돌이에서 아내가 세상을 헤쳐나가는 ‘품위’를 존경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깊이 그리워하면서, 아이와 함께 교회 정원을 방문하는 게으름뱅이가 된 그의 남다르고 주목할 만한 여정을 따라간다.
“더 부드러운 가치를 알리고 싶어요.” 오웬스가 말했다. “포용성은 이제 진부한 단어가 돼버렸지만, 저는 포용적인 미적 세계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역설적인 점은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이 아주 철저하게 방어한 탓에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는 거죠. 요새가 되었어요. 그러면 불가능합니다.”
물론 더 큰 역설은 최근 협동조합주의자들이 늘며 단일 문화를 지향하는 세계가 되면서 포용성을 추구하는 이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반항 행위에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오웬스는 전 세계 공항 면세점을 지날 때 느끼는 공포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어딜 가든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화장품 판매대의 광고 이미지와 영상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열망하고 매력을 느끼는 아주 구체적인 규칙의 조합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전 세계의 공통된 규격입니다. 그걸 거부하진 않아요. 훌륭해요.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선택항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VK)

- 글
- SALLY SINGER
- 사진
- COURTESY OF RICK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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