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월드의 확장은 어디까지일까? ‘다 이루어질지니’
넷플릭스에서 추석 연휴 선물처럼 공개한 <다 이루어질지니>(이하 <다지니>)는 말초적인 코미디로 시작해 웅장한 판타지 멜로로 끝을 맺는다. 유치하다, 병맛이다, 도입부를 넘기기 어렵다는 평가부터 후반부 서사에 감동해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 코미디 파트가 오히려 취향에 맞았다 등 극과 극의 감상이 쏟아진다. 배우들의 연기에도 호평과 혹평이 공존한다. 제작 도중 연출이 이병헌(<멜로가 체질>)에서 안길호(<더 글로리>)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대목이 누구의 영향인 것 같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요컨대 <다지니>는 높은 완성도로 일관된 평가를 끌어내기보다 취향, 감성 등 주관에 소구하는 드라마고, 김은숙 작가는 여전히 화제성이 넘친다. <다지니>는 공개 3일 만에 46개국 넷플릭스 톱 10에 진입했다.

김은숙 작가는 현대 K-콘텐츠의 최고 인기 상품인 신분 상승 로맨틱 코미디의 레시피를 완성한 인물이다. 여성향이라 폄훼되기도 하고, 윤리적으로 비판할 여지도 있지만 상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르고, 여기서 일가를 이룬 작가가 굳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꾸준히 새 주제를 발굴하고 이종 장르의 접목을 실험하는 성실성이, 이제는 특유의 탄력 넘치는 대사와 생생한 감정 묘사만큼이나 존경을 자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지니>를 향한 극과 극의 평가도 진중한 시대극 <미스터 션샤인>, 어둡고 통쾌한 스릴러 <더 글로리>를 거치며 김은숙 월드에 다양한 팬층이 유입되었고, 그만큼 기대도 방대해졌다는 방증이라 생각하면 그로선 즐거운 고통일 것이다.
<다지니>는 900여 년 만에 램프에서 깨어난 지니(김우빈)와 그를 깨운 사이코패스 기가영(수지)의 이야기다. 고전 판타지 세계관을 빌려와 천년을 아우르는 멜로드라마를 펼친다는 점에서 작가의 또 다른 히트작 <도깨비>를 연상시킨다. 한반도 역사에 대한 관심은 <미스터 션샤인>과도 겹친다. 지니와 기가영은 초면이 아니다. 지니는 소원권을 받고 타락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고 신 앞에서 자신만만했다가 전생의 기가영이 이타적인 소원만 비는 바람에 낭패를 보았다. 이후 지니는 기가영이 환생할 때마다 쫓아다녔지만 가영을 타락시키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이번 생의 기가영은 동정심이 없는 사이코패스라 상황이 묘하게 전개된다. 가영은 소원을 비는 대신 불사의 존재인 지니를 자신의 파괴욕을 실현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이후 줄거리는 경계 없는 상상력과 반전으로 가득하다. 본의 아니게 가영 옆에 머물면서 현대 생활에 적응해가던 지니는 자신의 과거 기억에 20여 년의 공백이 있으며, 그 기간에 자신이 가영과 함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미스터리는 후반부의 절절한 멜로드라마를 위한 포석이다. 한편, 기가영의 첫 번째 소원은 다섯 명의 인물을 타락시켜보라는 것이다. 이로써 드라마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라는 메타포에 담긴 고전적 매력도 충실하게 담아낸다. 인간의 편협한 욕망과 그 대가를 전시해 교훈을 안겨주고, 반전 스토리텔링으로 호모픽투스의 원초적 쾌감을 자극하고, ‘나라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 같은 장치들을 계단처럼 활용하여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시청자를 안내한다.
기가영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소원에 이르면, 시청자는 그가 사이코패스로 설정된 것이 ‘인간성의 핵심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위한 서두였음을 깨닫게 된다. 대중의 보편 욕망을 정확히 포착하고 뻔뻔하리만치 과감하게 대리만족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난 작가다운, 인간에 대한 애정과 탐구심이 느껴지는 아이디어다. 한편, 기껏 지니를 만났음에도 슈퍼마켓 점장이 되고 싶다거나, 동창의 은행 잔고를 자기한테 옮겨달라는 등 하찮은 소원을 비는 조연들은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에 대한 집착이나 원한이 올가미가 되어 개인의 시야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통해 사색할 거리를 남긴다. 지니가 과거 인간에게 재앙을 초래했다며 헐뜯는 천사(노상현)을 향해 기가영이 “(그런 재앙이 벌어질 동안) 너는 뭘 했냐?” 묻고, 천사가 “기도”라고 답하는 장면은 무신론자에게 바치는 신랄하고 통쾌한 종교 개그이자, 선악에 대한 고민을 숙제로 안겨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큰 주제나 철학을 유치하지 않게 다룰 수 있는 작가가 우리에게 많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다지니>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정교한 수작이라기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깊은 여운과 카타르시스를 남기는 작품이고, 김은숙 월드의 확장, 진화 본능을 또 한 번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기획이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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