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인구 1,500만 시대, 경제 정의를 말한다는 것 ‘언더커버 미쓰홍’
<언더커버 미쓰홍>(tvN)은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럽지만 메시지는 가볍지 않은 드라마다. 집요한 30대 증권 감독관이 국내 최대 증권사의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20대 인턴으로 위장 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1990년대라는 시대 배경, 학력과 성별로 차별받던 무리가 힘을 합쳐 경영진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설정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강렬한 주인공 캐릭터, 과장된 코미디, 엉뚱한 로맨스로 전혀 다른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사내맞선>(SBS)의 박선호 PD가 연출에 참여하고 <출사표>(KBS2)의 문현경 작가가 집필했다.

주인공 홍금보(박신혜)는 동생 홍장미(ITZY 유나)의 신분을 빌리고 코칭을 받아 20대 흉내를 내지만 자주 정체가 들통날 위험에 처한다.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인다거나 위장을 위해 선택한 단발머리가 촌스럽다는 구박쯤은 아무렇지 않다. 그런데 자기 일과 관련해서는 유능함을 숨기지 못한다는 게 그의 문제다. 입사 필기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은 걸로 모자라 문제가 잘못되었다며 첨삭을 해버리고, 트레이더들에게 커피를 타주다가 수십억원대 주문 오류를 발견하고는 단박에 상황을 수습하고, 그 주문 오류에 연루된 범죄자들을 혼자 힘으로 찾아낸다. 능력은 있으나 야망은 없고 순한 남자들을 칭찬으로 조종해 회사 시스템을 개선하기도 한다.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30대 엘리트 여성의 판단력, 추진력, 통솔력, 그리고 대인 관계에 대한 높은 피로도와 심드렁함을 묘사하는 대목은 기존 어떤 작품보다 현실적이다. 박신혜는 그런 홍금보의 실체와 어설픈 연기를 능청스럽게 표현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못지않게 조연들에게도 고른 애정을 보낸다. 홍장미가 된 주인공은 기숙사 4인실에 들어간다. 비서실 고복희(하윤경)와 강노라(최지수), 지점 판매직 김미숙(강채영)이 룸메이트다. 이들 각각에게도 홍금보 못지않은 비밀이 있다. 특히 고복희와 홍금보의 서사가 흥미롭다. 고복희는 여러 금융회사를 전전하며 뒤탈 없는 비자금을 찾아내 횡령한 전적이 있다. 재능과 성격이 비슷한 이들은 우정으로 직행하는 대신 서로 견제하면서 버디로 발전한다. 1990년대 금융계의 성차별, 남성 가족에게 착취당하는 고복희의 처지, 미혼모 김미숙에 대한 연민이 그 시스터후드에 접착제 노릇을 한다.


페미니즘 기조는 홍금보와 남성 캐릭터들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작품은 한민증권 회장 강필범(이덕화)을 비롯해 권위적인 남성상을 일관되게 조롱한다. 그들은 무능하거나 악덕하거나 얄팍하거나 비겁하다. 반면 성별, 학력을 떠나 홍금보의 능력을 알아보고 지원하거나 따르는 탈권위적인 남자들에게는 호의를 보낸다. 홍금보와 접촉할 때마다 스파이 영화 흉내를 내서 웃음을 터뜨리는 증권 감독원 상사 윤재범(김원해), 왜 인턴에게서 누나 같은 느낌이 나는지 의아해하면서도 금보에게 팬심에 가까운 설렘을 느끼는 회장 손자 알벗 오(조한결)와 컴퓨터 전문가 이용기(장도하)가 그들이다.
알벗과 홍금보 사이에는 로맨틱한 기운도 감지된다. 정확히는 알벗의 짝사랑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와는 결이 다르다. 여느 드라마라면 홍금보의 전 애인 신정우(고경표)가 한민증권 사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삼각관계가 펼쳐졌어야 한다. 그런데 홍금보는 둘 중 어느 쪽에도 허둥거리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한다. 또 홍금보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한민증권 회장을 잡는 건 네 능력 밖이라며 커리어는 무시하는 신정우, 가족의 비리를 앞장서 폭로하려고는 하지만 엄연히 재벌 손자인 알벗, 어느 쪽도 이 드라마의 주제에 부합하는 연애 상대가 아니다. 그 때문에 홍금보의 이성 관계가 어떻게 정리될지가 막판까지 궁금증으로 남는다.



작품 후반은 케이퍼 장르처럼 흘러간다. 관련 기관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된 홍금보는 회장의 비자금을 빼돌려 한민증권 지분을 사들이고 회사를 정상화할 방안을 강구한다. 비자금 횡령 유경험자 고복희와 룸메이트들, 알벗과 이용기 등 충실하게 빌드업된 캐릭터들이 적재적소에서 효용을 발휘한다. 금융 환경 변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주식 인구가 1,500만 명에 육박하는 우리의 현실이 이들 해적단의 명분과 활약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준다.
<언더커버 미쓰홍>은 명확한 선악 기준을 지니고 있다. 고위층과 결탁해 돈세탁하고 비자금 만들고 주가 조작하고 불량 펀드 판매해서 국가와 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악덕 금융가, 그들과 유착하거나 책임을 방기하는 감독 기관, 기업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헐값에 인수한 다음 대량 해고를 유도하는 국제 투기 자본 등은 악으로 묘사된다. 한민증권 오너 일가는 여느 한국 드라마의 재벌처럼 무시무시한 권력자나 로맨틱한 연애 상대가 아니라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경영권 다툼에나 골몰하는, 위험하도록 무능한 족속이다. 저들의 비리를 고발하려다 자살을 했거나 당한 사람들, 방만한 기업과 국가 경영이 초래한 IMF 위기를 온몸으로 떠안게 된 시민들, 은행과 증권사를 믿었다가 재산을 날린 사람들, 회사가 시키는 대로 부실 펀드를 판매했다가 소송 폭탄을 맞은 금융사 말단 직원 등 피해자도 명확히 제시된다. 이런 시선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은 홍금보의 활약을 더 통쾌하게 느낄 것이다.


홍금보는 성차별에 맞서는 여성 영웅일 뿐 아니라 이상적인 엘리트의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드물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는 뛰어난 능력과 윤리성을 갖추었으며, 자기 본분에 충실함으로써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배경은 1990년대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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