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필리핀을 기록하다_미술 실크로드
바다, 섬, 서핑, 어부, 넉넉지 못한 형편에 옷을 수선해 입던 할머니까지, 필리피노의 과거와 현재를 예술로 담아내는 이들이 있다. 영감의 원천은 필리핀 그 자체다.
필리핀의 섬을 기리며, 마르타 아티엔자


한 공용 테이블에 젊은 여성들이 둘러앉아 노트북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스타트업 회사의 풍경 같지만, 활짝 열린 창을 통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가 보인다. 이들이 숲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마르타 아티엔자(Martha Atienza)가 세부 근처의 반타얀(Bantayan)섬에서 운영하는 작업실이다. 젊은 여성들은 굿랜드(Goodland)라는 플랫폼에서 지난 몇 년간 공동체 구성원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분류하는 IT 전공 학생들이다. 이 기록 보관소는 약용식물과 토종 수목, 전통 농사법,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종자 등에 대한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학생들이 하는 역할은 저장소에 있는 지식을 실질적으로 적용하도록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온 여러 농업 관행에 기반해 공동체 농장을 조정하는 식이다.
굿랜드는 NGO처럼 운영되지만, 살아 있는 박물관이자 아티엔자 작품 활동의 핵심이다. 아티엔자가 굿랜드를 통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예술이 사회, 환경, 경제 문제를 풀 수 있는가다. 그의 방법론은 시민단체, 관련 전문가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협업이 바탕이다. 그리고 반타얀은 이를 위한 실험 실습실인 동시에 굿랜드의 창의적인 결과물과 예술적 개입이 실제로 구현되는 장이다. 네덜란드인 어머니와 마드리데호스(Madridejos) 자치구 출신의 선장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티엔자는 반타얀 해안 마을 사람들과의 깊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그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아티엔자는 낚싯배와 국제 화물선을 오가며 몇 주를 보냈다. 여자가 배에 타면 부정 탄다고 믿는 나이 든 뱃사람들 덕분에 여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에 들어선 것이다.
이런 탐구 끝에 영상 작업 ‘내 배꼽은 바닷속에 묻혀 있다(Gilubong ang Akon Pusod sa Dagat, My Navel is Buried in the Sea)’를 선보였고, 이는 2012년 아테네오 아트 어워즈 페르난도 조벨 시각예술상을 수상했다. 이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를 주민들에게 상영했는데, 이를 통해 가족들은 집안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일부 가족은 공기압축기를 사용한 잠수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해적이나 인신매매처럼 뱃사람들이 바다에 나가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마주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영상은 그들 가정의 소통 부재를 메우는 데 일조했다. 전통적으로 필리핀 남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집에 가서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두 그룹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직접적인 소통과 스토리텔링이 일상의 근간을 형성했던 아티엔자 집안의 네덜란드풍이 반영됐다.

2015년 아티엔자는 ‘페어 아일(Fair Isles)’이라는 명상적인 영상으로 작가 커리어에 또 한 번 이정표를 찍었다. 이 영상은 스코틀랜드 북부 페어 아일이라는 섬을 지나는 화물선에서 촬영된 것으로, 아트 페어 필리핀(Art Fair Philippines)에서 판매되었다. 아티엔자의 어머니는 실버렌즈 갤러리(Silverlens Gallery)의 설립자 이사 로렌조(Isa Lorenzo)를 껴안으며 “이제 마르타 걱정은 그만해도 되겠군요!”라고 말했다.
아티엔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어 했다. 반타얀은 기후변화, 태풍과 지나친 관광으로 인한 피해, 수산자원의 감소, 산호초 파괴 등의 문제를 앓고 있다. 아티엔자는 강한 사회적 유대감과 작업 ‘길루봉(Gilubong, 수장된)’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식량 불안정과 지속 가능한 생계에 대한 필요성을 해결하기 위한 농업 프로젝트에 지역 여성들을 참여시키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우리를 위해(Para Sa Aton)’라는 연작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이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실수를 많이 했어요.” 그가 인정했다. “슈퍼 태풍 욜란다 이후 우리는 뱃사람과 어부의 아내들과 함께 생물 집약적 농업을 시도했지만, 정작 그분들은 채소 섭취에 큰 관심이 없었죠.”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여성들은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답하는 데 오래 걸려요. 그래서 같이 촬영을 한다든가, 같이 글을 쓰는 식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죠.” 이런 식의 참여 과정은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반타얀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아티엔자는 영상 작업 ‘우리의 섬(Our Islands)’이 2017년 아트 바젤(Art Basel)에서 발루아즈 예술상(Baloise Art Prize)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의 ‘아니토(Anito)’ 시리즈의 물속 버전인 72분짜리 이 영상은 종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논평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아티 아티한(Ati-atihan) 축제에서 춤을 추는 반타얀 사람들의 해학을 잘 담아냈다. 그는 2010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어부들에게 바닷속을 행진하게 했다. 그리고 매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 예수, 외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노동자, 태풍 욜란다 생존자, 마약 전쟁 피해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튜브를 통해 호흡하며 바닷속을 행진했다. 이 영상은 두려움과 유머, 황폐화와 회복, 절망과 믿음이 공존하는 섬의 고요한 세계로 보는 이를 빠져들게 했다.
고향 섬으로 돌아온 아티엔자는 자신의 국제 예술상 수상이 계속 악화되는 반타얀의 현실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은 계속 나빠졌어요. 어족 자원은 고갈되고, 공기압축기를 사용하는 잠수 조업은 여전히 계속되었죠. 많은 가족이 섬을 떠나야 했고, 젊은 세대는 더 이상 과거의 청정한 바다를 기억조차 못하죠. 상실감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굿랜드’예요. 우리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공식적인 조직이 필요했으니까요.”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ial)의 의뢰를 받아 아티엔자는 해안 지역에 관한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을 굿랜드라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2022년에 열린 제1회 아들라우 사 마가 마나나가트(Adlaw sa mga Mananagat, 어부의 날)는 종종 등한시되는 어부들의 삶을 기리며 문화, 식량 안정, 해양 보호에서 그들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이 행사에는 37개 해안 지역 공동체가 행렬처럼 늘어선 배에 타고 참여했으며, 교육 관련 발표와 이해관계자들이 대화를 통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열린 포럼이 이어졌다.
“정말 특별한 행사였어요. 그것을 통해 공식적인 결의안을 추진할 수 있었고 이제는 정부가 해마다 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어요.” 야자잎과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만든 낚싯배 50척이 바다를 건너는 행렬을 기록한 아티엔자의 작업은 제17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에서 첫선을 보인 뒤 전 세계를 순회했다.
그 후 아티엔자는 마드리데호스와 바다를 떠나 비히야(Bihiya) 내륙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은 그의 가족이 20
년 동안 보호하고 되살리려 노력한 아주 중요한 유역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이던 이곳은 이제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는 여기에 작업실을 짓고 학생들과 함께 굿랜드가 다른 공동체를 위해서도 실용적인 모델로 작동하도록 다듬어가고 있다.
아티엔자는 변화를 위한 플랫폼으로 예술의 힘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예술을 쓸모 있게 만들까요? 주의를 끄는 건 쉽죠. 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관점을 바꿔놓은 또 다른 조언을 떠올렸다. 작품 활동을 통해 공동체 발전까지 도모하는 아티엔자는 국제적 갤러리와 어선, 아트 페어와 농가, 섬사람들을 오가며 자신이 품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육지와 바다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를 기리며.
해진 옷을 추억으로 꿰매는, 마리나 크루즈

필리핀 불라칸주 하고노이(Hagonoy) 지역에 위치한 마리나 크루즈(Marina Cruz)의 어린 시절 집에는 달이 차고 기울 때마다 물이 들어찼다. 홍수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었다. 하고노이는 마닐라만으로 흘러드는 여러 강과 개울이 교차하며 자연적으로 자주 범람하는 삼각주 위에 세워진 터전이다. 형편이 허락하는 가정은 생활공간을 위층으로 옮겨 삶을 재편했다. 크루즈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집과 홍수에 30cm가량 잠긴 주변 골목길을 그린 연작을 통해 침수 장면을 하나의 풍경처럼 묘사했다.
해가 갈수록 홍수는 점점 심각해졌다. 강가 마을에 사는 불편함 정도로 여겨지던 홍수는 기후변화가 심해짐에 따라 점차 재앙으로 변해갔다. 홍수를 막아야 했던 정부의 돈은 너무 오랫동안 부패한 이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크루즈의 어린 시절 기억은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후에 크루즈와 화가인 남편 로델 타파야(Rodel Tapaya)는 하고노이를 떠나 불라칸주 내륙지역인 기긴토(Guiguinto)로 이주해 그 동네에서 세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이들의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크루즈 증조부의 농장 부지에 세운 ‘이스토리야 스튜디오(Istorya Studios)’ 건물이 있다. 처음에는 부부의 작품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사용했으나, 2024년 11월 차고를 서점으로 개조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필리핀 서적만 판매하는 이 서점은 동네 어린이들을 위한 주간 독서회나 크루즈가 소장한 빈티지 타자기 컬렉션 40여 대를 활용한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로 자리 잡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출판 사업으로 이어졌는데, 주로 만화와 순수예술의 경계에 있는 화가와 작가들의 협업 결과물을 펴냈다. 타파야가 만든 캐릭터들이 만화 소설 형식으로 등장하는 <알룰롱(Alulong)>, 바늘과 실로 가족사를 수놓은 크루즈의 <산다앙 다밋: 100벌의 원피스(Sandaang Damit: 100 Dresses, 산다앙 다밋)> 등 지금까지 총 다섯 권의 시리즈를 출간했다.
<산다앙 다밋>에는 1953년경 제작된 앞치마형 원피스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옷은 크루즈의 할머니 롤라 에뎅(Lola Edeng)이 손바느질로 만들어 크루즈의 어머니 엘리사(Elisa)와 쌍둥이 이모 로라(Laura)가 두 살 때 입었던 것이다(로라가 입었던 똑같은 원피스는 분실됐다). 이 옷에는 “닭 모이 포대를 재활용한 소재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최근 유행하는 밀가루 포대를 재활용해 만든 셔츠는 대공황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사료 포대로 원피스를 만들어 입는 것은 특히 직물 배급이 이루어지던 전쟁 중에 미국 시골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적 현상이었다. 사료 포대는 종이가 도입되기 전까지 면직물로 제작했으며, 깅엄 패턴이나 플로럴 프린트 등 다양한 무늬로 출시됐다.

크루즈의 작품 세계는 오래전부터 손때 묻은 질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은 원피스 그림으로 대변되어왔다. 필리핀 대학교 미술학도로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2000년대 초, 크루즈는 어머니의 아기 세례 드레스를 발견했다. “제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 순간이었어요.” 그가 회상했다. “어머니가 폐기종 진단을 받으셨고,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제가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때 그는 할머니가 수십 년간 바울(Baul, 필리핀어로 ‘궤짝’이라는 뜻)에 보관해온 수많은 옷가지를 통해 가족에 대해 깊이 알아갔다. 크루즈는 왜 할머니가 이 옷을 처분하지 않고 추억의 물건으로 보관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네 딸에게 차례로 물려 입힌 옷이 너무 낡아 기부하기조차 창피했던 것이다.
실버렌즈 갤러리에서 열린 크루즈의 최근 개인전 <갈라진 천(Fractured Fabric)>에서 작가는 직물의 닳고 바랜 특성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작품 곳곳에는 충만함과 완전함, 귀향을 암시하는 물방울무늬가 등장한다. 동시에 이 무늬는 세탁과 착용을 반복하며 올이 늘어나 생긴 구멍을 상징한다. 크루즈는 검소함과 생활력의 증표인 해지거나 수선한 부분을 확대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했다. 추상 작업에서는 거즈 소재로 질감을 표현했고, 콜라주 인물화 연작에서는 캔버스에 직접 자수를 놓기도 했다.
크루즈는 20년 넘게 기억, 역사, 서사, 여성성이라는 테마를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다뤄왔다. 옷이라는 사물을 한 땀 한 땀 공들여 재구성한 이 작품은 옷 한 벌을 소중히 여기던 시대와 소셜 미디어로 가속화된 오늘날 과소비 문화의 날카로운 대비를 보여주며 사회적 담론을 형성한다. 과거에 옷은 구멍 났다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깁고 고쳐 입으며 생명력을 연장하는 존재였다. “돌아가신 레오 아바야(Leo Abaya) 스승님은 저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셨어요. 제 그림이 색채도 화려하고 구상적이지만, 접근 방식은 매우 직접적이고 때로는 직관적이기 때문이죠.” 크루즈는 여러 세대를 거쳐온 옷을 물려받은 것을 큰 축복으로 여긴다. 기성 원단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모든 작업이 가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죠. 그것이 제 작업의 가장 특별한 요소입니다.”
실버렌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는 작품 활동의 원점으로 돌아간 전시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 전시를 마친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더 깊이 관찰하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실험이 전개되는 방식, 책과 출판물을 통해 누군가를 다시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로워요.”
부부 작가는 서점 단골들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카페 루난(Kape Lunan)도 열었다. 그들의 카페와 서점은 특별한 홍보 없이도 마닐라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주요 방문객은 여전히 이 동네 주민들이다. 부부가 독립 서점을 세울 때부터 함께하고 싶었던 이들 말이다. 두 사람은 늘 각자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유지해왔다. 스타일도 다르다. 크루즈가 개인사를 파고든다면, 타파야는 전통문화를 탐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지점에서 만난다. 부부는 출판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각자의 고립된 작업을 공동의 활동으로 전환하며 창작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업실은 이제 지역 공동체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필리핀의 이야기를 전할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전통 의상을 입고 서핑을, 아치 제오티나

76세의 필리핀 여성과 발레르(Baler) 지역 청소년 서핑 챔피언인 그녀의 손녀 사진이 바르셀로나 해양 박물관(Maritime Museum of Barcelona)에 걸리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필리핀 루손(Luzon)섬 동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 발레르는 필리핀 혁명 이야기에서 군도 내 스페인의 마지막 저항지로 알려진 곳이다. 1898년 스페인군은 전쟁이 끝났고 스페인이 미국에 투항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며 발레르 교회에 들어가 바리케이드를 쳤다. 군인들은 교회에 계속 남아, 문 앞에 놓인 신문 기사를 가짜 뉴스라며 무시했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나 그들이 마침내 진실을 받아들이고 교회 밖으로 나왔을 때, 환호하며 따스하게 맞아주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스페인 군인들은 포로가 아니라 친구 대접을 받았으며, 무사히 집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다. 매년 필리핀-스페인 우정의 날이 되면 발레르 포위전에 담긴 명예로운 정신과 화해의 의지를 기린다.
2023년 발레르는 상원 의원 소니 앙가라(Sonny Angara)가 입안한 법률을 통해 공식적으로 ‘필리핀 서핑의 발상지’로 인정받았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곳의 서핑 문화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1976년에 영화 제작 팀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발레르를 떠난 뒤, 현지 사람들이 그들이 남기고 간 서프보드 몇 개를 가져와 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비크만 해군기지에 주둔했던 미군의 10대 아들 스티브 스콧(Steve Scott)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스콧은 1972년 필리핀 전역을 여행하면서 조용한 어촌인 발레르가 파도타기에 좋은 장소라는 걸 알게 됐다. 스콧의 말에 따르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제작 팀이 서핑과 결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고 있을 때 그들을 발레르로 안내한 것도 그였다고 한다. 훗날 찰리 포인트(Charlie’s Point)로 유명해지는 사방 비치(Sabang Beach)의 한 지점으로 말이다. 그리고 1984년 발레르로 돌아온 스콧이 그와 다른 사람들이 놔두고 간 서프보드를 그곳 아이들이 나눠 쓰는 것을 봄으로써, 필리핀 서핑 문화의 태동을 목격한 게 된 거라는 이야기다.

발레르 최초의 여성 서퍼인 이보크 ‘이나이(필리핀어로 어머니라는 뜻)’ 나모로(Yvok ‘Inay’ Namoro)는 열세 살 난 손녀 카슬레야 나모로 카살스(Cathleya Namoro Casals)를 가르치는 데 에너지를 쏟느라 이제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파도를 탄다. 이보크는 선배 서퍼로서 엄격하게 가르치며 필리핀 서핑 국가대표 팀과 함께 제자의 앞날을 닦아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1986년부터 서핑을 시작했어요. 스물두 살 때였죠. 그땐 이곳을 여행하던 외국인들이 경비가 떨어지면 갖고 있던 서프보드를 여기 사람들에게 팔곤 했어요.” 로살리 ‘타 네네’ 리투알(Rosalie ‘Ta Nene’ Ritual), 글라디스 빌라레알(Gladys Villareal), 이보크가 발레르에서 보기 드문 여성 서핑 선수들이었다. “그때 우리가 서핑하던 영상 같은 게 없어서 참 아쉬워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많은 여성이 서핑을 즐기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보크, 카슬레야, 리투알과 임산부인 마리 카벨(Marie Cable)이 필리핀 출신 사진가 아치 제오티나(Archie
Geotina)의 사진 연작 ‘진주(Pearls)’ 발레르 에디션의 주인공이다. ‘진주’는 2021년 제오티나가 제2의 고향 시아르가오(Siargao)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사진 연작 시리즈다. ‘진주’는 비키니나 후원사 유니폼이 아니라 여러 겹의 섬세한 전통 의상 필리피니아나를 입고 파도를 타는 여성 서퍼들의 저력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입고 있는 옷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유자재로 파도를 타며 구속을 자유로움으로 바꿔놓는 이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은 이들의 꺾이지 않는 정신과 그 안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생생히 전하며 시각적, 감정적으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진주’는 소셜 미디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현세대를 정의하는 문화적 순간으로 부상했다. 10여 년 전 제이크 베르소사(Jake Verzosa)의 <칼링가의 마지막 문신을 한 여인들(The Last Tattooed Women of Kalinga)>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필리핀 도상학 저서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아르가오 이후 멕시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등 다른 해안 지역으로 뻗어나가 각국의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서퍼들을 렌즈에 담아내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참여 요청이 왔어요. 최근에는 뉴질랜드에서도 연락이 왔죠. 마오리족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작을 만들어줬으면 하더라고요. 이제는 작업 자체로 생명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멋진 일이죠.” 제오티나가 감격에 겨운 듯 말했다.
‘진주’ 작업은 보통 제오티나가 생활상이나 육지 촬영을 감독 및 촬영하고, 현지 서핑 사진가가 서핑 장면 촬영을 담당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수중촬영은 안 해요. 배우고는 싶지만, 보통 일이 아니라서요.” 그가 솔직히 인정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현지 사진가를 고용하죠. ‘진주’는 늘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어요.” 발레르에서는 마리 카벨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서퍼 출신으로 현재 임신 중인 카벨은 이번 촬영에서 미래 세대를 대표해 모델과 사진가로 활약했다.
발레르 에디션은 바르셀로나 주재 필리핀 총영사관의 초청, 그리고 필리핀 통상산업부와 발레르 출신 소니 앙가라 의원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루어졌다. 발레르가 필리핀 서핑의 발상지(제오티나가 “그렇다는 설인 거죠”라고 덧붙였다)인 동시에 필리핀-스페인 우정의 날의 기원지인 만큼 이 협업은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해양 박물관에서 스페인계 필리핀인 및 필리핀 재외 동포를 대상으로 전시가 이어진 것이다.
다만 제오티나 자신이 다시 서핑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 전시 이후 <진주: 스리랑카(Pearls: Sri Lanka)> 작업을 위해 그곳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을 통해 전할 다양한 문화 또한 너무 많기에 부지런히 작업해야죠.”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Audrey Carpio
- 사진
- Jacob Maentz, Camille Robiou Du Pont, Archie Geotina
- 스타일리스트
- Shark Tanael
- 헤어
- Tish Mahtani
- 메이크업
- Janell Capuchino, Tish Maht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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