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님은 나야, 남자는 키링이 돼 ‘은밀한 감사’
<은밀한 감사>(tvN)는 유능한 직장 여성과 귀여운 연하남의 사내 연애를 그린다. 일과 사랑 모두에서 도미넌트 성향을 띠는 여성 캐릭터는 요즘 한국 드라마에 흔하다. 하지만 그들을 매개로 오피스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를 접목한 작품은 드물다. 로맨틱 코미디는 회사 생활의 디테일이 흐릿한 경우가 많고, 오피스 드라마는 사회 비판이나 윤리성을 위해 로맨스를 배제하는 경향이 짙다.

사내연애 묘사는 주인공들의 위계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남주인공이 ‘재벌2세 실장님’ 유형이면 오피스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깨지고, 상사/연장자면 남녀 관계에도 유교적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한국의 현실이 오버랩되어서 설렘이 덜할 수 있고, 남자가 아랫사람/연하남일 경우 유능한 여주인공의 부속물처럼 보여서 성적 긴장이 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은밀한 감사>가 보여주는 균형감은 흥미롭다.
주인공 주인아(신혜선)는 대기업 감사실장이다. ‘주인아에게 대들면 처참하게 망한다’는 뜻으로 ‘주지처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는 흰 셔츠와 검정 슬랙스를 교복처럼 입는다. ‘패션도 실력이야!’라며 오피스를 런웨이로 만드는 여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미 한국 드라마 팬들에게는 신선하고 믿음직하다. 신혜선 특유의 총기, 활력, 현실성, 집중력, 카리스마가 배역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야기는 남주인공 노기준(공명)의 시점을 따른다. 주인아 캐릭터의 입체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이다. 기준이 만만한 키링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캐릭터라는 점도 이 작품의 주목할 만한 개성이다. 기준은 감사실 에이스 소리를 듣고, 사내 정치에도 열심인 ‘야망캐’다. 그런데 주인아가 기준을 비인기 부서인 ‘PM(풍기문란)’ 팀으로 보내버린다. 복수심에 주인아를 제거하려고 사생활을 캐던 기준은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다.
주인아와 노기준의 초반 관계는 직장 여성들에게 공감, 대리만족,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여성 관리자들은 남성 부하가 자신의 권위를 시험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내가 남자 상사였어도 이랬을까?’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 속 노기준도 자주 주인아에게 덤빈다. 하지만 주인아는 동요하지 않거나, 동요했더라도 내색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업무와 개인 특성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도직입, 단순명쾌한 화법으로 사태를 진압한다. 감정적 도전은 농담거리로 승화시키거나 가끔 휘말려주는 척도 하면서 관계에 탄성을 부여한다.
물론 현실에서 주인아처럼 주사 부리는 직원의 입에 노래방 마이크를 쑤셔넣거나, 자기 직원 지키겠다고 딴 부서 팀장의 머리채를 잡거나, 직원들의 사생활을 사찰했다가는 일자리도 잃고 범법자가 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안정적인 연출과 실감나는 연기 덕에 이 같은 과장마저 웃음으로 승화된다.


오피스 드라마로서의 매력, 멋진 캐릭터, 재치있는 연출이 중반 이후 로맨스 국면에서도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노기준이 주인아의 약한 모습을 자꾸 발견하게 되는 것이 로맨스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여주인공 캐릭터의 일관성에는 방해가 될까 불안하다. 똑똑한 여자가 사랑에 빠져서 사회성과 업무 능력이 퇴행해버리는 모습은 한국 드라마에서 충분히 봤다. 희망은 여은호 작가의 전작이 <일타 스캔들>이라는 점이다. 일, 가정, 연애 묘사가 모두 충실했던 작품이다.
<은밀한 감사>의 한 장면, 부회장(김재욱)이 아끼는 임원을 쳐낸 주인아는 그에게 멱살이라도 잡힌 듯 셔츠 단추가 떨어친 채 부회장실을 나선다. 이를 본 노기준이 더블클립으로 인아의 앞섶을 닫아준다. 사무실에 흔히 굴러다니는 소품을 로맨스 도구로 치환하는 이 장면이 작품의 지향점을 상징하는 듯하다. 섹시한 오피스 롬콤의 탄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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