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가 ‘차린’ 뉴욕 집

2026.06.12

푸드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가 ‘차린’ 뉴욕 집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설치미술가이자 푸드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 그녀와의 대화는 주로 “일단 맛보세요”로 시작한다.

미우미우(Miu Miu) 코트에 프라다(Prada) 펌프스 힐을 신은 채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라일라. 아들 파즈와 커다란 바게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맨해튼에 자리 잡은 푸드 아티스트 라일라 고하(Laila Gohar)와 셰프 이그나시오 마토스(Ignacio Mattos)의 집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낮이든 밤이든, 친구들이 아이들과 함께 예고도 없이 찾아와 따뜻한 수프나 샴페인을 즐기고 그날의 요리를 맛보곤 한다. “요리야말로 강력한 친절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설치미술가이기도 한 라일라 고하가 말했다. 그녀는 여동생 나디아(Nadia)와 함께 ‘고하 월드(Gohar World)’라는 초현실주의 제품 라인을 공동 창립했다. “요리는 냄새, 예절과 의식, 테이블 세팅, 약간의 어수선함, 접시 부딪치는 소리 등 다양한 감각이 어우러져 완성된답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죠.”

이 부부의 냉장고는 늘 신선한 식재료와 음식으로 가득 차 있다.

2022년 라일라가 임신했을 때, 부부는 고급 주택가인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살았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하자 다시 로어 맨해튼으로 이사했다. 예비 엄마 라일라는 친구들과 자신의 작업실에 더 가까이 있고 싶었고, 예비 아빠 이그나시오 역시 자신의 레스토랑 에스텔라(Estela), 알트로 파라디소(Altro Paradiso)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이 트라이베카 지역에 로프트 매물이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그 건물에는 이미 여러 예술가들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집을 계약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로프트에서 살고 싶었어요.” 이그나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금방 지저분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로프트에서만 느껴지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거든요.”

부부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이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 식사하거나 윌리 리조(Willy Rizzo)의 스테인리스 스틸 커피 테이블 주변 소파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 테이블에는 아이스 버킷이 늘 올려져 있다. 주인 부부는 오픈형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직접 내놓는다. 현재 세 살배기 아들 파즈(Paz)는 가끔 미니 전동 지프차를 탄 채 집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창의적으로 유행을 선도하던 시절, 트라이베카에서 열린 편안한 분위기의 파티 현장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우리에게 이 집은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셰프 이그나시오가 설명했다.

파즈가 토마호크 소금을 뿌리고 있는 스테이크 오른쪽으로 보이는 빈티지 지노리 1735(Ginori 1735) 찻잔과 고하 월드의 자개 스푼 ‘스완(Swan)’.

“때로는 작은 우연이 모여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죠.” 라일라 고하는 아무것도 없던 밑바닥부터 시작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다. 이집트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대학 시절 마이애미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2013년 ‘선데이 서퍼(Sunday Supper)’라는 이름으로 케이터링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그 후 음식이란 재료를 입체적인 퍼포먼스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를테면 천장에 빵을 매달거나, 나무망치로 부수어 먹는 초콜릿 흉상을 제작하면서 글로벌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 모든 성공은 그녀의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의 식용 설치 예술은 순식간에 입소문이 나며 크게 이슈가 되었다. 2019년 샹젤리제 거리에 갤러리 라파예트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거대한 라즈베리 타르트와 랑구스틴(Langoustine) 탑, 크레인을 이용해 창문에서 매장 안으로 옮겨놓은 초대형 모르타델라(Mortadella) 햄을 오프닝 파티에 선보였다.

지난해에 소더비에서 대규모로 열린 초현실주의 작품 경매를 기념하기 위해 에드 루샤(Ed Ruscha)의 설치 작품 ‘초콜릿 룸(Chocolate Room)’을 먹을 수 있는 버전으로 재해석했으며, 사과와 장미 모양의 인상적인 케이크 두 점도 제작했다. 2022년 에르메스 디너 파티에서는 무, 당근, 감자를 조합해 만든 채소 조각품으로 마사 스튜어트를 비롯한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로에베(Loewe) 캔들을 켜놓고 요제프 호프만이 디자인한 와인 잔을 든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라일라. 그녀는 이 명상의 시간을 사랑한다.

거액의 예산이 필요한 행사에서만 그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아테네의 전시 공간 ‘아치(Arch)’에서 라일라 고하는 3일 동안 콩 스튜를 만들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손님, 어떤 상황이든 그녀의 예술을 향한 신념은 늘 변함없다.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일단 맛보세요.” 이 간단한 말이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하게 하거나, 적어도 같은 공간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그녀는 확신한다.

어쩌면 이 예술가는 타고난 접대 실력을 부모에게 재능으로 물려받았는지도 모른다. 저명한 이집트 언론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기자, 작가, 정치인, 외국인 거주자 등 다양한 지식인을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 자주 초대했다. “그 시절 집은 저에게 삶의 심장 역할을 하던 곳이었어요.” 비록 정치적인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주최하는 예술적 모임은 유명하다. 오랫동안 동경한 예술가나 미래의 잠재적인 창작 파트너를 우연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모든 행사가 중단된 시기에도 라일라 고하는 전 세계 팬들에게 전통 요리 레시피를 공개하며 영감을 주었다. 병아리콩을 삶은 다음 손으로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과정이 포함된 콩 요리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애써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쉬운 길을 택하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그녀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짜릿한 흥분과 완성도, 아름다움,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남편이 출장 간 사이, 그녀는 약 30명을 집으로 초대해 즉흥적으로 친구 생일 파티를 열었다. 집에 많은 손님을 부를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닭 네 마리를 즉석에서 구워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저녁 식사 때 모두 한자리에 앉아 있는 풍경이 좋아요. 일종의 경건한 의식 같아요. 좋은 음식을 꼭 특별한 날에만 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 로프트에서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긴 의자 ‘셰즈 롱그(Chaise Longue)’ 옆에 파즈의 장난감이 놓여 있고, 이국적인 돌이 고풍스러운 천 조각을 둘러싸고 있다. “물건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꾸레주(Courrèges)의 비닐 소재 미니 드레스를 입고 닭 요리를 준비하던 라일라 고하가 말했다. “물건이 지나치게 고귀하게만 느껴진다면 너무 불편하죠.” 이런 생각은 그녀의 브랜드 고하 월드 탄생의 동력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담긴 제품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유쾌하고 아이러니한 감성을 느끼길 바란다.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이탈리아식 디저트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양초이며,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새 모양 제품은 레몬 스퀴저다. 또 리본 달린 고급 새틴 가방은 바게트 담는 주머니다.

셰프인 남편 이그나시오 마토스, 아들 파즈와 함께한 라일라 고하. 로에베(Loewe) 의상을 입고 윌리 리조의 커피 테이블 위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긴 의자 ‘셰즈 롱그’, 이사무 노구치의 빈티지 램프, 라파엘 프리에토(Rafael Prieto)와 크리티카 만찬다(Kritika Manchanda)가 디자인한 커튼이 어우러져 있다.

아이들은 그녀의 집을 더 생기 넘치는 행복한 집으로 만들었다. 파즈가 갓난아이였을 때 이 커플은 집을 안전하게 꾸미려고 애썼다. “모서리에 보호대를 붙였더니 아이가 바로 뜯어서 바닥에 던져버리더군요. 완전히 실패한 시도였죠.” 결국 이 커플은 집을 아이의 안전에 맞추기보다는 아이가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며 물건과 공존하도록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는 물건도 생겼다. 예를 들면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조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친구 잉고 마우러(Ingo Maurer)가 선물한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의 램프 같은 것이다. “하루는 방에 들어갔더니 파즈가 램프에 있던 종이를 떼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고 있는 거예요.” 라일라가 웃으며 말했다. 음식으로 퀼팅 이불을 만들고 버터로 조각품을 만드는 푸드 아티스트의 아들인데, 그리 놀랄 일일까? 램프라고 해서 먹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VL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더보기
    피처 디렉터
    김나랑
    Hannah Martin
    사진
    Roe Ethridge
    메이크업
    Mariko Arai(@Tracey Mattingl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