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특급, 최소라의 패션 익스프레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 모델 최소라.
새로운 코리안 특급을 예고하는 그녀가 들려주는 지난 6개월간의 패션 익스프레스!

파리 컬렉션을 마치고 잠시 서울로 돌아온 최소라. 그녀가 입은 미니 드레스와 구두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리조트 컬렉션.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이 냉랭한 한마디가 뉴욕의 첫인상이었다. 지난 9월 1일 뉴욕 패션 위크에 도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JFK 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서 내린 후 이동한 곳은 뉴저지 뉴포트에 있는 한 아파트. 전 세계에서 수많은 모델들이 몰려드는 그 아파트에 들어서자 뉴욕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배정된 방에 활기차게 들어섰지만, 푸른 눈의 룸메이트는 나를 한번 슬쩍 흘겨보곤 자신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안녕”이라고 소심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어색한 침묵뿐. 치아가 떨릴 만큼 차디찬 에어컨 공기에 몸을 떨다가 겨우 용기를 냈다. “에어컨을 살짝 줄이면 안 될까?” 커다란 눈을 깜박이던 그녀의 대답은 에어컨 공기보다 더 차가웠다. “미안하지만 안되겠어, 난 아직 너무 덥거든.” 제대로 반박도 하지 못한 나는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의 온기에 기댄 채 잠들 수밖에 없었다.

싸늘한 뉴욕에서의 첫날밤을 추억하자면, 우선 지난 5월부터 시작해야 한다. “소라, 파리에 갈 준비해!” 파리의 어느 모델 에이전트가 우연히 내 사진을 봤고, 일단 파리에 오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정식으로 그곳과 계약하게 될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었다. 그렇다고 잃을 것도 없었다. 패션 수도 파리에서 나를 불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혈관 속엔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기 시작했으니까. 나흘 만에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파리 도착. 현지 에이전트는 내게 한 가지 지령을 내렸다. “루이 비통 캐스팅에 가봐!”





퐁네프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루이 비통 본사에 들어선 건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캐스팅 디렉터인 미셸이 나를 맞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하던 그녀가 어찌나 무섭던지! 불편한 의자에 앉아 1시간 30분을 넘게 내 이름 ‘소라’가 불리길 하염없이 기다렸다. 뭐, 몇 시간쯤이야 얼마든 기다릴 수 있었다. 해외에 먼저 진출했던 선배 모델들도 “기다리는 건 모델 일의 일부!”라고 조언하곤 했으니까.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긴 테이블 앞에 심사위원들처럼 보이는 벽안의 얼굴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고, 그 앞에서 워킹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 순간 <도전 슈퍼모델>을 다시 찍는 기분! 최대한 자연스럽게 워킹을 끝내자 “Good!”이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나를 두고 모종의 회의가 벌어진 뒤 미셸이 이제 가봐도 좋다고 말했다. ‘이게 끝?’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럽진 않았다. 파리에 오자마자 루이 비통 본사에서 워킹하는 모델이 몇이나 되겠나. 하지만 잠시 후 내 운명이 바뀌었다. 짐을 챙겨 떠나려는 순간 다시 내 이름이 호명된 것이다. “소라, 들어와서 옷 입어볼래?”

내가 입은 옷은 심플한 블랙 가죽 드레스였다. 다시 한번 ‘심사위원들’ 앞에서 워킹을 마치자 자그마한 체구에 반짝이는 눈빛을 지닌 잘생긴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와 박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베리 나이스!” 그가 루이 비통 여성복 디렉터이자 패션 슈퍼스타인 니콜라 제스키에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런 뒤 이어진 빠른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어 살짝 당황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나타난 한국인 디자이너가 이렇게 귀띔해줬다. “워킹이 여성스러워요. 남성적이고 당당하며 빠르게 걸어보세요.” 결국 5월 17일 모나코에서 열린 루이 비통 리조트 컬렉션쇼에 설 수 있었다.





그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한국 생활보다 파리와 뉴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러시아판 <누메로> 같은 해외 패션지도 촬영하게 됐다. 이젠 본격적으로 패션 위크에 도전할 차례. 그렇게 해서 맞이하게 된 것이 뉴포트에서의 춥디 추운 밤이다. 하지만 냉랭한 룸메이트 때문에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었다. 하루에 열 개 이상 캐스팅에 가야 했어도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맨해튼을 잘도 쏘다녔다. 행운이 따랐는지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뉴욕 패션 위크 초반의 리처드 채, 피터 솜 등의 쇼에 차례로 서게 된 것. 가장 흥분되는 건 역시 알렉산더 왕 쇼였다. 엄숙한 캐스팅 현장에선 누구도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아 풀이 죽어 캐스팅 현장을 떠났지만, 쇼 사흘 전 현지 부커의 다급한 메시지가 스마트폰을 통해 쩌렁쩌렁 울렸다. “소라, 오늘 밤 11시에 다시 한번 알렉산더 왕으로 가봐!” 수많은 모델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모두 쇼에 서는 건 아니다. 워킹을 마치자 ‘뭔가 긍정적인 사인’인 옷을 입어보라는 주문이 들렸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인연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자니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줄이야! 결국 쇼 바로 전날 피팅에 오라는 메시지가 도착했고, 난 생전 처음 소녀처럼 웃는 알렉산더 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알렉산더 왕 쇼 덕분일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필립 림, 이든, MBMJ,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등등. 특히 안나 수이는 캐스팅 때 나를 보자마자 “Good!”이라고 외치며 선택했고, 까다롭다고 소문난 프로엔자 스쿨러 역시 단번에 오케이했다. 가장 기뻤던 건 캘빈 클라인. 동양인 모델을 잘 세우지 않는 쇼였기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다섯 번째 캐스팅을 거친 후 결국 피팅으로 이어졌다. 옷을 입고 나오자 프란시스코 코스타가 내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잘 알아듣지 못해 피식 웃고 말았는데(미소는 만국 공통어 아닌가!), 그는 내가 못 알아들었다고 여겼는지 계속 같은 말을 천천히 반복했다. 결국 다섯 번째 가서야(그것도 그가 큰 소리로 말한 뒤에야, 더 솔직히 말하면 캘빈 클라인 팀에 근무하는 한국인 디자이너의 통역 덕분에)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You are gorgeous!” 전 세계 패션 하우스에서 일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박수를!





뉴욕 패션 위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크 제이콥스 쇼에도 섰다. 하지만 빅 쇼에 서는 행운까지 거머쥐었지만 그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런던 패션 위크에 서기 위해선 영국에서 일할 수 있는 워킹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뉴욕 패션 위크가 끝날 때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뉴욕 에이전시와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런던을 포기하고 곧장 밀라노로 향하기로 한 것. 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나를 꼭 쇼에 세우고 싶어 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국 대사관에 맡긴 여권을 찾아 오는 것만 해도 며칠이 걸릴지 몰랐으니까. 결국 우려했던 대로 밀라노 패션 위크의 시작을 통째로 놓쳤다. 구찌에선 내게 두 벌을 약속했고, 프라다 쇼에도 옵션이 걸려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밀라노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달려간 곳은 펜디 쇼장. 쇼 시작하기 몇 시간 전에 캐스팅, 피팅, 컨펌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무서울 것 같았던 칼 라거펠트는 상냥했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스태프들에게 지시를 내릴 땐 카리스마로 가득했지만, 모델들에겐 더없이 다정한 할아버지 같았다. 이번에도 펜디에서 일하는 한국인 디자이너가 내게 귀띔해줬다. “무슈 라거펠트가 소라 씨가 마음에 쏙 드나 봐요. 쇼장에서 캐스팅, 피팅, 결정까지 끝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죠!” 패션 황제의 축복 덕분인지 밀라노도 기대 이상이었다. 금발 모델들 사이에서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기분까지 들었던 베르사체,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세컨드 라인인 지암바, 상쾌하게 아침을 연 보테가 베네타, 섹시한 기분을 마구 들게 했던 로베르토 카발리 등등. 참, 쇼와 쇼 사이에 열린 캘빈 클라인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여했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프란시스코 코스타의 인사말은? 물론 “You are gorgeous!”





정신없이 밀라노 패션 위크가 끝나자 갑자기 여유가 찾아왔다. 지난 리조트 컬렉션 이후 루이 비통에서 내게 ‘익스클루시브 옵션’을 걸어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파리 패션 위크에선 오직 루이 비통 쇼에만 설 수 있도록 미리 계약한 것. 사실 ‘익스클루시브’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건 제스키에르가 너를 딴 쇼에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좋은 거라구!”란 부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다. 밀라노에서 하루 더 머문 뒤 파리로 건너온 나는 관광객처럼 도시를 구경하며 여유를 부렸다. 파리의 여러 쇼에 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를 원하는 디자이너는 패션 천재 니콜라 제스키에르! 그를 위해선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물론, 다른 쇼들을 얼마든 포기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다시 한번 루이 비통 본사로 향했다. 당당하게 니콜라와 비주를 나눈 뒤 그의 새로운 드레스를 입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눈치였다. 사진가 유르겐 텔러가 룩북을 찍기 위해 나를 데리러 왔다.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마리 아멜리 소베가 옥상으로 나가자고 말해 우리는 밖으로 나가 간단히 촬영을 마쳤다. 그런 뒤 바로 니콜라가 유르겐 텔러가 찍은 내 사진 한 컷을 루이 비통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비로소 ‘비통 걸’로 인정받은 것이다.

파리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 아침. 블로뉴 숲에 있는 ‘LVMH 파운데이션’ 건물로 향했다. 전날 밤 7시에 리허설 할 때는 몰랐던 건물의 아름다움이 파란 하늘과 함께 눈에 들어오면서 가슴이 뛰었다. 부천의 평범한 여고생이던 내가 친구 손을 붙잡고 모델 에이전시를 찾은 게 4년 전. 지방대 패션학과 졸업 작품전을 통해 첫 캣워크에 오르며 가슴 뭉클해했던 소녀가 이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루이 비통 쇼, 그것도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서게 되다니!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분주한 백스테이지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순식간에 쇼는 끝났고, 니콜라와 스태프들이 아쉬운 듯 비주를 나눴다. 파리 시내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부커가 내게 물었다. “Are you happy?” 나는 두말할 것 없이 외쳤다. “Of course, I’m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