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쇼 타임

<셜록>의 스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지금 누구보다 바쁜 남자다.
드라마, 영화, 무대 등 장르를 가릴 것 없이 거침없이 활약한다.
30대 중반 이후에야 빛을 본 늦깎이 스타. 하지만 지금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는 믿음직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화려한 쇼는 계속된다.

가죽 재킷은 벨스타프(Belstaff), 안에 입은 티셔츠는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Calvin Klein Underwear), 청바지는 러브 모스키노(Love Moschino), 모자는 아네스베(Agnès B).

가죽 재킷은 벨스타프(Belstaff), 안에 입은 티셔츠는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Calvin Klein Underwear), 청바지는 러브 모스키노(Love Moschino), 모자는 아네스베(Agnès B).

“저는 제 일을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특유의 울림 깊은 바리톤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세트와 스태프, 극장,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을 사랑해요.” 쌀쌀하고 흐리던 런던의 어느 오후. 이 38세 남자 배우는 한 줄기 햇빛과도 같았다. 이날은 그가 리처드 3세 역으로 출연 중인 BBC 셰익스피어 시리즈 <텅 빈 왕관(The Hollow Crown)>의 촬영이 없는, 몇 안 되는 한가로운 날이었다. “나무를 보고 나무에서 나는 연기 냄새를 맡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는 이미 햄스테드 히스(Hampstead Heath)에서 아침 조깅을 마치고 앉아 있었다. 회색 니트와 와인색 진 차림으로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며 블러디메리 칵테일을 곁들였다. 컴버배치는 콜레스테롤을 주의하고 있다 말하면서도 소금과 후추를 친 돼지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스스로에게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주어도 좋을 만큼 잘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야말로 ‘컴버배치 모먼트’라 불러도 좋을 시대다. 컴버배치의 새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컴버배치 자신도 최우수 연기상의 가장 확실한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사람들에게 잊힌 비운의 선지자 앨런 튜링을 연기했다.

정말 요즘은 모두가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원하는 분위기다. 그가 조니 뎁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범죄물 <블랙 매스(Black Mass)>는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대표작 중 하나가 된 드라마 <셜록> 시리즈는 2015년 새 시즌 촬영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컴버배치는 올여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햄릿> 공연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 공연은 예매 시작 후 수분 만에 10만 장의 표가 모두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컴버배치는 <셜록>의 엄청난 성공 이후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는 새로운 차원의 섹시 아이콘, 그러니까 세계에서 뇌가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토론토와 런던에서 열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프리미어 상영 행사에서 수백 명의 소녀들은 컴버배치가 등장하자 환호성을 질러댔다. 컴버배치의 친구이자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컴버배치와 호흡을 맞춘 키이라 나이틀리는 “올랜도 블룸 이후 여성 팬들의 이런 열광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흥분할지 예상도 못했죠. 대단해요.” <이미테이션 게임>은 모두가 이상하고 오만하다고 여기는 사회 괴짜 튜링이라는 인물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튜링은 동시에 엄청난 천재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군부대의 모든 전시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애‘ 니그마 코드’를 풀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튜링은 뛰어난 수학자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세계적 수준의 암호 분석 팀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우린 <어벤져스> 같은 팀이죠.” 컴버배치가 농담조로 말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이 영화에서 지성과 인간미를 두루 갖춘 조안 클라크를 연기했는데, 둘은 이미 조 라이트의 영화 <어톤먼트>를 찍으며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둘은 농장에서 함께 지내며 요리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고,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고는 친구가 됐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둘의 조합은 놀랄 만하다. “우리가 실제로 친구이기 때문에 좋았어요.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덕분에 함께 촬영하는 일이 매우 즐거웠어요.” 컴버배치가 말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가장 전율을 느끼는 지점은 고독하고 품위 있는 남자 튜링의 가슴 아픈 운명이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튜링이 전쟁 당시 세운 업적은 일급 기밀로 분류되기에 그는 대중적으로 알려질 수 없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동성애가 불법이던 당시, 자신이 게이임을 서슴지 않고 밝히며 행동한 튜링은 경찰의 괴롭힘을 받는 주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튜링은 지금도 게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저는 그를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앨런 튜링은 다윈이나 뉴턴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지폐 뒷면에 실릴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역사, 혹은 과학 교과서에 마땅히 포함돼야 해요.” 컴버배치가 말했다. 지적인 괴짜들, 가령 셜록, 스티븐 호킹, 그리고 줄리안 어샌지 등을 연기하는 데 있어 컴버배치만 한 마스크를 가진 배우는 흔치 않다. 그의 부드럽고 넓은 이마와 불안정해 보이는 입과 턱은 이런 괴짜들의 휴머니티를 드러내기에 아주 좋다. “저는 베네딕트가 더 대단한 배우가 되기 전에 캐스팅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제작한 모튼 틸덤이 말했다. “우리는 적합한 배우를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였어요. 베네딕트가 앨런 튜링이란 인물의 핵심인 여리고 오만한 면모를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컴버배치는 커리어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꽤 괜찮은 배우다. 그는 결코 오만하거나 연약하지 않다. 스크린보단 실물이 어려 보이는 컴버배치는 사랑스러운 소년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는 열정에 들떠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뱉어내곤 한다. 내가 녹음기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녹음테이프를 되감아 재생하자 그는 “오, 제 말이 너무 빠르죠?”라고 물었다. 그와의 대화는 어떤 소용돌이에 휩싸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는 영화 <블랙 매스>에서 조니 뎁과 함께 출연하는 ‘축복’에 대해 얘기할 때 마치 운석에라도 맞은 듯 놀라움과 기쁨을 드러냈다. “우리는 함께 둘러앉아 잎담배를 말아 피우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제 친구예요. 생각만 해도 놀라운 일이죠.” 근래 그의 높아진 주가 때문에 컴버배치가 이미 10여 년 전 성공적인 배우였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그는 2001년 첫 연극 무대를 통해 다수의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셜록>이 히트치기 전에는 BBC에서 스티븐 호킹 역으로 열연했고, 영화 <워 호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노예 12년>과 같은 대작에 주요 역할로 이름을 올린 적도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차기 톱스타감이라고 말했죠.” <셜록>의 공동 제작자인 스티븐 모팻이 회상하듯 말했다. “그리고 제 생각에 베네딕트는 그런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데 다소 조급했던 것 같아요.” 2010년 드디어 컴버배치의 순간이 왔다. 드라마 <셜록>에서의 그는 배우와 배역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줬다. 세상 권력을 조롱하며 옳은 길에 대한 사람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인물. 컴버배치는 그런 매력의 영웅이 되었다. “BBC 역시 베네딕트 캐스팅에 만족했습니다만 100%는 아닙니다.” 모팻이 말했다. “그들은 ‘컴버배치가 충분히 섹시한가요? 당신은 우리에게 섹시한 셜록 홈즈를 보여준다고 약속했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엔 누구도, 심지어 베네딕트 자신도 스스로가 섹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가 웃었다. “중국에서도 섹스 심벌로 자리 잡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모팻의 이 말은 농담이 아니다. 내가 최근 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중국의 몇몇 사람들은 셜록을 ‘컬리 푸(Curly Fu, 곱슬머리 셜록)’라 부르며 내게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나본 적이 있냐고 끊임없이 물어댔다. 마치 60년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믹 재거에 대해 물어보는 것과 같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이런 열광적인 반응을 즐기며, 이따금씩 어수룩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팬들이 자신을 닮은 동물인 수달 사진 위에 사인을 해달라 요청하면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 멋진 숲 속 양서 동물에게 큰 실례가 될 텐데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들이 “내 여자 친구가 너에게 완전히 푹 빠졌어”라고 말하면 “이거 미안하게 됐군”이라 응수한다. 그가 환희에 찬 어조로 말하며 웃었다.

컴버배치의 몇몇 팬들은 그의 인기가 <셜록>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대단해져 그가 드라마를 그만두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매우 똑똑해서 그에게 행운과 같은 드라마를 발로 차버릴 생각이 없다. “만약 우리 쇼가 퀄리티를 계속 높일 수만 있다면 제가 셜록을 연기하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저는 늙은 셜록도 기꺼이 연기하고 싶거든요.” 한편 그는 모든 종류의 배역을 맡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영화 <블랙 매스>에서 매사추세츠의 정치 인사 빌리 벌저(Billy Bulger)를 연기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컴버배치는 이 영화에서 악명 높은 보스턴 범죄 조직의 보스 화이티 벌저(조니 뎁)의 동생 역을 맡았다. “빌리는 보스턴 토박이인데 보스턴 억양이 정말 어려워요.” 자신의 배역에 대해 컴버배치가 설명했다.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제겐 무척 낯선 것들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건 제게 매우 큰 도전이었죠.” 요즘 그가 출연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 BBC 시리즈 <텅 빈 왕관: 장미 전쟁>은 어엿한 전투 신이 펼쳐지는 대작이다. 이 드라마는 도미닉 쿡이 연출을 맡았는데, 그는 7년 전 로열 코트 무대에 <코뿔소>를 올리면서 베네딕트를 이미 한 번 캐스팅한 바 있다. “베네딕트는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배우입니다.” 쿡이 말했다. “저는 그가 출연한 두 작품을 연이어 보러 간 적이 있어요. 하나는 테렌스 래티건의 연극 <춤이 끝난 후(After the Dance)>였고, 다른 하나는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었습니다. <춤이 끝난 후>에서는 겉으론 뻣뻣하지만 이면엔 감정이 넘치는 영국적인 남자를 연기했고,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전라로 모던 댄스를 췄죠. 저는 컴버배치를 제외하고 어느 배우가 이런 역할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두 캐릭터는 그냥 다른 정도가 아니거든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연기 퍼포먼스였습니다.”

 

<리처드 3세>를 포함, 셰익스피어의 희곡 세 편을 합쳐놓은 듯한 <텅 빈 왕관: 장미 전쟁>에서 컴버배치는 악랄한 곱사등이를 연기한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말을 다오, 말을 다오, 내 왕국을 줄 테니 말을 다오”와 같은 필사적인 외침으로 살의를 공공연히 드러낼 정도로 악인이다. 그런데 컴버배치는 “이 역할은 진짜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연기하는 햄릿은 비극 속에 생기 넘치는 활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당신이 이 인물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가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가엾은 사내라서, 혹은 너무 많은 걸 떠벌리고 다니는 얼간이라서가 아니에요. 그는 재기 발랄함과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당신을 끌어들이죠. 햄릿은 위트가 넘치는 인물이에요. 의심할 여지없이 제가 봐온 햄릿 중 최고죠.” 그리고 그의 이런 유머에 대한 사랑은 컴버배치가 최근 아방가르드 연출로 유명한 옥스퍼드 출신 연극 연출가 소피 헌터에 빠져든 사실과도 관련이 깊다. 둘은 몇 달 전부터 교제를 시작했고, 둘이 프랑스 오픈 경기, 에든버러의 로열 보타닉 가든 등에서 데이트를 하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파파라치예요.” 컴버배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소피 헌터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정말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이 관계에 대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 또 행복해요.” 그의 수줍은 미소로 짐작하건대 이건 진심이었다.

“컴버배치는 지금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누군가가 늘 원해오던 일을 이루고 그걸 정말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참 멋진 일이죠.” 키이라 나이틀리가 애정 어린 어투로 말했다. 게다가 컴버배치는 자신의 성공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대 중반까지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던 조지 클루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컴버배치는 다소 뒤늦게 도약했다. 그리고 그는 아카데미상 유력 후보라는 예측에 즐거워하지만 그 명성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인터넷이나 10대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 그리고 유행의 흐름이 때때로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제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다른 것들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내가 그에게 어떤 배우의 커리어를 닮아가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끝까지 간’ 배우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여러 단계를 밟아 올라가며 수십 년에 걸쳐 작업을 계속하는 배우들, 그래서 그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마이클 갬본, 이안 맥켈런, 그리고 빌 나이와 같은 배우들 말이다. “사람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는 건 엄청난 일이에요. 하지만 그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죠. 하지만 저는 제 일을 영원히, 계속해나가고 싶어요.” 그가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적어도 앞으로 40년 동안만이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