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퀴트리 실험실의 개척자, 임기학

요리사들의 신성한 주방에 호기심 가득한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나타났다.
요리 실력은 기본, 맛깔스러운 입담과 개성적인 스타일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스타 셰프 임기학의 음식 너머의 이야기들.

시스루 러플 장식 검정 크롭트 톱과 주름 장식 치마, 체크 패턴의 벨트, 에나멜 소재 스트랩 샌들은 모두 미우미우(Miu Miu), 플라워 모티브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소재 네크리스는 파나쉬(Panache).

시스루 러플 장식 검정 크롭트 톱과 주름 장식 치마, 체크 패턴의 벨트, 에나멜 소재 스트랩 샌들은 모두 미우미우(Miu Miu), 플라워 모티브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소재 네크리스는 파나쉬(Panache).

임기학(Lim Ki Hak)

임기학은 요즘 두 집 살림 중이다. 믿고 가는 청담동 프렌치 레스토랑 ‘레스쁘아’의 오너 셰프인 그는 최근 인근에 ‘꺄브 뒤 꼬숑’이라는 낯선 이름의 샤르퀴트리(Charcuterie) 전문 와인 바를 차렸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샤르퀴트리는 고기를 절이고 말려 훈제한 프랑스 전통 육가공품을 통칭한다. 큼직한 이베리코 하몽이 놓인 이곳 바 테이블과 주렁주렁 걸린 소시송, 초리조 소시지, 매콤한 돼지고기 소프레사타 살라미를 보면 한눈에 정체를 알 수 있다. “세라노 하몽을 제외하면 다 제가 연습 삼아 만들어본 것들이에요. 전부 돼지고기죠.” 진열장엔 이 짭조름한 수제 안주에 어울리는 와인과 프랑스 전통주, 아르마냑과 코냑이 담긴 술병들도 가득하다.

보다 친근하게 샤르퀴트리를 소개할 방법을 찾다가 와인 바를 떠올렸다는 그는 다른 곳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프랑스식 증류주들까지 들여왔다. “이건 샤르퀴트리의 여러 범주 중에 하나인 ‘파테’와 ‘테린’이에요. 주로 무쇠 틀에 고기를 염장해 여러 가지 향신료와 부재료를 섞은 다음 통째로 눌러서 같이 굽거나 익힌 고기들이죠. 이걸 다시 틀에다 채워 모양을 만든 거예요.” 푸줏간 주인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주방에서 나온 임기학은 치즈처럼 썬 고기들을 돼지 모양의 귀여운 나무판에 담아 내왔다. 물론 이 진귀한 음식은 모두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임기학이 샤르퀴트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벌써 수년 전이다. 원래 성악을 전공했던 그는 ‘식도원’으로 일본 외식업계에 한 획을 그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요리 유학을 떠났다. 존슨앤웨일스 졸업 후, 뉴욕의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 ‘다니엘’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에 들어온 후에도 그는 줄곧 전통 프랑스 요리만을 고집해왔다. 샤르퀴트리는 그 요리의 한 부분이다.
“예들 들어 카술레라는 음식을 한다고 치면 거기엔 꼭 툴루즈 지방 소시지가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툴루즈식 소시지는커녕 어지간한 품질의 소시지도 구할 수가 없었죠.”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에 대한 아쉬움을 느낀 그는 독학으로 샤르퀴트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간의 지식을 체계화하기 위해 맨해튼의 프렌치 요리학원 FCI를 찾았다. 마침 레스토랑 다니엘도 규모가 커지면서 별도의 샤르퀴트리 키친를 만든 터였다.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던 셰프들로부터 실습 허락을 받은 그는 그곳에 출근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동안 혼자 고민하던 몇 가지 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되자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샤르퀴트리를 만들게 된 거예요. 레스쁘아는 아무래도 설비가 부족했어요.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죠.”

‘꺄브 뒤 꼬숑’은 불어로 동굴, 혹은 와인 파는 곳을 두루 의미하는 ‘카브(Cave)’와 돼지고기를 뜻하는 ‘코숑(Cochon)’을 합쳐 탄생했다. 오리와 양, 토끼 고기를 이용하기도 하나 사실 샤르퀴트리의 90%는 돼지고기다. 그중에서도 흙돼지다. 임기학은 지리산의 순종 버크셔 농가와 계약을 맺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늑한 동굴 같다. 둘러보면 어느 것 하나 멋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다. 심지어 한쪽 벽에 줄줄이 걸린 새빨간 고추까지도! “바스크의 특산물인 ‘피멍 데스플레트(에스플레트 지방의 고추)’예요. 바스크는 프랑스와는 또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어요. 우리 입맛과도 비슷하죠. 우리나라 시골에서 고추를 널듯 이쪽 지방에선 건물 벽과 지붕에 고추를 말려요. 특히 엮는 방식이 특이하죠.” 물론 이 고추 역시 샤르퀴트리에 쓰이는 재료다.

레스쁘아의 저녁 마감이 끝난 늦은 밤이면 임기학은 다시 이곳을 찾아 흰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샤르퀴트리를 만든다. ‘꺄브 뒤 꼬숑’은 이 고집스러운 요리사의 맛있는 실험실인 셈이다. 그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샤르퀴트리에는 요리와는 또 다른 테크닉들이 있어요. 그런 걸 다른 고기 조리법에도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죠. 일단은 샤르퀴트리를 요하는 요리들을 제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만들어볼 수 있는 게 좋고요. 어쨌든 전 샤르퀴티에이기 이전에 요리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