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숍 탐방

몰래 하는 섹스는 그저 음탕해질 뿐이다. 이제 성도 찾아가며 공부하고 즐긴다. 서울 곳곳에 생긴 당당하고, 밝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섹스 숍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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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합정역 가까이 문을 연 ‘플레져랩(Pleasure Lab)’은 트렌디한 간판과 인테리어만 눈여겨본 뒤 신상 카페쯤으로 여기고 성큼 들어섰다가는 당황할 수 있는 곳이다. 밝고 쾌적한 데다 재즈 선율이 촉촉하게 흐르는 이곳은 카페 라테가 아닌 섹스 토이를 판매하는 소위 성인용품점이기 때문이다. 한가롭게 진열된 상품이 놀랍도록 다양한 바이브레이터와 딜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멋쩍었다면, 북카페를 연상시키는 여유만만하고도 고급진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라고 만다. 실제로 한쪽에 도열한 성 관련 서적은 자유롭게 꺼내 읽을 수 있다(성기 도안으로 채워진 컬러링 북부터 멀티 오르가슴에 대한 지침서까지!). “여성을 위한 성인용품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들이 스스로 당당하게 성적인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여성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죠.” 서른 살 최정윤 대표는 방문객이 제품마다 직접 만져보며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살가운 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토끼 모양의 여성용 바이브레이터와 키스 해링의 작품으로 디자인된 남성용 자위 기구,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등장했던 BDSM 코스튬까지 둘러보고 만져보는 일은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웠다. 적어도 이곳에서 성은 입에 담기 껄끄럽거나 음습한 행위가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충분히 자고 맛있게 먹고 멋지게 입듯,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일상의 일부분이었다.

“저희 슬로건이 ‘Discover Your Bliss’ 그러니까 ‘당신만의 더없는 행복을 찾으세요’거든요. 가게에선 섹스 토이와 여성용품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기쁨 찾기를 위한 의료 세미나, DJ 파티, 좌담회 등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에요.” 고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한 최 대표는 시애틀에서 여성이 운영하는 성인용품점 체인을 방문했다가 깔끔한 디자인과 숙련된 직원들의 태도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성이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졌으면 했다고. 물론 가족조차 민망하다는 반응 속에서 외신 기자로 일하던 그녀가 ‘기쁨연구소’의 명함을 갖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일이 걸렸다. “판매 제품에 대한 저희만의 규정이 있어요. 인체에 무해할 것, 믿을 수 있는 브랜드 제품일 것,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기능이 우수할 것,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일 것! SNS 반응이 괜찮아서 현재로선 방문자도 늘고 수익도 좋은편이죠. 물론 80%는 여성 고객이고요.” 일요일은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홈페이지(plsl.net)를 통해 똑똑한 성생활 정보 공유에도 적극적인 것 역시 여성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운영 같다.

홍대 정문 앞에 자리한 ‘콘도매니아(Condomania)’는 밝은 분위기를 가진 성인용품점의 출발점이었다(이대점이 먼저 생겼지만 주변 상권이 죽어 일찍 문 닫았다). 2006년 문을 연 이곳은 어느덧 홍대 앞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는데, 여전히 환한 매장 안에는 기능성 콘돔을 중심으로 한 아기자기한 성인용품이 빼곡히 비치돼 있다. 남자 성기 모양의 스프링 열쇠고리나 막대 사탕 모양의 콘돔 세트는 가격도 귀엽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교육에 좋지 않다며 인근 학교 학부모회에서 몰려와 농성을 하기도 했는걸요.” 콘도매니아 김대경 대표의 목소리에는 한숨이 섞여 나왔다. 지금이야 통유리창 너머로 눈치껏 들여다보는 행인보다 직접 들어와 콘돔쯤 가뿐하게 구입하는 젊은이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편견이 심하다는 것. 사만다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나 살았던 사람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홍대 인근에서 2년째 성업 중인 ‘러브뮤지엄(Love Museum)’의 존재는 신선하다. 유머러스한 성 문화 체험 박물관인 이곳에서는 섹스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조각과 회화를 맞닥뜨릴 수 있는데, 춘화도의 성적 해학과 마블 코믹스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에로틱한 접근이 눈에 띈다. 남자 성기 모양을 한 물총과 의자처럼 만질 수 있는 모형, 혹은 과장된 신체 부위 그림의 착시 효과를 통해 관람객은 잠시나마 저마다의 묘한 성적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다. 셀카 놀이에 전념하는 젊은 연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잇기에 물었더니 공식적으로 하루 500명 이상 관람객이 찾는단다. 성적으로 보수적인 연인이나 섹스리스에 허덕이는 부부에게 추천하고픈 유쾌한 데이트 코스가 아닐까.

“기왕 사용할 거라면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난해부터 인터넷 성인용품 쇼핑몰 ‘멜랑꼴리몰(www.merancori.com)’을 운영하고 있는 웹툰 작가 비타민(이기호)의 답변은 단호했다. 당연히 성 보조 기구가 필요 없는 이도 많을 것이다. 연인과 부부가 서로의 몸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지한 상태로 성인용품을 구입했다가 잘못 사용해 탈이 나거나 느슨한 성생활을 환기시켜줄 발칙한 아이템을 찾는 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15년째 성인 웹툰 <멜랑꼴리>를 연재하며 글로벌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젊은 작가가 직접 섹스 토이를 취급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일까. 멜랑꼴리몰은 그의 캐릭터들이 여백을 채우면서 말쑥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제품마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착한 가격표를 붙여뒀다. “남사스러운 성인용품점을 바꿔놓고 싶어요. 어이없을 만큼 폭리를 취하던 기존 수입 제품 가격대를 정상화시키고,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정품 사용을 유도하는 것이 우선이죠. 그다음엔 청소년과 노인의 사회적 성 의식에 대한 교육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결국 누구나 건강하게 즐기는 성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죠.” 어쩐지 그의 목표를 성의껏(!) 응원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