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무덤

만든 사람은 있지만 이름은 없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먹는 모양새다. 영화, 방송, 음악 등 근래 문화계에 만연한 창작자 실종 사건. 이 노래,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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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초히트작 <프로듀사>에서 김수현이 공효진에게 마음을 슬쩍 드러낼 때 흐르던 피아노곡은 누가 만들었을까? 액션과 코미디가 뒤섞인 조선 활극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서 스릴을 뿜어내던 관현악 사운드는 누구의 재주일까. 혹은 노래라 하기엔 아리송한 공포영화 속 효과음이나 광고 속에 등장하는 애매한 길이의 음악은? 드라마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샅샅이 뒤진다 한들 이 노래의 진짜 주인을 일일이 찾기는 힘들다. 노래 한 곡이라 해도 편집, 녹음, 연주 등 파트에 따라 참여하는 인원은 여러 명에 이르고, 대부분의 경우 그 많은 참여 뮤지션들을 모두 크레딧에 표기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음악 감독 한 명의 이름으로 대표되거나 크레딧 없이 사라진다. 게다가 다른 스태프들의 수정과 편집을 거치면서 음악은 애초의 멜로디와 상당히 다른 곡이 되기도 한다.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그래서 권리를 주장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창작물이 양산되는 것이다.

지난 8월 뮤지션이자 작가인 손아람 씨가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쓴 글 한 편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란 제목이었는데 근래 <한겨레> 보도를 인용하며 방송 음악계의 ‘열정 착취’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그 보도에 따르면 방송 음악 에이전시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작곡가들의 음악을 동의 없이 사용, 수집함과 동시에 저작물 수익을 명시하지 않아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해왔다. 로이 소속의 한 작곡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근로계약서 없이 한 달 80만~1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일해왔다”고 말했다. 수많은 작곡가의 창작물이 그저 회사 대표의 이름으로 표기된 채 방송을 탔다는 얘기다. 가령 로이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한 편을 들어갈 때 소속 뮤지션들을 상대로 주제가 오디션을 여는데 최종 주제가로 선택되지 못한 곡은 그저 사라지거나 전혀 다른 드라마, 또는 예능 프로그램에 삽입된다. 로이 소속의 한 작곡가는 “우연히 TV를 보니 내가 작곡한 노래가 모 드라마에 쓰였더라”고 했다. 5초 미만의 효과음엔 애초에 저작권이 없고, <히든싱어>와 같은 프로그램에선 기계처럼 MR을 뽑아내기도 해야 한다. 그야말로 노동은 착취되고, 권리는 사라지는 현실이다.

로이엔터테인먼트의 사정이 유독 지독하긴 하지만 문화계에서 창작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 건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업계가 도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탓에 일반 스태프급 창작자들의 보상과 권리는 명시되지 않는다. 방송의 경우 유명 감독 밑엔 조감독과 수많은 구성 작가가 있고, 음악 역시 스타 음악 감독 아래 작곡가와 어시스턴트가 있다. 연출부 막내와 스태프 시절을 지나 조감독 두세 번 하면 입봉할 수 있다는 게 영화계에선 오랜 시간 관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관행 속에서 창작자들의 권리는 쉽게 무시된다. 프로덕션 전후의 시간을 합쳐 거의 6개월이 소요됨에도 막내급의 보수는 편당 100만원이 채 안 되기도 하며, 시나리오 같은 경우 수많은 수정과 각색 중 원안자의 이름은 아예 삭제되기도 한다. 그나마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쟁점화한 영화계는 2011년 스태프들의 근로 표준 계약서를 확정했다. 하지만 한국 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현재 표준 계약서가 개발되어 있는 건 영화, 대중 예술, 공연 예술, 만화, 그리고 출판 다섯 개 분야뿐이며, 그 역시 현실적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방송 음악의 경우 효과 사운드 작곡, MR 제작 같은 일,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시나리오 개발 같은 업무는 창작의 주인과 권리를 명기하기가 애매하기도 해 쉽게 무시되거나 간과되곤 한다.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수많은 창작자는 그저 이름을 잃는 상황이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의 작품은 엔딩 크레딧이 독특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 스즈키 도시오라는 명프로듀서의 이름이 있음에도 모든 스태프의 이름을 오십음(五十音) 순으로 나열하기 때문이다. 지브리 영화에선 감독, 조감독의 서열도 없고, 스태프들의 중요도는 모두 같다.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스튜디오 지브리 근처에 사는 고양이 세 마리의 이름 역시 크레딧 한쪽에 삽화와 함께 넣어준다. 귀여운 배려에 미소가 배어 나오는 동시에 모든 창작자가, 창작에 기여한 동물마저 존중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창작의 권리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문제다. 노동에 대한 가치는 보수로,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적절한 법으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복잡하게 다변해가는 문화 업계 속에서 그 창작의 권한과 값어치를 매기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추석 특집으로 방영됐다 정규 편성이 확정된 MBC 예능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저작권 논란에 휩싸였다. 컨셉부터 구성, 그리고 스토리 전개 방식까지 모든 게 2013년 개봉한 이호재 감독의 동명 다큐멘터리와 동일했음에도 제작진은 프로그램 말미에 달랑 “영감을 준 이호재 감독에게 감사드린다”고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호재 감독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돈 주고 사가야 마땅할 물건을 그저 감사하단 말 한마디로 넙죽 받아간 꼴이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근래 영화나 웹툰 쪽 상황이 좀 나아질 수 있었던 건 문하생이나 스태프로 수년 일하다 입봉하는 것 외의 출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성공할 수 있는 출구가 하나뿐인 도제 시스템을 벗어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중요한 건 서로의 인식일 것이다. 법도, 제도도 필요하지만 내 것과 네 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 그리고 네 것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소외받지 않는창작, 간과되지 않는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까. 오늘도 창작의 골에 씁쓸한 무덤만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