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패션 사진 신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많은 이가 떠나고 새로 들어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남현범은 계속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존재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액자에서는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나리색 모피 코트를 입은 여인이 노란 먼지를 날리며 코앞을 스쳐 지나가고, 북적대는 쇼장을 빠져나온 어린 모델의 서글서글한 눈매와 마주친다. “건물에 반사되는 태양빛에 반해 한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죠. 마침 저 멀리 큰 체구의 여인이 걸어오는 게 눈에 띄었어요. 흰색 재킷이 그녀의 묵직함과 잘 어울렸고 선글라스 낀 얼굴은 강렬했죠. 그녀가 건물 앞에 도달한 순간 셔터를 눌렀어요.”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에서는 찰나의 순간에 대한 사진가 남현범의 사진전 이 열리고 있다. 4대 도시 패션 위크를 종횡무진하며 찍은 남 작가의 경쾌하고 통통 튀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 익숙하다면, 그의 최근 작업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유명 패션지 지면과 온라인 사이트를 장식하던 그의 이전 작업물에서는 늘 고급 향수의 달콤한 과일 향과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에는 낯선 이의 땀 냄새와 길거리의 악취, 머스크 계열 향수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풍기고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린다.

현대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시초로 꼽히는 이는 78년부터 <뉴욕타임스>에 길거리에서 찍은 사람들의 사진을 싣고 거기서 공통적인 유행 코드를 탐색한 빌 커닝햄이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잘 빼입은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 올린 스콧 슈만의 블로그 사토리얼리스트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인 스트리트 패션 사진 시대가 막을 열었다. 토미 톤, 필 오, 이반 로딕, 아담 카츠 신딩, 가랑스 도레, 캔디스 레이크 등이 합세했고 남현범도 이들과 함께 쇼장 앞 거리로 나갔다. 그의 동료들이 피사체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그는 인물과 함께 특유의 유머 감각,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러티브적인 면까지 담아내는 독특한 관점으로 자신을 차별화했다.

“올해로 벌써 6년째네요. 엄청나게 오래 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동안 등장했다가 어느새 사라지는 친구들도 많이 봤으니까요.” 그는 다섯 시즌째 필름 카메라로 작업 중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완전히 내려놓기 1년 전까지만 해도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작업을 병행했다. 디지털카메라로 그날의 할당량을 채웠다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필름 카메라로 ‘다른 것’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당량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작업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매일 데드라인에 쫓기는 일정 등 모든 게 과도하고 힘들었어요. 여러 매체와 맺고 있던 계약도 다 정리하면서 아예 필름 카메라로만 작업하자고 결심했죠.” 그의 작업량이 정점을 찍을 때쯤 스트리트 패션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게 과도해졌다. 패션쇼 전후, 작은 행사 같던 그들만의 런웨이는 나이 든 파파라치처럼 필사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냥꾼들의 전쟁터로 변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대명사라 불리는 이들이 전투적인 하이에나들 틈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본 적이있다. 그 이야기를 하자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우리도 찍고 싶고 찍어야 하긴 하는데, ‘씬’ 자체가 너무 공격적이니까요. 예전엔 화기애애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배려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서로 찍고 찍히는 재미도 있었고요. 요즘은 몸싸움도 많고, 차도에서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는 일이 다반사예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라 말할 순 없죠. 패션계 자체가 너무 혼잡해졌고 이미 모든 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그는 사진가들과 함께 사진 찍기를 즐기던 진짜 멋쟁이들도 이제 사진 찍히길 거부한다고 말했다. 어디에 사진이 올라갈지 알 수 없는 데다 그 사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도 보장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부한 자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의 옷’으로 차려입은 어색한 몸짓의 공작새들이 차지했고,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모두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브랜드의 욕망까지 한데 뒤엉켜 이 문화를 변질시켰다. “그들은 전혀 와닿지 않아요. 보는 순간 끌리기보다 거부감이 앞서죠.”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황금기를 이끈 이들 중 몇몇은 카메라 초점을 카오스의 거리 밖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토미 톤도 스트리트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줄었고, 거리 패션보다 쇼 사진과 백스테이지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고 남현범은 소식을 전했다. 스콧 슈만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패션 수도를 벗어나 페루와 남미 같은 제3의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남현범은 여전히 패션 위크가 열리는 4대 도시 쇼장 거리로 향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것을 본다. “같은 장소라도 눈에 들어오는 피사체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매체와 일하다 보니 찍어야 하는 대상과 정해진 기준이 있었죠.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나누고 평가하게 돼요.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 꼭 찍어야 하는 사람은 더 가치 있게 느껴지죠. 그렇지만 굳이 그런 것도 아니에요. 주변 상황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피로를 느끼게 하던 기준들을 내려놓자 많은 게 보였다. 기준에 맞지 않아 그동안 시선에서 제거한 것들이 모두 동등해지고 각기 나름대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됐다. 그의 최근 작업에서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물어보자, 그는 어려운 퀴즈 문제라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냥 샤넬 쇼장 앞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넬 룩으로 갖춰 입은 모습에 끌려서 찍은 거예요.” 스스로도 자신의 사진에서 누구나 알 만한 패션 피플의 비율이 급격히 줄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방금 못된 장난을 친 남자아이처럼 키득거리며 말했다. “제 배경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대체 저런 사진은 어디서 찍었을까?’라고 생각할걸요.”

그의 사진은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거리 사진작가의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개리 위노그랜드, 비비안 마이어, 다이앤 아버스, 다이도 모리야마 등등. 거기에는 이제 막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풋풋함과 함께 날것의 느낌과 생동감이 공존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패션에 먼저 시선이 갔다면 요즘에는 훨씬 복합적이고 기준도 모호합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뭔가에 사로잡혀 다른 걸 놓치고 있다는 기분에 종종 빠지곤 한다. 찍는 순간 담고 싶던 장면과 거리가 먼 사진이 나온 이유는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편하고 솔직하게 찍으면 되는데 말이죠.”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할 때보다 필름카메라를 쓰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더 까다롭고 신중해졌다. 예전엔 하루에 1,000장 이상을 찍었지만 요즘은 고작 200~300장이 전부. 컷 수는 적지만 수고와 과정은 훨씬 많아졌다. 현상한 다음 다시 스캔하고, 전시용으로는 고해상 스캔을 다시 받아야 하는 식. 그러나 그를 신중하게 만든 건 카메라가 아니다. 예전에는 쉴 새 없이 찍어댔다면, 이제 그는 도인처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눈 앞에 퍼즐처럼 하나의 장면이 완성되는 순간, 맹수가 먹잇감을 잡아채듯 신중하게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나의 컷은 운이 아니죠. 그 컷이 완성될 때까지 과정이 있고 힌트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신경 써서 관찰하면 예상 가능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죠. 요소요소가 하나씩 등장해서 하나의 신이 확 튀어나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만 셔터를 누르는 거예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최신 유행과 가장 예민한 스타일은 더 이상 그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굳이 온갖 곡예가 벌어지는 쇼장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처음이나 지금이나 저는 패션을 좋아해요. 주제가 패션이 아닐 순 있지만 제 사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늘 존재하죠. 예전에는 옷을 얼마나 잘 입고 트렌디한지를 봤다면 요즘은 이 사람이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잘 표현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엉뚱하게 입었지만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결국 패션이란 남한테 보여주려고 나를 포장하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관점이 달라졌을 뿐, 남현범에게 패션 위크 신은 여전히 재미있고 찍고 싶은 대상이 많은 곳이다.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돌아간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방식이 더 재미있게 느껴져요.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느끼는 방향이 또 바뀔 수도 있겠죠. 그러다 또 예전이 더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면 초창기처럼 스트리트 패션 사진을 찍을 거고요. 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미래의 일이라니.” 맞는 말이다. 사진가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바로 눈앞에 펼쳐진 순간에 가장 충실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