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he Frontier – LONDON 2017 S/S

패션 최전선에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방향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패션 위크. 4주간의 패션 위크 마라톤을〈보그〉 에디터들이 완주했다. 그들이 꼽은 가장 강렬한 룩, 웅장한 공간, 아름다운 모델 그리고 잊지 못할 감동. – ② LONDON 2017 S/S

 

ROOKIE’S LAND

괴짜 기질의 재기 발랄한 젊은 기운으로 가득한 도시. 화려하진 않지만 기대를 품게 만드는 곳. 런던 패션 위크에서 발견한 신인들.

Molly Goddard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

한때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런던 컬렉션. 그곳에서 2000년대 후반 갑작스레 쏟아진 패션 천재들은 패션 피플들이 다시 런던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J.W. 앤더슨, 크리스토퍼 케인, 매리 카트란주, 시몬 로샤 등. 몇몇은 이미 어엿한 패션 하우스 수장이 됐고, 또 몇몇은 모두가 인정하는 자신만의 고유 스타일을 구축해가고 있다. 믿고 보는 파리 쇼, 성숙한 여자의 관능미처럼 온몸을 전율케 하는 감동을 확신할 순 없지만 우린 늘 예상치 못한 발견에 대한 기대를 품고 런던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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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

요즘 너도나도 만들어대는 튤 오버드레스 유행의 시발점에 몰리 고다드가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녀는 2015 S/S 데뷔 컬렉션부터 벙벙한 캔디 컬러의 튤 오버 드레스를 선보여왔고 이번 시즌은 그녀의 첫 런웨이 쇼였다. 단언컨대 그녀의 쇼는 이번 런던 패션 위크의 베스트였다. 앞선 세 시즌은 소년의 것 같은 티셔츠와 밋밋한 맨 얼굴의 톰보이 혹은 꿈꾸는 듯한 소녀를 위한 것이었다.

Molly Goddard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

그 익숙함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방울 머리를 앞으로 늘어뜨리고 창백한 얼굴에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소녀들은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그들이 튤 드레스를 입는 방식은 허름한 청바지나 평범한 티셔츠와 다를 바 없었다. 그 태도는 이전 컬렉션의 연장선이었지만, 이전엔 튤 드레스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데 반해 이번엔 거침없었다.

Molly Goddard

몰리 고다드 (Molly Goddard)

로맨틱한 드레스와 스커트, 비대칭 톱은 오리처럼 납작한 60년대 부츠, 아동복 섹션에서 볼 법한 무지갯빛 스트라이프 톱과 꽃무늬 집업, 심지어 카모 패턴의 카고 팬츠에 매치됐다. 몰리 고다드는 자신의 튤 드레스에 대해 흔히 가지는 ‘달콤하고 소녀 같다’는 인상을 경쾌하게 떨쳐냈고, 약에 취한 듯한 소녀들은 레이저 빔이 정신없이 번쩍이는 가운데 레이브 뮤직에 맞춰 갈대처럼 흐느적거렸다. 이보다 훌륭한 한 방은 없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신인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 그리고 고다드는 적절한 시기에 훌륭하게 과제를 수행했다.

포스틴 스타인메츠가 발표하는 쇼를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프레젠테이션 방식이 자신에게 맞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건 사실이다. 장고 끝에 얻어낸 획기적 방식으로 직조한 원단은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스타인메츠의 ‘푸른 인어 공주’가 입은 데님에선 동굴 속 자수정처럼 스와로브스키 원석이 자라고 있었다. 재활용 면과 폴리에스테르 합성 재킷과 팬츠에는 디자이너 이름이 패턴으로 직조돼 있었고 비대칭 드레스는 수작업으로 염색하고 직조한 이카트 원단이었다. 모두가 상업성을 추구하는 요즘, 바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상업적인 버전을 기대하게 된다.

로버츠 우드 (Roberts|Wood)

로버츠 우드 (Roberts|Wood)

로버츠 우드는 의대생에서 패션 학도로 진로를 바꾼 케이티 로버츠 우드의 레이블이다. 겨우 세 번째 컬렉션이지만 이미 ‘패션 스카우트’ ‘보그 탤런트 어워드’ 등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담당 PR 에이전시까지 두고 있다. 그녀의 시그니처는 만개한 꽃잎 같은 입체적 러플 디테일로, 오간자 패널을 땋아 합친 혁신적 기술로 완성된 것이다. 앞선 두 번의 컬렉션을 합쳐 상업적으로 정리한 듯 소박한 작업복과 아름다운 오간자가 교차됐다. 컬렉션은 침착하고 노련했으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 같은 곳과 잘 어울릴 만했다. 앞일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조용하고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밀고 나가는 부류가 될 확률이 높다.

딜라라 핀디코글루 (Dilara Findikoglu)

딜라라 핀디코글루 (Dilara Findikoglu)

이번 시즌의 예상치 못한 발견을 꼽는다면 딜라라 핀디코글루일 것이다. 이스탄불 출신으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한 빨강 머리(염색한)는 자신의 옷 못지않게 과격하다. 이른 아침 협소한 스트립 클럽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로코코 스타일과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지기 스타더스트, 고스 펑크, 올드 스쿨 타투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할로윈 의상이나 무대의상처럼 볼 수 있지만 섬세한 비즈 장식의 헤링본 패턴 재킷이나 타투 모티브 자수가 놓인 핑크색 새틴 팬츠 수트, 할리퀸 코트는 소장욕을 불러일으켰다. 이 퇴폐적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앞으로도 쭉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LONDON EYE CATCHER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런던이기에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규모 프레젠테이션을 흥미롭게 만드는 아이디어, 특별한 볼거리와 감동.

패션쇼에서 감동을 느끼는 건 오랜만이다. 1996년 인도에서 런던으로 이민 온 아시시 굽타는 브렉시트로 인해 고조된 인종차별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인스타그램과 거리에서 캐스팅한 다양한 인종과 전통 복장을 응용한 컬렉션으로 인도 문화를 재조명했다. 꽃 파는 소년, 장님 연주자, 뱀 조련사 등. 그동안 패션위크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은 사람들을 울컥하게 했다. 가레스 퓨의 쇼 전날, 그가 무대의상을 디자인한 오페라 <엘리오가발로> 공연을 파리 팔레 가르니에에서 시작했다. 이번 시즌 의상 역시 거기서 영감을 얻은 것. 거대한 어깨와 머리 장식, 모델들의 힘찬 발걸음으로 그의 쇼는 늘 그렇듯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원반이 공중으로 떠오르자 알을 품은 것처럼 그 아래에서 모델들이 등장했다. 쇼가 열리는 내내 색을 바꾸며 움직였던 안야 힌드마치의 ‘서큘러스’. 멀버리 쇼는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의 인쇄 공장이었던 ‘프린트웍스’에서 열린 첫 패션쇼로 기록됐다. 폐쇄 후 지금은 영화 촬영 장소로 애용되는 곳. 샬롯 올림피아 쇼는 쉐라톤 그랜드 파크 레인 호텔 볼룸에서 베벨 질베르토가 라이브 공연을 하고 댄서들이 춤을 추는 유쾌한 디너쇼 형태로 진행됐다. 첫 제철 쇼인 셉템버 컬렉션을 선보인 버버리는 장인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메이커스 하우스’를 마련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프레젠테이션! 이사 아르펜을 입는 여인들은 시간이 나면 뭘 할까? 시를 쓰거나, 식물에 물을 주거나, 빨래를 널거나, 잡지를 읽는다. 혹은 모델들을 보며 이사 아르펜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단 일곱 벌을 선보인 피비 잉글리시의 모델은 각자 궁수, 물 붓는 자, 질문하는 사람, 밀수업자, 노래하는 사람, 교살범, 애도하는 여인으로 분했다. 행위 예술을 감상하는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