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l Granny

호모-헌드레드 시대에 맞춰 패션계와 출판계에 노년이 키워드다. 때론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용하고, 때론 그들의 플래티넘 금발을 액세서리로 차용한다. ‘등 뒤에서 날개 달린 시간의 마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노년을 그려본다. 꼭 인자하거나 젊어지려 애쓸 필요 없지 않을까.

늙는 게 뭐라고, 예쁘면 입는다. 모델이 걸친 그래니 룩은 구찌(Gucci).

늙는 게 뭐라고, 예쁘면 입는다. 모델이 걸친 그래니 룩은 구찌(Gucci).

<보그> 오디언스에게 그래니는 식상한 단어일 수 있다. 작년부터 계속된 그래니 룩과 쿨한 할머니들의 역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몇 년 전, 프런트 로에 앉고 패션 다큐멘터리를 찍는 90대의 아이리스 아펠이 신선했는데, 이젠 누가 더 플래티넘 금발이고 더 멋진지 가르기 쉽지 않다. 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 패셔니스타 린다 로댕부터 뉴 인플루언서인 헬렌 루스 윙클, 사라 제인 아담스, 린 슬레이터까지. 가끔 코스프레에 가까운 난해한 패션도 있지만, 어쨌든 모두 그녀들의 기력을 좋아한다. 그 신에서 가장 날 사로잡은 건 셀린 광고에 등장한 미국 작가이자 <보그> 기자였던 존 디디온이다. 내가 바라는 할머니는 화려한 액세서리의 아이리스 아펠이 아니라,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미간을 찌푸린 존 디디온이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사노 요코와 함께 ‘닮고 싶은 할머니’ 목록에 올랐다.

사노 요코는 2010년에 72세로 작고한 일본의 그림책 작가이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 등 ‘뭐라고 시리즈’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마음산책에서 펴낸 <사는 게 뭐라고>는 현재 25쇄를 찍었다. 그곳의 편집자 김예지는 사노 요코의 인기 이유에 대해 “곧 죽을텐데 우울해서 뭐해, 네 멋대로 살아라, 아무도 네게 뭐라고 할 수 없다, 라면서 삶을 통쾌하게 바라보기 때문 아닐까요?”라고 했다. 그간 할머니는 두 부류, 인자하고 따뜻한 할머니와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속 빈곤층의 이미지였다. 사노 요코 같은 할머니는 처음이었다. ‘인자함 따위 집어치워’ 같은. 또 솔직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패션계뿐 아니라 출판계도 노년은 주된 키워드다. 유엔이 명한 호모-헌드레드 시대니까. 대부분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용하는 책이지만, 여성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책도 꾸준히 나온다. 그들은 철학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고, 그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낼 뿐이다.

호모-헌드레드 시대에선 두 번째, 세 번째 노년이 생긴다. 최근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을 낸 여성학자 박혜란 할머니께선 이렇게 얘기하신다. “우리 모두 100세까지 살 거라는 걸 알잖아요. 노년을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더 길게 인생을 그렸으면 좋겠어요.” 처음으로 나의 노년에 대해 생각해봤다. 중년도 아닌 노년이라니. 쿨 그래니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이 할머니 멋지네’ 하고 관망했지만 이젠 나를 대입시켜본다.

무서웠다. 구병모의 소설 <파과>에서 60대 여성 킬러는 복숭아에 노년을 대입한다. “거의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의 격언을 모은 책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는 노년의 두려움을 네 가지라 명한다. 첫째, 체력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 둘째, 건강을 잃기 쉽다는 두려움, 셋째,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 힘들다는 두려움, 넷째, 죽음이 코앞에 닥쳐왔다는 두려움. 공감한다. NHK 제작팀이 낸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까지 보면 정말 악몽을 꿀 정도다.

유럽연합 통계 연구를 보면 행복한 노인의 나라는 덴마크다. 74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덴마크는 10점 만점에 8.4점이다. 유럽연합 평균은 6.8점. 이유를 파헤치려고 <가디언> 기자가 덴마크 여사님들을 만나러 다녔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연락하면 “지금 섬을 탐험하고 있거든요, 골프 치는 중이니까 다시 전화주세요, 프랑스로 여행 가서 전화 못 받아요”라며 부재중이었다고. 그래! 덴마크 노인 안나의 말처럼 “오랫동안 휴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못다 한 취미를 시작하는거야. 75세에 그림을 시작해 120만 달러에 그림을 낙찰시킨 모지스 할머니처럼 그림을 시작해도 좋겠지. 시간 많은 청춘이 되는 거야.

그런데 이런 것도 혹시 ‘젊음에 대한 강박’인가? 사노 요코는 이렇게 얘기한다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죽을힘을 다해 겨울 산에 오르거나 바다 속으로 뛰어들거나 철봉으로 기계체조를 한다. 나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출한다. 추하다. 나이를 이긴다든가 진다든가, 그런 표현에 구역질이 난다. 노인은 노인으로 좋지 않은가?” 사노 요코가 워낙 직선적이니 이해해주길. 어떤 노년을 보내든 자기 마음이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젊음에 대한 강박 없이 쿨하게 노년을 받아들였음 좋겠다. 마음만은 젊은 척도, 그렇다고 인자한 노인인 척도 안 하면서. 그냥 나대로.

이제 노년을 마주한다는 50대의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는 <무심하게 산다>에서 늙어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인 친구를 소개한다. “A는 A다운 면이 세월을 거쳐오면서 더욱 부각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한때 가지고 있던 이론, 나이 들수록 사람은 성숙해진다는 생각은 멋지게 무너졌다.” <가디언>은 “나이 든다고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는다” 고 했다. 자유방임의 분위기가 팽배하고 성 관념에 개방적이던 1960년대에 20대를 보낸 지금의 70대들은 어떤 노년 세대보다도 성병을 많이 앓고 있다면서.

여성학자 박혜란은 말한다. “할머니가 된다고 달라지는 건 많지 않아요. 본질은 그냥 있잖아요. 얼굴이 좀 쭈글쭈글해지고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이구나’ 느낄 뿐이지 머릿속 생각은 거의 똑같아요. 단지 큰 기대, 욕심 같은 게 없어지니까 마음이 좀 평안해지는 차이죠.” 그렇다. 나는 36세지만 26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아는 게 많아졌을 뿐 여전히 제멋대로다. 가쿠다 미쓰요의 친구처럼 “나이 든다고 성숙해지진 않았지만, 단점을 밉상으로 보이지 않게 노력”해야지. 하나 더, 강박이 아닌 원해서 꿈을 하나쯤은 꿔도 좋겠다. 김연수의 말처럼 “지옥이란 하나의 삶만을 가진 자들이 사는 곳”이니까.

필립 로스, 잭 케루악을 발굴하며 75세의 나이로 은퇴한 전설의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은 90세에 드디어 자신의 책을 썼다. <어떻게 늙을까>는 노년 꿀팁 대방출이다. 성과 연애결혼, 무신론과 후회와 죽음, 독서와 글쓰기, 운전과 그림과 정원 가꾸기 등을 풀어놓는다. 그녀는 솔직한 꿈을 꾼다. “돈이 많아서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싶다.” 다이애너 애실은 “늘 내 등 뒤에서 날개 달린 시간의 마차가 서둘러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지만 늙고 죽는 것은 수선 피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냥 매 순간을 소중하게 즐기며 자연스럽게 살아요.” 그래, 늙는 게 뭐라고. 새파랗게 어린 것이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하지만, 덕분에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좀 사라졌다. 그냥 나대로 두 번째, 세 번째 인생을 살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