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it or Break it

Fashion

Make it or Break it

2017-12-01T11:32:58+00:00 2017.12.01|

지금, 한국의, 젊은, 여성이 원하는 패션은 뭘까?
소셜 미디어라는 급류에 몸을 실은 패션 스타트업 ‘하트잇(Heart It)’의 움직임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하트잇의 멤버 이창우, 김지연, 서수아. 회색 스웨터는 자체 제작한 ‘잇스웨터

하트잇의 멤버 이창우, 김지연, 서수아. 회색 스웨터는 자체 제작한 ‘잇스웨터

“<보그> 스태프 리스트와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출입 도와드리겠습니다.” 얼마 후 우리에게 도착한 메시지. “남현지 님, 서수아 님이 ‘스튜디오 블랙’ 미팅 룸에서 진행되는 회의에 초대하셨습니다.” 이 메시지에는 방문 일정과 출입 가능한 장소, 1층에서 무인 출입증을 받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로비에 설치된 화면에 각자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자 발권기에서 영화표가 나오듯 출입증이 떨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마주한 광경은 젊음과 활기로 가득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자유롭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 포켓볼을 치는 사람들, 바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들, 수면실에서 낮잠을 청하는 사람들. “3월부터 이곳을 쓰기 시작했어요. 메이크업은 여기서 하면 되고, 음, 우리가 예약한 촬영 스튜디오가 있는 층으로 가볼까요?” 디지털 업무에 최적화된 밀레니얼 세대의 창업 붐이 공유 오피스의 유행을 만들었기에 패션이라고 다를 건 없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기반의 쇼핑 플랫폼 ‘하트잇’이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건 당연하다.

하트잇이 하는 일을 좀더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인플루언서들의 소셜 미디어에 달린 “00 님, 니트랑 가방 정보 부탁드려도 될까요?” 같은 댓글에 답해주는 서비스다. “패션지는 해당 아이템이 어떤 브랜드인지까지만 알려주죠. 하지만 하트잇은 브랜드 정보를 넘어, 구입 경로를 소비자에게 ‘랜딩(landing)’해줍니다.” 하트잇의 서수아 대표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8년간 일한 그녀는 2년 전 인스타그램과 패션의 결합은 ‘분명히 된다’는 확신으로 하트잇을 론칭했다. “타깃은 25~40세 여성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고 구매력도 있죠. 좋은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제품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즐겨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이죠.”

모든 창업 스토리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은 ‘왜 잘나가는 회사를 때려쳤나?’이다. “수많은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를 컨설팅했죠. 그러나 제가 제안한 전략이 실제 운영 과정에는 잘 반영되지 않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두려던 즈음엔 해외 백화점을 컨설팅하고 있었어요. 컨설팅 내용의 핵심은 ‘미래에는 콘텐츠를 잘 하는 회사가 판매도 잘할 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소비하고 이는 곧 판매로 직결될 것이다’였죠. 가만 보니 한국 시장에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 기업이 별로 없더라고요. 게다가 패션을 소비하는 주류는 여자인데 여자가 창업한 회사는 더더구나 없었죠. 그래서 직접 해볼까 하고 생각했죠.” 하트잇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에 태어났다면 여기에 모터를 단 건 같은 회사 출신인 전략 컨설턴트 김지연, 이창우의 합류 그리고 구글 출신 개발자의 플랫폼 개발, 가능성을 알아본 엔젤 투자자들이었다.

그렇다면 하트잇이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는 뭘까? 우선 하트잇 앱의 레이아웃은 인스타그램 포맷과 비슷하다. 스크롤을 내리면 국내 인플루언서 50여 명이 하트잇에 직접 제공한 착장 사진(코디 사진)이 뜬다. 그리고 아래에는 착용한 아이템의 섬네일이 보이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구매 사이트로 넘어간다. 해당 아이템과 똑같은 걸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추천 유사 상품도 함께 뜬다. 그뿐 아니다. 하트잇에 가입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에 ‘하트(좋아요)’를 누르면 스마트폰으로 해당 상품을 살 수 있는 인터넷 링크를 전송한다. 하트잇과 함께하는 인플루언서의 팔로어는 적게는 몇만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른다. 그들이 한 채널에서 콘텐츠를 공유 하고 제품 노출부터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이 앱 안에서 원스톱으로 이뤄지니 이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리는 브랜드의 러브 콜도 점점 늘고 있다. 네타포르테, 마이테레사, 매치스패션 등 해외 직구 사이트부터 나이키, H&M, 토리 버치, 유니클로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국내에는 코오롱스포츠, 에잇세컨즈, 한섬, LF 등등. 하트잇과 인연을 맺은 곳이 현재 수십 곳에 이른다.

그런데 자본이 풍부한 기업이 더 유명한 인플루언서를 돈으로 섭외하고, 비슷한 플랫폼과 알고리즘을 ‘뚝딱’ 만들면 하트잇을 금방 앞지르진 않을까? “카피캣이 두려운 건 아니에요. 우리가 수년간 그들의 개성과 고유 영역을 존중하며 인플루언서와 쌓아온 유대가 있으니까요. 그들은 결코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아요. 우리가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을지만 걱정이죠.” 전략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은 더 큰 그림을 그리게 했다. “과거 경력의 장점이요? 투자자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데 필요로 하는 ‘숫자’를 어떤 업체보다 잘 알려줄 수 있죠. 또 크게 본다는 점입니다.”
사실 하트잇은 사이트로의 랜딩을 통해 얻는 수수료 말고도 다른 수익 모델이 있다. 하트잇이 직접 만드는 패션 아이템이다. 종류는 두 가지. 하나는 인플루언서들과 긴밀히 의견을 나누며 만드는 트렌디한 제품. 두 번째는 ‘잇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제작하는 의류다. 디자인과 제작, 유통까지 모두 하트잇에서 담당한다. 최근 론칭한 모헤어 소재의 ‘잇스웨터’ 가격은 21만원. 사실 밥 먹듯 쉽게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한국에도 패스트 패션 붐이 한창 일었죠. 고를 수 있는 옷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고 가격은 정말 싸고. 당시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모델이기에 열광했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람들은 점점 쉽게 입고 버리는 것에 질려갑니다. 그러니 옷장에 오래 넣고, 내년에도 예쁘게 입고 싶은 합리적 가격의 제품에 열광하는 거죠. 저 역시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거금을 주고 해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곤 1년에 몇 번 입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하트잇 인플루언서 나니 씨가 그러더라고요. “비싼 옷을 많이 입어봤는데, 어떤 건 입어지지 않아요. 나는 자주 입는 옷에 돈을 써요.”

패스트 패션 시대의 종말을 맞아 여성들의 심리를 꿰뚫은 이 제품은 현재 반품률 1% 미만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판매 중이다. 이 판매 전략은 요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블로그 마켓’의 특성과 일치한다. 일상에서 자주 입을 법한 옷을 홍보하되, 이미지는 잡지에 나올 법한 화보가 아닌 인플루언서들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다소 어설픈 사진을 올리는 식. “팔리는 콘텐츠는 비주얼이 전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건 아니에요. 헤어, 메이크업, 포토가 수준급이라도 안 팔릴 수 있어요. 고객은 켄달 제너가 아니거든요! 예전엔 네타포르테도 잡지처럼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도록 블로그처럼 찍죠.”

고객에 대한 친숙한 접근과 합리성을 내세운 하트잇 아이템은 요즘 패션 스타트업의 흐름과 일치하는 전략이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주목받는 패션 스타트업은 ‘합리성’에 초점을 맞춘다. 소비자 취향에 맞는 옷을 AI로 골라주는 서비스 ‘스티치 픽스’, 각 아이템마다 원가와 제조 과정, 배송비를 투명하게 공개해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알려주는 쇼핑몰 ‘에버레인’ 등등. “기존 패션 기업이 하던 대로 했다면 당장 돈은 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특히 중요한 건 영혼입니다. 특히 패션 같은 소비재에 가까울수록요.” 바야흐로 패션계 스타트업 춘추전국시대. 새로움 없이 기존 시스템에 기대는 절대 강자는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트잇은 이 시대에 살아남을 무기를 장착한 채 패션 영토 확장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