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마르셀 반더스의 말, 말, 말

2019.12.12

by VOGUE

    마르셀 반더스의 말, 말, 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뷰티, 여성 그리고 디자인에 대하여.

    “저는 화장품 패키지를 만드는 산업 디자이너입니다. 분명 뷰티 업계에서 흔한 케이스는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제게 다른 종류의 자유로움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따르지만요. 저희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뷰티의 세계에 색다른 에너지와 새로운 비전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뷰티 업계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아주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통틀어서 뷰티 업계만큼 섬세한 감각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요. 분명 제 인생에 아주 특별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여성들이 세심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울러, 오늘날 자신의 피부나 아름다움을 위한 제품을 자세히 알아보는 이들에게 ‘제품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고요. 만약 제품을 처음 볼 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는 당연히 어렵겠죠. 저는 저희가 만드는 제품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어요. 그저 아무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이 제품을 만든 브랜드의 소울(Soul)에 그 기반을 두고 있죠. 데코르테는 피부, 컬러, 메이크업을 정말 사랑하는 브랜드예요. 저는 제 스스로가 정말 좋아하고 또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뷰티 제품에 진지한 세계, 그리고 이에 대한 우리의 마인드와 비전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뷰티의 세계는 ‘뷰티’라는 하나의 라벨로 명확히 지칭할 수 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러기엔 꽤 방대한 세계죠. 저희가 구현하는 제품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고요. 하지만 저희가 만드는 수많은 산업 디자인 제품 중 사실 ‘산업적’이지 않은 제품이 상당히 많답니다. 가구나 조명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산업적이지만, 그 물량이 산업용 제품이라고 말하기엔 적은 편이죠. 결과적으로 이런 제품은 아주 많은 이에게 노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이 특정 성별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지 않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구매자는 여성이죠. 저는 이것이 가장 큰 구분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뷰티 디자인에 대한 기준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디자인을 볼 때, 기능적인 것에서 덜 기능적인 측면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제품이 기능적이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 이유를 저는 ‘사랑’이라고 칭하고 싶어요. 내가 원하기 때문에 기능적이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는 기능성에 대해 상당히 많이 이야기하죠.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기능’이란 것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기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더 이상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기능이 중요한 물건은 사실 우리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진공청소기를 산다면 기능이 잘되기를 바라겠죠? 왜냐면 여기서 청소라는 건 우리가 신경을 덜 쓰고 싶은 거니까요. 청소기가 혼자 알아서 제 일을 하길 바랄 정도로 말이죠. 저는 이러한 성질은 제품이 기능적이길 바라요.”

    “우리가 덜 원하는 제품에서는 기능성이 중요한 반면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 일례로 창가에 놓은 도자기 장식이나 하이힐,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은 전혀 기능적이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제품을 좋아하고 더 갖고 싶어 해요. 뷰티 제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뷰티 제품이 전혀 기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당연히 기능성이 있죠. 하지만 단지 기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뷰티 제품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에 원하고, 구입하는 거죠. 이것이 뷰티 제품과 산업 제품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뷰티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머리보다 가슴으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뷰티 제품을 디자인하는 건 분명 기능적이거나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어요. 뷰티 제품은 기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죠.”

    “제가 살고 있는 ‘디자인의 세계’는 사실 꽤 남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직선적인 곳이죠. 아주 멋진 곳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진 퀄리티가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리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들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의 세계에도 여성적인 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늘 노력하고 있어요. 여성적 언어를 더욱 잘 반영하고 보여주는 것.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요. 저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에 인간적인 면모를 더함으로써 그저 스마트하게만 일할 때보다 훨씬 중요하고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스튜디오에서 일할 때면 언제나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스마트하게 합시다’라고 말하곤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최고로 스마트하게 보고, 생각하고, 해낼 수 있을지 계속 이야기해요. 디자인에서 모든 준비가 스마트하게 잘되어 있어야 하죠. 하지만 동시에, 저희는 그 누구도 그것이 ‘스마트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해요. 미적 요소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마트함’을 감추죠. 아무도 반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아이가 가장 똑똑한 아이라면 너무 인간미 없게 느껴지잖아요.”

    “제 작품 곳곳에서 종을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보통 종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거나, 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에서 찾을 수 있죠. 로비 같은 곳에서요. 저희가 이렇게 종을 이용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저는 매스컴의 시초가 바로 종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사람들을 모으고 싶으면 우리는 종을 울렸죠. 무언가를 찾았을 때, 불이 났을 때, 세리머니가 있을 때,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거나 큰 모임이 있을 때도 종을 울렸죠. 먼 거리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종을 울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종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종이 있는 곳으로 가죠. 종을 향해 걸어와 모여요. 그리고 종을 보는 순간, 우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요. 이것이 저희가 계속 종 모양의 디자인을 하는 이유예요. 물론 저희가 만든 종은 대부분 소리가 나지 않지만요(웃음). 조명인 경우가 많거든요.”

    “디자이너로서 저는 언제나 새로운 문화나 소재를 찾아왔고 또 그것에 대해 배워왔어요. 이렇게 새로운 문화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영감도 많이 받고요. 제 경우에는 특히 오래된 것, 옛 문화, 옛 소재에서 영감을 받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것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계속 다른 문화와 다양한 디자인을 탐색합니다. 정말 멋지거든요. 물론 저에게 가깝고 친숙한 문화를 들여다보는 경우가 더 잦다는 생각은 해요. 음, 지금 생각난 게 하나 있는데 아마 일본 문화이거나 한국 문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서진 도자기 조각을 붙여서 만드는 예술 양식인데,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깨진 조각을 한데 붙이는데, 이때 사용하는 풀에 금이 들어 있어요. 한국 예술일지도 몰라요. 저도 사실 이걸 몇 년 동안 하고 있어요. 제가 오래전에 달걀 꽃병(Egg Vase)이라는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콘돔 속에 삶은 달걀 넣은 것을 틀로 삼아 만든 화병인데, 아주 아름다운 형태를 이루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종종 깨지곤 했죠. 그럴 때마다 깨진 조각을 버리지 않고 모아뒀어요. 그리고 그 조각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컬렉션을 구상했죠. 한국 도자기 조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방식은 한국에서 유래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Courtesy of Deco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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