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권상우 인터뷰, 오만과 편견

2016.03.17

by VOGUE

    권상우 인터뷰, 오만과 편견

    숱한 루머와 편견에 맞서 우직하게 정면 돌파해 온 남자는 이제고독한 인생의 행로에 잔디를 깔고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다시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권상우가 지난 몇년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변한 건 없다. 다만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다.

    화이트 셔츠는 샤넬, 블랙 더블 브레스티드 디테일의 원버튼 재킷과 실버 풍뎅이 브로치는 앤 드멀미스터, 블랙 팬츠는 발렌시아가 (at MUE).

    쌍절곤을 들고 이소룡 흉내를 내던 근육질의 톱스타 K군은 지난 몇년간 꽤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멜로 배우의 마스크에 마초의 몸매를 지닌 이 컨템포러리 미남은 이제 막 박제된스타의 이미지를 벗고 진짜 배우의 얼굴을 드러내던참이었다. 마침 동해 바다에서는 부드러운 해풍을 타고 한류가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류는 저에게 득이자 독이었어요.” 혼돈의 시간을 지나, 강남의 한스튜디오에 들어선 권상우가 말했다. 그는 다시 K군이되어 돌아왔다. 이번엔 뉴스가 아닌 영화를 통해서다.원태연 시인의 감독 데뷔작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순정파 라디오 PD는 이름 대신 이니셜 K로 불린다.“20대 초반, 청춘의 제 모습이기도 해요. 일단 이름도K잖아요(웃음).제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성격이긴 한데, 그래도 이성 앞에선 망설이고 혼자 가슴앓이했거든요. 배우가 되기 전까진 사실 숙맥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커피숍 한 번 못 가봤고, 군 제대할 때까지나이트클럽도 안 가봤으니까. 남들은 안 믿죠. 내 캐릭터를 보면 굉장히 잘 놀았을 것 같고, 중학교 때부터 담배 피웠을 것 같잖아요.(웃음)”

    한류가 시작되던 2004년,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될성부른 배우는 곧 로또였다. 권상우가 그랬다. 이성이 마비된 탐욕스러운 혀가생산해낸 루머들은 한류 열풍에 열기를 더했다. 먼저연예계 X파일이 터졌다. 호스트바 출신, 그룹섹스 등낯뜨거운 오해들이 기정 사실인 양 문서화되어 있었다. 어차피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는게 지루했던 사람들은 평범한 진실보다 자극적인 가십을 원했으니까. 도박설에 이어 서방파 두목의 이름까지 등장했다. 지리멸렬한 법정 공방이 오갔고, 매니저는 구속되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음모와 배반이 난무하는 액션스릴러가 따로 없었다. 권상우의 잘못이라면 그가 확실히 돈이 되는 ‘상품’이었다는 것. 권상우가 누군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이 한마디로TV앞에 앉은 모든 여성들의 마음에 사랑의 부메랑을 던졌던 백마 탄 실장님, 불량 학생을 연기한 예비 미술교사.〈동갑내기 과외하기〉로 480만 흥행신화를 기록한 그가 예정대로 동산중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가자 교육방송을 제외한 방송 3사가 수업 시간을 생중계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권상우의 스타성에 배우로서의 이미지를더했고, 〈천국의 계단〉과 〈슬픈 연가〉로 한류스타라는 타이틀까지 덤으로 얻었다. “배우로서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었죠. 진짜 정신없었거든요. 어떻게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권상우는 스톰 모델로 데뷔했다. 10년 전의 일이다. 멀쩡하게 군대까지다녀오고 20대 중반이 되어 선택한 연예계였다. “만 열아홉 살 때 군대에 갔어요. 어머니가 자원입대를 신청한 걸 입소 일주일 전에야 알았거든요. 그 2년 2개월이라는 시간을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서울에올라와서도 그때의 정신모토로 열심히 뛰어 다녔고….” 그는 복학하기 전, 1년의 시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배우가 되는 데 투자해보기로 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스물세 살 청년은 하루 종일 지하철을타고 강남을 돌아다니며 모델 에이전트마다 직접 프로필을 돌렸다. 한 달 용돈 15만원 중 거금 3만원을 헬스클럽에 투자해 몸도 만들었다. “그런데 ‘몸을만들어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운동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좀 재수없게 들릴수도 있는데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음식물 조절은 자신도 없고.” 최근 운동을 좀 쉬었다는 그가 촬영에 앞서 스튜디오 바닥에 엎드려 몇 차례 팔굽혀펴기를 했다. 물론 그의 이두박근은 그럴 필요도 없이 여전히 건재6해 보였다.“주말엔 조기축구 모임에서 뛰어다니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40~50분은운동하는 정도로 항상 유지는 하고 있어요.” 그는 늘 부지런한 편이다. 이날도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먼저 스태프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이것도 군대에서 배운 근성이다. “제가 부족한 게 많으니까 다른 부분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거죠. 물론 다시 군대 가라면 절대 안 가지만.(웃음)”

    벼락 같은 인기와 밀려드는 CF로도 모자라 그는 다른 연예인들이 평생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사건들까지 몰아서 겪었다. “전 이제껏 범법 행위를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음주운전조차 한 적 없고,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런데 한류 초창기에 있게 되니까 사건사고가 생겼던 거죠. 말도 안 되는 도박설에도 연루되고, 조직이니 뭐 여러 가지 많았잖아요. 솔직히 김태촌 씨랑 내가 서로 뭘 알겠어요? 조사야 받았지만, 결국 뭐 없잖아요. 그 사람도 옛날 소속사와 관계된 것 때문에 온 거고, 소속사 사람들의 잘못이었던 거고. 언론에서야 다루기 좋지, 인기 연예인 권상우와 김태촌. 전 그게 좀 억울해요, 사실은.” 그는 입을 틀어막고 숨는 대신, 수화기를 들었다. 좀 성격이 급한 편이라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과거 연예인 X파일 사건 때도 그랬다. “그걸로 인터뷰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너무 화가 났거든요. 다 해프닝이죠. 그래도제가 한 행동이나 살아온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그들보다 더 못된 짓을 많이 하고 일탈을 했을까? 아니거든요. 다만 공인이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기고 타깃이 될 뿐이지.” 우리가 이야기를나누는 동안, 영화사 관계자와 매니저(그는 지난해 ‘팬텀’으로 소속사를 옮겼다)가 이따금 자리를 함께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소리가 낮아지거나 내용이 달라지는 법은 없었다.

    프린티드 화이트 티셔츠는 YSL(at Koon), 데님 팬츠는 돌체 앤 가바나, 실버 뱅글은 루이 비통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런 상처를 경험하고도 이토록 건강한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에게 물었다.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더 당당해졌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무뎌지기도 하고, 그런 거죠. 저 같은 사람은 남들보다 먼저 열 받는 대신 더 빨리 잊어요.” 매일의 순간과 인생의 전반이 그러한것처럼 배우가 된 것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힘들긴 해도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제 아들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고. 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몇 장의 사진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거든요.” 아버지는 그가 생후 6개월쯤 되었을 때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가 술을 조심하고, 애초에 담배를 배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결핍이 있어서 내 자식들이 나중에,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영상을 통해 아버지가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란 사실이 참 감사해요.”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한때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좁은 셋방에서의 유년은 가난처럼 더웠다. 그래서 그는 돈의 소중함을 안다. “3~4년 전까지는 아예 안 쓰고 다 모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주위사람들도 돌아보고 정말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씩 사기도 해요. 아, 차는정말 좋아해요, 솔직히. 그래도 경제관념은 확실히 박혀 있죠.”

    결혼식 때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장한 그는 지금도 어머니를 모시고산다.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들어요. 손태영 씨보단 제가더 잘한 것 같아요, 진짜.” 권상우는 자신의 아내를 ‘늘 남을 먼저 배려할 줄알고 항상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여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서른다섯 전에는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으면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인기에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열애설이 보도된후, 그가 기자회견 자리에 서기까진 꼭 33시간이 걸렸다. 7월 17일 낮 12시부터 다음날 오후 9시까지 양측 소속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건 모종의 거래가 오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비즈니스 입장에서 볼 때, 이 결혼을 달가워할사람은 당사자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권상우는 이제 막 소속 사를 옮긴 상태였다. 당시 일부에서는 결혼 발표로 그가 잃은 액수가 1백억원 정도일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당장 17일에 계약하기로 되어 있던 대형계약 두 건이 ‘다시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넘어갔다. “새 소속사와도 계약을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으니 제재가 있었죠. 그래서 계약금을 돌려주고 다시 나가겠다고까지 얘기했어요. 그만큼 그 사람이 제 인생에 중요했고, 아기가 중요했거든요.” 적당한 선에서 재계약이 이뤄졌고 사무실 문을 나선 그는곧장 결혼을 공식 발표했다. 다만 임신설에 대해서만큼은 일체의 의혹을 부정했다. “이미 그때도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어요. 서른 셋이라는 나이에 결혼한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 2세를 만난다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마치 우리가 임신 때문에 결혼한 것처럼 몰고 가는 시선들이 싫었어요. 어떤바보가 단지 임신을 했다고 갑자기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겠어요?”그는 첫만남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모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한 소태영을 보고 한눈에 반한 그가 배우 김성수를 통해 그녀를 소개 받았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날 녹화 현장에서 손태영은 ‘연애를 할 때 너무 솔직한 성격 때문에 손해를 본 적이 있느냐’란 질문에 “사랑은 아름다운 건데,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여배우라는 직업상 이런 일들이 선입견을 만드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권상우는 그 해 마지막 날, 그녀를 처음 만났다. “손태영이라는 사람은 그 나이에 맞게 밝고 곱게 자란 여자예요. 미스코리아도 프랑스 유학을가기 싫어하니까 어머니가 ‘안 가려면 미스코리아라도 나가라’ 그래서 나갔대요. 그런 성격이에요.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인생을 포기하거나 욕심을부리지도 않아요.‘저 사람도 너무 착해서 피해를 보는구나’ 동병상련의 감정같은 것도 느꼈죠. 인간적이고 소박한 모습들이 참 와 닿았어요.” 프러포즈는3백 만원짜리 티파니 반지였다. “그래도 웬만한 다이아몬드 반지 정도는 사주고 싶었는데….” 신랑은 신부의 살뜰한 마음이 예쁘고 고마웠다. 예식과 관련한 어떤 협찬도 사절했다. 대신 둘은 손을 꼭 잡고 예닐곱 번씩 식장을 미리 찾아 식탁보의 무늬며 장식될 꽃의 색깔, 테이블 세팅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직접 골랐다. ‘이제는 사랑을 못 믿겠다’고 눈물 짓던 여자는, 결혼식이보도되던 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의 얼굴로 웃고 있었다. 권상우는?

    “배우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은 앞으로의 날들일 거예요. 가족도 늘어나고,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것들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선 달콤한 평화로움이 묻어난다. 그는 벌써부터 같이 배낭을 메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초음파 사진으로 본 루키(태명)는 미스코리아 엄마와 몸짱 아빠를 닮아 다리가 길다고했다. “이 세상에 남겨질 저의 분신이잖아요. 되게 든든해요, 진짜.” 그의 올한해는 시작부터 긍정적인 변화로 가득하다. 일에 있어서도 그렇다. 결혼 이후, 첫 작품이 된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에서 권상우는 처음으로 슬픈 멜로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 곧 드라마 촬영도 시작될 것이다. 〈돌아온 일지매〉후속으로 방영될 〈신데렐라 맨〉에서 그는 1인 2역을 연기한다. 국내 최대패션업계의 후계자와 동대문시장에서 호스티스들을 상대로 옷을 만들어 팔며 살아가는 하류인생. 현대판 ‘왕자와 거지’ 스토리다. 그와 만나기 몇분 전,인터넷에선 권상우가 100억원대 블록버스터 〈로드넘버원〉의 출연을 확정 지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창 작품을 해야 할 때 소속사 문제로 한 3년 동안일을 못해서 그게 좀 아쉬워요.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는 게 아닌데… 그래서다작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내가 꽂힌 작품은 하고 싶어요. 아직은 보여줄 게 더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일을 좀더 열심히 하려고요.” 올봄, 그는 명동한복판에 자신의 이름을 건 프랜차이즈를 오픈한다. 커피와 젤라또를 파는카페이자 팬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다. 수익의 일정 부분은 단체를 지정해 기부할 계획이라 했다. “좋은 캠페인을 많이 하려고요. 꿈은 커요. 언제나 시작은 미약하지만.” 실현 가능한 계획과 행복한 몽상 중간 어디쯤엔 이너웨어 사업에 대한 욕심도 있다. 4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섹시한 권상우가 속옷만을걸친 채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제가 몸짱 이미지가 있잖아요. 이건 아직 머릿속에만 있는 건데, 직접 모델이 되어서 캘빈 클라인의 광고 캠페인에 참여한세계적인 포토그래퍼들과 함께 작업을 해보는 거예요. 울룩불룩하게 벌크업한 근육이 아니라 진짜 예쁜 몸을 만들어서!”

    오래전, 이소룡은 이렇게 말했다. “길이 정해졌으면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타인의 오해와 편견에 맞서 우직하게 정면 돌파해 온 남자는 이제 고독한인생의 행로에 잔디를 깔고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 인터뷰 다음날, 권상우는건강한 사내아이를 얻었다. 국내는 물론 일본의 언론들이 일제히 그 소식을전했다. 변한 건 없다. 다만, 그의 인생이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다.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강혜원
      스탭
      Stylist| 정윤기(Y.K. Jung, 인트렌드), 신지혜(J.H. Shin, 인트렌드), 메이크업/고연정, 헤어/강다현(정샘물인스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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