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서울을 찾은 셀럽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

2016.03.17

by VOGUE

    서울을 찾은 셀럽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

    그의 시점이 지금의 패션을 바라보는 관점이고,그가 포착한 순간이 셀러브리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당대 최고 셀럽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 무엇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까?

    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자신이 촬영한 케이트 모스의 포트레이트 사진 앞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한 마리오 테스티노.

    그는 키가 아주 크고 건장하다(거의 2m에 육박하는 듯하다). 어깨가 넓어서 서 있으면 자세가 반듯해 보이지만, 고개가 앞으로 빠져 나온 거북목이다. 그의 걸음걸이는 약간 무게감이 있고 여유로우며, 서 있을 땐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싣고 삐딱하게 선다(일명 짝다리). 테스티노는 <마리오 테스티노: 은밀한 시선> 전시장 외벽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에 나오는 동영상을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을 바라봤다. “이건 뭐죠?” “당신이 찍은 광고 동영상이에요.” “당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촬영한 비하인드 신도 있어요.” 잠시 후 몸을 일으킨 그는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었다. “아~주 멋진 아이디어예요! 이거 전시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군요.”

    그는 지금 은은한 광택의 울 수트(버버리일 것이다)를 입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런던에서 처음 사진 작업을 시작할 당시 그의 거처는 전기가 왔다 갔다 하고, 난방은 기대할 수 없는 버려진 채링 크로스 병원의 방사선실이었다(그곳엔 마약, 알코올 중독자와 노숙자들도 우글거렸고 밤마다 미친 파티가 열렸다). 연극 사진가 존 비커스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와인 바에서도 일했지만, 웨이터로서는 영 형편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선택했다고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래서 사진가가 되기로 했죠.” 그리고 일거리를 얻어내기 위해 공중전화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댔다. “패션 에디터나 아트 디렉터들에게 전화를 걸 때면,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죠. ‘한 달 후에 다시 걸어요, 곧 출장을 가야 하거든요.’ 그때 겸손을 배웠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내일 당장 일이 없을 수 있다는 것도요.” 그가 런던 하노버 스퀘어의 영국 <보그> 사무실 복도까지 쫓아올 때면 기자들은 옷걸이 뒤로 숨기 바빴고, 당시 어시스턴트였던 루신다 챔버스는 빈털터리였던 그에게 자신의 점심 쿠폰을 나눠주곤 했다. “첫 <보그> 촬영을 기억해요? 1983년이었어요.” “어느 <보그> 말이죠? 미국? 영국? 파리?” “어느 <보그>가 당신의 첫 <보그>였는데요?” “영국 <보그>. 작은 뷰티 컷이었어요. 그 후로 32년 동안 내 사진 인생은 <보그>와 늘 함께였죠!” 전 세계 <보그> 편집장과 기자들은 마리오 테스티노를 ‘보그 사진가’라 부른다(30년간 파리 <보그> 커버만 55번, 2011년에는 파리, 미국, 영국 <보그> 9월호 커버를 전부 휩쓸었을 정도). 할리우드의 유명 셀럽들도 물론 렌즈 앞에서 자신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줄 이가마리오 테스티노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디에 앉을지 잠시 망설이는 기자를 바라보며, 말없이 소파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는 그가 촬영장에서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갔다.

    그가 촬영했던 구찌 광고 사진과 매거진 화보 사진이 전시된 전시장 내부.  전시 오프닝 행사 당일 저녁, 구찌 청담 플래그십 꼭대기 층에서는 축하 파티가 열렸다. DJ로 깜짝 등장한 김민준 외에 아이비, 고준희, 이진욱, 2PM의 택연, 닉쿤, 준호 등 여러 셀러브리티들이 마리오 테스티노를 만나기 위해 파티에 참석했다.

    Vogue Korea(이하 VK) 이번 전시 사진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어떤 건가?

    Mario Testino(이하 MT) 오, 하나를 꼽긴 정말 어렵다. 내게 모든 사진은 각자의 자리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 다이애나의 사진에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성이 있다. 그건 매우 마술 같은 효과다. 시간이 지나면 사진 대부분은 식상해지고 그 효과-영향력-도 멈추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 사진 속의 다이애나는 여전히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해 보인다. 나도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VK 아마도 그 ‘사람’ 때문이 아닐까?

    MT 확실히 그렇다. 그 대상이 불러온 마술 같은 효과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진은 피사체인 사람에 대한 것이지 않나. (그 사진은 다이애나가 사고를 당하기 몇 달 전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 둘은 처음 보는 사이였고, 목걸이와 귀고리로 화려하게 꾸민 다이애나는 무릎과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지극히 얌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테스티노는 “이럴 수가, 원래 소파에 이렇게 앉아요? 나는 소파에 이렇게 앉거든요!”라고 말하며 소파를 향해 몸을 내던졌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햇살처럼 부드럽고 평온한 그녀의 사진은 그가 다이애나에게 주얼리와 신발을 전부 벗고 소파에 편하게 앉으라고 요청한 다음 촬영한 것이다.)

    VK 패션계에는 당신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이들이 있다. 케이트 모스도 그중 한 명인데, 그녀와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MT 처음 케이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열네 살이었고, 첫 쇼인 존 갈리아노 쇼 무대가 끝난 직후였다. 내가 촬영을 하기 위해 백스테이지로 갔을 때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 한 벌밖에 못 입었어요. 나한테 한 벌밖에 안 줬다고요. 내가 키가 작대요.” 사실 케이트는 다른 모델들에 비해 키가 작았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인생에는 향수와 코롱이 있지. 코롱은 아주 많이 뿌려야 해, 왜냐하면 금세 날아가버리거든. 향수는 단 한 방울로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지. 너는 향수야. 한 방울이면 충분해.” 그게 우리 우정의 시작이었다. 요즘에는 바보같이 들릴 이야기다. 더 이상 순수한 향수는 없고, 코롱, 그러니까 오드 퍼퓸만 있지 않나. 내가 태어난 50년대에 여자들은 향수를 사용했고, 나의 어머니가 이렇게(손목과 목에 찍는 시늉을 하며), 샤넬 N°5를 한 번만 찍으면 그 향이 온종 일 갔다. 오늘날에는 알다시피 엄청나게 뿌리지 않으면 금세 사라진다. 더 많은 향수가 필요하다.

    VK 그렇다면 둘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MT 비슷한 유머 감각을 공유하고 친한 친구들도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녀는 내가 처음 봤을 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상대방에 따라 태도가 바뀌지 않으며, 한결같이 모두에게 친절하다. 삶에 대한 생각,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VK 케이트 모스가 그렇게 긍정적인 캐릭터인 줄 몰랐다.

    MT 오, 얼마나 긍정적인데! 정말이지 그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에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20여 명의 파파라치가 달려들어 사진을 찍을 땐 덜 예쁘게 나오기 쉽고, 그런 사진들이 더 잘 팔리니까.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케이트는 아주 사랑스러워서 직접 만나면 당신도 좋아하게 될 거다. 그녀가 왜 여전히 톱 모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나? 패션 에디터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계속해서 부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하지도, 함께 일하려고 하지도 않을 거다(테스티노는 매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VK 당신은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때 상대방이 당신을 믿고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는 걸 중요시한다고 들었다. 혹시 당신의 작업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의심을 갖는 사람을 찍어본 적도 있나?

    MT 내가 패션 사진을 시작한 후 셀러브리티들이 패션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잡지들은 매거진 커버에 그들이 등장하면 더 잘 팔린다는 걸 깨닫게 됐고, 광고주와 디자이너들도 곧 그걸 알게 됐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셀럽들을 찍게 됐다. 그 무렵엔 그들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을 몰랐으니, 그들로서는 내가 과연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VK 그럴 때 어떻게 대처했나?

    MT 예전에 어느 미국 여배우를 촬영할 때 프랑스 메이크업 팀과 작업한 게 기억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 헤어 스타일리스트 마크 로페즈였는데, 우리는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도록 계속 프랑스어로 대화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내가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하면 금방이라도 “오, 이런 내가 이상하게 보이나 봐”라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스태프 모두에게 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그럴 일이 없지만 말이다. 요즘엔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다 찍지 않고 내가 촬영할 대상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됐다. 난 한 가지 이미지를 고집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에 열려 있는 수용적인 사람을 택하는 편이다.

    VK 당신이 촬영한 마돈나의 앨범 커버도 전시돼 있다.

    MT 오후 2시쯤 됐을 때 피곤해진 마돈나는 “오케이, 이제 그만해요”라고 말했고, 난 아직 더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나를 위해서 일하는 거고, 내가 됐다고 말했어요.” 그녀가 들은 척도 하지 않기에 내 운을 시험해보자는 마음으로 테이블 아래 그녀의 발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봐요, 뭐 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엔 갑작스레 친밀감이 형성됐다. 전시된 마돈나 사진은 그 후에 촬영한 컷 중에서 ‘건진’ 것이다.

    2013 F/W 구찌 컬렉션 의상을 입고 파티에 참석한 모델 이승미, 혜박, 이혜정과 송경아가 포즈를 취했다.

    VK 당신은 성공의 비결이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MT 나이가 들면서 가장 큰 문제는 편안함을 느낀다는 데 있다. 편안함은, 적어도 내게는 지루한 것이다. 창의적인 작업을 요하는 분야에서 일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각에 늘 열려 있어야 한다. 80년대 초만 해도 패션계는 과거의 시각을 답습했다. 리처드 아베돈과 어빙 펜의 사진 스타일을 따라 하고, 과거의 헤어스타일, 과거에 모델이 하던 포즈를 그대로 재현하는 등. 그러나 우리는 점차 여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들이 어떻게 머리를 손질하고, 좀더 쉽게 외출 준비를 마치는가를 보면서 자연스레 오늘날 여자들이 사진에 포착되는 방식에 주목하게 됐다. 우리가 패션 사진을 볼 때 는, 그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분명한 순간에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요즘 화보 속 여자들은 이런 식으로(대충 머리를 만지는 시늉을 하며), 머리를 만지고 메이크업도 완벽하게 하지 않는다. 그게 오늘날이고, 끊임없이 그들의 삶을 지켜봐야만 하는 이유다. 모든 세대는 각기 나름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관점이 있다. 나는 58세다. 매일 거리를 싸돌아다니거나 모든 파티를 쫓아다니지도 않고, 새로운 패션 신이나 뮤지션을 일일이 찾아보지도 않는다. 나의 뇌는 이미 많은 정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온통 집중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항상 일정 부분 내 머리에 담고 있던 걸 지우고 새로운 게 들어올 여지를 남겨둔다. 그게 변화에 적응하는 나의 방식이다.

    VK 그렇다면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같은?

    MT 내가 일을 시작하던 무렵엔 좋은 사진가가 된다는 게 쉽지도 않고 정말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사진을 찍어서 필름을 현상소에 보내고 프린트가 올 때까지 일주일이 걸리기도 했으니 당연히 오래 걸릴 수밖에. 그렇지만 요즘엔 누구나 금세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다. 즉시 확인할 수 있고, 조명, 디지털 등 전문가들이 주변에 있으니 도움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스타그램이 사진을 진부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이제 완벽한 사진보다 이미지화하는 것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 내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서울 전시 팀은 모델들을 내가 찍은 사진 속 레이디 가가처럼 분장시켜 나와 함께 걷는 모습을 촬영했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자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멋진 일이다. 사진의 질을 떠나서 발상과 이미지의 가치를 재평가한다는 것, 안 될 거 없지 않나.

    VK 패션계 특유의 분위기에 지치거나 넌덜머리가 날 때는 없었나?

    MT 물론 있다.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술 같다. 절대 잡을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게 잡을 수 있는 실체로 도래했을 땐 이미 모두 다른 걸 보고 있으니까. 늘 발끝으로 서서 버티는 기분이다. 그리고 32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 자신이 그 일에 매우 능숙하다고 자신하게 되지만, 패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순식간에 교체되고 며칠 만에 잊히는 일이 다반사다. 때로 그런 면에 치를 떨기도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다시 흥분하게 만드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VK 사진 작업을 할 때 특별히 집착하는 게 있다면?

    MT 연관성을 갖고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을 할 때 연관성을 유지하려다 보면 결과물이 전통적인 이미지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걸 원하지만, 항상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VK 당신에게 ‘새로운’ 것이란 과거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의미하나?

    MT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매번 ‘신선한(그는 표현을 바꿔 사용했다)’ 걸 만들기도 어렵지만, 신선하다는 건 새롭다기보다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에 동료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가장 창의적이거나 가장 만들기 어려운 사진보다는 가장 아이코닉한 사진에 매료된다”고. 예를 들면 재키 케네디가 뉴욕 5번가를 걷는 모습을 찍은 론 갈렐라의 사진 같은 거다.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니까. 사진에서 재미있는 건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거다. 무엇이 당신을 매료시키고 무엇을 원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더 나은 걸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는 전시 개막일 바로 전날인 17일 아침에 도착해서 18일 하루 종일 행사에 참석하고, 19일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났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엔 파리, 뉴욕, LA 순으로 화보와 광고 촬영 스케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왜 모두가 그를 찾는지 이젠 알 수 있다. 마리오는, 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가장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인 슈퍼마리오니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송보라
      포토그래퍼
      HYEA W. KANG,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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