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친구들 1
마음이 잘 맞는 사람끼리 일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건 분명하다. 나이, 성별, 직업 등 모든 게 다르지만, 함께라서 더없이 즐거운 패션계 친구들!
FASHION LOVERS
합정동의 ‘아크로밧’ 플래그십 매장은 늘 떠들썩하다. 알록달록 귀여운 아크로밧 슈즈를 사러 온 사람도 있지만 주인 임재연과 수다 떨기 위해 지나가다 들른 이들도 많다. 그중에도 단골손님은 ‘레인메이커’ 디자이너 최서연와 타투이스트 최한나. “아크로밧 초기부터 엄청난 팬이었어요! 고객에서 친구로 발전한 거죠.” 아크로밧 매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서연이 말했다.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기에 서울 패션계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재연 언니는 처음 만날 때부터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었죠.” 한나 역시 동의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홈 파티에서 처음 만난 뒤 무척 친해졌어요. 그때부터 늘 한결같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죠.” 타투이스트가 되기 전, 아기 신발을 디자인하던 한나는 아크로밧 베이비 라인 론칭의 일등공신이다. “아이들 신발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워요. 그래서 실전 경험이 있는 한나에게 많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죠.” 재연의 말이다.
한편 지난해 뉴욕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모델 최준영과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김세동은 한나의 친구로서 아크로밧 매장에 드나들었다. “지난 F/W 푸시버튼 쇼에서 아크로밧 슈즈를 처음 신어봤는데 정말 맘에 들었어요.” 늘 활기차고 애교 많은 동생 역할을 하는 준영이 런웨이에 올랐던 골드 플랫폼 슈즈를 신고 말했다. “재연 언니를 직접 만나보면 개성 넘치는 슈즈가 탄생되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돼요.”
그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주말에 아크로밧 옥상에 모여 해산물과 샴페인을 차려놓고 조촐한 파티를 열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 요리 담당은 가방 브랜드 ‘브로이스터’ 디자이너이자 재연의 남동생 임종헌. 요리부터 사진까지 다재다능한 그는 레인메이커를 위해 직접 카메라를 들기도 한다. “첫인상은 좀 험상궂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에요.” 서연이 고백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예요. 둘 다 가방을 만들고 있기에 서로의 디자인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고받죠.”
지금까지는 둘씩 셋씩 짝지어 작업해왔지만 조만간 여섯 명이 함께 특별 프로젝트를 저지를 계획이다. 모두 함께 참여할 복합적 이벤트를 열고 싶은 게 여섯 명의 공통된 꿈. 가령 아크로밧과 레인메이커, 브로이스터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에 세동이 라이브 페인팅을 하고, 한나는 준영에게 라이브 타투 시연을 해주는 식이다. 재연이 모두를 바라보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제 꿈은 아크로밧이 성공적으로 전개돼 해외 프레젠테이션 때 우리 모두 함께 출장 가는 거예요. 한 팀으로서 뭐든 보여주고 싶은 거죠!”
DESIGNER’S CLUB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게 오히려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명인 디자이너라면! 하지만 나이와 성별이 전부 다른 다섯 명의 디자이너들(‘서리얼벗나이스’ 이은경, ‘더 센토르’ 예란지, ‘레이크넨’ 윤홍미, ‘쇼콩트’ 권세진, 그리고 ‘제이백 꾸뛰르’ 백지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들은 각자의 작업실이 모인 성수동에서 틈날 때마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성수동 ‘아이니드 팩토리’에 하나둘씩 차례로 도착해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막연한 관계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관심을 보인 것은 여름맞이 태닝.
“함께 모이면 ‘해피 바이러스’가 생기는 느낌이에요”라고 홍미가 설명했다. “친언니처럼 챙겨주는 은경, 기분파 란지, 이성적이고 꼼꼼한 세진, 분위기 메이커 지훈까지! 함께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다른 네 명의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홍미는? “흥이 많은 친구죠!” 다섯 명이 처음 만난 건 지금처럼 각자 브랜드가 잘 알려지기 전이다. 신인 디자이너로서 편집숍에서 공동으로 진행되는 프레젠테이션, 혹은 해외 패션 페어에 참여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 그들은 각자 브랜드가 웬만큼 자리 잡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이 서로를 지지하며 친하게 지낸다.
레이크넨은 5주년 기념 협업 컬렉션을 서리얼벗나이스와 함께 선보였고, 예란지 런웨이를 위해 슈즈를 만들기도 했으며, 몇몇이 모여 조촐한 플리 마켓을 열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함께 작업하는 시간보다 함께 맛있는 안주에 술을 마시는 시간이 더 많아요!” 큰언니 은경이 말했다. “다들 핫한 장소보다 허름하고 정겨운 장소를 좋아하죠. 양꼬치나 치킨집에 모여 맥주 한잔과 함께 끝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해요.” 다섯 명 모두 왁자지껄하게 함께할 때도 있지만, 이들 중엔 특히 잘 맞는 단짝이 있다. 홍미와 세진은 레이크넨과 쇼콩트의 사무실이 나란히 붙어 있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처음에는 레이크넨 사무실이 세진이 집 근처였어요. 동네 친구라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그러다 세진이 사무실까지 바로 옆 건물로 이사 왔죠.”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에 대해 홍미가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란지와 지훈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유독 마음이 잘 맞는 편이다. “둘 다 90년대 홍콩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서로 해석 방식은 다르죠.” 테일러드 컬렉션이라는 독특한 길을 가고 있는 지훈이 말했다. “지훈만큼 옷을 진중하게 대하는 디자이너가 드물죠. 놀 때는 더없이 재미있는 친구지만, 일할 때 보면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란지의 설명에 모두들 동의했다. 여성복, 남성복, 슈즈까지 망라한 디자이너 다섯이 모였으니 함께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모두 모여 플리 마켓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옷이나 슈즈가 아닌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GIRL’S TALK
여자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찾는 곳에 네일 숍은 꼭 포함된다. 서울에서 가장 ‘핫’한 네일 숍 ‘유니스텔라’에는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새 에너지를 얻기 위해 모이는 여자들이 있다. 네일 아티스트 박은경을 중심으로 스타일리스트 황금남, 모델 여연희, 뮤지션 경리.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서로를 더없이 잘 이해하는 친구다.
“다들 취향이 비슷하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또 네 명 모두 스트리트 감성을 지니고 있죠.” 그들이 친해진 이유에 대해 은경이 설명했다. “금남이가 스타일링한 화보, 혹은 연희가 평소 옷 입는 것을 보면 감탄할 때가 많아요.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또 경리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함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친구죠.” 네 사람이 공식 업무를 통해 처음 만난 순간에는 서로가 이토록 친해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은경과 금남의 첫 만남은 3년 전 뷰티 화보 촬영장. “뷰티 화보 촬영은 헤어와 메이크업을 바꾸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네일과 의상 스타일링을 맡은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잘 맞는 다는 걸 느꼈죠.” 현재 유니스텔라 매장을 장식한 마네킹 손 위의 화려한 주얼리 역시 금남의 손길로 완성된 것. 그런가 하면 연희와 경리는 작년 초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면서 알게 됐다. “몇 개월 동안 함께 <옴므>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둘 다 의외로 털털한 성격이라 무척 잘 맞죠.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나 몇 시간이고 얘기를 나눠요.” 대화의 주제는? “연애! 여자들은 다 똑같지 않나요?” 연희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관계가 보다 특별한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전문성에 대해 더없이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다. “은경 언니에게 네일을 받는다는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겨요. 왠지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지거든요. 지금은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릴 적 꿈이 모델이라 런웨이를 압도하는 연희의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것 같아요. 또 금남 언니는 영화 속 ‘라따뚜이’를 연상시킵니다. 작은 체구에서 폭발적 에너지를 뿜어내죠.” 이날 네 사람에게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성공 아이콘 은경(연희 역시 유니스텔라에서 네일을 받는 게 자신이 성공했다는 표식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라따뚜이 금남, 스포츠카 경리(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아이돌이지만 소수에게는 순수한 친구라는 의미), 그리고 전복 연희(오묘한 색깔의 껍데기와 속이 꽉 찬 알맹이의 전복처럼 개성 넘치고 알찬 모델).
TASTE MAKERS
이른 아침 가로수길 로우 클래식 매장에 차례로 등장한 쇼호스트 이민웅과 사진가 김진용 오진혁, 그리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비주얼 디렉터 김성현은 ‘로우 클래식’ 디자이너 이명신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밤 11시에 연락해서 바로 다음 날 모이라고 하면 어떻게 해!” 새로운 시즌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던 명신이 촬영 일정 전달을 깜빡한 것. 그럼에도 네 사람은 다 모였다.
이 중 민웅과 명신은 대학 선후배 사이. “둘 다 의상학과 출신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저 장난치고 놀 생각뿐이었어요. 저는 개그동아리 회장, 명신이는 개그 동아리 총무라고 불렸으니까요. 어느새 인기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후배 모습을 보면 흐뭇할 뿐입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해진 성현과 명신은 늘 서로가 주최하는 이벤트에 빠짐없이 참석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성현이는 알면 알수록 속이 깊은 친구예요. 실없는 고민도 진지하게 들어주죠. 다른 스타일리스트들에게 로우 클래식을 확실히 홍보해주는 것도 물론이고요.” 명신의 말에 성현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응원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비주얼 디렉터로서 로우 클래식의 팝업 스토어를 직접 꾸며주고 싶죠.”
그런가 하면 진용과 진혁은 로우 클래식과 가장 많은 작업을 하는 사진가다. 로우 클래식 특유의 감성을 담은 룩북 이미지가 두 사람의 솜씨. 명신은 진용과 진혁이 감수성이 풍부한 사진가라고 표현한다. “트렌드에 쫓기고 비즈니스만 생각하다가 두 사람을 만나면 좀더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모델 최소라가 등장한 최신 리조트 컬렉션 룩북은 진혁이 촬영했다. “명신은 좋아하는 게 확실하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잘 포장하는 재능이 있어요. 자신만의 색을 뚜렷이 유지하면서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죠. 저는 비주류적 취향을 지닌 편이라 로우 클래식 작업을 함께하며 배운 점이 많습니다.” 진혁이 말하자 진용이 덧붙였다. “명신과 저는 취향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정반대! 저는 말수가 별로 없는 반면, 명신은 늘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죠. 저에겐 없는 점을 갖고 있어 오히려 잘 통합니다.”
THE FAMILY
“2010년 6월호 <보그걸> 화보 촬영일이었어요. 100호 특집 화보를 위해 모델 열 명이 커다란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로 이동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죠.” ‘87mm’ 디자이너 김원중은 <나일론> 패션 에디터 원영은을 처음 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어시스턴트였던 영은 누나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모든 걸 해내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어요.” 패션지 어시스턴트와 모델이 친해질 확률은? “겉으로 친하게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델이자 87mm를 함께 이끌고 있는 박지운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특별해요. 표면적인 관계가 넘치는 패션계에서 진심으로 친한 친구 사이죠.”
2010년 F/W 비욘드 클로젯 패션쇼 리허설에서 처음 만난 87년생 동갑내기 원중과 지운이 모델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또 ‘87mm’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늘 영은이 함께했다. “고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영은 누나에게 연락하게 돼요. 의지가 많이 되니까요.” 원중의 말에 지운이 덧붙였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요!” “특별히 도움을 준 건 없어요.” 영은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두 사람이 직접 디자인하기 전, 온라인 쇼핑몰 시절부터 봐왔지만 평소에 워낙 옷을 잘 입는 친구들이라 처음부터 알아서 척척 잘해냈죠.”
그러는 동안 <나일론> 패션 에디터가 된 영은은 ‘87년생 친구들 특집 기획’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원중과 지운을 소개하고, 87mm 룩을 활용해 화보를 찍는 등 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봄, 87mm 데뷔 쇼 부터 스타일링은 역시 영은의 몫이다. “리허설부터 쇼가 끝날 때까지 백스테이지에서 함께했는데, 모든 게 끝난 뒤 눈물이 날 것 같았죠.” 세 사람은 언젠가 함께 잡지를 만들고싶어 한다. “최근 브랜드마다 잡지를 만드는데 우리도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국문과 출신인 지운이가 글을 쓰면 되겠죠?” “<나일론>과 87mm가 함께하는 특별 부록도 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새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하는 세 사람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원중이는 아빠 같은 친구예요. 사무실에서 저는 엄마, 원중인 아빠라고 부르죠. 하하!” 지운이 말하자 원중이 거들었다. “그럼 영은 누나는 누이!” “저에게 원중이는 정말 친동생 같아요. 반면 지운이는 친오빠 같죠.” 그렇다면 이들의 관계는 제2의 가족?
- 에디터
- 임승은
- 포토그래퍼
-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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