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늙어가는 뇌를 안티에이징하다

2016.03.16

늙어가는 뇌를 안티에이징하다

기획서는 구태의연하고 어제 간 레스토랑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둔탁하게 늙고 있는 뇌를 꺼내 깨끗이 씻어 말린 뒤 기름칠하고 싶은 마음이다. 될 법한 얘길 하라고? 2016년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기획서는 구태의연하고 어제 간 레스토랑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둔탁하게 늙고 있는 뇌를 꺼내 깨끗이 씻어 말린 뒤 기름칠하고 싶은 마음이다. 될 법한 얘길 하라고? 2016년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3년 전쯤 DNA 검사를 한 적 있다. 혹시 내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릴 운명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피를 뽑아 검사기관에 보냈고 3주 뒤 나의 뇌는 앞으로도 쭉 괜찮을 거라는 결과를 받았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거금을 들여 유전자 지도를 검증하고 나자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오버한다.” 하지만 이 검사를 통해 내 췌장이 선천적으로 좀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되도록 단것을 잘 먹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낮은 확률이지만 유방암 발병 가능성이 있다고 판명돼 나중에 폐경이 온 후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면 아주 신중하게 움직여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렇듯 자신을 알게 된다는 건 몸을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유용한 일이었다.

국제노화방지학회 설립자 겸 아시아노화방지학회 회장인 쇼사르 박사가 지난 1월 내한했을 때 <보그>에 거듭 강조한 게 있었다. 가장 근본적 안티에이징은 뇌 케어라는 것. 그러더니 이렇게 권했다. “서울의 제 파트너들이 뇌를 케어할 프로그램을 세팅했다는데 한번 경험해보지 그래요?”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한 더 클리닉 청담 윤선미 원장도 거들었다. “자신의 뇌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될 거예요. 그게 브레인 케어의 출발이니까요. 무의식을 치료해 건강하고 행복한 뇌를 만들 수도 있어요. 동시에 뇌의 하드웨어가 튼튼해지도록 영양을 공급하는 처방도 진행될 겁니다. 의사 세 명을 차례로 만나보세요.” DNA 검사만큼 구미가 당겼다. 육신의 숙명을 엿본 것만으로도 그토록 짜릿했는데 머릿속을 샅샅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큰 자기 성찰을 얻겠나!

점쟁이보다 뇌적성

뇌 탐험은 ‘MSC 브레인 컨설팅 그룹’의 안진훈 박사가 고안한 설문에 응답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기쁘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이 좋다’ ‘과학 실험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처럼 쉽지만 미묘하게 트위스트된 질문이 100개 넘게 이어졌다. 나는 거기에 ‘매우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 ‘매우 아니다’ 등으로 솔직히 답했다(질문 내용은 저장하지 않아 명확하지 않지만 답하기 전혀 어렵지 않은 수준). 며칠 후 ‘BOSI 결과 보고서’가 도착했다. 현재 나의 뇌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리포트였다.

VOGUE 이런 말씀드리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보고서를 읽는 내내 점보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가만있으면 갑갑해하고 계속 돌아다니면 또 피곤해하는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는 신체적 업무와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정적인 업무가 적절하게 결합된 일을 하는 것이 좋다”라는 대목에선 소름마저 끼치더라고요. 누군가 제 정보를 미리 박사님께 드린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예요.
Dr. Ahn 설마요, 기자님의 뇌가 말해준 것을 분석한 것뿐이에요. 그 보고서는 단순히 감성의 우뇌, 이성의 좌뇌가 얼마나 활성화돼 있느냐를 측정한 게 아니에요. 일을 주도하는 진취성, 배려와 관계를 나타내는 사회성, 일에 대한 실행력을 알 수 있는 실천성, 몸을 쓰는 성향을 측정하는 신체 활동성 등 총 여섯 가지 항목을 측정, 분석해서 컨설팅한 거죠.

VOGUE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Dr. Ahn 통계를 기본으로 하니까요.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30만 건 이상의 뇌를 분석했어요. 기본적으로는 1981년 노벨상을 수상한 신경생물학자 로저 스페리의 좌우뇌 분할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죠. 동시에 뇌의 감정 파트와 인지 파트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연구하고 여기에 심리학, 철학, 교육학의 이론을 더했어요. 그 결과 인간의 뇌 유형을 8,192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죠.

VOGUE 일반적 적성검사와 다른 건가요?
Dr. Ahn 성격이나 행동 양식의 원인까지도 알아내니 다를 수밖에요. 타고난 것은 물론 후천적으로 길러진 적성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어요. 실제로 이런 통계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곤 해요. 우뇌 활성화가 떨어지면 헤어스타일 길이가 짧아지고, 우뇌 지수 18이 넘어 감수성이 심하게 예민하면 무척 스타일리시하게 꾸미는 경향이 있거나 하는. 유선상이라 보이진 않지만 아마 기자님은 머리가 길고 별로 살이 찌지 않았을 거예요.

VOGUE 헉! 우리 페이스 타임 중이었나요?
Dr. Ahn 통계상 그래요. 우뇌가 활성화돼 있는 편인데 신체 활동 지수 또한 높거든요. 미감이 있어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몸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의지를 갖췄다면 결과는 ‘적당한 체중’으로 귀결되겠죠. 물론 뇌적성이라는 건 더 많은 요소를 교차 분석한 것이지만.

VOGUE 그렇다면 우뇌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신체 활성도가 낮아 살이 찐 거라면 ‘게으른 돼지’라고 비난하며 억지로 운동을 시키기보다 약을 처방하는 게 빠르겠군요. 성공의 경험을 주고 그때 다시 운동을 시키는 게 맞는 수순이겠어요.
Dr. Ahn 역시 ‘좌뇌 컨셉 논리형’스러운 분석이네요.

VOGUE 솔직히 제가 좌뇌형 인간이라는 결과에 좀 놀랐어요. 저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감정에 잘 휩쓸리는 데다 눈물도 아주 많거든요.
Dr. Ahn 좌뇌, 우뇌 각각의 활성화 정도를 분석하는 것과 둘의 밸런스를 토대로 도출한 ‘뇌인지 유형’은 다른 거예요. 기자님의 경우 각각의 지수만 비교하자면 좌뇌가 10, 우뇌가 14로 오히려 감정과 직관이 더 높게 측정됐죠. 그럼에도 좌뇌에 더 가까운 쪽으로 결론 난 이유는 타고난 지능과 학습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VOGUE 뭔가 어려워지는데요. 원래는 직관을 많이 쓰는 우뇌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후천적으로 학교 다니고 공부하며 이성적으로 변했다는 얘긴가요?
Dr. Ahn 맞아요, 아마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은 당신을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 인간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전형적 좌뇌형과는 달라요. 결정적 순간에 분석 대신 직관을 꺼내드는 일이 많을걸요?

VOGUE 알고 보면 세상 최고 ‘허당’인 걸 어떻게 아셨죠? 정보가 샌 거 같은데요.
Dr. Ahn 뇌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인덱스를 분석하면 한마디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어요. ‘당신은 컨셉을 디자인하여 일정 부분 소통하며 과제에 책임지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관조적 성격으로 오히려 소심한 편이에요. 리더가 되길 원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일에 대한 실행력은 매우 높은 편이라 자신의 기획이 구현되는 걸 끝까지 주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요. 이건 주도적 스타일이 일하는 방식과 좀 다른 유형이에요. 일 자체를 좋아하는 거죠.

VOGUE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직한 적 있어요.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스스로도 그걸 깨닫지 못했는데, 뇌는 정말 모든 걸 알고 있군요. 지난 행동의 이유가 플래시백 장면으로 뒤늦게 보이는 기분이랄까. 직업적성검사를 다시 하는 기분도 들고요.
Dr. Ahn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이 잘 맞아요. 좌뇌 10은 저널리스트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지수예요. 우뇌 창의력이나 감수성도 높아 뭔가를 다른 것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고요. 이런 좌우뇌 조합은 컨셉 디자이너로 딱 좋아요. 어떤 논리적 기획을 통해 창의적인 사람들과 일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거죠. 바로 잡지기자의 일 아닌가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타입은 특히 그래요. 그래야 뇌가 젊게 유지돼요.

VOGUE 브레인 케어가 안티에이징의 시작이라는 건 요즘 뷰티 업계에서도 가장 핫한 이슈예요.
Dr. Ahn 너무 당연해요. 생각이 몸을 지배하니까요.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예로 들게요. 동일한 나이와 신체 조건을 지닌 두 집단에 같은 미션을 줬어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이런 멘트를 흘리는 거죠. “나이가 좀 있으시니 다시 한 번 설명해드릴게요” 혹은 “젊으시니까 빨리 이해하시네요”라고요. 이렇게 자기 나이를 다르게 인지시킨 뒤 결과를 살펴보니 자신을 젊다고 생각하는 그룹이 훨씬 경쾌하게 움직이며 더 좋은 성과를 냈어요.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을 바꾼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뇌의 생각을 바꿔 몸을 컨트롤하는 거죠.

VOGUE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라는 그것 또한 불가능한 도전이던데요? 저는 몇 년 전 명상과 요가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느끼던 시절이 있었어요. 화도 잘 나지 않고 ‘다 지나가리라’를 인생 모토로 하루하루 잘 살았죠.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피검사 상으로도 면역력이 극심하게 떨어져 있다며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대요. 나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줄일 수 있겠어요. 갑갑했죠.
Dr. Ahn 이래서 자신의 뇌를 알고 있어야 해요. 당신처럼 우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감지해요. 마음을 다스린다고 스트레스를 피할 순 없는 거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수밖에요.

VOGUE 어떻게요? 친구를 만날까요?
Dr. Ahn 보고서에 적혀 있듯 당신은 사람과 잘 지내고 심지어 누군가 도와주기를 아주 즐기는 ‘소셜’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절대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는 없는 타입이죠. 좌뇌 때문이에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은 사람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수 없어요.

VOGUE 오 마이 갓! 그래서 우울한 날 저녁 모임을 갖고 나면 그토록 공허했던 걸까요? 돌아보면 말을 많이 한 날일수록 유독 더 마음이 허전했던 거 같아요. 술도 안 먹는데 ‘내가 쏠게’를 외치던 순간이 씁쓸하기도 했고. 그게 카드 대금 때문만은 아니었군요.
Dr. Ahn 차라리 운동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신체 활동성 지수가 낮지 않은 편이니 가열차게 운동해서 몸을 강화했더라면 좀더 발전적 기쁨을 맛봤겠죠. 무엇보다 가장 잘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직접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거예요. 남이 만든 것을 보며 기뻐하는 타입도 아니니 영화를 보거나 연주회 같은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도 최선은 아니에요. 어떤 목적이나 마감의 압박 없이 뭐든 기획하고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는 게 좋아요. 이게 본인의 뇌적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에요.

VOGUE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돌아보면 후배 사진가의 포트폴리오 기획을 도와주거나 뷰티 브랜드에서 신제품 마케팅을 의논해올 때 내 일처럼 들떴던 것 같아요.
Dr. Ahn 뇌가 기뻐하는 일이었던 거예요. 단, 명심하세요. 그게 일이 돼선 안 돼요. 뇌에는 구속이 가장 나쁘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면 적당히 즐기세요.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도 브레인 케어에 있어 바람직하지만은 않거든요. 이겨낼 만큼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나면 뇌가 젊게 활성화되니까요.

VOGUE 이건 단지 일에 관한 솔루션이 아니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건 인생에 있어 너무 필요한 거군요.
Dr. Ahn 당연하죠.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격한 운동을 시키거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책상 앞에 묶어두는 건 무의미해요. 극한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느끼며 뇌가 나빠질 뿐이죠.

VOGUE 제가 만약 좀더 어릴 때 박사님을 만났더라면, 아니 나의 뇌를 알았더라면 지난 시간이 덜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의 뇌가 점쟁이보다 더 용한 상담자가 돼주었을 텐데.
Dr. Ahn 과학으로 분석해낸 뇌적성은 정말 좋은 인생의 길잡이예요. 실제로 저의 연예인 고객 중에는 이 상담을 아주 잘 활용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리얼리티 프로는 안 될 거 같아요’ ‘토크쇼는 당신에게 쥐약입니다’ 같은 조언을 경청하죠. 좌뇌만 발달한 사람은 프리 토크에 약하거든요. 오히려 신비주의가 나은 거죠.

VOGUE 재미있지만 슬프기도 해요. 내가 스스로 한계를 긋고 시작하는 기분이랄까요?
Dr. Ahn 참고하는 것뿐이에요. 뇌는 훈련을 통해 개발될 수도 있으니까.

VOGUE 잠시만요. 뇌는 타고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Dr. Ahn 타고 나는 게 맞아요. 하지만 뇌 속에 다른 뇌를 담을 수는 있죠.

VOGUE 이건 또 무슨 안드로메다죠?
Dr. Ahn 아인슈타인이 사고하던 방식대로 사물을 이해해보고 석학들이 책을 읽던 방식대로 독서하는 식으로 훈련하는 거예요.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과를 거두는 중이에요.

VOGUE 그렇게 훈련 받으면 완벽한 뇌를 갖겠군요!
Dr. Ahn 좀 다른 개념이에요. 나의 타고난 뇌 안에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뇌, 고흐의 예술적 뇌가 공존하는 거죠. 그 결과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해지고요.

VOGUE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브레인 케어법은 없나요?
Dr. Ahn 편안한 대화와 친밀한 관계가 도움이 돼요. 가족 관계가 좋으면 뇌 건강도 좋아요.

VOGUE ‘나홀로족’은 어쩌죠?
Dr. Ahn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리고 뭐든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주세요.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 루트를 조금씩 달리해 매일 새로운 길로 회사에 출근하는 것 등이 도움이 돼요. 낯선 환경은 좋은 인지적 자극이 되니 여행이야말로 최고로 좋은 뇌 안티에이징 처방이고요.

VOGUE 저는 낯선 곳에 가면 좀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런데도 도움이 될까요?
Dr. Ahn 소심하고 안전 지향적 성향 때문일 텐데요. 당신의 뇌가 그렇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어떤 솔루션을 내리겠어요? 여행을 경험하고 싶지만 두렵고 불안하다면?

VOGUE 아주 편한 친구와 함께 떠나면 어떨까요? 여행을 좋아하고 아주 적극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과 같이 가는 거예요. 마음의 안정과 새로운 자극을 모두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Dr. Ahn 정답! 이것 봐요, 자신을 알게 되니 인생의 해답을 스스로에게 구할 수 있잖아요. ‘아니면 말고’라고 편하게 생각해버려요. 스트레스는 덜어내고 신선한 자극으로 머리를 채우면서 젊고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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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사랑하고, 노는 뇌

두 번째 단계는 나의 무의식과 감정을 치료하는 일이다. 정신과 전문의 조현욱 박사와의 상담 내용은 구구절절한 개인사로 점철돼 있으니 생략. 젊고 건강한 뇌를 갖고 싶은 우리에게 ‘감정을 케어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에 관해 나눈 대화만 공개한다.

Dr. Cho ‘정신과 의사’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VOGUE 뼈가 부러지면 외과에 가고 위가아프면 내과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거 아니에요?

Dr. Cho 정신이라는 게 의학 영역에 들어온 것 자체가 불과 100년 좀 넘었어요.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을 갖고 환자를 만나지만 사람들은 제가 어떤 부분을 고쳐주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환자를 대하는 방법도 여타 진료과와 다르죠. 가끔 진심을 담은 좋은 연기자가 돼야 할 때가 있어요. 21세기의 가장 아날로그적 치료가 아닐까 싶어요.
VOGUE 어느 분야 못지않게 실험과 연구가 발달한 곳이잖아요.

Dr. Cho 사실 사람의 뇌를 치료하고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예요. 생각을 파고들어 매뉴얼화하고 뇌라는장기 자체에 초점을 맞춰 그 시그널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에 따라 약물 치료, 전기 장치 치료 등을 하곤 하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감정이라는 게 남아 있어요. 하지만 의사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보여주며 감정을 건드리는 뇌 치료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VOGUE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우디 앨런이 무의식을 상담해 인생의 행복을 되찾고 뇌를 젊게 유지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너무 궁금했거든요.
Dr. Cho 오늘 대화 중에 많이 등장한 단어가 있죠? 젊음과 아름다움 말이에요. 그것을 느끼는 건 뇌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뇌가 뭔가를 느낄 만큼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건 명백히 정신의 영역이에요.

VOGUE 무의식을 상담하고 자신을 케어하며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게 안티에이징의 한 요소라는 말씀인가요?
Dr. Cho 젊음을 젊다고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프로이드가 건강하고 행복한 뇌에 대해 말한 세 가지가 있어요. 일(Work), 사랑(Love), 놀이(Play). 상업광고에 단골로 등장하는 세트죠.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건 설명 안 해도 아실 테고, 자신의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면 정신적 사랑은 물론 육체적 성 기능 조절도 불가능해져요. 놀이도 마찬가지예요. 일을 안 하면 노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본격적으로 잘 노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어요.

VOGUE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불편해하는지 알지 못하면 즐겁게 놀 수 없는 것 같아요.
Dr. Cho 그걸 함께 찾는 게 제가 하는 치료예요. 솔직히 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웰 에이징’ 개념에 찬성하는 사람이에요. 고통스러운 노화 과정이 한결 즐거울 수 있도록 뇌와 감정을 케어하는 것, 그게 정신과 치료 영역이죠. 노화라고 말하면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성숙이라고 바꿔 부르면 어때요? 에이징이 즐거울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일,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과 감정의 치료는 뇌를 젊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강한 뇌를 갖는 법

마지막으로 나의 피와 소변을 검사실로 보냈다. 더 클리닉 청담 윤선미 원장은 나의 뇌가 건강한 하드웨어를 갖추도록 부족한 영양소를 알아내 처방하고 나와 잘 맞지 않는 음식 궁합을 가려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Dr. Yoon ‘부식된 뇌’가 기사의 이미지 컷이라고요? 적절하군요. 활성산소에 의해 산화 손상을 입은 뇌를 표현하기에 딱 좋았다고 생각해요.
VOGUE 실제로 이런 상태라면 견디기 힘들 듯한데요. 뇌가 두개골 안에 있어 안 보이는 게 다행이에요.
Dr. Yoon 이제 기름칠하면 되죠. 최대한 ‘신상 뇌’에 가깝게 되돌려봅시다. 자세한 결과가 나오면 항산화제나 부족한 영양 성분을 더 정밀하게 처방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누구에게나 유효한, 일반적 뇌 안티에이징법을 알려드릴게요. 먼저 운동하세요. 뇌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부분을 활성화해주거든요.

VOGUE 뇌의 일부 영역을 단련하는 건가요?
Dr. Yoon 운동중추가 자극되면 주변의 뇌 전체도 영향을 받게 돼 있어요. 너무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은 뇌에는 명상이 도움이 되죠. 다음은 영양. 좋은 불포화지방산, 항산화 식품, 뇌의 주요 구성 성분인 펩타이드를 위해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하는 거예요.

VOGUE <보그> 오디언스들을 위해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 식품이 많은 건 이런 음식이다 콕콕 짚어주시면 안 되나요?
Dr. Yoon 물론 그 성분을 많이 함유한 식품군이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아야 한다는 거예요. 기자님, 피검사 결과상 달걀이나 우유, 소고기는 오히려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상극 음식이라고 써 있지 않던가요? 그런 경우 닭고기나 돼지고기, 콩으로 단백질을 보충해줘야죠.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 식품에는 영양소가 골고루 충분히 들어 있어요.

VOGUE 뭐가 좋은지 목록을 외울 시간에 가공식품 말고 신선한 음식을 찾아 먹으라는 말씀이죠?
Dr. Yoon 아울러 절대적으로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해요.

VOGUE 불가능이에요. 사실 너무 바쁘거든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는 게 원망스러울 정도예요. 멀티로 일을 해내야 하니 뭔가 집중해 장기로 일을 처리하는 뇌가 사라진 기분이에요.
Dr. Yoon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나요. 달라진 시대에 인간의 뇌가 적응하는 수밖에. 1945년에 지은 집에는 2015년산 가전제품을 꽂을 콘센트가 없잖아요. 뇌를 리뉴얼하는 수밖에요.

VOGUE 그게 가능할까요?
Dr. Yoon 앞서 말한 것처럼 운동하고 쉬고 잘 먹으며 뇌를 강하게 만드는 게 시작이에요. 그리고 뇌에 로딩이 걸린 듯 느껴진다면 너저분하게 널린 파일을 폴더별로 잘 정리할 방법을 찾으세요. 고민이나 업무를 종류별로 분류해 다른 노트에 나눠 기입하거나 자신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잠시 뇌를 쉬게 해주면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달라지는 상황이나 트렌드에 적응하는 게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새로운 자극과 적당한 스트레스는 뇌 안티에이징에 도움이 됩니다. 단련하고 쉬기를 반복하다 보면 뇌가 늙을 틈이 없을걸요.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HWANG IN WOO
    소품 제작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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