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가 만난 지방시, 질 샌더, 헬무트 랭의 새로운 얼굴 셋
디자이너들의 하우스 브랜드 데뷔전. 그리고 <보그>가 주목하는 창의성 3.
Clare Waight Keller at GIVENCHY
“모든 곳에서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지방시 아티스틱 디렉터라는 새롭고도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 영국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말했다. 그녀는 끌로에에서 보헤미안 주름 장식을 만들며 7년을 보낸 후 지난해 3월 방향을 바꿔 지방시에 합류했다. 지방시는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럭셔리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한 레이블이다.
지방시가 속한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의 딸 델핀은 클레어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었다. “말 그대로 ‘당신이 원하는 걸 하세요’라는 얘길 들었어요.” 버밍엄 출신의 클레어가 말했다. 이 말은 LVMH 그룹이 그녀에게 굉장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은 끌로에에서 웨이트 켈러가 이룬 성공에 고무된 게 틀림없다. 끌로에에서 그녀가 히트시킨 가방과 여성스러운 의상 덕분에 계산대에선 즐거운 전산 소리가 계속 울렸다.
클레어는 매 시즌 여성들이 사고 싶은 것을 잘 예측하고, 중독성 있는 패션을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저는 제 팀에 도전하며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 그 아이템을 원하나요?’라고 묻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물건에 누가 1,000파운드를 쓰겠어요? 모든 아이템은 호감을 주어야 해요. 기본 아이템을 만드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리고 파리 법원 청사의 웅장한 아치 아래에서 그녀는 남녀 공동 데뷔 컬렉션을 선보였다. 어깨가 강한 재킷, 다리가 길게 드러난 미니스커트, 대담한 프린트 드레스를 입은 세련되고 쿨한 여성들이 퍼레이드를 펼쳤다. 클레어는 끌로에의 가벼운 낭만을 뒤로하는 대신 솔직 담백한 접근 방식을 취했다. “저는 그런 변화를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끌로에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했고 제가 말하고 싶은 걸 말했다고 느꼈으니까요.” 그녀의 새로운 지방시 우먼은 뛰어난 슈즈 취향을 지닌, 날카로운 의상을 입는 당당한 피조물이다. 웨이트 켈러가 거의 모든 룩과 매치한 높은 굽의 가죽 부츠(카우보이 부츠와 1970년대 스택 힐(Stack Heel)을 결합한)는 그 시즌의 잇 액세서리가 되었다.
지방시 하우스는 두 가지 역사를 갖고 있다. 설립자인 90세의 위베르 드 지방시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조언을 받았고 오드리 헵번의 의상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이 브랜드에서 12년을 보낸, 웨이트 켈러의 전임자인 리카르도 티시가 거의 건드리지 않은 유산이다. 그는 아카이브를 우회했고 그 대신 현재 패션을 지배하는 스트리트 패션과 럭셔리 패션의 모던한 결합을 추구했다. “새로운 세대는 지난 10년 동안의 지방시를 지금의 모습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웨이트 켈러는 티시의 유산을 언급했다. “우리 옷에 스트리트웨어적 요소를 가미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프랑스 브랜드를 고르는 이유에는 세련미도 있어요. 저는 그 시크한 멋을 정말 사랑합니다. 제가 럭셔리 하우스로 간 것도 그런 시크함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방시에서 그녀의 임무는 이 두 가지 역사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녀는 파리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아카이브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지방시의 오리지널 스케치에 몰두했다. 그녀는 파리의 웅장한 아파트에서 설립자인 지방시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저는 ‘솔직히 당신이 이미 모든 것을 다 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는 ‘물론이죠!’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거기서 느낀 건 지방시가 파워풀한 여성을 대변한다는 거였어요.”
그 말이 계속 귓가에 울렸고 그녀는 지방시 오뜨 꾸뛰르 아틀리에의 노하우에 눈을 돌렸다. 이 아틀리에는 그녀가 강렬한 새 레디 투 웨어 실루엣을 만드는 걸 돕기 위해 최근 몇 년간 한 벌씩 생산하는 VIP 의상에만 집중해왔다. 그들은 드레스와 재킷에 들어갈 그녀의 시그니처 숄더를 위해 일곱 번의 반복을 거쳤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대담하고, 깔끔하고, 아주 강하면서도 모던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클레어는 무슈 지방시의 오리지널 프린트 중 두 개를 되살리기도 했다. 1961년의 클로버와 1981년의 동물 프린트다. “그것은 좀더 고양이 같은 이탈리아 동물 프린트와 다릅니다. 그의 프린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고 아주 대담하죠.” 지방시의 꾸뛰르 아틀리에를 재생하기로 한 그녀의 결정 역시 대담했다. 클레어의 지휘 아래 지방시는 지난 1월 8년 만에 런웨이 꾸뛰르 쇼를 선보였다. “꾸뛰르에는 아주 순수한 무언가가 있습니다”라고 클레어는 설명한다. “그것이 이 하우스의 궁극적 비전입니다. 지방시는 사람들이 패션의 절정을 기대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꾸뛰르 아틀리에를 갖고 있고 그것이 우리 브랜드의 일부가 아니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꾸뛰르가 부여한 위상뿐 아니라 그녀는 그것을 패션으로 들어가는 유혹적인 입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격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꿈의 관점에서 말이다. “젊은 여성들은 ‘언젠가 나도 그런 드레스를 입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므로 꾸뛰르는 어떤 하우스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만들어내죠.” 모던하면서도 전통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실용적이고, 엘리트적이면서도 접근 가능하고, 강하면서도 여성스러운 것. 지방시를 위한 웨이트 켈러의 비전이 분명해지고 있다.
Shayne Oliver at Helmut Lang
헬무트 랭처럼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의 유혹적 미니멀리즘과 전복적 섹슈얼리티는 1990년대의 상반된 미학을 보여주는 완벽한 전형이다. 그러나 랭이 2005년에 예고 없이 패션계를 떠났을 때 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였다. 랭이 없는 헬무트 랭이 럭셔리 베이식 의상을 계속 생산하는 동안 한때 그를 추종하던 그런 전폭적인 지지는 없었다. 그러나 2018년 S/S 컬렉션에서 그의 급진적 정신이 되살아났다.
이번 시즌은 헬무트 랭의 새로운 시대를 알린 데뷔 무대였다. ‘전속 에디터’ 이자벨라 벌리가 이끈 이 데뷔 무대는 셰인 올리버가 디자인했다. 그녀는 여러 명의 독창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랭의 유산을 해석해달라고 의뢰했다(현재 이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시즌별로 교대로 작업하고 있다). 벌리가 이미 날카로운 테일러링으로 구성된 캡슐 컬렉션과 쿨키드 필수품과 함께 자신의 지시 아래 만들어진 의상(랭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의 리에디션과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팔기 시작했지만 올리버가 제안한 것은 ‘이 브랜드의 언어’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올리버는 2006년에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했을 때 정식 패션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그의 파트너인 라울 로페즈는 패턴 재단을 시도하는 대신 옷을 수집해서 그것을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미니크 공화국 출신의 테일러들에게 가져갔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옷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패턴을 만들곤 했어요.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입던 학교 교복과 남성복 아이템을 가져갔습니다”라고 올리버는 말한다. 그들의 많은 옷 중에는 오리지널 헬무트 랭 의상도 몇 벌 있었다. “우리는 그 봄버 재킷, 주머니가 뒤집힌 진을 가져가서 그것을 이용해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설명했어요.”
그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했다. 컬렉션은 랭의 페티시즘을 직접적으로 응용한 것처럼 보인다. 본디지 하니스, 핸드백으로 바뀐 오버사이즈 브라, 니플 커버, 가죽 바지, 그리고 많은 검정 가죽. 그러나 오리지널 의상의 청사진도 이용했다. “컬렉션의 모든 것은 과거 헬무트 랭의 의상을 기본으로 한 것입니다.” 올리버는 설명한다. “늘어진 느낌이 나도록 모든 것을 변형했을 뿐이에요. 그의 아카이브를 포토샵한 것처럼 말이죠. 그것은 오마주였어요.”
다시 말해 올리버는 빈티지 물건을 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랭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의 유산을 진화시킨 것처럼 보였다. “제 생각에 컬렉션을 디자인하기 위해 1990년대 헬무트와 비슷한 미학을 가진 사람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자벨라 벌리는 말한다. “차라리 탐험을 하고 이 브랜드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 그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랭의 오리지널 모델들 중 몇 명이 올리버의 런웨이에 등장했다. 커스틴 오웬과 미시 라이더 같은 모델들 말이다. 슬릭 우즈(Slick Woods)와 셀레나 포레스트(Selena Forrest) 같은 현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여성 모델들도 등장했다. “저는 섹시하고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신나는 여성들을 원했습니다.”
벌리가 말을 보탰다. “그것은 정면으로 대들지 않으면서도 대립적입니다. 거대한 어깨 패드와 공격적인 실루엣을 이용하지 않고도 여성의 관능미와 파워를 기념하는 거죠.” 그래서 그의 옷은 여성의 힘을 대변하는 새로운 시대를 구현하고 있다. “현재 세계는 투쟁 분위기예요.” 올리버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매력적인 것의 힘, 여성스러움과 관능미를 지닌 것의 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Luke & Lucie Meier at Jil Sander
2017년 4월 질 샌더의 디자이너를 맡게 된 루크와 루시 마이어 부부에게 ‘질 샌더’ 하면 연상되는 엄격하고 냉정한 미니멀리즘은 너무 편협한 해석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질 샌더의 이미지를 오해합니다. 그들은 냉담함과 선과 레이저 빔을 떠올리죠. 질 샌더 쇼룸처럼 말입니다” 루크 마이어가 밀라노 본사의 살균한 듯한 공간을 가리키며 설명한다. “하지만 당신이 이 브랜드를 정말 잘 안다면 완전히 다를 겁니다. 질 샌더에는 관능적이고 섬세한 면이 있어요.”
질 샌더는 패션계에서 파워풀한 이름이다. 질 샌더가 1968년에 론칭한 동명의 브랜드는 설립자의 변덕과 함께 10년간 주인 세 명을 거치며 살아남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1999년 프라다에 매각한 후 세 번이나 이곳을 떠났고 최근 이별은 2013년이었다. 그 과도기에 바통은 라프 시몬스, 로돌포 팔리아룬가, 이제 마이어 부부에게 넘어왔다.
그들의 임명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결혼한 지 10년 된 두 사람은 공식적으로 함께 일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늘 의견을 교환해왔다. 루시(스위스에서 태났고 오스트리아인과 독일인의 피를 반씩 물려받았다)는 모범적인 이력을 지닌 꾸뛰르 여성으로 루이 비통, 발렌시아가, 디올에서 일했으며 라프 시몬스가 떠난 후 디올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루크(캐나다에서 태어났고 영국인과 스위스인의 피를 반씩 물려받았다)는 금융을 공부했지만 그 후 슈프림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8년을 보내며 스트리트웨어의 신동이 되었다. 두 사람의 결합은 깔끔하다. 게다가 절대 싸우지 않는다.
이런 분류는 그들을 약간 불안하게 한다.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지금의 논의는 현재 스트리트웨어와 하이패션 사이의 경계가 어떻게 흐려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라고 루크는 말한다. “우리가 참고로 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루시가 루크의 말에 동의했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질 샌더가 우리에게 딱 맞다고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질 샌더는 믹스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커다란 꾸뛰르 드레스를 만들 수도 있고 아주 쿨한 티셔츠도 만들 수 있어요.” 정말이다. 그들은 질 샌더에 미쳐 있다. 루시의 어머니는 그녀가 성장할 때 이 브랜드를 입었다. “그래서 제게 질 샌더는 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브랜드입니다.” 루크는 슈프림에 있을 때 헬무트 랭과 더불어 샌더가 얼마나 중요한 레퍼런스였는지 언급했다. 두 사람은 고객이었다. 그들은 질 샌더를 직접 만났다. “그녀는 쿨해요. 함께 어울려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죠.” 그래서 가능한 한 티 나지 않게 그녀의 유산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데뷔 패션쇼를 위한 유행어이기도 한 ‘소울(Soul)’을 설명해준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밀라노 쇼핑센터의 노을 가득한 콘크리트 통로에서 진행된 봄 컬렉션의 핵심은 샌더의 유산과 가벼움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과 거기에 더해진 감정입니다”라고 루시는 말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분석적인 남편과 반대로 ‘본능적인’ 파트너라고 묘사한다. 그렇다. 관례적으로 수도승 같은 흰 셔츠와 압축 솔기와 컷어웨이가 들어간 수수한 수트가 등장했다. 교묘한 의상은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어 아틀리에에서 직접 손으로 만든 코트와 셔츠 위에서 흔들리는 마크라메, 성기게 짠 니트 드레스, 신축성 있게 짠 샌들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생각하며 디자인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라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그럴 위험은 없다. 그들의 디자인은 외관뿐 아니라 가까이 봤을 때 느낌이 더 좋은 그런 의상이다.
- 에디터
- 남현지
- 포토그래퍼
- Theo Sion, Steven Meisel, Ethan James Green, Jil Sander
- 모델
- Binx Walton(@Next London)
- 글쓴이
- CLAUDIA CROFT, ELLIE PITHERS, OLIVIA S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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