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판이 뒤집힌 음악

2018.04.16

by VOGUE

    판이 뒤집힌 음악

    음악 산업의 판은 바뀌었다.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지를 넘어 ‘왜 음악인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앞으로 음악은 수도나 전기처럼 공짜가 되고 심지어 저작권이란 개념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음악가들은 투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젠 그것만 남을 테니까.”
    2002년 6월 9일, 데이비드 보위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2018년의 관점에서 이 냉소 섞인 예언은 정확했던 것 같다. 영미권의 일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마주친 여러 음악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다운로드 이후 스트리밍으로 디지털 콘텐츠 소비 환경이 완전히 바뀌는 현재, 음악으로 먹고살기란 미션 임파서블 같은 인상을 준다.

    문제는 이게 음악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먹고살기 힘들다’ 앞에 출판∙서점∙광고∙방송∙잡지 등을 넣어보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나 또한 “글로 먹고살기 힘드네”라고 말한다. 일단 글이든 음악이든 그걸 직접 팔아서 먹고살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음악을 들으려면 음반을 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콘서트, 뮤직비디오, 방송은 모두 음반을 팔기 위한 판촉 활동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이 되면서 이 구조는 무너진다. 지난 세기의 음악 산업은 사실상 음반을 만들어 팔던 제조업이었는데, 21세기에는 물건(=음반)이 팔리지 않으면서 뭘 팔 수 있을지 모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연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었다. 그래서 콘서트 티켓 가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했다. 음반의 홍보 수단에 머물던 콘서트가 이제는 주요 수익 모델이 되어버린 것이다.

    매년 미국 음악 산업의 현황을 보고서로 발표하는 닐슨 뮤직은 2017년 리포트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언급한다. 일단 인터넷 스트리밍 때문에 망한 것처럼 느껴지는 음악 시장의 규모는 실제로는 점점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음원 가격이 떨어졌어도 음악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시장 자체가 줄어든 건 아니란 얘기다. 게다가 코첼라나 롤라팔루자 같은 대형 페스티벌보다는 음악가의 단독 공연이나 작은 클럽에서 열리는 기획 공연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면 음반과 음원 다운로드 규모는 크게 줄었고, 유튜브의 비중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힙합과 알앤비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는 저스틴 비버 같은 트위터 셀러브리티의 한마디에 좌우된다.

    최근 1~2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일도 이와 동일하다. 역주행 현상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언론의 인터뷰 기사 같은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코인 노래방처럼 ‘연결된’ 버티컬 플랫폼의 영향이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열리는 대형 페스티벌은 화제성이나 관객 수가 점점 줄어들지만 단독 공연, 작은 공연장과 펍에서 열리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작은 공연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작은 공연에 대한 정보 공유 채널은 트위터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흑인음악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체감하는 변화는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전체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모바일 환경 덕분에 벌어진 이런 변화는 산업의 수익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도록 요청하고 있다.

    애초에 모바일 환경은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지나 이제는 커넥티드 카와 스마트 시티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20년 전 인터넷과 함께 모든 정보가 연결된 세계를 상상했다면 지금은 만인이 만물에 대한 연결을 상상한다. 이런 환경에서 인공지능 스피커는 그저 기능이 많은 가정용 장식품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스피커는 릴랙스를 위한 음악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넘어 단지 몇 마디 말로 인간을 세상의 혹은 거주 도시의 모든 정보와 연결해주는 단말기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문자 인터페이스는 음성 인터페이스로, 나아가 뇌파 인터페이스 등으로 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관점에서 인공지능 스피커와 음악 서비스의 결합을 살펴야 한다고 본다. 카카오와 멜론, 네이버와 YG엔터테인먼트, SKT와 SM엔터테인먼트, 빅히트, JYP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아이리버의 결합은 단순히 플랫폼과 콘텐츠의 결합을 넘어 본질적으로 산업의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결합은 인공지능 스피커니까 당연히 음악 서비스가 결합되고, 인터넷 플랫폼에는 콘텐츠가 필요하니까 이런 연결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하자.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느냐가 아니라 그 무엇과 무엇이 왜 연결되냐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더 들여다보게 하기 때문이다. 현 산업의 흐름이 ‘본질적인 변화’란 말은 그 때문이다. 21세기 초기의 음악 산업은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걱정했다면 이제는 ‘왜 음악인가’를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음악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음악을 왜 들을까?’ 혹은 ‘이 세상에 음악은 왜 필요할까?’란 질문이 필요하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왜 음악을 만드는가?’ 혹은 ‘왜 음악을 사랑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과 동일하다.

    최근 토요타는 스스로의 가치가 ‘자동차’가 아닌 ‘모빌리티’에 있다고 밝혔다. 그 둘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사실상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자동차 기업은 자동차를 잘 만드는 걸 고민하지만 모빌리티 기업은 자동차뿐 아니라 이동성 그 자체를 화두로 삼아 연결된 가치, 무선 인터넷 환경과 인터페이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게 된다. 몇 년 뒤 토요타가 플랫폼 개념의 집을 지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SKT 등이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결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터넷 포털, 통신사로 불리던 기업이 스피커를 만들어 팔 수 있다면 종합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어떨까? 2018년 CES에서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리버와 함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스텔앤아스파이어(ASTELL&ASPR)를 공개했다. 이 가라오케 기반의 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향후 SM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쇼핑을 이어주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높다. YG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와 글로벌 지향의 음악 서비스를 만들 뿐 아니라 넷플릭스와 손잡고 시트콤 와 스탠드업 코미디인 <유병재 블랙코미디>를 제작한다. 빅히트는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BTS로 바꾸고 IP 비즈니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결국 지금 음악 회사는 음악을 잘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음악에서 파생되는 가치가 무엇과 연결되느냐를 고민한다. 그것이 반드시 음악과 연관되지 않아도 좋다. 이 회사들의 가치는 음악이 아니라 점차 ‘크리에이티브’와 ‘라이프스타일’로 이동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악의 완성도보다는 그 음악이 자신의 정체성과 스타일을 반영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취향이란 애초에 그런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는 사실상 무궁무진하다.

    카카오가 메신저용으로 만들어진 카카오프렌즈라는 캐릭터를 가지고 보조 배터리, 인형, 휴대폰 케이스, 가습기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걸 생각해보자. 카카오가 장난감 장사를 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것은 브랜드에서 파생된 IP 비즈니스다. 음반이라는 물건을 만들어 팔던 20세기의 음악사는 21세기에는 브랜드를 관리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IP를 통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고 있다. 고객들에게 경험적이고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는 비전. 이것이 바로 21세기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공연 기획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SNS를 통해 팬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인터넷 기술 기반의 회사와 손을 잡는 이유다. 20여 년 전 디지털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크게 흔들렸던 음악 산업은 모바일 환경에 이르러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단지 구경꾼으로 남을 순 없을 것이다. 이들의 질문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당신의 브랜드 가치는 무엇인가?

      에디터
      김나랑
      글쓴이
      차우진 (음악 평론가)
      그래픽 디자이너
      이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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