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기 10계명
마흔 해 남짓 살면서 온갖 다이어트를 섭렵한 끝에 깨달았다. 몸매는 이벤트성 다이어트가 아니라 사소한 습관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키 164.5cm, 체중 56kg에 오차 범위 ±2kg. 몇 년째 비슷하다. 얼굴에 살이 없어서 ‘날씬’도 아니고 ‘말랐다’ 소리를 지겹게 듣지만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보기보단 무게가 나간다. 근력이 좋은 편이라 20L 생수 통도 혼자 너끈히 갈 수 있다. 말랐단 소리가 스트레스인 사람으로서 감히 조언하자면, 살을 빼는 데는 ‘다이어트’라는 것이 백해무익하다. 그 용어를 입에 담는 순간 조급해진다. 하루아침에 뭔가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쉽게 실망을 낳고, 실망은 체념을, 체념은 자학을 낳는다. 그러고 나면 남는 건 스트레스성 폭식과 되돌아온 지방뿐이다.
나도 30대 중반까지는 별의별 다이어트를 다 해봤다. 한 달 동안 하루 한 끼만 먹거나, 일주일 동안 물만 마시거나, 고기 혹은 채소만 먹기도 했다. 운동도 해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탄수화물을 분해한다는 보조제도 먹어봤다. 모두 별 재미를 못봤다. 예컨대 일주일 동안 쫄쫄 굶으면 4kg이 빠지는데, 다시 음식을 먹으면 사흘만에 2kg이 도로 찐다. 나머지 2kg도 금세 돌아온다. 그 뒤로는 물만 마셔도 살이찐다. 너무 굶어 버릇하면 몸이 영양소를 비축하려는 경향이 생겨 오히려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된다는데, 다이어트 이론이야 워낙 ‘아니면 말고’가 많아서 믿을 게 통 없지만 이것만은 몸으로 배워 안다.
다이어트 약도 권하지 않는다. 나는 다이어트 약을 먹고 우울증과 손 떨림,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이 너무 심해서 사흘 만에 끊었다. 주변에는 더러 효과를 본사람들도 있다. 십중팔구 오랫동안 날씬한 몸을 유지하다가 출산이나 스트레스 등 으로 급격히 살이 찐 사람들이다. 그들은 체형을 관리하는 법을 알기 때문에 ‘임시 저장’된 살만 제거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식욕도 조절 못하고 생활습관도 나빠서 장기간에 걸쳐 살이 붙은 사람들은 다이어트 약으로 살을 빼봤자
약을 끊는 순간 요요가 온다. 오히려 약으로 쉽고 빠르게 살을 빼본 경험이 있으니 그것만 믿고 더 방만하게 살아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는다.
운동? 물론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직장 다니면서 돈 들고 시간 드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가 힘들다. 회사 업무, 집안일은 물론이고 친구들이랑 수다 약속만 생겨도 운동은 미루게 된다. 운동이란 게 주말에 한 번씩만 해서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또한 단시간에 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근육이 불어 몸이 불고 체중이 느는 시기가 있는데,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한다.
8년 전 자궁내막증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급속히 찐 살을 빼느라 고생한것을 끝으로, 나는 다이어트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그땐 체중도 재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보다 10kg은 더 나갔으리라. 사흘이 멀다 하고 술판을 벌인것도 한몫했다. 마침 유명한 여성병원 근처에 살던 때라 동네에 나가면 모두가 임산부인 줄 알고 산달이 언제냐고 물어봤다. 살을 빼려고 별짓을 다해도 위장과 안색만 나빠질 뿐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사무실까지 도보 40분 거리를 걸어서 왕복하자 한 달 만에 체중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과 습관의 힘을 믿게 된 계기다. 그 후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칼로리를 조금이라도 더 소진할 방법을 찾고, 체중이 박스권 상단에 이르면 좀더 긴장하는 것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물론 내 몸에 맞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고 절제하는 것도 포함해서다. 그게 이벤트성 다이어트보다 훨씬 쉽고 효과가 좋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이 높다.
요즘도 주변 여자들과 얘기하면 주제가 ‘맛집, 맛집, 다이어트, 다이어트, 맛집…’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풀코스에 디저트, 설탕과 유제품이 듬뿍 든 커피까지 마시고 택시 타고 집에 가면서 “어휴, 살은 어떻게 빼지” 하는 거다. 나는 XS 몸매가 XL 몸매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선택일 뿐이다. 다만 기왕 맛있는거 먹고 편하게 사는 걸 택했으면 죄책감 없이 먹고 자기 몸을 긍정하든가, 날씬한 몸을 원하면 먹고 늘어지는 걸 자제하든가, 둘 중 하나만 했음 좋겠다. 애초부터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이란 건 없다. 체질은 시간과 습관으로 만드는 거다. 끔찍한 다이어트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내가 지키는 습관은 이런 것들이다.
1 싱겁게, 단순하게 먹는다
짠 걸 먹으면 단것이 당긴다. 그래서 디저트를 먹는다. 단것을 먹으니 입이 텁텁하다. 그래서 또 매운 걸 먹는다. 악순환이다. 일단 염분을 줄이고, 가공이 덜 된 음식을 먹고, 디저트 대신 차를 마시고,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뭔가 먹고 싶다면 이를 닦아라. 입안이 상쾌하면 음식 생각이 덜 난다. 성분표가 네 줄 이상인 제품은 먹지 않는다. 식료품 쇼핑은 반드시 배부를 때 하고, 집 안에 간식과 인스턴트식품, 밀가루를 쌓아두지 않는다. 집에 비치해도 되는 간식은 삶은 달걀, 견과류, 과일 정도다. 탄수화물 중독으로 힘든 사람들은 밀가루 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최소한 그것을 구하러 나가는 수고라도 해야 한다.
2 TV 앞에 있어야 할 건 소파가 아니다
유명 모델이자 피트니스 전문가 로저 프램튼은 “앉아 있는 습관이 당신을 망친다”며 의자를 치워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가서 TV를 켜는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마음, 누가 모르겠는가. 그럴 땐 차라리 누워서 하는 운동을 하자. 나는 TV 앞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드라마 보면서 쉬엄쉬엄 레그 레이즈 100개, 광고 나오는 동안 플랭크 1분, 영화 보는 동안 하늘 자전거 100개, 그마저도 귀찮으면 마사지볼로 근육을 풀거나 스트레칭이라도 한다.
3 내게 맞는 음식을 파악하라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라면을 열 개씩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들 복이다. 나는 아니다. 체질 감별을 받고 밀가루, 육류, 뿌리 음식, 유제품, 기름 등이 내게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그것들이 소화불량과 부종, 무기력증의 원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메뉴를 원하는 대로고를 수 없을 때도 많다. 내 체질을 안 후로는 몸에 독소가 쌓였다 싶으면 몇 끼 정도는 약속을 안 잡고 혼자서 흰쌀밥과 양배추쌈을 먹는다. 그럼 속이 가벼워지고 부기가 내린다. 자기 체질을 잘 알아두면 굶주리지 않고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
4 자가용을 버려라 여기는 텍사스가 아니다.
땅덩이라도 넓으면 내 집 주차장에서 피트니스센터 주차장까지 보도블록 한 번 안 밟고 가서 트레드밀 뛰는 것도 이해가가지만 서울은 다르지 않나. 회사를 나서는 순간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갈아 신는 뉴요커들을 본받자. 집보다 한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는 것도 좋다.
5 엘리베이터는 잊어라
계단 걷기는 가장 접근성 좋고 간단한 운동이다. 나는 20층 정도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데, 그걸 보면 처음엔 “응?” 하던 친구들도
곧 따라 한다. 계단 걷기도 귀찮아하면서 PT에 등록하면 저절로 살이 빠질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라. 피트니스는 사무실 계단, 아파트 계단, 지하철 계단을 걷는 습관부터 들이고 나서 등록하는 거라고 생각해라.
6 위장이 쉬는 날을 정한다
‘살이 빠질 때까지’라는 식의 규칙 없는 무한 다이어트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다이어트에도 휴식이 필요하고, 중간 보상이 필요하다. 내게는 3단계 체중 관리 프로그램이 있다. 1단계는 평시 상황. 일주일에 닷새는 절제를 하고, 이틀은 아무거나 실컷 먹는다. 약속도 그 이틀에 몰아서 잡는다. 2단계는 외식이 많아서 음식을 조절하기 힘든 시기로, 닷새 동안 실컷 먹고 이틀 동안 절식한다. 이른바 5:2 다이어트다. 최근 영국 서리대 연구 팀은 비만인 대상 실험에서 일주일에 이틀만 600kcal로 식단을 제한한 5:2 다이어트가 매일 칼로리를 제한하는 열량 계산 다이어트보다 체중 감량이 빠르고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증명했다. 밑도 끝도 없이 굶는 건 힘들지만 ‘48시간 뒤에 맛있는 걸 먹자’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체중이 박스권 상단에 닿으면 비상 체제인 3단계, 16시간 단식에 돌입한다. 그래 봤자 8시에 저녁을 먹으면 다음 날 12시까지 굶는 거니까, 아침 한 끼 거르는 것뿐이다. 어차피 바쁘면 거르기 일쑤인 아침 한 끼. 그런다고 하루 이틀 만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진 않는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해보고 효과가 있는지 판단해서 다음 계획을 정하라.
7 매일 같은 시간 체중을 잰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에 갔다가 체중을 재는 게 오랜 습관이다. 그럼 좀 덜 먹거나, 운동을 조금 더 하는 식으로 조절할 수 있다. 다이어트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경각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8 집에서는 운동복을 입는다
잠옷은 잘 때만 입고 평소엔 가장 좋아하는 운동복을 입어라. 홈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스포츠 레깅스를 입으면 커피 물 끓이면서 스쿼트 열 개, 스마트폰 보면서 스트레칭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된다. 집 안에서도 활동성을 떨어뜨리지 마라. 청소, 빨래, 정리 정돈 등 살림을 스포츠라 생각해라. 당신이 사랑하는 패셔너블한 운동복이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줄 것이다. 종일 집과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머리와 입과 손가락만 쓰는 도시 샐러리맨이 육체노동자와 똑같이 하루 세끼 먹는 걸로 부족해 집에서 게으름까지 부리면 당연히 살이 찐다. 중년 남성들의 가사 참여도와 비만율이 반비례하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9 주량을 조절해라
탄산음료는 살찐다고 끊고, 탄산수와 과일 주스는 비싸다고 안마시면서 술은 정신 잃을 때까지 마시는 멍청한 짓, 나도 많이 했다. 나중에야 깨달은바, 취하도록 마시는 술의 칼로리와 비용이면 콜라건 탄산수건 주스건 양껏 마실 수 있다. 소주 한 병은 473kcal로, 밥 한 공기(313kcal)보다 칼로리가 높다. 나는 술자리에 갈 때 ‘오늘은 소주 한 병’ ‘오늘은 맥주 두 캔’이라고 미리 주량을 정하고, 내 술을 따로 시켜서 스스로 따라 마시는 게 절주에 도움이 되었다.
10 조급해하지 마라
‘한 달 만에 10kg 감량!’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신비의 음식!’ 이런 말에 혹하지 마라. 그렇게 빼봤자 그 살은 멀리 안 간다. 기간을 길게 잡고 느긋한 마음으로 쉬운 것부터 실천해라. 일주일에 250g만 빼도 한 달이면 1kg, 1년이면 12kg이다. 시간과 습관의 힘을 믿어라.
- 에디터
- 백지수
- 포토그래퍼
- 안주영
- 모델
- 김이현
- 스타일리스트
- 임지윤
- 헤어
- 한지선
- 메이크업
- 홍현정
- 글쓴이
- 이숙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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