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찬가
릴리 레이노-드와가 보낸 짓궂은 초대장에 놀라지 말 것. 전시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는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현상에 관해 던지는 마땅한 질문이다.
6월 1일부터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전시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상식이 있다.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 미국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 마파(Marfa)다. 미술관의 본질적 형태에 한계를 느끼던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작업물을 영구 설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황무지나 다름없던 도시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었다. 발상의 전환을 이룬 거장의 창의적 행보로 보이나? 아니면 작가의 나르시시즘 그리고 예술의 상업화와 사유화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느껴지나?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는 릴리 레이노-드와(Lili Reynaud-Dewar)가 2017년 가을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구상한 작품이다. 젊은 예술가 일곱 명은 저명한 교수, 큐레이터 등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고 황량한 들판에 둘러앉아 예술에 대한 다양한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걷잡을 수 없는 기묘한 사건이 벌어진다. 스포일러임을 감수하고 좀더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80분짜리 호러 영화다.
릴리 레이노-드와의 작품 세계는 그녀가 소재로 삼았던 도널드 저드와 달리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퍼포먼스, 영상, 설치,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전시 공간에 침대나 거대한 이빨을 설치하기도 하고 책 속 텍스트를 낯설 정도로 큰 사이즈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퍼포먼스를 할 때면 자신의 몸을 붉은 빛깔로 칠해 도드라지게 보이게 만들기도 하고 은색으로 칠해 보호색 속에 숨어버리기도 한다. 낯섦이 주는 혼돈의 메시지는 결코 온순하지만은 않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듯 삐딱한 각도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저돌적 질문을 건넨다. 그 방식은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 속 대사 “죽은 영혼이 와서 기억처럼 공간을 떠도는 느낌이 섬뜩하네요. 너무 미니멀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처럼 유쾌하게 풀리기도 한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를 감상하고 나니 작가가 전시장에 깔아놓은 레드 카펫이 붉은 광장처럼 보였다.
공간 전체가 작품 같다. 카펫, 유리 패널 기둥, 글씨 등이 모두 빨간색이다.
관람객이 전시장을 편하게 느끼거나 자유롭게 앉아서 볼 수 있도록 카펫을 깔곤 한다. 오브제나 조각, 커튼 같은 것까지 포함해 공간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함축해 작업하는 편이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는 80여 분짜리 영화지만 이에 한정
짓지 않고 요약본을 반복 재생하는 시노그래피와 등장인물의 초상 사진이 담긴 유리 모뉴먼트를 함께 설치했다. 조각마다 인물을 매칭했는데 사람에게는 여러 면이 있다는 점과 시간이라는 개념을 함께 보여줄 수 있도록 작업했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의 시작점에 대해 듣고 싶다.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그동안 혼자 작업을 많이 해서 여럿이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나는 늘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작년에 마파라는 도시 전체가 도널드 저드를 표현하는 예술 관광지가 된 현상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도널드 저드의 기념비적 성과나 유산을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이 현상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작가적 고민이 있었다.
도널드 저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작가였나.
학창 시절 도널드 저드를 모르는 친구는 없었지만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옛날 작가잖아’ 같은 반응이었다. 나에게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작가인데 왜 동기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까, 무엇이 상실되었을까. 이 질문은 세대 차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저드는 자신의 작업물을 영구 설치하기 위해 마파에 부동산을 구매했고 그곳에 동료 미니멀리스트의 작업물을 설치했다. 전시장과 도서관, 아카이브를 포괄하는 저드 재단이 설립되었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야말로 신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로 인해 마파는 관광지가 됐지만 미술품을 감상하기 위해 텍사스 복판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개 백인 중산층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이 예술가로 인한 도시의 변화에 비판적이었다. 단순히 뮤지엄만 만든 게 아니라 도시 전체 부지를 샀지 않나. 이를 유쾌하게 비판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았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직접적이고 은유적으로 드러난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사실 마파의 사회적인 변모에 기여하는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마파까지 이동하지 않았나. 나는 사실 예술가들이 ‘사회의 이런 점은 공정하지 않아!’라고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공부한 학교에서는 마파 인근 부지를 매입했고, 또 내가 강의하는 예술학교에선 그 옆의 부지를 매입했다. 도널드 저드 재단도 아닌데 왜 예술학교가 마파에 부지를 매입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우리도 팽창주의에 동참하는 셈 아닌가. 이런 현상을 패러디함으로써 자아비판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래 저드의 미니멀리즘에는 섹슈얼리티 얘기가 전혀 없다. 이곳에 오는 작가들은 대부분 남성 이성애자인데 실제로 우리를 포함해 젊은이들은 이 공간을 좀 다른 식으로 생각한다. 만남의 장소, ‘썸’을 탈 수 있는 공간으로도 말이다. 게이들의 미팅을 주선하는 앱, 근처에 있는 데이트 파트너를 찾아주는 앱처럼 섹슈얼리즘 얘기도 넣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
자아 성찰하는 심정이 호러로 표현된 지점이 흥미롭다.
도널드 저드의 전시 공간은 대단히 이성적이다. 메탈릭 구조물이 사막 한가운데 있다. 이상적이고 투명하고 모든 게 설명 가능한 세상이다. 반면 호러는 히스테릭하고 피도 나오는 등 뭔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저드의 예술 사조와 정반대되는 것들을 시도하고 싶었다.
예전에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도 있지만 이번 작품에는 직접 출연했다. 신체로 어떤 환경이나 상황을 만든다. 작품 속에서 당신의 몸을 어떤 도구로 활용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
육체를 통해 고통과 개인적 감정,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건 아니다. 작품에서 텍스트를 많이 활용하는데 춤을 출 때는 말할 필요가 없지 않나. 다만 뮤지엄이라는 공간은 상투적이라 사회적 상황 같은 게 빠져 있을 때가 많으니 이럴 때 몸을 활용해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신 말대로 작품마다 텍스트가 아낌없이 등장한다. 시 제목에서 전시명을 따거나, 문학 작품 일부를 인용한다. 의미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거리낌 없이 활용하는 듯하다.
자서전 종류의 텍스트 인용을 좋아한다. 특히 기욤 뒤스탕,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의 텍스트다. 확대해서 일종의 모뉴먼트화하는 건데 물론 허락 없이 차용한다.(웃음) 사실 독서는 책과 나의 개인적 경험인데 이걸 공공 전시 공간으로 끌어들이면 완전히 색다른 경험이 된다. 때로 책을 같이 읽는 시도도 하는데 쉽진 않다.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전시 공간에서 나체로 춤을 추는 일은 쉽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책 읽기도 불편한 경우가 있다. 나에게는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경험을 오가는 이런 시도가 흥미롭다. 일본에서 전시를 계획 중인데 제목은 ‘몸도 책처럼 공공적일 수 있다’다. 사람의 몸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고 책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다는 뉘앙스를 담았다.
페미니즘 잡지 <피튜니아(Petunia)> 창간 이력이 흥미롭다.
페미니즘 잡지이자 컨템퍼러리 잡지다. 페미니스트 잡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고 있다. 요즘에는 ‘섹시’와 ‘페미니스트’가 잘 어울릴지 판단이 안서서 ‘섹시’에 관한 콘텐츠를 넣을지 여부를 고민 중이다. <피튜니아>를 창간한 10여 년 전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여성 작가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당시 페미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의제가 없이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 다양한 사조가 있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 전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였다기보다 페미니스트들이 발굴하지 못한 여성 작가들처럼 다른 것들을 파헤쳐보고 싶었다는 게 더 맞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을 테마라기보다 일종의 방식으로 본다. 여성의 권리 증진만 다루기보다 사회 전체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루려고 한다. 주변에 늘 게이 친구들이 있었고 늘 트랜스젠더나 게이처럼 지배적 위치의 반대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예술가가 된 후에도 여성으로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느꼈고 이런 관계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지 궁금했다.
약자에 대한 관심이 작품에서 몸, 섹슈얼리티, 권력 관계 등 확립된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드러나는 걸까.
키가 작아 늘 비판하고 항의하는 성격일 수 있다.(웃음) 법학을 공부했기에 분석과 비판, 성찰에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이 계속 활력을 갖기 위해서는 비판이 필요하다. 예술도 뮤지엄화, 기관화되어 늘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서 벗어나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90년대 교육기관을 비판하는 사조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미니멀리즘이 남긴 것, 그 너머>에는 예술 활동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당신은 그 질문에 대답을 찾았나.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내가 원래 지니던 조건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더 넓은 범주에서 보면 예술 활동이 사회적 이슈를 비판하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사회적 이슈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를 작품에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을 예술이 볼 수 있게 해준다면 정말 큰 성공이다. 내가 예술 활동의 의미를 이미 다 찾아서 더 이상 찾을 게 없다면 너무 심심할 것 같다. 계속 그 의미를 찾아나갈 것이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이지형, Courtesy of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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