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마르니의 새로운 주인

2018.08.06

마르니의 새로운 주인

마르니 하우스를 물려받은 프란체스코 리소. 이 청년을 사로잡는 건 많다. 영화와 빈티지, 댄스와 현실에 푹 빠진 아름다운 몽상가와의 만남.

Vogue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Francesco Risso 우리 사무실에도 한국 인이 많다. 창의적인 그들을 보며 과연 저들이 온 나라는 어떤 곳일지 궁금했다.

Vogue 부디 그 비밀을 찾길. 마르니 하우스에 자리 잡은 지 1년 6개월쯤 되었다.
F.R. 놀라운 시간이었다. 사실 마르니에서 완전히 새로운 행성에 착지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어떤지, 어떤 생물이 사는지, 또 여기서 내가 뿌릴 씨앗은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제야 나만의 꽃을 피우고 있다고 믿는다.

Vogue 마르니는 곧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였다. 그녀가 마르니를 떠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팬도 많았다.
F.R. 콘수엘로와 그녀의 남편은 이전에 밀라노에 존재하지 않던 브랜드를 만들었다. 밀라노가 숨겨놓은 아주 작은 보석 같았다. 마르니가 마르니일 수 있었던 건 콘수엘로의 다채로운 취향 덕분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방식은 매우 지적이었다. 나만을 위해 패션을 즐기는 여성을 위한 옷이었다. 무엇보다 패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 점은 나와 비슷하다. 내가 마르니 팬이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이젠 모든 걸 존중하면서도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프란체스코 리소가 선보인 2018년 가을 마르니 컬렉션. 다양한 소재를 믹스하는 아이디어는 마르니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했다.

Vogue 마르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F.R. 컬렉션은 늘 이야기로 시작한다. 초반엔 책을 쓰는 작가 혹은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과 비슷하다. 그게 내 과정이다. 이후엔 시각적 자료로 넘어간다. 가령 지난 남성복 컬렉션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콜라주 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양한 인물의 다이어리를 잘라 스스로의 다이어리를 완성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여기서 여행을 떠나는 여성복 컬렉션의 여인으로 이어졌다. 최신 기술 가운데 살지만,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 없는 여인쯤 된다.

Vogue 추상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듯하다.
F.R. 어느 순간부터 시각적 아이디어가 들어간다. 무엇보다 내 팀원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감독이 배우나 스태프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듯 나 역시 마찬가지다. 수없는 미팅과 대화를 나눈 뒤 어느 순간 사무실에서 우리가 생각하던 가방이 등장하고, 우리가 꿈꾸던 옷이 탄생하는 경험은 꽤 놀랍다.

Vogue 프라다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그 경험도 굉장했을 듯하다.
F.R. 미시즈 프라다 옆에서 일하는 건 설명하기 어렵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할 수 밖에. 처음엔 니트웨어 디자이너로 입사했지만, 곧 컬렉션을 함께 준비했고, 미시즈 프라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했다. 아주 컨셉추얼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완벽한 코트가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리소가 마르니에서 제안하는 아이디어는 좀더 젊은 세대를 아우를 만하다. 스포티한 아노락과 펠트 소재 케이프가 바로 그것.

Vogue미시즈 프라다가 어떤 조언을 남겼나?
F.R.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Vogue 그전엔 어디에 있었나?
F.R. 피렌체에서 패션을 공부한 뒤, 뉴욕 FIT로 갔다. 그다음엔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미시즈 안나 몰리나리가 불러서 모데나 외곽의 작은 마을로 갔다. 그다음은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팀이었다. 거기선 편집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Vogue 전 세계를 돌며 패션을 공부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을 처음 발견한 건 언제였나?
F.R. 난 사르데냐 근처의 요트 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요트에서 지냈고, 덕분에 난 태어난 뒤 5년간 지중해 바다를 떠돌았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남들과 달랐을지 모른다. 그다음에 우리 가족은 제노바로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보다 열 살은 많은 누나들과 형들까지 대가족이 모여 살았다. 제노바 유명 재단사였던 외할머니 영향 때문인지 아홉 살때부터 누나들 옷을 잘라 새 옷을 만들곤 했다. 몰래 누나들 옷방에 가서 내 맘대로 자르고 붙이곤 했다. 지금도 누나들과 이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내가 당시에 얼마나 ‘옷장병’에 걸려 있었는지 말이다.

빈티지한 소재를 바탕으로 완성한 30년대와 40년대 실루엣의 드레스와 스커트. 특히 시퀸 장식이 오묘한 멋을 자랑한다.

Vogue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다.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점이 있나?
F.R. 하나에 꽂히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 한동안 피카소가 만든 화병에 푹 빠져 있었다. 그다음엔 스웨덴 스타일 화병만 찾아봤다. 그러고선 막달레나 수아레즈 프림케스의 작품을 살펴보다 결국 그녀와 협업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Vogue 창고가 엄청날 것 같다.
F.R. 관리가 안 될 정도로 아카이브가 엄청나다. 사실 마르니 입사 소식을 전해 들은 때도 짐 때문에 새 아파트를 보러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창고에는 어릴 때부터 수집한 옷과 소품 등이 넘쳐난다. 가장 많은 건 세일러 수트일 것이다. 모두 이베이 때문이다. 만약 60년대 플라스틱 거울에 꽂히면 한 달 동안 그것만 찾는다. 때로 카우보이 셔츠일 수 있고, 30년대 스타일 장난감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열정을 통해 배우는 것도 많다.

Vogue 지금 빠져 있는 건 뭔가?
F.R. 춤이다. 나이지리아 댄서들이 선보인 공연 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있다. 몸을 움직일 때 탄생하는 라인이 아름답다. 단지 아이폰 위로 스크롤만 하다가 끝내고 싶진 않다. 이러한 관심을 새로운 형태의 경험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최첨단 기술과 현대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다루고 싶었다는 리소. 그 속에 고양이 프린트처럼 앙증맞은 아이디어도 숨어 있다.

Vogue 그렇다면 댄서들과 마르니의 만남을 기대해도 되겠나?
F.R. 뭐든 가능하다. 마르니는 독특한 상상이 이루어지는 하우스다. 재미난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일 수 있고, 이전에 보지 못한 아동복을 발표할 수 있다. 그런 것이야말로 매우 마르니적이라 믿는다.

Vogue 패션은 다양한 분야를 모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장점이 있다.
F.R. 패션은 현재를 해석하는 아주 문명적인 방식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운인가. 창의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Vogue 스스로 행운아라 생각하나?
F.R. 물론이다. 책임감을 아주 많이 느끼긴 했지만, 여전히 난 행운아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신선혜
    모델
    이혜승, 천예슬, 하현재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박혜령
    세트 스타일링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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