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이토록 결정적 순간
<보그>와 함께한 송경아의 이토록 결정적인 순간.
“1980~1990년대 패션계는 황금시대였어요. 슈퍼모델 군단이 등장해 그야말로 모델다운 모델, 가장 화려하고 멋진 모델이 뭔지 보여줬죠. 그 시대를 오마주하고 싶었어요.” 송경아는 오랜 동료인 <보그> 패션 디렉터와 함께 이번 화보를 구상했다. 촬영장 벽에는 1990년대 슈퍼모델(퍼스트 네임 클럽으로 지칭되던 나디아, 앰버, 샬롬, 스테파니, 크리스티, 린다, 신디!)이 대거 등장하고 리처드 아베돈이 촬영한 베르사체의 관능적이고 역동적인 광고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이런 사진은 고등학생 송경아의 다이어리에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H.O.T.나 서태지의 사진을 모을 때 송경아는 클라우디아 쉬퍼,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사진을 오려 콜라주했다. 학교 근처 영풍문고 외국 서적 코너에서 이탈리아판 <보그>를 사고, 해외 톱 모델들의 에이전시 현황과 슈퍼모델 톱 10 리스트를 소개한 잡지를 꼬박꼬박 모았다. 한국에 <보그 코리아>가 창간하면서 국내 패션계의 새 시대를 열던 시기다(올해 25주년이 된다). “연예인이 아니라 모델들을 좋아했죠. 패션 잡지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더 강인하고 아름답게 보였거든요.” 10대의 송경아는 모델을 꿈꾸진 않았다. 어머니가 키가 큰 딸의 자세 교정을 위해 모델 학원에 보낸 게 전부다. 게다가 1997년 슈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에 출전하긴 했지만 부모의 반대와 학업을 위해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을 하진 않았다. 이윽고 스무 살이 된 송경아에게 <보그>와의 첫 촬영 기회가 왔다. 당시 에이전시와 함께 참석한 압구정동에서 열린 자선 파티에서 <보그> 패션 에디터와 만났고, 단번에 다음 호 패션 화보 모델로 캐스팅된 것이다. 송경아는 여전히 그 잡지를 간직하고 있다. “1999년 3월호 도나 카란 특집 화보였어요. ‘어반 시크’가 주제였고 봄 컬렉션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촬영했죠. 사실, 거리에서의 촬영은 처음이라 긴장했고 또 너무 추웠죠.”
그때부터 2021년 지금까지도 송경아는 <보그>를 비롯한 한국 패션 세계가 사랑하는 모델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불가능을 매번 가능케 하는 히어로에 가깝다. 20여 년간 변함없는 몸매, 어떤 옷을 입혀도 완전하게 연출해내는 얼굴 그리고 황금 비율에 가까운 포즈와 연기력 등 많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시대를 관통한다는 것이야말로 그녀만의 대단한 능력이다. 송경아를 처음 캐스팅한 당시 에이전시 매니저이자 현재 신화사엔터테인먼트 대표 신귀란은 ‘세련’이란 단어부터 언급했다. 너무 익숙해서 식상한 단어를 꺼내는 이유는, ‘세련’은 패션계에서 모든 것의 원천이지만 원한다고 가질 수 없으며,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송경아가 지금까지도 패션과 뷰티 화보에 계속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련된 이미지 덕분이죠. 패션을 사랑하고 모델 일을 즐기는 그녀의 태도가 그 세련된 태도에 활력을 불어넣는 거죠.”
<보그> 편집장 역시 송경아가 지닌 ‘타임리스의 현대성’에 동의한다. “1990년대에 유행했던 아방가르드한 옷을 입혀도, 2000년대에 유럽의 오뜨 꾸뛰르 드레스를 입혀도, 또 2021년 지금 최신상 옷을 입혀도 송경아는 20여 년 넘게 늘 현재적이었어요. 그리고 계속 현재적일 겁니다.” 바꿔 말하면, 송경아는 한국 패션계를 한 번도 질리게 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송경아는 그때그때 모던한 모델로 재탄생되어온 타임리스 모델입니다.” 흔히 반짝임과 섬광으로 얘기되는 모델 인생에서 이것은 축복이다. 신광호 편집장은 모델로서 송경아의 변함없는 가치에는 다른 능력도 일조한다고 덧붙였다. “모델 외에 일러스트 북 발간, 인테리어, 방송 등 여러 분야에서 재능이 순차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어요. 엄마가 된 뒤에는 삶의 층위가 더 다채로워졌죠. 정말이지 굉장한 능력 아닌가요? 성격이야 말할 것 없죠. 모델 선후배 사이에서 송경아가 제일 유머러스한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5월호 송경아 패션 화보 사진을 고르다 잠시 멈춘 편집장은 중간중간 감탄사를 뱉으며 말했다.
패션 피플에게 송경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더 묻자 다들 “이 세계에서 그런 성격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라는 말로 그녀를 기억했다. 특히 ‘쎈’ 사람들이 모여 늘 최고의, 가장 창의적인, 패셔너블한 결과물을 누구보다 신속히 발표해야 하는 스트레스와 압박의 세계에서 송경아는 어떻게 비무장지대로 남은 걸까. 2000년대 초, 현재 <보그> 패션 디렉터인 손은영이 막내 기자였던 시절의 송경아는 이미 톱 모델이었다. “그때도 오늘처럼 메이크업은 손대식, 헤어는 김정한으로 팀이 꾸려졌죠. 20년 전의 우리가 여전히 함께 <보그>를 찍고 있군요! 이 나이에도 패션 & 뷰티의 메인 경기장에서 러브콜을 받는 모델은 송경아예요. 모델로서 완벽한 용모뿐 아니라 특유의 쿨한 태도가 큰 몫을 했죠. 특히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에게 친절합니다. 게다가 입담도 좋아서 촬영장 분위기를 재미있고 부드럽게 만들죠.”
그러나 정작 송경아 자신은 패션 세계에서의 일이 재미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밖에서 패션계를 보면 차갑고 직선적이며 세다는 이미지가 있다지만, 저는 일반적이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흥미롭고, 또 배울 점이 많다고 느껴요. 그런 인물들이 모여 하나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완성해가는 과정도 좋고요. 함께 하는 일인데 제가 까다롭게 굴거나 마음에 안 드는 점을 지나치게 표출하면 일에 지장이 있잖아요. 늘 좋은 기운을 나누며 멋진 결과물을 완성하고 싶을 뿐이에요.”
송경아가 현재 소속된 에이전시 에스팀의 매니저 이소명은 “원래부터 착한 사람”이라고 그녀에 대해 말한다. “제가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다고 했더니, 언젠가 건강 주스를 한 박스 챙겨 회사로 보내준 적이 있어요. 촬영이 길어져 식사를 못하게 되면, 귀가할 때 제 손에 먹거리를 꼭 쥐여줘요. 감동을 주는 사람이죠.”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톱 모델의 꼭짓점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이유를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고 송경아는 대답했다. “방송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시간 관계상 ‘그냥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답해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리 되나 보다’라고 여기는데, 저는 정말이지 많이 노력했어요. 일례로, 20년 동안 제 몸무게는 변하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체중에 변화가 생기면, 식사 조절부터 들어가 운동하고 부위별로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에 집중해 원래 상태로 되돌려놓죠.” ‘어릴 때’ 해외 패션 도시에 진출한 것도 노력의 일부라고 그녀는 덧붙여 말한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도전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세계였지만, 일단 갔어요.” 송경아는 2004년, 아시안 모델이 서야 할 런웨이가 드물던 시절 뉴욕에 진출해 당대 뉴욕 최고의 패션쇼와 유명 백화점 광고에 등장했다. 또 유럽에도 진출해 구찌 같은 패션 하우스에서 그녀를 원했다. “그림, 디자인, 글쓰기… 제가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해요. 아마 모델 일만 해왔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패션계에서 일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책도 발간하고 전시도 열었던 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이 저에게 또 다른 작업을 제안하고 방송계에서도 출연을 요청했죠. 그러면서 좋아하는 모델 일도 열심히 병행하다 보니, 오늘처럼 여전히 <보그> 촬영을 할 수 있었죠.”
그녀의 재능은 익히 유명하다. 5년 전 송경아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어느 그룹전에 참가 중이었고, 인터뷰 장소는 자신이 전개하는 브랜드 퍼스트루머의 쇼룸이었다(고객에게 보낼 가방에 직접 레터링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보그> 패션 에디터들은 물론, 독자들 중에 <패션모델 송경아, 뉴욕을 훔치다>를 본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 솜씨가 탁월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곧 유화를 배울 거예요. 얼마 전엔 제주에 한 달간 머물며 인테리어 서적을 준비했고(엄마와 함께 놀고 싶은 딸 해이를 돌보느라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지만요!), 새로 마련한 북촌 세컨드 하우스의 인테리어 공사도 마쳤어요.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늘 의외의 자재를 제가 고른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송경아는 언젠가 건물 전체를 카페나 에어비앤비, 인테리어 소품 가게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바꿀 계획이다. 이렇듯 여러 활동을 얘기하면서 또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아, 제가 오래 일할 수 있는 핵심 ‘키’는 이것 아닐까요?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거죠. 배우고 도전해온 것이 제 영역을 확장해줬어요.”
그녀처럼 자신을 표현하며 살고 싶지만 방법이 묘연한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경험이 다채롭지 않으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인물인지 알기 어려워요. 저는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나라를 다녔어요. 말 그대로 맨땅에 부딪혀보기도 했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계속 도전하고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녔어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각도 많이 하고 나를 탐구했죠. 그러자 뉴욕에서 일할 무렵,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객관적 시선으로 나 자신이 보였어요. 익숙함의 그늘에서는 자신을 알 수 없어요. 여러 시도를 거친다면 자신을 더 알게 되리라 믿어요. 물론 우발적인 일이 생기고 굴곡이 져서 흔들릴 때도 오겠죠. 하지만 한번 생긴 심지 덕분에 실수할 확률이 줄어들 거예요.”
그렇다면 40대 송경아는 삶의 안정 궤도에 진입했을 까.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단란한 모녀 사진 그리고 엄마와 모델, 아티스트로서 삶을 보며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송경아 역시 아이가 태어나고 자신에게 펼쳐진 또 다른 세계에 적응해가는 중이다. “해이가 막 태어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할 줄 알았지만,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무조건적 모성 신화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송경아의 답변은 또 얼마나 현대적이고 세련됐는지! “해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내 딸이구나, 내가 엄마가 됐구나 실감하면 그 행복의 만족감이 깊어져요.” 모델, 엄마, 개인으로서의 송경아. 이 세 개의 삶을 그녀는 온전하게 이끌고 있다. “그 세 가지 모두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내 삶의 일부이기에 결국 ‘나’로 귀결돼요. 이들을 어떻게 어우러지게 하느냐가 관건이죠.”
그 세 영역 중 송경아의 진짜 삶은 사실 딸 해이를 통해 이미 들었다. 송경아는 한 손에는 해이를 안고 다른 손에는 육아용품이 가득 담긴 빅 백을 메고 <보그> 촬영장에 들어섰다. 그곳에 촬영 중인 다른 모델이 있었는데도 해이는 이렇게 소리쳤다. “우리 엄마도 모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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