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케어’ 소비 심리는 정상 작동 중
가동 중단된 소비 심리 가운데에도 헤어 케어 비즈니스만큼은 맹렬하게 정상 작동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 과연 나의 ‘시드 머니’를 투자할 가치는 있는 걸까?
어릴 때 나는 숱 많고 굵은 모질이 콤플렉스였다. 추가 시술 요금은 일상다반사기에 헤어 디자이너가 모발을 들춰 보는 순간 늘 묘한 긴장감이 미용실에 맴돌곤 했다. 평생 탈모 고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살았건만, 이게 웬일! 그게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최근 지나치게 선명해진 가르마를 발견하고서야 깨달았다. “아직은 좀 이르지 않나?” 아니, 이른 것도 아니었다.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탈모 환자는 23만여 명, 4년 전에 비해 12%가 증가한 수치였다. 연령별로는 30대가 1위, 그 뒤를 이은 세대가 바로 20대라는 사실. 그리고 현재 이 시점에서 잠재적 탈모 인구는 앞으로 1,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가 막히고 펄쩍 뛸 만한 결과까지 나왔다. 마스크 속 ‘꾸안꾸’가 새로운 미학의 기준이 되고, 풍성한 모발과 건강한 피부가 그 무엇보다 ‘럭셔리의 끝’이라고 칭송받는 요즘 이게 대체 무슨 비극일까?
탈모의 첫 경험이 빨라져 ‘영(Young) 탈모 세대’라는 서글픈 신조어까지 붙은 2030은 헤어 케어 시장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판도는 바뀌고 있다. 단지 올리브영의 탈모 제품 매출이 50% 이상 증가한 것만이 방증은 아니다. “개인 위생과 건강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시대입니다. 고기능성 제품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데다 탈모 시장이 확대되면서 헤어 케어 또한 고액을 지불하더라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려는 열망이 커졌죠.” 다비네스 코리아 권정아 마케팅 총괄 디렉터의 설명처럼 성분 연구에서부터 가격, 유통 채널까지 ‘프리미엄’ 헤어 브랜드가 이른바 ‘떡상’ 흐름을 타고 있다. 자이언트 기업인 로레알, P&G 등이 지난해 헤어 부문에서 단 1% 성장한 데 반해 ‘올라플렉스’ 같은 살롱 기반의 고가 브랜드는 매출이 20% 이상 성장했다. 견인성, 영양 부족형 탈모가 대부분이었던 젊은 여성의 남성형 탈모(앞머리와 정수리부터 모발이 탈락하는 현상)가 부쩍 늘어난 이유도 있고, 팬데믹과 록다운 사태라는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살롱이나 클리닉에서 서비스 받던 제품을 욕실에 들이면서 홈 케어 수준도 한 단계 격상된 것이다. 고객들은 이제 자신의 모발 타입, 기능성 성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스킨케어처럼 여러 단계로 구성된 방식의 헤어케어 루틴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어요. 카테고리가 세분화된 오리베 제품 역시 전반적으로 두 배가량 매출 성장을 기록했죠.” 오리베 총괄 이사 시드 카타리의 말처럼 최근에는 스케일링, 재생과 안티에이징, 수분 케어까지 세분화된 두피와 모발 관리법이 주목받고 있다. “두피도 피부예요!” 헤어 브랜드의 오랜 외침이 이제야 제대로 빛을 발한다.
이런 고급화 흐름의 중심에는 국내 1세대 탈모 치료 디바이스 ‘메디헤어’가 있다.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헬멧이 첫 등장할 때만 해도 성공 여부는 미지수였다. 무려 2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 때문이었다. 뷰티 에디터인 나만 해도 차라리 안마 의자를 렌트하겠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이후 ‘메디헤어’의 매출이 세 배 이상 고속 성장했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의 호언이다. 이 기기의 인기 요인은 바로 ‘안드로겐성 탈모’, 즉 남성형 탈모를 레이저로 치료한다는 ‘팩트’에 있다. 모발이 가늘어지면서 이마와 정수리가 휑해지는 탈모 유형은 주로 나이 든 남성에게만 나타나곤 했는데, 이제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명확한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2030 남녀가 직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메디헤어’ 사용자의 가르마나 머리숱 정도에 따라 자동으로 모드를 선택하면 레이저와 LED 복합 에너지가 모낭 세포 대사를 활성화한다. 예방과 관리 차원을 넘어 이젠 셀프 탈모 치료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맘껏 도약하고 있는 프리미엄 헤어케어 브랜드는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판도라의 상자가 이제 막 열렸다”고 표현할 만큼 투자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스킨케어 분야에 비하면 헤어 케어 쪽은 아직 투입할 수 있는 이론과 기술이 훨씬 많다. 안티에이징 세럼에 이어 샴푸에 마이크로 바이옴(두피 표면의 유·수분 밸런스를 조절)을 적용한 것처럼 기술의 발전 또한 많은 가능성이 있다. 탈모 샴푸로 유명한 ‘TS트릴리온’ 또한 탈모 치료 디바이스를 선보이며 미지의 영역을 개척 중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세분화된 헤어 케어의 ‘습관화’를 꼽으며 고속 성장을 기대한다. 팬데믹 이후에도 이 같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요소는 결국 재구매율일 테니까.
결국 스킨케어 영역처럼 두피부터 모발까지 세분화된 케어 역시 안착해야 하는데, 전체 소비자 비율을 보면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올해 국내 탈모 시장의 규모는 무려 4조원에 이른다. 하루에도 열두 번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 그래프 가운데에서도 헤어 케어 분야만큼은 하락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미용실에서 그 묘한 긴장감을 이젠 즐겨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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