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크리에이터는 다들 어디로 간 걸까?
환한 조명 아래 단계별 뷰티 스킬을 전수하는 콘텐츠는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 ‘뷰티’ 크리에이터는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때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는 디지털 네버랜드가 붐 업이 된 2010년대 이후. 뷰티 브랜드와 PR 대행사에는 ‘인플루언서 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해왔다. 5G+ 국가답게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되는 이 리스트는 팔로워 수의 내림차순대로 줄 세워진 인플루언서의 계정 주소는 물론, 채널의 특이점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그리고 브랜드는 신제품 출시와 관련 행사를 앞두고 바이럴 마케팅을 위해 이 명단을 마르고 닳도록 활용한다.
몇 달 전 나는 우연히 그중 하나를 목격한 적 있다. 쭉쭉 나열된 이름은 익히 알던 것과 달랐다. 기껏해야 팔로워 숫자 중심으로 정리되던 리스트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고 있었다. ‘뷰티’ 바이럴을 위한 리스트지만 정작 ‘뷰티’ 인플루언서는 거의 전무했던 것이다. 문득 ‘뷰티 인플루언서가 무엇이었나?’라고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뷰티 세계의 흐름에 누구보다 귀를 활짝 열고 있는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뷰티 인플루언서 또는 크리에이터. 그 분야의 대명사와 같은 인물을 떠올리면 부연 설명할 필요 없이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다. 1세대로 대표되는 ‘포니’ ‘씬님’ ‘이사배’ 등 연예인 못지않은 명성의 스타급 인물들이다. 아티스트라고 칭해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난 손기술과 창의성, 넘치는 끼를 겸비한 이들은 다양한 컨셉의 메이크업 튜토리얼 영상을 선보이며 영역을 확장해왔다. 1세대 이후에도 이어진 그 계보는 수만 가지의 뷰티 룩을 생성하고,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뷰티 월드를 풍성하게 만드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 이후 뷰티 크리에이터의 족보는 수많은 콘텐츠로 점철은 됐을 뿐, 다음 세대의 명확한 인물이나 이름은 그려지지 않았다. 브랜드 역시 뷰티만 전문으로 다루던 이들을 찾는 추세가 줄었다. 화장품 홍보가 목적이라면 관여도가 높은, 그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찾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나?
먼저 브랜드의 속사정을 들어보면 이렇다. 알 만한 인물이라면 이미 몸값이 어마어마하기에 숫자로 밀어붙여야 하는 버즈 마케팅의 특성상 이들을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뒷광고’ 논란 이후 이제는 메가급의 크리에이터가 반드시 ‘메가적인’ 수치의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팔로워 숫자가 유명세가 덜한 대신 상대적으로 몸값이 비교적 낮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여럿을 활용하며 시선을 끄는데, 이들 대부분이 ‘비(非)뷰티’ 인플루언서다. 여기에 마케팅적 근거를 하나 더 얹어보자. AI 기술에 기반을 둔 두바이 시장조사 기관 ‘D/A’는 오히려 서로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과 크리에이터를 매칭하는 마케팅 방법을 권한다. 예를 들면 음식과 여행 주제를 다루는 크리에이터의 경우 뷰티를 포함한 광범위한 팔로워를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해당 크리에이터가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뷰티 제품을 노출하는 경우, 더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형성되며 훨씬 넓은 범위의 소비자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뷰티에 관심이 없던 잠재 고객층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덤이다. 물론 지금의 변화가 비단 저비용 고효율을 따지고, 새로운 타깃을 뚫고자 하는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만은 아니다. 큰 영향을 끼쳤지만, ‘뷰티 크리에이터’가 눈에 덜 띄게 된 본질은 따로 있다.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뷰티 크리에이터의 자리를 독식한 인물들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한 패션 브랜드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 출신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콘텐츠 세계를 구축해가는 A, 모 연예인의 아내 B, 감성적인 인테리어와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C, 젠더리스 모델 D, 요즘 부쩍 주가가 높아지는 댄서 E 등등. 지나치게 다양해서 좀처럼 모이지 않는 이들의 공통분모를 뽑자면 일관된 컨셉으로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점이다. 단계별로 유용한 뷰티 팁을 알려주는 튜토리얼 대신 이들의 채널은 매일의 순간을 나열하는 느낌의 ‘브이로그’ 콘텐츠의 지분율이 압도적이다. 물론 그 ‘라이프’에 대한 까다로운 전제는 따른다. 패션 스타일링은 기본, 그가 사는 집의 인테리어, 어울리는 사람들과 콘텐츠의 이른바 ‘감성적인’ 톤까지. 어쩌면 뛰어난 기술과 끼로 무장하던 기존 뷰티 크리에이터보다 더 많은 자격 조건이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홍보 목적을 지닌 제품이건 아니건 그들의 일상 속에 무심히 녹아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우리 여자들 대부분의 일상에 화장품을 비롯한 모든 요소가 존재하는 것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정도로. 허위와 뒷광고 논란을 지켜보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팔이피플’의 대중없는 ‘공구’ 게시 글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컨셉이 아닐까? 전후 관계가 거부감을 주지 않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 말이다.
‘美’의 기준이 바뀌는 현실 또한 한몫 거든다. 몇 년 전만 해도 메이크오버 수준의, 특정 키워드의 메이크업과 루틴이 디지털 콘텐츠의 주를 이뤘지만 이제 그 성격은 훨씬 다변화되었다. ‘탈코르셋’ ‘메이크업 프리(Makeup Free)’ ‘스킨과 보디 포지티브(Skin & Body Positive)’ 등 외모에 대한 편견과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여자들의 움직임이 떠오르고, 그를 추구하든, 하지 않든 간에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면서도 실질적인 뷰티를 추구한다. 가짓수만 많게는 열 개에 다다르는 제품으로 얼굴을 겹겹이 덮거나 결점을 가리는 전문적인 메이크업 기술은 더 이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물론 이것이 뷰티 비즈니스의 하향세를 뜻하는 건 아니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소소한 풍요를 더해줄 뷰티 제품을 끊임없이 소비한다. 그렇다면 줄곧 ‘뷰티’만 파오던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저무는가? 그보다는 가는 길이 달라졌다. 기성세대의 뷰티 크리에이터는 탄탄한 팬층과 전문도를 활용해 라이브 커머스,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컨설팅하는 등 일명 ‘팬슈머(Fan-sumer)’를 공략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예상해볼 수 있는 사실 하나. 앞으로도 ‘뷰티’라는 하나의 섹션을 포함한, 창의적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존재할 뿐, 더 이상 손바닥을 배경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그를 활용할 기술만 소개하는 것은 진화해버린 대중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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