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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큐의 새로운 큐 사인

2022.11.30

by 김나랑

    마이큐의 새로운 큐 사인

    음악가 마이큐가 그림을 그린다. 당신 삶의 새로운 큐 사인은?

    핑크 재킷은 아미(AMI), 웨스턴 부츠는 구찌(Gucci), 가죽 벨트는 미우미우(Miu Miu).

    바시티 재킷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카디건과 줄무늬 셔츠, 파이톤 프린트 가죽 바지와 벨트는 미우미우(Miu Miu).

    바시티 재킷과 흰색 바지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터틀넥 니트 톱은 구찌(Gucci), 청바지는 아모멘토(Amomento).

    핑크 파자마 셔츠와 팬츠, 터틀넥 니트 톱은 프라다(Prada).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펑크 부츠는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핑크 재킷은 아미(AMI).

    올가을에 성수동에 작업실을 새로 마련했어요. 지하라 빛이 들지 않는데 그림 그리기 괜찮아요?

    환경이 저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어요. 내가 좋은 에너지를 주려 하고, 환경이 나를 슬프게 만드는 걸 밀어내려 하죠. 누군가는 빛이 그림에 영향을 준다고 말하겠지만 괜찮아요. 이미 정답이 없는 창작을 하는 걸요.

    하지만 환경에 영향받지 않기란 어렵죠.

    날 지배하게 내버려두면 안 돼요. 특히 타인들의 콘텐츠와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 시대에는 영혼을 갉아먹히기 쉽죠. 처음 데뷔할 때 최고의 스태프와 녹음실에서 엄청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른바 마니아층에게만 음악이 머물렀고 앨범을 낼 때마다 나를 알려야 했어요. 어느 날 8만원짜리 마이크로 녹음을 하니, 누군가는 어디서 믹싱했냐면서 좋아했어요. 이렇게 조금씩 맷집이 생겨서 환경보다는 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부와 야망을 꿈꾼 시절도 있었군요?

    실패를 겪으면서 상처받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열등감도 생겼죠. 그 시간을 거쳐 자연스레 다른 옷을 입었어요. 오늘 화보 촬영도 마찬가지예요. 에디터가 탈의실이 없는 공간이라며 미안해했지만, 본질은 멋진 사진과 좋은 기사잖아요. 촬영장에 비가 새거나 탈의실이 없는 등 얼마든지 발생하는 변수를 통제하려 해선 안 돼요. 서로 배려하면서 본질을 이뤄가야죠.

    팬데믹 직전에 그림을 시작했죠. 그림은 마이큐에게 자기표현의 하나인가요? 그 이상의 목적도 있나요?

    깊은 의도를 갖고 창작하지 않아요. 사랑도 나도 모르게 빠지는 거지 ‘이제 사랑할 거야!’ 결심한다고 되지 않잖아요. 그림도 그런 본능과 비슷해요. 제 장점은 바로바로 느껴서 표출하는 거예요. 의도가 있고 단계를 밟아야 하나 싶었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생략되고 그리는 행위 자체가 단색화처럼 미니멀해졌어요. 컬러를 고를 때도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색 사이에 아닌 색을 일부러 조합해서 어떻게든 해결하려 했어요. 미술에 배움이 없었기에 나름의 공부였지만, 이제는 직감적으로 계산 없이 그려요. 그러면 의도, 뜻, 생각, 이야기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리다 보면 며칠 혹은 몇 달 뒤에 ‘나는 이런 아이야, 네 몸을 빌려서 태어났어’ 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본 관객이 뭔가 느낀다면 새로운 스토리가 연장되죠.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나요?

    음악에도 배움이 없었어요. 악보도 못 보고 누르는 코드도 완벽히 알지 못하죠. 한때 공부해보려 했는데 그 방식과 틀에 갇히더라고요. 탁월한 보컬리스트가 아니라서 노래도 배워봤지만 오히려 제 장점이 멀어졌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 약점과 단점이 오리지널리티가 되게 해야겠다. 이게 오랜 시간 음악을 할 수 있는 힘 같아요. 나만의 길을 가겠습니다! 미술도 처음엔 비슷한 고민을 하긴 했어요. 지인 작가에게 연락해 약간의 팁은 받지만, 저만의 길을 가는 중이에요. 초등학교 이후로 그림을 그려본 적 없었기에 화방에 처음 가서 헤맸어요. 세상에 물감 말고 그렇게 많은 재료가 있다니. 이젠 주인 할아버지와 친해졌고 이런저런 재료를 써봤죠.

    130~140호의 큰 작품을 주로 그리는군요.

    그림을 그린 계기와도 연관 있어요. 2019년에 전국 투어를 하면서 비슷한 공연장으로 관객을 부르기 미안했어요. 여행 가는 이유도 낯섦에서 나를 충전하고 약간의 일탈을 하고 싶어서잖아요. 그래서 공연장을 직접 꾸며보기로 했어요. 벽에 내려뜨린 커튼에 래커로 글자를 쓰고 그림도 그렸어요. 몸은 힘든데 희열이 있었어요. 제가 몸이 편하면 열심히 안 했다고 여기는 편이거든요.

    러닝도 즐기는데 비슷한 마음으로 하는 거겠죠?

    달릴 때 호흡이 거칠어지면 살아 있는 거 같고 땀이 나면 신이 나요. 쓰러지기 전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심장에 약속하고 러닝을 해요. 매일 뛰는 7km지만 같은 지점에서 고비가 와요. 그 순간을 넘기면 완주할 수 있죠. 아, 인생도 비슷하구나. 해낼 수 있는데 특정 상황이라고 내가 안 하는 거구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 관련 저서에서 비슷하게 말했어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맞아요.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한다는 점도 둘이 닮았어요. 매일 꾸준히 작업한다고요.

    감히 그 작가님과 비교할 수 없지만 확실히 깨달은 점은 이거예요. 젊을 때는 영감, 뮤즈를 찾아 헤매며 창작의 우선순위로 뒀죠. 그게 틀리다는 게 아니고 제가 해봤기에 한계도 아는 거예요. 영감의 한계에 부딪히면 그 벽을 부수기 위해 알코올이나 관계에 집착하게 되죠. 자극의 끝은 없고요. 저는 직장인들이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매일 반복적으로 일을 해내는 그들이 어마어마하게 존경스럽죠. 꼭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시를 써야 예술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삶이 행위 예술이죠. 저도 좀 더 규칙적으로 타이트하게 살려 합니다. 해 있는 동안엔 작업에 열중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가 쉬죠.

    ‘하지 않으면 잘린다’ 같은 강압 없이 규칙적으로 작업하기 어려운데, 그런 점에서 대단합니다.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제 삶에 창작이 부재하면 급격히 어두워져요. 표현해야만 내가 걸어가고 살아 있는 거 같아요. 나태해질 때는 여행, 독서 같은 대체재를 찾죠. 지금은 다행히도 페인팅을 하다 안 풀리면 음악으로 가요. 머리에서 둘이 경쟁하고 있어요. ‘너 음악이 상업적인 거 같다? 이 그림은 괜찮고?’ 이렇게 주고받죠.

    그래서 그림 작업실에 음악 장비도 함께 뒀군요. 이제 표현할 매체가 두 가지로 늘었는데 기분이 어때요?

    사람들이 “넌 그래도 하고 싶은 음악 하며 살잖아”라고 해도, 내가 도달하고 싶은 음악적 기준에 못 미쳐서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때가 있었어요. 우연히 페인팅을 만나면서 또 다른 창작 챕터가 열렸죠. 나만의 것을 찾는 여정에 다른 근육을 만들게 된 거예요. 누군가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할 수 있는 걸 하며 하루를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할 수 없는 것 말고요. ‘나는 가진 게 없는데?’라고 반문하면 산책하며 좋은 공기를 마셔보라고 권할게요. 몸을 건강하게 하고 자연을 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이보다 큰 게 있을까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 만큼 제가 그림을 그리게 된 스토리도 들려드리려 해요. 그림을 배운 적 없는 마이큐도 하네? 나라고 왜 못하지? 그런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림 그리며 괴로울 때는 없나요?

    괴롭고 두려운 순간은 언제나 존재하죠. 인간은 생명을 만드는 창조 능력은 없지만 창작할 수 있잖아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내 심장으로 필터링해서 다시 한번 표출해내는 행위, 그 기록이 소중해요.

    연말까지 전시가 열리고, 내년에도 아트 페어, 개인전이 이어집니다. 해보고 싶은 전시 형태가 있나요?

    ‘클래식은 영원하다’를 추구해요. 애매하게 변형하느니 클래식을 제대로 해야죠. 새로운 걸 하려면 정말 새로워야 해요. 현재로선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해요. 지금 당신이 느낀 불편함 혹은 분노, 그것이 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내 작품이 돌고래 같기를”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제주도에서 러닝을 하다 돌고래를 봤어요. 저를 포함해 거기 있던 할아버지, 아이들, 지나가던 차량이 다 멈춰서 돌고래를 봤어요. 돌고래는 어디선가 신비롭게 나타나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줬죠. 나이, 생김새, 그간의 삶을 다 떠나서, 마음이 가난하든 부자든 돌고래를 보면서 ‘와, 돌고래다!’ 할 거 같아요. 그런 돌고래 같은 작가 혹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VK)

    에디터
    김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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