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사진가와 공간 디자이너가 만든 부부의 세계

2022.12.16

by 김나랑

    사진가와 공간 디자이너가 만든 부부의 세계

    사진가 안상미와 공간 디자이너 조현석은 남산 아래 오래된 빌라를 평생의 보금자리로 꾸몄다.

    아름다운 것을 나누는 것을 즐기는 안상미, 조현석 부부. 각자가 좋아하는 가구와 소품을 가까이에 배치하며 집 안 곳곳에 미학을 아로새겼다.

    “남다른 미학을 가진 아티스트의 집을 찾아보라”는 <보그>의 지령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사진가 안상미와 공간 디자이너 조현석 부부의 집이었다. 언제나 신선하고 어여쁜 사진을 찍는 사진가와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실내 디자이너가 함께 사는 집이니 굳이 시각적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끄럽지만 한번 용기를 내볼게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우리 부부, 누군가에게 사진 찍히는 게 너무 어색해서 결혼사진도 안 찍었어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커플 촬영이 될 것 같군요.”

    벽돌 외관이 남아 있는 테라스에서 해리 베르토이아(Harry Bertoia)의 화이트 사이드 체어가
    감각을 뽐낸다.

    “지난해 가을, 층간 소음 때문에 이사를 결심한 뒤로 정말 많은 집을 보러 다녔어요. 사계절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집을 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층 아파트는 제외했죠.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조용한 집을 찾는 것이 목표였는데, 운명처럼 네덜란드의 오래된 빌라 같은 이 집을 만나게 됐어요. 마침 창 너머로 감나무가 보이더라고요.” 탐스럽게 익은 매끈한 사과를 접시에 담으며 안상미가 말했다. 실제로 조현석이 특별히 애착을 갖고 만들었다는 묵직한 메탈 소재 중문을 닫자 새소리마저 사라지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오직 포토그래퍼의 장비 옮기는 소리만 부산하게 들릴 뿐이었다. 고정관념을 버릴 때 새로움이 만들어진다는 말은 이 집에도 통한다. ‘안홈(집 공사를 칭하는 프로젝트 이름)’은 초콜릿색 바닥이 누구도 생각지 못한 킬링 포인트다. 부부는 고민 끝에 원목 바닥 대신 블랙에 가까운 어두운 톤의 마모륨을 깔았다. 바닥재로 흔히 사용하는 컬러는 아니었지만 운명처럼 끌렸다. 빨간 벽돌로 덮인 벽면은 모두 다 뜯어내고 반듯하게 펴는 작업을 거듭해 빳빳한 도화지처럼 매끈하게 단장했다. “평소 작업할 때 특정 이미지에 매몰돼 끌려가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이 집을 설계할 때도 특정 레퍼런스를 정해놓지 않고 어떤 가구나 소품이 들어와도 그림처럼 어우러질 수 있도록 기본에 충실한 집을 만들고자 했어요. 참고 자료를 굳이 꼽는다면 네덜란드 건축가 마르트 반 스헤인덜(Mart Van Schijndel)의 책 <Van Schijndel House>예요. 자신의 집을 설계하는 과정과 결과물을 상세히 기록한 책인데, 그 안에서 건축가의 집요함을 조금이라도 배워보려고 했습니다.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중압감에 시달리기보다 즐겁게 우리의 동선을 고려한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안상미 역시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이 누구보다 명확한 사람이지만, 집 인테리어만큼은 전문가인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제가 딱 하나 요구한 건 효율적인 수납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둘 다 예쁜 걸 보면 참지 못하고 지갑을 여는 스타일이라 짐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겉으로는 미니멀리스트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집가 스타일이에요.” 부엌을 길게 장식한 비초에의 하얀 선반을 열자 그릇, 생활용품, 촛대, 액자 등 예술품의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빼곡함 속에 질서를 지킨 채 말이다.

    건축, 실내 디자인 참고 서적으로 가득한 조현석의 서재. 천장 조명은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Ingo Maurer)가 디자인한 것이다.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몇몇 가구 덕분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부의 수집품 쪽으로 옮겨갔다. 빈티지 가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조현석은 결혼 전부터 이베이에서 좋아하는 가구와 조명을 하나씩 사 모았다. 조 콜롬보(Joe Colombo)의 626 플로어 램프를 비롯해 카를로 포르콜리니(Carlo Forcolini)의 플로어 램프, 아르민 비르트(Armin Wirth)의 체어 등 오랜 시간 수집해온 아이템이 그의 서재를 가득 메운다. “최근에 구매한 건 독일 주방 브랜드 불타우프(Bulthaup)의 식탁 세트예요. 제가 좋아하는 메탈과 우드의 조합에서 일단 마음을 빼앗겼고 빈티지인데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모난 부분 없이 말간 인상이 좋았죠.” 거실 한가운데에는 독특하게 이스라엘 디자이너 론 아라드(Ron Arad)의 빈티지 침대 프레임이 자리하는데, 이는 ‘좋아하는 걸 가장 가까이 두자’는 부부의 철학을 반영한 배치다. “가구를 고를 때 편리함보다는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우선순위로 해요. 불편하더라도 미학적으로 훌륭한 것이어야 오래 애정을 갖고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집에 놀러 온 지인들이 벤치로 착각하고 앉는다는 금속 선반 역시 부부가 좋아하는 제품이다. “원래는 유럽 정육점 같은 곳에서 주로 사용하던 것이었다고 해요. 빈티지 가구점 MK2에서 처음 보는 순간 소재와 조형미에 반해 구매했어요. 집으로 데려온 뒤 어떻게 설치할까 고민하다가 거실 벽면에 낮고 길게, 벤치처럼 설치하기로 결정했죠.” 공간을 디자인하는 조현석의 직업 특성상 제작한 가구에 대한 이야깃거리도 많다. 서재에 무심하게 서 있는 행어와 파우더 룸의 수납을 담당하는 메탈 벽장, 침실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주는 옷장은 모두 조현석이 섬세한 손길로 만든 것들이다. 특히 아연과 나무 소재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납장은 오랜 시간 친분을 쌓아온 목수가 공을 들인 덕에 완성도가 탁월하다. 손잡이를 붙이는 것이 싫어서 좁은 틈새 사이로 손을 넣어 여닫는 방식을 택했고 천장까지 가득 채우는 대신 여백을 두었다. 두 달간의 공사를 주도한 건 조현석이지만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은 건 안상미 쪽이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꽃 시장에 들러 싱싱한 야생화를 구입해 현관 입구에 꽂아두었는데 화분 키우는 재미에 빠진 뒤부터는 미니 화분이 그 즐거움을 채워주고 있어요.” 시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퀼팅 블랭킷과 화분 깔개는 미니멀한 무채색 공간에 위트를 더한다.

    체스 판 패턴의 대리석 바닥과 코발트색 계단 손잡이가 시선을 끈다.

    ‘더프레이즈’와 함께한 전시 <The Elements>, 클로브 도산 매장, 논픽션 삼청 쇼룸 등 공간 디자인 신에서 색다른 행보를 보이며 활약하는 조현석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계획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이라는 뻔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는 일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 취향을 담은 것들을 곁에 두다 보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예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좋아해서 사진을 찍을 때 ‘태도’를 담아내는 연습을 한다는 안상미 역시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싫어하는 것을 곁에 두지 않는 것. 가장 단순하면서도 쉽게 행복을 곁에 두는 방법 같아요. 작업도 집과 마찬가지죠.” 창문을 열자 새소리와 함께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VK)

    메탈의 물성을 사랑하는 조현석이 기능성을 고려해 제작한 행어. 원목 캐비닛과 더불어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차가운 메탈 소재 중문이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물건 늘어놓는 걸 싫어하는 부인을 위해 제작한 파우더 룸 캐비닛.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이다.

    예전 집주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의 아이보리 냉장고가 빈티지 무드를 더한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공인아
    포토그래퍼
    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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