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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청년

2023.03.31

by 이숙명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청년

    <존 윅 4>가 북미에서 시리즈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 5편이 제작될 거라는 예측도 흘러나온다. ‘잘 살아줘서 고마운 그 시절 청춘스타’ 시상식이 있다면 우승은 단연 키아누 리브스일 것이다. 내년이면 환갑에 접어드는 키아누 리브스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의 리즈 시절을 추억한다.

    Photo by Aaron Rapoport. Getty Images

    데뷔 초 키아누 리브스가 액션 스타로 대성할 거라고 예상한 팬은 없었다. 소년미가 가시지 않은 해사한 얼굴, 호리호리한 몸, 예민한 표정은 고전적 의미의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실 키아누는 고등학교 시절 캐나다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를 꿈꾸었고, 20대 초반에는 ‘데몬 라이드(조명을 끄고 바이크를 모는 행위)’를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졌을 만큼 터프한 사람이지만 그 능력이 영화에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영화 ‘아이다호’
    영화 ‘아이다호’
    영화 ‘아이다호’

    17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연극과 TV에서 작은 배역을 맡기 시작한 그는 27세 되던 1991년 <아이다호>와 <폭풍 속으로>에 출연하며 글로벌한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퀴어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이다호>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잔인한 악당으로 남을 캐릭터를 연기했다. 집을 뛰쳐나와 거리의 남창들과 어울리다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자 친구들을 배신하고 자기 세계로 돌아가는 상류층 자제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환호를 받은 건 선택의 여지 없이 우울하고 결핍된 밑바닥 인생을 연기한 리버 피닉스 쪽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장례식이 펼쳐지는 후반부 장면에서 옛 친구들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이야말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감정이 철저히 거세되어 기계처럼 보일 정도 무표정을 자주 보여주는 배우인데 그건 훗날 그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결점이자 무기가 된다.

    영화 ‘폭풍 속으로’
    영화 ‘폭풍 속으로’

    <폭풍 속으로>는 이제 거의 회자되지 않는 영화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1990년대 키아누 리브스의 다른 출연작도 마찬가지다. <터미네이터>나 <에이리언> 시리즈처럼 기술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수십 년째 지진파를 발산하는 프랜차이즈라면 모를까, 한 번의 히트로 끝난 영화는 20~30년 세월이 흐르면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1990년대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는 요즘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구석이 있다. 직선적인 스토리, 풍요로운 시대를 반영한 낙관적인 분위기, 액션이든 스릴러든 SF든 21세기 작품보다 밝은 화면, 빈티지 패션, 때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향한 광적인 흥분이 만들어낸 과감한 뒤틀림까지. 1990년대는 현대 영화의 동어 반복과 긴 러닝타임, 장황하고 배배 꼬인 서사, 어지러운 그래픽에 지쳤을 때 도피할 수 있는 가장 이질감 없는 과거다. <폭풍 속으로>도 그런 의미의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영화다. 어린 FBI 요원이 노련하고 자유분방한 은행 강도를 쫓다가 혼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풋풋함과 패트릭 스웨이지의 카리스마가 훌륭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폭풍 속으로>는 한국에 서핑의 매력을 널리 알린 영화기도 하다. 범죄물에도 낭만이 넘치던 시대였다.

    영화 ‘스피드’
    영화 ‘필링 미네소타’
    영화 ‘구름 속의 산책’
    영화 ‘구름 속의 산책’
    영화 ‘스위트 노벰버’
    영화 ‘스위트 노벰버’

    1994년 마침내 키아누 리브스의 첫 번째 대작 <스피드>가 개봉한다. 키아누와 산드라 블록 모두 이 영화로 메이저 스타가 되었다. 주인공들이 숨 가쁘게 내달리며 테러범을 잡는다는 플롯은 흔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오락성을 능가하는 영화는 드물다. 액션과 로맨스의 조합 역시 뻔한 아이디어 같지만 의외로 성공률이 낮은데 이 영화가 그것을 해냈다. 키아누 리브스 특유의 그리 복잡하지 않은 심리 표현이 시종 긴장되지만 밝은 분위기의 이 영화에서는 침착함으로 승화되었고, 산드라 블록의 외향적인 매력을 완벽하게 뒷받침해주었다. 이 시기 키아누 리브스의 로맨스 영화가 대체로 이런 구도였다. 강한 캐릭터를 가진 여주인공이 좌충우돌하고, 키아누 리브스가 그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카메론 디아즈와 출연한 <필링 미네소타>(1996), 아이타나 산체스 지욘과 호흡을 맞춘 <구름 속의 산책>(1995), 샤를리즈 테론과 함께한 <스위트 노벰버>(2001)가 그랬다. 역시 드물게 회자되지만 언제 봐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영화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영화 ‘콘스탄틴’
    영화 ‘존 윅’
    영화 ‘존 윅 4’

    1990년대 그는 연기로 극찬을 받거나 단독 흥행력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서서히 하락세를 타는가 싶던 그의 커리어는 1999년 획기적인 반전을 맞이한다. 한때 다양한 변신을 가로막는 한계처럼 보이던 뻣뻣한 표정, 차분한 시선, 저음의 기계적인 억양은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완벽한 쓰임새를 찾았다. 그는 미래 SF나 판타지 액션의 초월적인 존재를 연기하라고 영화의 신이 할리우드에 보내준 선물임이 분명했다. <콘스탄틴>(2005)과 <존 윅>(2014) 시리즈가 그 연장선에 있었다.

    소피아 코폴라와 키아누 리브스. Getty Images
    Getty Images

    1990년대 청춘스타 중에 여전히 위세 등등한 배우는 많지만 키아누 리브스에게 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톰 크루즈가 종교, 브래드 피트가 결혼 생활에 관한 추문, 디카프리오가 연애 기벽으로 종종 놀림감이 되는 데 반해 키아누 리브스는 여전히 연민에 가까운 애틋함을 자아낸다. 그는 불교를 비롯해 정신적인 것에 심취하고,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또래라 해도 좋을 ‘겨우’ 아홉 살 차이 백발 아티스트와 공개 연애를 하고, 물욕이 없는 사람처럼 기부를 하고, 선민의식과는 거리가 먼 수수한 태도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즐겁다.

    <존 윅 4> 한국 개봉은 4월 12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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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rtesy Photos, Getty Images,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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