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이 작품을 볼 때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친절한도슨트

2023.04.01

by 정윤원

    이 작품을 볼 때 불편한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친절한도슨트

    짧은 호황 끝에 냉각기로 접어들었다는 한국 미술 시장, ‘고객’이 지갑을 여닫으며 고심하거나 아예 떠나버리는 상황에서도 ‘관객’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가 가장 좋은 예인데요, 오늘도 리움미술관에는 입추의 여지 없이 관객이 들어찼을 겁니다. 카텔란의 명성과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든, 유명작 혹은 문제작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기 위해서든, 관객은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 타이틀을 몸소 경험하며 즐깁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한 카텔란은 예술뿐 아니라 세계 자체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미술계는 패기에 가까운 그의 이런 블랙 유머적인 태도에 환호해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악동을 사랑합니다.

    전시 ‘WE’ 지하 1층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전시 ‘WE’ 1층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회고전 이후에 열린 최대 규모의 회고전인 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사 서적이나 언론을 통해 접한 카텔란의 ‘기념비적’ 대표작이 곳곳에 자리합니다.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충분히 단순하고도 직관적입니다.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활용해 친근한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이죠. 익살스럽고 냉소적인 한편 뻔뻔하고 무례하기도 한 비판과 풍자, 공격의 화살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도 꽤 인상적입니다. (카텔란을 닮은 인물들과 꽤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나’의 이야기로 연결된 ‘너’의 이야기만이 제목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웃기기도, 슬프기도, 끔찍하기도, 어이없기도 한 다양한 감정이 마구 뒤섞입니다. 자주 비교되는 뒤샹과도 다르게 카텔란은 삶의 폐부를 찌르는 법을 아는, 실로 영리한 악동입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리움미술관 제공, Photo by studioj_kim_je_won, 배경 작품: ‘무제'(2000)
    ‘코미디언’, 2019, 생바나나, 덕트 테이프, 가변 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전략가로서의 카텔란의 면모는 아트 바젤 페어장에서 12만 달러에 판매되었다는 바나나(정확히 썩어가는 바나나)인 ‘코미디언'(2019)을 통해 이미 증명됐습니다. 후미진 방에 배치되었음에도,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내고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당연하게도 이 바나나는 그 바나나가 아닙니다. 문제의 컬렉터가 구입한 문제의 바나나도 현대미술의 위대함이 아니라 현대미술을 둘러싼 모순에 다름 아니죠. 그럼에도 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 자체가 미술의 위대함을 반증하는 걸까요. 어쨌든 카텔란은 절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질문을 던질 뿐이죠. 질문에 답을 할 것인가, 어떤 답일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관객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2010, 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천, 옷, 신발, 78.5×151×80cm,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 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 김경태

    내가 답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이 무시로 떠오릅니다. 2층에는 축하와 환호를 상징하는 레드 카펫 위에 9구의 시신으로 보이는 대리석 조각 ‘모두'(2007)가 놓여 있습니다. 인상적인 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해 만든 ‘무제'(2018) 내부를 보려고 줄을 선 관객의 존재입니다. 위치상 시신들의 머리맡에 서게 되는데,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자연히 이들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해 있는 이 공간에서 경험하는 성당의 내부가 마냥 성스러울 리 만무하겠죠. 이상하게도, 박제된 동물보다 당시의 나를 자꾸 복기하게 되더군요. 그때 나는 무심히 서 있었을까요. 줄이 너무 길어 짜증이 났을까요. 시신 형태 조각의 사진을 찍었던가요. 카텔란은 ‘우리’를 불편한 상황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공범 혹은 방관적 목격자로 만들며, 스스로의 민낯을 대면하도록 합니다. 가장 직설적인 ‘우리’의 상태를 마주한 후에야 비로소 공감과 연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 보니, 전시 흥행만큼 카텔란의 도발도 성공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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